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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태도 : 오래참음

Lewis Noh 2018. 2. 6. 15:23

삶의 태도 : 오래참음


노승수 목사


성령의 열매 중에 오래참음이라는 열매가 나온다. 신약성경에 이 단어는 총 14회 등장하며 그 중 2회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언급할 때 사용된다. 바울은 하나님의 오래참음을 그의 진노와 관련시킨다. 하나님의 오래참음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유사한 오래참음을 가지도록 요구한다(참조: 살전 5:14). 
그리스도인의 오래참음은 두 가지 경우에서 적용이 가능하다. 하나는 사람에 대해 오래참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환경에 대해 오래 참는 것이다. 폴 투르니에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것이 둘 있다. 하나는 결혼이고, 또 하나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처럼 세상에는 혼자서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더불어서 해야 하고 더불어서 할 때 아름다운 것들이다. 더불어서 하는 일은 갈등과 불편함을 초래한다. 그리고 우리는 더불어서 하는 일들에 있어서 발생하는 오래참는 일을 괴로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참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견디기 힘든 것이거나 견뎌야 하는 어떤 것들이 아니다. 성령의 열매는 근본적으로 사랑의 다른 양상들(aspects)이며 오래참음도 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오래참는 까닭은 사랑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상담에서 원칙 중의 원칙은 "내담자는 언제나 옳다"이다. 내담자가 언제나 옳을 수 있을까? 사실 이것은 도덕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내담자에겐 언제나 문제가 있고 갈등이 있고 고통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것을 갈등으로 문제로 고통으로 바라본다면 상담자는 오랜 시간이 가지 못해서 좌절하고 만다. 
내담자는 언제나 옳다는 표현은 내담자로서는 그 선택이 그로서는 그 때의 최선이었고, 생존의 방편이었음을 이해하려면 내담자의 행동의 이유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즉 내담자가 그런 선택을 하는데는 그 나름대로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도덕적으로 정당하거나 정당화 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그에게선 그것이 그가 가진 자원으로선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상담자의 인내는 여기에서 생기게 된다. 내담자가 보이는 여러가지 갈등과 문제의 원인들을 이해하게 됨으로 오래참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단순히 억누름으로써의 오래참음은 우리 안에 갈등의 뇌관을 품고 있는 것이다. 그런 고통을 억누르면서 오래 참는 것은 진정한 오래참음이라고 할 수 없다. 그에게 오래참음이란 갈등의 회피이거나 상대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이해함으로 참아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참음은 언제나 다른 종류의 갈등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사랑은 오래참는다. 고전 13장의 사랑의 첫머리를 이렇게 시작한다. 성령의 열매로서 오래참음 역시 이런 사랑에서 기인하는 것이어야 하고 그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오래참음이며 이 오래참음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