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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신학/구원론

1. 첫 번째 소극적 표지 : 감정의 정도(193-198)

1. 첫 번째 소극적 표지 : 감정의 정도(193-198) 

- 신앙 감정이 매우 크게 발휘되거나 아주 높이 고양되는 것 자체는 그 감정들이 은혜로운 것인지 또는 아닌지를 판단할 근거가 될 수 있는 표지가 아니다(It is no sign one way or the other, that religious affections are very great, or raised very high). 

1. 반부흥론에 대한 반박(193-7) 

  반부흥론자들은 도에 지나친 감정 모두를 쉽게 정죄하여 버린다. 이에 대해서 에드워즈는 참된 믿음이 신앙감정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입증한 1부의 내용을 간략하게 재진술함으로써 반박하고자한다. 그에 의하면 “참된 믿음이 강하게 존재하는 곳에는, 신앙감정이 크게 발휘될 것이라는 것은 쉽게 추론할 수 있다. 사람들의 심령 속에 있는 참된 믿음이 높고 고양되면, 신령하고 거룩한 감정 역시 고양될 것이다”(193). 우리가 앞서 아주 자세하게 살펴 본 것(153-179)을 에드워즈는 간략하게 몇 장에 걸쳐(193-6) 요약적으로 재진술한 후에 다음과 같이 결론내린다. “그러므로 그들의 감정이 너무 고조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을 열광주의자로 정죄하는 사람들은 큰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197) 

2. 열광주의에 대한 반박(197-8) 

  에드워즈는 두 번째 부분에서 열광주의에 대한 반박을 속개한다. 그에 의하면 신앙감정이 단지 크게 고양되었다는 사실만으로는 그 감정들이 반드시 영적이고 은혜로 말미암았을 것이라는 점을 입증하는 증거가 될 수 없다고 선언한다. 에드워즈가 그렇게 강변하는 까닭은 영적인 일들을 판단할 때 확실하고도 무오한 기준이 되는 성경에 의하면, 매우 높이 고양되긴 했지만 영적이지도 않고 구원에 이르게 하지도 못하는 신앙 감정이 있음을 분명하게 가르치기 때문이다. 

 

  에드워즈는 자신의 주장을 입장하기 위하여 세 가지의 성경적인 근거 내지는 예증을 제시한다:  바울을 천사처럼 환영했다가 믿음에서 이탈해간 갈라디아인들(갈4:15,11), 홍해에서 찬송을 부르고 시내 산에서 신 현현을 보고도 곧 바로 금송아지를 만들었던 이스라엘 백성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예수님을 보고 호산나 찬송하며 환영하였다가 잠시 뒤에는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요구하는 자들로 돌변한 이스라엘 백성들. 에드워즈는 “신앙감정이 매우 높게 고양된다 할지라도, 참된 신앙과 완전히 무관할 수 있다는 것은 모든 정통신학자들의 일치된 견해다”(198)라고 결론을 지으면서, 각주에는 일반적 감정이 때로는 구원에 이르는 신앙감정보다 더 강할 수 있다고 말한 외조부 스토다드의 책자만 인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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