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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재해석으로서 신학

Lewis Noh 2021. 5. 2. 20:58

아인슈타인이 한 유명한 말 중 하나는 "하나님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표현은 당시 양자 역학이 미시세계에서 전자의 위치가 초기 위치와 운동량과 방향을 알아도 후기 위치를 단지 확률로밖에 확정할 수 없는 "불확정성의 원리"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거부감의 표현이었다. 많은 과학자들과 무신론자들이 양자 역학을 들어서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고 세상은 우연으로 이뤄져 있다는 근거로 이 불확정성의 원리를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모든 관찰에는 항상 이론이 적재되어 있다(Theory-laden). 즉 관찰 이전에 이미 이론을 전제하고 있다는 말이다. 통상 과학철학뿐만 아니라 과학사나 과학계에서도 천동설을 과학의 범주에 둔다. 중세 천 년의 관찰이 모두 하늘이 도는 것으로 관찰한 까닭은 그들에게 이미 이론이 적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양자 역학으로 옮기면 미시 세계에서 확률로만 전자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이 세상이 우연으로 존재한다고 가정하는 것은 그들이 무신론과 우연을 이론으로 적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미시 세계의 우연성은 유신론자와 신학자의 눈에는 하나님의 주권과 자유의지를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즉 이 불확정성의 배후에 하나님의 자유로운 결정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이론적재성(Theory-ladenness)의 신학적 버전이 바로 반틸의 "전제주의"다.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진 우리는 이 불확정성은 미시세계가 우연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우연으로 보이는 것들에 대한 하나님의 자유로운 주권적 결정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미시 세계는 하나님의 자유를 보여주고 거시 세계는 하나님의 작정을 보여준다고 결론적으로 말할 수도 있다. 뉴톤 물리학이 보여주듯이 아인슈타인이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으시고 미시 세계의 우연처럼 보이는 것들에 대한 그의 자유롭고 주권적 결정이 곧 거시 세계의 법칙으로 드러난다. 그의 결정은 항상 도덕적 결정이며 그 우주적 도덕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전부 알려져 있지는 않다.

신학자는 과학적 성과들에 대해서 신학적 응전을 해야 한다. 진화론이나 이 이론을 적재한 관찰에 대해 신학적 설명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신학자란 전문적인 신학자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17세기 신학자들은 모든 신자들을 신학자라고 정의했다. 이 땅의 성도들을 "순례하는 신학자"로 하늘의 성도들을 "축복받은 신학자"로 묘사했다.

우리는 믿음의 세계관으로 과학이 발견한 일반은총 속에서 드러난 자연과학적인 하나님의 진리들을 무방비로 내버려둘 것이 아니라 신학적 재해석을 통해 거기에 담긴 하나님의 지식을 드러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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