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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패커의『기도』요약

Lewis Noh 2018. 2. 5. 17:15

제임스 패커의『기도』요약
1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
-틀에 박힌 기도를 아무 생각 없이 드리면서, 거짓된 영적인 안도감을 느낀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기도, 풍성하고 의미 있는 현실적 기도를 드리는 세 가지 비결.
①하나님의 실재에 대한 분명한 인식: 하나님 자신에 대한 사실들을 앎으로서 생겨난다.
②지속적인 하나님의 임재 연습: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누린다고 인식함으로써 생겨난다.
③매일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끊임없는 노력: 하나님을 사랑함으로써 생겨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하나님을 기쁘게 하시는 것,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복합적인 목표이다.
Eight Sweet P's
1 Personal: 하나님은 인격적이시다. 
하나님은 인격적이시므로 인간들과 하나님이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는 관계를 맺는다. 
하나님은 기록된 말씀으로 인류와 의사소통하시며, 사람들은 직접적인 말(기도)로 의사소통한다.
2 Plural: 하나님은 복수이시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복수의 존재로 계시된다. 복음은 성부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을 계획하시고, 
중보자이신 성자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그 구원을 성취하시며, 성령 하나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자비롭고 자발적인 손님으로서 구원을 우리에게 적용하신다는 복된 소식이다.
3 Perfect: 하나님은 완전하시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신의 이름을 두 번 말씀하신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출애굽기 3:14-15)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에 강림하사 그와 함께 거기 서서 여호와의 이름을 선포하실새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출애굽기 34:5-7)
4 Powerful: 하나님은 권능이 있으시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전지하시고, 편재하시다.
5 Purposeful: 하나님은 목적을 갖고 계시다.
하나님이 만드신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인가? 
첫째, 그것은 성육신한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공경하고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리스도는 순종함으로써 성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신다.
둘째, 입양된 가족의 거룩함과 행복이다.
셋째, 교회가 드리는 감사의 예배이다.
6 Promise-keeper: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는 모든 것의 기초는 하나님의 약속들을 알고, 그 약속들을 주장하고, 
그 약속들을 의지하고, 언제나 그 약속들은 지키리라 확신하면서 그것을 붙잡는 것이다.
7 Paternal: 하나님은 아버지이시다.
하나님은 온전하심과 흠 없는 아버지 같은 태도로 자기 백성을 대하신다.
8 Praiseworthy: 하나님은 찬양받으시기에 합당하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아름다움과 선함과 신실하심 때문에 경배받기에 합당하신 
분이다. 기도할 때는 찬양과 감사를 구분하고 반드시 그 둘을 표현하는 것이 좋다. 감사는 
우리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반면에 찬양은 하나님께 초점을 맞춘다. 우리는 그분이
누구시고 어떠한 존재인가 하는 것 때문에 그분을 찬양한다.
―제임스 패커의『기도』중에서―
2. 길과 샛길들
-번연은 여기서 제 길을 벗어나 샛길로 들어선 결과는 바로 의심이라고 말한다.
-기도의 사람이 되려고 애쓸 때, 우리는 아무리 잘 닦여 있어도 참된 기도에서 벗어나게 하는 오솔길들을 주의해야 한다. 우리는 기도의 생활을 약하게 하는 기도 방법과 태도와 믿음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진정한 기도의 길
1) 진정한 기도의 길은 성경의 가르침을 따른다. 
-기도에서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길을 직감적으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학습으로 터득되는,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길이다. 
-시편과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기도들을 본보기로 삼지 않기 때문에 기도할 때 그처럼 심하게 넘어지고 실수하는 것이다.
2) 진정한 기도의 길은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특정한 생활 방식에 대한 헌신을 표현한다.
-성경이 제시하는 가르침에 따라 사는 길이다.
3) 진정한 기도의 길은 기도할 때 마음이 순결해야 한다
-마음은 우리 인간됨의 깊은 원천이다. 하나님의 관점에 따르면 우리는 마음의 질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기도 하고 나쁜 사람이 되기도 한다.키에르케고르는 자신의 책에서「마음의 순결함은 한 가지를 바라는 것」이라고 했다. 마음의 순결함은 한 가지, 곧 날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하루하루를 살기를 바라는 것이다.
