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9/01

성찬과 복음 히폴리투스(Hippolytus)의 『사도전승』에 남아 있는 성찬예전(아나포라)의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마음을 드높이(Sursum corda) 시작 기도(Preface) 제정사(Institution Narrative) 기억의 기도(Anamnesis) 성령 임재의 기도(Epiclesis) 영광송(Doxology) ----------------------------- Hippolytus, 이형우 역, 『사도전승 교부문헌총서 6』 (왜관: 분도출판사, 1992), 83. . . .그런데 칼뱅의 제네나 성찬 예전(Anaphora)을 보면 이렇습니다.구제를 위한 헌금(봉헌) 중보기도 주기도문 해설 성물준비(사도신경을 노래함) 제정의 말씀 권면 성찬 기도(성령의 임재를 위한)_Epiclesis 성체분할(분병례) 분.. 더보기
경외감과 친밀감 경외감과 친밀감 연인의 이별과 부부의 권태에 결여된 것은 친밀감이 아니다. 친밀감의 결여로 연인이 이별을 경험하거나 부부가 권태에 빠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오히려 존경심이 결여가 이별의 원인이 된다.사람들은 관계를 위해 친밀감에 몰두한다. 그러나 친밀감의 탐구가 끝나면 곧 권태를 경험하게 된다. 친밀감은 관계를 유지하는 진정한 원천이 되지 못한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성경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친밀감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로 요약되는 존경심을 요구한다.유교적 덕목에서 부부간을 유별한 것으로 부자간을 유친한 것으로 정의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부부 간에 결여되기 쉬운 것이 존경심이고 부자 간에 결여되기 쉬운 것이 친밀감이기 때문이다.지나친 친밀감은 중독의 일부이다. 관계 중독이고 이 중독은.. 더보기
묻는 게 힘이다. 한나라를 세운 유방은 8년 간 항우에게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다. 그들의 운명은 해하전투에서 갈렸지만 8년을 한 번도 이기지 못했던 유방의 리더십에는 결정적 차이가 있었다. 항우는 항상 "어떠냐(何如)?"라고 참모들에게 동의만을 구했으나 유방은 항상 "어떻게 할까(如何)?"라고 의견을 물었다. 항우의 하여는 우리말의 용례에도 남아 있다. "하여간에"라고 쓰이는데 동의를 하든 말든이라는 의미로 쓰인다.페북에 글을 적어보면 꼭 안 듣는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이해하고는 글쓴이의 담벼락에 와서 자기 생각을 상대에게 강요한다. 그 때 물어야 할 것은 먼저 상대의 생각이 자신이 이해한 바로는 이런 데 이게 맞느냐고 물어야 한다. 그리고 내 생각은 이런 데 넌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 게 상대에 대한 존중이다. 의견.. 더보기
더듬어, 더듬으라구(약1:17) 더듬어, 더듬으라구(약1:17)이재현 목사(충광교회)마시마 유키오의 소설 [금각사]에 나오는 주인공 미조구치는 말을 더듬는 장애가 있습니다. 미조구치는 말을 더듬는 콤플렉스 때문에 학교생활에도 자신감이 없었고, 친구들을 사귀는 것도 여의치 않았습니다. 말을 더듬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오히려 심하게 말을 더듬을 뿐이었고, 그럴 수록 삶에 대한 자신감도 그만큼 낮아졌습니다.어느 날 미조구치에게 가시와기라는 기이한 친구가 나타납니다. 가시와기는 심한 안짱다리를 가지고 있는 아이였습니다. 그는 걸을 때마다 온 몸을 좌우로 심하게 흔들면서 걸었습니다. 하지만 가시와기는 그 누구보다 성격이 쾌활했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렸습니다. 심지어 그를 좋아하고 따르는 여자들도 꽤 많았습니다.미조구치에게 가시와기는 이렇.. 더보기
물숨 물숨 제주도 성산포에서 북동쪽 방향으로 약 3.8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한 작은 섬이 있습니다. 소가 누워있는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우도(牛島)라고 불리는 섬입니다. 이 우도에는 현재 약 400여명의 해녀가 있습니다. 제주 출신의 고희영 감독이 7년 동안 우도의 해녀들과 함께 지내면서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습니다. 영화 제목은 물숨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신기했던 것은 해녀들의 계급이었습니다. 해녀 사회는 아주 엄격한 위계질서로 운영되었습니다. 제일 높은 계급인 상군은 가장 깊은 바다까지 들어가 작업을 합니다. 보통 15-20미터의 바다 까지 들어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이 중군이고, 맨 마지막 하군은 일명 똥군이라고도 부르는데, 2미터 이하의 바다에서만 작업을 합니다. 해녀들의 계급은 노력과 경험.. 더보기
