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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종교개혁사

스코틀랜드 최초의 언약신학자, 로버트 롤록의 생애와 신학 우병훈

롤록은 언약이라는 주제를 신학의 중심주제로 제시한 첫 번째 스코틀랜드 신학자이다.51) 롤록은 라무스의 방법론을 언약론에도 적용하여 언약신학을 상당히 정교하게 만들었다. 그의 언약론은 이후 개혁파의 언약론에 중요한 참조점이 되었다. 그의 언약신학이 가장 잘 나타난 작품은 102개의 질문과 답변을 담아 교리문답식으로 구성한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몇몇 질문들과 대답들(Quaestiones et responsiones aliquot de Foedere Dei , 1596)』이다(이하에서 『하나님의 언약』으로 약칭). 이 작품은 『로마서 주석(1593)』과 『효과적인 부르심에 대한 논문(1597)』 사이에 나왔다.52) 이때까지 많은 학자들은 주로 『효과적인 부르심에 대한 논문』을 중심으로 롤록의 언약 신학을 연구했다.53) 하지만 롤록의 언약신학이 가장 잘 나타난 곳은 『하나님의 언약』이다. 아래에서는 이 작품을 중심으로 롤록의 언약사상을 좀 더 깊이 살펴보고자 한다.54)

 

2. 라무스의 방법과 “행위언약”


먼저 『하나님의 언약』의 구조적 특징을 보자. 라무스주의의 대가(大家)인 사람답게 롤록은 전체 구조를 “행위언약과 은혜언약의 이분(二分) 구도”로 설정했다.55) 타락 전 언약을 “행위언약”으로 규정하고 “은혜언약의 짝이 되는 언약”으로서 아주 자세하게 다룬 것은 언약 신학의 역사에서 아주 중대한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현대 학자들은 타락 전 언약을 가장 최초로 폭넓게 다룬 사람은 우르시누스였다고 지적한다(Catechesis Major [1584]).56) 비슷한 시기에 올레비아누스도 역시 타락 전 언약을 언급했다(De substanta foederis [1585]). 하지만 올레비아누스는 타락 전 언약(“창조 언약”)을 은혜 언약의 짝이 되는 언약으로 기술하지 않았다.57) 비슷한 시기에 더들리 펜너가 최초로 타락 전 언약을 “행위언약(foedus operum)”이란 말로 규정했다(Sacra Theologia [1585]).58) 윌리엄 퍼킨스도 역시 “행위언약(covenant of works)”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Golden Chaine [1591]). 하지만 그들은 행위언약을 은혜언약과 비교하면서 길게 논하지는 않았다. 이와 대조적으로, 롤록은 타락 전 언약을 1596년에 나온 이 작품 『하나님의 언약』에서 행위언약을 은혜언약과 대비하여 행위언약을 매우 길게 설명하고 있다.59) 이런 점만 고려하더라도 롤록을 스코틀랜드 최초의 언약신학자로 보는 것은 크게 무리가 없어 보인다.


3. 언약의 정의와 종류


롤록은 언약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특정 조건 하에서 인간에게 선한 것을 약속하시는 것으로서, 인간은 그 조건을 수락한다”라고 정의한다(1문답). 언약의 정의를 “약속과 동의”라고 보는 셈인데, 이 두 요소는 개혁주의 신학에서 언약을 정의 내릴 때 사용하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핵심적인 요소이다. 하나님께서 인간과 맺으신 언약은 이중적(duplex)인데 그것은 행위언약과 은혜언약이다(문답3).


4. 행위언약의 정의와 근거와 조건


이 두 언약들 중에 자연언약 혹은 행위언약은 “선행(善行)을 조건으로 하여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영생을 주시기로 한 언약”이다(문 답3). 이 선행은 인간이 가진 “본성(natura)”의 덕들에서 나오는 행위들이다.60) 인간은 이 선행이라는 조건을 받아들인다(3문답). 롤록은 여기에서 레위기 18:5, 로마서 10:5, 갈라디아서 3:12를 제시한다.61) 행위언약에 한 가지 중대한 경고가 덧붙여졌는데(4문답), 그것은 율법에 기록된 대로 모든 것을 행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는 사실이다(5문답; 창 2:17, 신 27:26, 갈 3:10). 행위언약의 근거는 하나님께서 창조 시에 인간에게 주셨던 “선하고 거룩하고 올곧은 본성(Natura bona, sancta, & integra)”이다(6문답, 8문답도 참조). 행위언약의 조건은 그 본성에서 나오는 “거룩하고, 의롭고, 완전한 행위(opera naturae sancta, iusta, perfecta)”이다(6문답). 이것이 행위언약의 조건이라면 그 약속은 “영원히 지속되는 복된 삶”이다(7문답; 롬 10:5, 갈 3:12). 이 조건에서 말하는 선행이란 인간의 본성에서 나오는 덕들이며, 이 조건에서 배제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그리고 은혜와 중생에서부터 나오는 선행이다(8-9문답). 그런 것들이 배제되는 까닭은 인간 본성의 덕들은 믿음과 은혜에서 나오는 덕들과는 공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10문답). “행위언약의 조건의 주요한 요소들(capita conditionis huius foederis)”은 십계명의 개별 항목들이다(11문답). 그런 까닭에, 율법이 새겨진 돌판들이 “언약의 돌판들”이라고 불리는 것이다(11문답; 출 19, 20, 22:15, 히 9:4). 행위언약의 조건들은 결코 공로적이지 않다. 다만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할 감사를 증거할 뿐이다(12문답; 롬 11:35, 눅 17:10).62) 타락 전의 거룩한 본성에서부터 나오는 선행은 온전한 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공로가 될 수 없는 까닭은 그것은 당연히 해야할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13문답). 이 언약이 행위언약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언약의 조건이 선한 본성에서부터 나오는 “행위”이기 때문이다(14문답). 이 언약은 인간이 창조되었을 때 곧장 체결되었다(15문답; 창 1:27ff, 2:15ff).63)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율법을 새기시고, 그것을 지키게 하셨는데, 인간은 그 조건을 수락했다(16문답; 창 2:15ff). “도덕법(lex moralis)”은 인간의 마음에 창조 때부터 새겨져 있어서 본성 자체로 언약의 조건들은 알려지게 되어 있다(17문답). 그 법에 대한 지식은 타락 이후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다(17문답; 롬 1:19, 32, 2:14).