-진정한 기도는 거듭난 신자의 그리스도인다운 마음에서 나온다. 이런 기도는 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표현된다. 겉에서 보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여러 측면이 있다. 도덕적 고결함, 절제, 자기 희생, 지혜에 대한 추구, 그 외에 많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내적으로 보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처음부터 끝까지, 본질상 마음의 종교, 이생에서나 내세에서나 하나님을 더 추구하고 생명을 더 추구하는 것이다.
-도움(help)이라는 단어는 기도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말이 있다. 기도는 언제나, 적어도 암시적으로, 보통은 명시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부르짖음이며 필요를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기도는 내 힘으로는 할 수 없다는 생각에 기초를 둔다.
-원시기도는 자기 중심적 기도인데, 간구자가 주로 자신의 번영과 보호를 위해 신적인 도움을 구한다. 그 동기는 두 가지로, 뭔가를 얻기 위함이거나 두려움 때문이다.
-적절한 기도는 언제나 진지하고, 열심히 있고 심각하고 열정적이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따뜻한 마음에서 나오는 기도이며, 그저 차가운 머리에서 나오는 기도가 아닐 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다. 우리를 열정적으로 만드는 것은 단지 우리 자신의 필요로 인한 압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우리의 열정이다.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잠 30:8-9) --아굴의 지혜로운 기도
-기도할 때 우리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지혜와 뜻에 복종해야 한다.
-이 장에서의 결론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나오며,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회심하고 중생한 그리스도인이 마음을 표현한다. 중생한 그리스도인의 마음은 십자가에 달리사 우리 죄를 지시고 부활하신 주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뿌리를 내린 마음이다. 그것은 회개하는 마음이다. 죄와 자기 중심성으로부터 순종과 의의 하나님 중심성으로 돌아선다는 의미에서다. 그 마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광스럽게 하기를 바란다. (기도→삶→중생한 마음→믿음→회개→자기 중심성→하나님 중심성→하나님의 영광)
-기도의 샛길들
①행동을 취해 달라는 우리의 진지하고 명확한 요청에 하나님이 응답하시리라는 깊은 확신이 없이 간구하는 것이다.
②하나님이 우리가 요청한 그대로 응답하시지 않는다면 기도 응답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③기도 자체에 너무 협소한 개념을 갖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이미 아시기 때문에 간구를 드리지 않는다고 한다.
④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걸어간 길로, 최고의 기도는 침묵기도라는 개념이다. 하나님을 인격적 친구보다는 비인격적 존재로 인식하고 명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뉴에이지적 묵상은 본질적으로 기독교적이 아니고 서구적 옷을 입은 힌두교적 신비주의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말없이 드리는 기도는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기도의 정점이 아니라, 말로 하는 기도가 중단 된 것이다.
⑤하나님으로부터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수단으로 생각한다.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지만 우리가 언제나 받기에 적절한 상태에 있지 않은, 좋은 것들을 주시는 수단으로 알아야한다. 말로 하나님을 감동시켜 하나님이 하고 싶어하지도 않고 계획하지도 않았던 어떤 일을 하시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권유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을 오해한 것이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이 삶의 모든 측면과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엄청난 선하심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3 묵상하기
-묵상은 무엇인가? 본질적으로 훈련된 사고, 곧 삶 전체, 특히 기도를 위한 기본적인 기독교적인 훈련이다.
묵상은 하나님에 대해 분명하고 질서정연하며, 생생하고, 자양분을 주는 생각을 형성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그리고 그분의 눈앞에서 하나님에 대한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을 찾아내는 것이다. 건강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원한다면, 묵상이라는 사고 훈련이 없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기도하는 모든 사람이 숙달해야 하는 기술이다.
-기독교적 묵상의 본질은 하나님의 은혜로 그분의 지배를 받아서,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생각하는 것, 주님 앞에서 생각하는 것, 주님과 그분의 세상에서 사는 우리의 삶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다.
-최고의 청교도 신학자 존 오웬(John Owen)
영적인 마음은 묵상에 의해 개발되고, 훈련되고, 강화된다. 묵상이라는 말은 영적이고 신적인 어떤 주제를 생각하되, 우리 마음과 영혼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로 그것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고정하고, 강제하고, 명령한다는 의미이다.
