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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은 정말 언어인가?

Lewis Noh 2018. 1. 28. 18:40

방언은 정말 언어인가? 


노승수 목사 



현대 언어 이론에 의하면, 언어의 의미는 꼭 일의적이진 않다. 사실과 언어 사이에 일대일 대응은 아니라는 의미다. 오히려 언어는 사용법에 의해 규정된다. 언어는 공적 영역의 것이라는 의미다. 개인적이고 사적인 언어는 없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난 아퍼'라고 할 때, 그것이 개인의 내밀한 통증을 지칭하지 않는다. 그건 우리가 알 수 도 없고 전달 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 개인의 공통적인 경험들을 담아 사용법으로서 '아픔'을 규정하고 내 경험에 비추어서 타인을 이해하는 방식이 언어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언어의 기본적인 목적은 전달과 소통이다. 
방언도 언어다. 그게 하늘의 언어라면, 사실 지상의 언어보다 더 치밀한 구조를 가져야 한다. 그런데 한 방언을 놓고 각기 다른 통변이 등장했을 때, 그걸 하나의 실체를 이렇게 저렇게 다중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상 이것이 언어가 아니라는 소리나 진배가 없다. 말하는 사람은 하나를 말했는데 알아듣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가? 사실 이 장면은 마치 바벨탑을 보는 거 같지 않은가? 
언어라면 전달하려는 바가 메시지가 있고, 일정한 정보 체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문법, 단어, 의미, 용례 이런 것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나올 때마다 다르고 들을 때마다 다르며, 듣는 방식도 사람마다 다른데 어떻게 소통한다는 말인가? 방언은 통상 성경에서 바벨탑의 혼란에서 다시 회복한 것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현대 방언 현상은 사실 바벨탑의 혼란을 보는 듯하다. 이 아이러니는 어떻게 할 것인가? 
현대 언어론으로 이해에서 일의성을 부정하다는 것을 토대로 방언을 이해하려 해도 누가 틀어도 같이 통변이 되어야 그게 언어다. 두세 사람이 제각각이고 그게 같은 메시지라는 것은 언어의 기본적 속성과도 맞지 않는다. 백번 양보해서 그럼 두 세명이 아니라 20-30명이라면, 적어도, 그것이 정말 하늘의 언어고 통변이라면, 그중 20-30%는 똑같은 통변이 나와야 한다. 그래야 하늘의 언어 곧 하나님과 더 가까운 언어는 못되더라도 언어의 가능성을 어느 정도 인정해 줄 수 있다. 
말할 때도 때마다 다르고 듣는 자도 때마다 다르다면 그것을 어찌 언어라할까? 검증해보진 않았지만, 아마도 백인백색일 것이다. 누구도 실험해본 바 없지만 아마 전국 내로라 하는 방언 통역자들 100인을 대상으로 한 방언을 놓고 통역을 하면 백인백색으로 등장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건 언어가 아니니까.... 나도 천사의 언어들을 보고 싶다. 그들은 적어도 우리보다 더 진보된 지성 공동체일텐데, 현재까지는 말이다. 그런 지성공동체의 언어가 A라 말하면 B라 알아 듣고 다른 천사에게 전하길 C라 전한다면, 그게 가당키나 한가? 난 진정으로 하늘의 언어를 듣고 싶다. 내 평생에 소원이다. 정말 격에 맞는 하늘의 언어를 듣고 싶다. 
사실 나도 방언의 경험이 있다. 신대원을 졸업할 때까지도 방언을 했었다. 그것도 아주 유창하게 나 스스로 무슨 말인지 모르면서 말이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매우 낯설다. 아마도 3년의 신학 교육이 그전의 내 신앙 체계를 다 바꿔 놓은 거 같다. 어떤 분은 잘못 바뀌었다고 우스개 소릴 했지만 글쎄, 난 그렇지 않은 거 같다. 종교 개혁의 유산들에 대한 이해가 더해지면 질수록 내 변화가 더 좋은 변화였다고 믿는다. 이런 생각들 때문에 내가 은사중지론자인가 보다.



2014.03.16 2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