 

5. 행위언약의 갱신?


그렇다면 행위언약은 계속 갱신되는가? 이 질문에 대해 롤록은 행위언약은 창조와 타락 때로부터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계속 갱신되었다고 주장한다(18문답). 그것은 처음에는 하나님의 목소리로 주어졌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 자신의 손으로 돌판에 새겨졌으며, 그 이후에 모세에 의해 전달되었고, 마지막으로 선지자들에 의해서 각각의 장소와 순서에 따라 반복되었다(18문답). 여기서 우리는 타락 전 아담에게 주셨던 언약(행위언약)이 모세에게 주신 언약(시내산 언약)에서 과연 “갱신(republication)”이 되었는지 아닌지에 대한 현대의 토론을 떠올리게 된다.64) 여기서 그 토론을 다 다룰 수는 없지만 롤록의 입장만을 소개하자면, 시내산 언약은 한편으로는 행위언약의 갱신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은혜언약이라는 것이다. 롤록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행위언약은 출애굽기 19-20장에서 갱신되었다(19문답). 행위언약에서는 법(도덕법)이 먼저 주어지고 언약이 세워졌지만, 시내산 언약에서는 언약이 체결된 후에 법(율법)이 주어졌는데, 이러한 순서는 별로 상관이 없다(20문답). 중요한 것은 행위언약이 이렇게 갱신되는 까닭은 인간이 선행을 통하여 구원 받을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는 사실이다(21문답). 행위언약이 갱신되는 목적은 은혜언약을 예비하기 위해서이다(22문답). 택자들은 갱신된 행위언약 하에서 은혜언약을 예비할 수 있게 된다(23문 답). 은혜언약도 역시 구약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과 체결된 것이다(24문답; 창 3:15,65) 49:10, 22:18, 26:4).

인간은 행위언약에서 실패했다(25문답). 인간은 창조 직후에, 행위언약이 성립된 직후에 얼마 안 가서 타락했다(26문답; 창 3:1ff, 롬 5:12ff). 타락 이후에 인간은 다시 언약을 받을 자격이 없다(27 문답). 그래서 만일 인간을 그 상태로 두었다면 인간은 육체적 죽음과 영적인 죽음이라는 두 가지 죽음을 겪게 될 것이다(28문답; 창 2:17, 3:7ff, 롬 5:12).66) 물론 인간이 즉시로 죽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죽음은 때가 되면 임할 것이었다. 인간의 육체는 결국 죽을 것이며,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했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생명을 뜻한다. 그 생명은 거룩, 의, 지혜에서 탁월한 생명이었다(29문답; 창 3:7, 고전 15:42, 43, 고후 5:4, 엡 2:1, 골 2:13). 우리는 행위언약과 관련한 교리들을 구약에서 얻을 수 있다고 말하면서 롤록은 행위언약에 대한 가르침(1-30문답)을 마친다(30문답).
다시 정리해 보면, 행위언약은 시내산 언약에서뿐 아니라, 구약 시대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과 더불어 각 시대마다 갱신되는데, 그 까닭은 그들이 은혜언약을 예비하기 위함이었다. 시내산 언약이 행위언약의 갱신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로 다시 돌아가 보자면, 롤록은 분명히 시내산 언약이 행위언약의 갱신이라고 보았다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비단 시내산 언약에서만 갱신되었던 것이 아니다. 구약 시대 교회와 사람들에게 행위언약이 계속해서 갱신된다.67) 그런데 행위언약이 갱신되는 까닭은 은혜언약을 예비하기 위해서이다. 택자들이라면 행위언약을 통하여 은혜언약을 예비하게 된다(23문답). 따라서 시내산 언약은 행위언약의 갱신이면서 동시에 그 때 있었던 택자들에게는 은혜언약이 주어진 사건이었다. 바로 이것이 시내산 언약의 성격에 대한 롤록의 견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