이 위대한 의무를 수행하도록 돕는 규칙
①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에 대해 묵상하라. 하나님, 그분의 탁월하심, 그분의 속성들, 그분의 영광, 엄위하심, 사랑, 선하심을 생각하고 묵상하려고 할 때, 우리 영혼을 깊이 겸손하게 낮추고 하나님께 이야기하듯이 하라.
②말씀 안에서 묵상하라. 말씀을 읽으면서 특정한 본문들의 의미를 생각하라.
-묵상 과정은 고찰(광범위한 사고)한 다음에 독백(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자기 자신에게 말하는 것)을 하는 것이다.
-탁월한 청교도 목사인 리처드 백스터(Richard Baxter)
이렇게 진지하고 혼자 말하는 것은 정신적인 말로 표현되지 않는 인지 작용보다 훨씬 더 심금을 울리는 힘이 있다. 자기 자신에게 훌륭한 설교자가 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대단히 큰 기술과 의무이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생각하는 것이 기독교적 묵상의 기본 개념이다. 하지만 우리는 무엇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가. 존 오웬은 영광 중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했다. 리처드 백스터는 하늘의 소망을 역설했다.
-청교도들은 묵상을 하나님께 말하기 전에 자기 자신에게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이런 훈련으로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께 향하도록 하는 습관이 마음 속에 확립될 때, 우리는 이따금 마음에서 나오는 기쁨의 물결로 덮일 것이며, 하나님이 보여주신 모든 지혜, 그분이 만드신 모든 것들, 그분이 가르치신 모든 것들, 그리고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모든 기회들로 인해 하나님께 강렬한 찬양을 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의사 전달을 어떻게 하실까. 성경의 가르침과 사실들(?)을 묵상하는 것을 통해서 그렇게 하신다.
-일반적으로는 성경에서 읽은 것을 놓고 정보에 근거하여 묵상 기도를 하고 난 후 만사가 분명해진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하는가. 먼저 당신에게 이미 큰 의미가 있고 다시 생각할 때만 기쁨을 주는 짧은 본문들에 집중해 보라.
-어떻게 묵상하는 일에 힘써야겠는가.
1) 묵상을 잘 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는 것이다. 동양적 묵상 방법은 개념들에 집중하는 것이다. 기독교적 방법은 영적 눈과 귀라고 말할 수 있는 정신과 마음, 성경에서 자신을 보여 주신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이다.
-렉티오 디비나(lectio divina) 신적 읽기
렉티오는 머리보다 마음으로 읽는다.
lectio: 성경의 본문의 한 두 문장을 큰소리로 읽는다.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으며, 각 단어를 바꿔가며 강조하면서 서너 번 읽는다.
meditatio: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 단어들을 깊이 생각하면서 스스로 질문을 던져 본다.
oratorio: 하나님께 말로 반응하면서, 그 본문으로 기도하거나 본문에서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내용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이다.
contemplatio: 평화롭게 하나님 안에서 쉬면서, 깨어 있고, 소망을 안고 기대하면서 신적 임재에 잠잠히 기다리는 것이다.
-성경을 여행하는 두 방식 모두 지혜가 담겨 있다. 꾸준한 행군, 곧 하루에 두 세 장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웅대한 계획의 큰 윤곽을 보는 것과, 느린 행군, 곧 단 한 두 구절만 읽지만 어떤 성경적 그림이 당신의 존재 한가운데 자리 잡으며 당신이 의식적으로 하나님의 손바닥 안에 편히 깃들이는 것이다.
-성경을 묵상하는 또 한 가지 방식은 성경 본문에 대해 철저한 질문을 하는 것이다. 모든 단락 하나하나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이 과정은 귀납적 성경 연구라 불리기도 한다. 
이 훈련에서 그와 사촌지간인 강해 설교가 나온다. 세 가지의 질문을 던진다.
①이 본문은 어떤 정보를 전달하는가.(인물, 장소, 행동, 사건, 논증의 흐름, 모든 것이 어떻게 서로 연관되는지)
②이 같이 서로 연관된 정보의 조각들이 지니는 의미는 무엇이며, 그 의미는 성경의 큰 가르침과 어떻게 연결되는가(‘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고 예배할지니라’라는말은 무슨 의미인가)
③이 본문이 내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또 한 가지 성경 묵상 방법은 주제별 묵상이다.