비웃음 비웃음거만한 사람은 "조롱이 몸에 배어 있다." 욕과 독설을 내뱉는 그의 재주는 때로 지적 세련됨으로 보이나 말재주의 가면 뒤에는 자신의 의견과 지능에 대한 지독한 과신이 숨어 있다. 그래서 본문의 거만한 자는 겸손한 자와 대비된다.거만한 사람은 어리석은 부류에 특히 영향을 미쳐, 흔히 그들 사이에서 우두머리 행세를 한다. 현대 문화의 기류에서 사회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사람은 조롱과 신상 털기의 대가다. 그러나 거만한 자를 우러러보는 것보다 더 해로운 일은 없다. 그들은 무엇에도 충정이나 존경을 품을 수 없게 만든다. 그들의 수단은 진심이 담긴 논리가 아니라 눈썹을 추켜세운 채 내뱉는 탄식과 냉소가 섞인 말이다.그들에게 임할 최종 심판은 적절하고도 치명적이다. 여호와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3:34).. 더보기
작은 선은 큰 악을 닮았고 큰 선은 비정함을 닮았다. 영화 [다른 길이 있다]에서 주인공 수완은 마음씨가 착한 경찰이다. 어느 밤 음주운전단속 중 트럭운전사의 음주운전을 적발한다. 운전사는 자신이 사업이 망하고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고 이런저런 어려움에 견디지 못 해 술을 딱 한 잔 했노라고 좀 봐 달라고 사정을 한다. 사정을 듣고 보니 딱한 마음에 모질지 못한 수완은 그를 그냥 보내주고 만다. 그런데 그 운전사는 잠시 후 횡단보도를 건너던 보행자를 치어 중태에 빠뜨린다. 경찰에 잡혀서 음주단속을 어떻게 통과했냐는 조사에 수완이 5만원을 받고 자신을 보내주었다고 하여 수완은 이 일로 내사과의 조사를 받고 직장을 잃고 수완은 자신의 어리석은 판단 때문에 그 보행자가 사경을 헤맨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고 병문안을 가는데 거기서 만난 트럭 운전사는 자기를 그냥 .. 더보기
권위와 권위주의 우리 사회가 권위에 얼마나 우호적인가를 어디서 알 수 있냐면 담임과 부교역자가 범죄했을 때 드러난다. 더 설명하지 않아도 다 피부로 느끼는 일이라 설명은 생략한다. 권위는 존중받아 마땅하지만 권위주의는 혁파되어야 할 것들이다. 그럼 어떤 게 권위고 어떤 게 권위주의일까?사무엘 러더포드가 Lex Rex를 통해서 왕이더라도 법 위에 있지 않고 "법이 왕"임을 천명했다. 이것은 법치의 정의를 알려주는데 법대로 다스리는 데 법치의 정의가 있지 않고 권력자의 권한을 법으로 제한하는 데 법치의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권한을 가졌기 때문에 더 법에 의해서 제한받아야 하며 권력을 가졌기 때문에 더 죄가 엄중하다. 실제로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은 권한을 가진 자의 죄가 더 엄중하다고 가르친다.그런데 우리 현실을 .. 더보기
알미니안, 웨슬리안, 개혁주의 알미니안이 등장했을 때 도르트 신조의 작성자들의 입장은 이런 거였습니다. 로마서의 논리도 같은 방식이라고 저는 믿는데요.1. 하나님은 다 부르셨습니다(일반적 부르심). 2. 그런데 아무도 응답하는 이가 없습니다(전적 타락). 3. 하나님 입장에서는 다 쓸어버리고 새로 만드셔도 무방합니다. 4.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그중에 몇몇을 부르셨습니다(효과적인 부르심). 5. 그리고 그들에게 저항할 수 없는 은혜로 반드시 구원에 이르도록 그들의 삶에 개입하십니다. 6. 그러므로 선택이 있으면 유기는 반드시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7. 유기가 하나님편에서의 버림처럼 이해되지만 언약에 대해 신실하지 않았던 쪽은 사람입니다. 8. 언약에서 계속 배도가 나타나자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개입케 하셨습니다. 9. 목적은 .. 더보기
현대인의 환대의 신학적 의미 오늘 문득, 이 시대가 혐오보다는 환대를 배제보다는 포용을 강조하는 것은 왜 일까 생각해봤습니다. 랍 벨(Rob Bell)이 사랑을 이긴다(Love Wins: A Book About Heaven, Hell, and the Fate of Every Person Who Ever Lived)를 저술하면서 혐오의 메타포라 할 수 있는 지옥을 거부하는 것도 이런 풍조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 시대는 긍정쪽으로 더 기울어져 있다는 사실입니다.제 사견에는 아마도 이 시대가 그 마음에서 하나님을 지웠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성경, 특히 시편에서 의인은 하나님을 애착하는 사람으로만 묘사되지 않고 악인을 멸시하는 자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애착과 혐오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었지만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