-묵상 이후의 기도는 너무나 명백해서 쉽게 간과될 정도이다.그저 성경에 나오는 기도를 하라!
그 기도들은 거의 모두, 뒤에 나올 간구의 기초가 되는, 하나님의 존재와 행동에 대한 진리를 묵상하며 경축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성경에 나은 수많은 위대한 기도들은 우리가 이러한 기도를 직접하도록 권유한다. 
시편
한나의 감사기도 사무엘 상 2:1-10
다윗의 자기 백성과 자기 아들 솔로몬을 위한 기도, 역대상 29:10-19
솔로몬의 봉헌 기도, 역대하 6:14-42
다니엘의 공동 고백의 기도, 다니엘 9:4-19
고난 받는 동안 드리는 하박국의 헌신기도, 하박국 3:17-19
마리아의 찬양의 기도, 누가복음 1:68-79
바울의 축복기도, 에베소서 3:14-21
그리스도인 친구들을 위한 그의 감사 기도, 빌립보서 1:3-11
자기가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진보를 위한 그의 기도, 골로새서 1:9-12
유다의 축도, 유다서 24-25
주기도문, 마태복음 6:9-13
-묵상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직면하도록 만든다
-내가 읽은 것에 비추어 볼 때 나는 무엇을 해야 하며, 무엇을 그만 두어야 하는가?
-내 편에서 어떤 태도를 갖는 것이 옳은가
-내 편에서 어떤 태도들이 잘못 되었는가
-나는 어떻게 잘못된 태도들에 빠졌으며, 어떻게 올바른 태도를 개발해야 하는가
-그리스도를 닮은 경건함이 나에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그 목표를 추구해야 하는가.
-바로 지금 나의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소망을 새롭게 하는 것이 필요한가.
-이전보다 더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 어떤 도움이 필요한가.
4 찬양하기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찬양하라고 요구하시는가. 우리는 자신의 미덕이나 지성을 
끊임없이 확신해 달라고 요구하는 사람을 멸시한다. 
-CS 루이스
(예술 작품에 대한 감상에서) 경탄은 작품에 대한 올바른 적절한 혹은 정당한 반응이다. 하나님이 경탄의 대상이라는 것을 자각해야 하는 것, 현실 세계에 들어온 것이다. 그것에 감사하는 않는 것은 가장 위대한 경험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칭찬, 인정, 혹은 경의를 표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나는 모든 누림이 자발적으로 흘러넘쳐 찬양이 된다는 것을 전해 알아채지 못했다. 나는 가장 겸손하며 동시에 가장 균형 잡히고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찬양하며, 반면에 괴팍하고, 적응하지 못하고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장 덜 찬양하는지 알아채지 못했다.
-찬양은 내적 건강이 내 귀에 들리게 나타난 것에 가깝다.
-루이스의 지혜는 두 가지를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①하나님과의 흥정처럼 보였던 것은 단지 하나님의 적극적인 사랑을 적극적으로 누림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는 솔직한 기대일 뿐이다.
②한 목소리로 찬양하는 공동 찬양은 우리와 하나님을 가깝게 해준다.
Praise as 6D
Declaring
찬양기도의 한 기능은 하나님이 누구시며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가 어떤 것인지 선포하시는 것이다. 이 찬양기도들은 우리를 그분의 임재로 데려간다. 하나님이 얼마나 높으신지, 그분의 지혜와 능력과 순결함이 얼마나 출중하신지 하나님과 지체들에게 선포할 때, 하나님이 우리와 가까이 계심을 느낄 수 있다.
Distancing
하지만 우리의 정신적 태도, 자세 그리고 하는 말은 하나님과 우리의 차이와 거리를 선포해야 한다.
Discpline
우리는 모든 훈련을 할 대 그러듯 찬양하는 일에도 달려들어야 한다. 마음을 정했으면 개인적으로건 교회에서건, 가능한 최선을 다해 한다. 더 많이 할수록 더 잘할 수 있다. 
Diet
찬양기도를 소홀히 하는 것은 영적 굶주림을 나타내거나 심지어 굶주림을 유발하여, 에너지가 없어지고 사기가 저하될 것이다. 
Duty
찬양은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소명이며 의무다. 모든 시편이 이것을 선포한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편136)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영원하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는 아픈 마음으로 하여금 여호와를 기억해야 할 의무로 향하게 한다. 
Delight
매일의 삶에서 의무라는 말은 통상 달갑지 않은 책임들을 의미한다. 우리는 죄인이라는 것 자체로 인해 의무, 곧 먼저 하나님 중심적이고 그 다음에 다른 사람 중심적인 일은 절대로 기쁨이 될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중생한 사람들이다. 이는 우리가 변화되었다는 것, 우리의 존재의 핵심이 초자연적으로 새롭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새로워진 마음의 욕구들이 이제 안에서 지배력을 발휘하여 찬양의 의무가 점차 우리 삶의 기쁨이 되게 할 것이다. 루이스는 찬양의 의를 수행하는 것은 당장은 거의 혹은 전혀 기쁨을 가져다 주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의무는 기쁨을 위해 존재한다. 우리는 건조한 땅에 수로를 파는 사람들과도 같다. 마침내 물이 나올 때 준비되어 있기 위해서다.”
-찬양을 드릴 때마다 우리는 바로 하늘나라 예행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5 기도 건강검진
-그리스도인의 영적 상태도 정기적으로 점검을 해야 한다.
-수세기 동안 헌신된 그리스도인의 대표주자들은 영적 건강을 위해 정기적인 자기 점검이 필요하다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기준들은 십계명, 선지자들의 설교, 시편 기자들의 개인적인 시들, 잠언과 전도서에 나오는 중대한 조언들,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 신약 서신들에 나오는 실제적 권고들이다. 내적 성찰은 도취감으로 끝나든, 우울한 자기 연민과 자기 절망으로 끝나든 자기 도취적 교만의 표현이 될 수 있다. 자기 점검은 근본적으로 회개로 이끄는 건강한 과정이다. 반면에 단순한 내적 성찰은 그저 자신에 대해 유감스럽게 느끼고 끝날 수 있다.
의사이신 하나님(영적 건강 검진)
1)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점검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을 정말 알고 있는가. 그리스도를 신뢰하는가. 하나님의 약속들을 찾아보고, 기도할 때 그 약속들을 주장하고 하나님이 그 약속들을 지키실 것을 신뢰하는가. 우리의 믿음은 죄사함을 통한 하나님과의 평화, 주님께 의지함으로 얻는 환경과의 평화,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사람들을 사람하기 때문에 얻는 사람들과의 평화를 가져다 주는가.
2)하나님은 우리의 회개를 점검하신다
회개의 삶은 자기 부인의 삶이다. “육적인 삶, 즉 죄로 인해 추하고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내적 자아에게 ”안된다“고 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느끼는 어떤 것에 작별을 고하는 것이다.
3)하나님은 우리의 사랑을 점검하신다
사랑의 목적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자아 몰두와 자기 중심성, 오로지 우리 자신과 자신의 관심사에만 집중하는 경향을 우리 양심이 깨닫게 해주신다. 하나님은 지나친 자아 사랑이 하나님을 위해 자기 희생을 할 만큼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게 막는다는 것을 아신다. 하나님과 다른 사람에게 집중하기보다 자신에게 집중하는 사랑은 우리의 기도를 끈질기게 제한하고 실로 질식시킨다.
4)하나님은 우리의 겸손을 점검하신다
교만은 원죄의 한 요소이다.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와 루이스의 말을 믿는다면, 교만은 원죄의 핵심이다. 교만은 언제나 당신 자신이 가장 큰 권세를 갖고 있으며 중요한 인물이라고 느끼라는 열정이다. 고대와 중세의 신학자들은 교만을 일곱 가지 치명적인 죄 중 하나로 보았으며 많은 영적 지도자들은 교만을 다른 모든 죄들을 유발하는 근원적인 죄라고 규정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교만을 “하나님에 대한 경멸”로 하나님을 떠나는 다른 모든 죄를 능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온 존재를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이유 중 많은 것은 교만의 죄에 뿌리를 두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자아가 멋지게 보이기를 바란다. 그래서 우리 자신을 섬기는 일에 집중하고 그럼으로써 다른 사람보다, 심지어 하나님보다도 우리 자신을 더 우선으로 놓게 된다. 겸손이란 무엇인가. 겸손은 사실을 직면하는 것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작고 죄된 존재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연약하며, 주권적이신 하나님의 손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의 미래든 다른 사람의 미래든 만들어 내거나 제어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진정한 겸손은 하나님을 향하게 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모든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5)하나님은 지혜의 문제에서 우리를 점검하신다
성경이 말하는 지혜란 무엇인가. 성경에 나오는 지혜는 본질적으로 인생을 헤쳐 나가는 길을 아는 것이다. 무엇을 목표로 하고 어떻게 거기에 닿을지를 아는 것, 인생 자체가 어떤지, 그것을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하는지 아는 것이다. 우선 무엇보다도 지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심 어떻게 그분과 관계를 맺어야 할지 아는 것이다. 지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6)하나님은 우리의 초점을 점검하신다
우리의 믿음, 회개, 사랑, 겸손, 지혜가 어떻게 결합하여 인생의 목표 및 중요한 우선순위에 대해 분명한 시각을 갖게 해주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전반적으로, 그리고 특정한 선택들을 할 때 우리 자신의 우선순위를 결정할 만큼 그리스도 안에서 명민한가. 우리는 삶의 초점을 제대로 맞추고 있는가.
시편 139편--당신의 기도로 삼으라
-기도의 온전한 취지는 큰 소리로 읽을 때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다. 그렇게 하면 그것을 읽으면서 동시에 들을 수 있다.
-이 시편 기도가 전체적으로 묵상(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그분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과 통상적 의미의 기도(하나님께 직접 그분 자신과 우리 자신에 대해, 그리고 삶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 사이의 경계선상에 있다
1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2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3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4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5 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6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7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8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9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10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11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반드시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지라도 
12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추이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같음이니이다 
13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14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15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겨지지 못하였나이다 
16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17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18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여전히 주와 함께 있나이다 
19 하나님이여 주께서 반드시 악인을 죽이시리이다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들아 나를 떠날지어다 
20 그들이 주를 대하여 악하게 말하며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으로 헛되이 맹세하나이다 
21 여호와여 내가 주를 미워하는 자들을 미워하지 아니하오며 주를 치러 일어나는 자들을 미워하지 아니하나이까 
22 내가 그들을 심히 미워하니 그들은 나의 원수들이니이다 
23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24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영적 강장제는 모든 하나님 백성들의 특징인 두 가지 특정한 자질을 강화한다.
①비움: 하나님이 하나님 자신으로 우리를 채우시도록 끊임없이 우리를 비우시기 때문에
②열심: 하나님을 더 소유하려는 열심은 이미 하나님을 얼마나 소유하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척도이므로 더 많이 소유할수록 더 많이 원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살피시는가?
①하나님은 우리 양심에 건강한 삶의 기준과 이상들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적용하신다.
②성령 하나님은 우리 마음 속에서 우리가 답해야 하는 질문들, 목표와 동기와 태도에 대한 질문들, 그리고 우리 마음의 은밀한 곳에서 정말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들을 품게 하신다.
-우리에게는 상당히 많은 겉치레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실상 온갖 겉치레에 빠져 있으면서 우리 자신과 하나님께 솔직하기가 어렵다고 거듭 생각한다.
기도의 길을 가르친 프란체스코 드 살레는, 묵상과 기도의 첫 번째 단계는 “자신을 하나님의 임재 안에 두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그것이 말은 쉽지만 행동은 쉽지 않다. 우리의 겉치레가 중간에 끼어들기 때문이다. 기도하려 할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이 우리의 공상과 기만을 벗겨버리셔서 각자 진정한 내가 진정한 하나님 존저네 나아갈 수 있도록 해주시기를 기대해야 한다. 루이스는 이렇게 말한다. “기도할 때 이 진정한 내가 진정한 존재에서부터 말하려 애쓴다..... 모든 기도보다 앞서 드리는 기도는 ‘진정한 내가 말하게 하옵소서. 진정한 하나님께 말하게 하옵소서’라는 것이다.”
-영적 건강은, 깨어 있는 상태와 활발하게 사랑하고 순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기도 생활은 영적 생활의 질을 나타내는 지표다. 머레이 맥체인의 말이 옳다.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는 하나님 앞에 무릎 꿇을 때만 진정 알 수 있다. 그것이 바로 그의 모습이며, 그는 그 이상의 존재가 아니다.”
6 구하기
-넓은 의미에서 구하는 것은 기도의 진수이다.
기도는 하나님께 우리의 욕구들을 충족시켜달라고 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왜곡된 마음은 죄성으로 가득 차 있어서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욕구들로 이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욕구를 하나님께 가져가야 할지에 대한 지침이 필요하다. 간구 기도하는 배울 때 이 두 가지를 배운다
1) 무엇을 구할 것인가
2) 어떻게 구할 것인가
하나님께 간구를 드리는 것은 쌍방적 활동이다. 하나님이 채워 주시기를 바라라는 필요를 내려놓고 뭔가를 구할 때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맞으면서 우리가 바라는 것을 구한다.
어떻게 하나님의 뜻에 따라 구해야 하는가? 두 가지다.
1) 관찰된 필요에 대한 지침
2) 내적 성향에 대한 지침
우리가 기도한 일이 하나님 뜻에 맞는 것인지 아닌 것인지 어느 정도 불확실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1)하나님께 우리가 구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이유를 제시해야 한다. 
-스픈 차녹: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영광과 행복을 위한 논증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그 논증들은 일반적으로 언약에서 혹은 특별히 어떤 약속이나 하나님의 어떤 속성 혹은 하나님의 영광에서 나오는 것임을 알게 된다.
2) 하나님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것을 주고자 하신다면 그것을 받기를 정말로 바란다고 말씀드려야 한다. 순전한 마음에서 이 절차를 따를 때, 우리는 하나님이 분명히 들으시고 그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바라던 바로 그대로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구해서는 안되는가? 간단히 대답하면, 그저 우리가 원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 이상의 이유는 없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고 지금 구하는 것들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 어떤 것을 요청할 때 겸손함과 담대함과 끈질김을 발휘하는 것이 성경적 기도의 유형이다.
우리는 왜 구해야 하나?
-성경의 관점은 우리의 행동을 유발하는 동기, 목적 욕구 등의 내적 요소들이 겉으로 보이는 행동 자체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 질문에 대한 우리의 솔직한 대답은 하나님을 향해야 한다. 하나님의 이름, 그분의 영광, 그분의 성품, 그분의 나라를 향해야 하는 것이다.
-다니엘의 기도의 결론은 이것이다. “우리를 회복시키는 행동에서, 그 행동을 통해 당신 자신을 보이시고, 당신 자신의 정당함을 입증하시고, 당신 자신을 영화롭게 하소서.” 다시 말해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 하나님이 우리의 요청을 들어주시는 것이 사실상 하나님을 찬양함으로 그분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수단이 될 것인지 당신은 분명히 하고 있는가? 우리는 어떤 근거에서 우리 기도가 응답되리라고 기대해야 하는가?
1)우리가 하나님의 양자된 관계
양자됨과 은혜로 인해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심을 아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아버지는 자녀에게 좋은 선물을 준다. (마태복음 7:11) 우리는 하나님과 우리의 부모자식 관계가 구하는 것을 받으리라고 기대하는 견고한 기초라고, 겸손하고도 담대하게 말할 수 있다.
2)하나님의 강력한 약속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약속하시는가? 우리가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에서 구조되는 것이다. 어떤 식으로 간구를 드리면 하나님이 이 같은 약속들을 지키시게 될까? 분명 개인의 편안함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개인적인 성화를 위한 기도, 풍요함을 더 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은혜에서 자라게 해달라는 기도이다.
-약속의 한 가지 어려움은 기다리는 것이다.
기도 응답으로 즉각 어떤 행동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것은 우리의 견해가 하나님의 견해에 비해 얼마나 제한되고 적은 지를 반영한다.
-성경을 믿는 사람들이 붙잡아야 하는 원리는 하나님 자신이 약속하신 것을 자신이 가장 좋고 지혜로운 때라고 여기시는 그때에, 자신이 가장 좋고 지혜로운 방식이라고 생각하는 방법대로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특권이라는 것이다.
3)마음의 순결함이다. 기도를 들으시는 거룩한 하나님 앞에 순결한 마음을 갖는 것이다. 순전한 마음은 철저한 하나님 중심성이다. 모든 것에서 흔들림 없이 하나님을 구하고 섬기는 마음이다. 왜 안들으시는가? 잘못인 줄 알면서도 계속 품고 있는 죄, 잘못, 죄악 때문이다. 솔직하라. 너희의 잘못을 인정하라. 그것을 포기하라. 회개하라. 그래서 네 마음을 성결케 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어떻게 응답하시는가?
-모든 간구 기도는 하나님이 채워 주시기를 바라는 필요 상황을 하나님 앞에 내어 드리는 것이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로 그렇게 기도하기를 원하신다. 실로 성부와 성자 두 분이 우리에게 간구 제목을 제시하도록 권하신다. 그래서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은 우리를 자극하셔서 바로 그 일을 하도록 하신다. 성령님이 각 신자들에게 하시는 많은 사역들의 전반적 취지는 우리가 성부 및 성자와 계속 깊고, 풍성하고, 더 친밀하게 교제를 나누도록 하는 것이다. 중보기도로 성부, 성자와 관계를 맺도록 자극하는 것은 성령님이 그 목적을 이루는 한 가지 수단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는 도중에 그 기도를 수정하신다. 하나님은 우리 기도가 올라가는 길에서 그것을 수정해 주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드린 기도를 수정하지 않으신다면 우리가 했어야 할 기도에 응답하실 것이다.
-기도 목록이 길어지면, 우리가 요청한 것들에 대해 왜 하나님이 이러저러한 것들을 해주셔야 하는지 이유들을 말씀드리는 대화 훈련이 사라져버린다. 중보기도에서 중점적으로 살펴보려는 상황이나 개인의 삶을 천천히 깊이 있게 생각해 보려 한다면 기도 제목 수 제한해야 할 것이다.
7 불평하기
불평기도--다윗, 예레미야, 욥
-창조의 이상은 각 개인이 하나님의 계시의 빛을 받고, 이 계시가 있는 그대로 인식되며, 그것이 친교에 대한 온전한 헌신을 가져온다는 것이었다. 그런 헌신은 창조주께 응답하는 예배와 감사와 순종하는 섬김으로 표현된다. 그러니 인류가 찬양하고 기도하기 위해 지음받았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삶의 방식이다.
-불평들이 친교와 기도와 교제와 예배와 하나님의 영광과 찬양을 추구하는 새롭게 거듭난 삶에 필수적임을 지적한다.
-그들의 불평은 근본적으로 악에서 구해주고 보호와 공급과 풍성한 관계를 허락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해 달라는 기도이다.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애도와 불평은 대단히 강한 형태의 간구이자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주장이다.
-다른 사람들의 비탄을 표현하는 이런 기도가 부적절하기는커녕 전적으로 합당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에 반해, 기도하면서 ‘괜찮지 않은’ 우리 상황을 무시하는 것은 메마른 현실주의이다. 그래서 통상적인 간구를 드릴 때 언제나 불평기도거리들은 있게 될 것이다. 어떤 환경들로 인해 하나님께 정당한 불평을 하게 되는가? 불평기도를 하도록 만드는 네 가지 주된 환경이 있다.
1)반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 때문에 핍박받는다. 혹은 배신 당한다.
2)궁핍: 건강과 재물 가족을 잃는다.
3)고독: 하나님에게서 고립된 것을 느낀다.
4)우울: 참을 수 없는 육체적 정신적 증상들이 현시를 그늘지게 한다고 느끼는 우리의 자아 상태다.
불평의 이론적 근거
그렇다. 여기서 소망의 근거는 우리와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가 부자 관계라는 데 있다. 그 아버지는 사랑으로 우리를 양자 삼으셨으며, 지금 그리고 영원히 우리의 하늘 아버지가 되신다.
불평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
-먼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우리가 성장하도록 하기 위해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계획하신다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신약에 나오는 이 기본적인 사실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된다.
-이 징계의 목적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성품과 태도를 개조하여 구세주이신 예수님의 도덕적, 영적 형상을 지니도록 하는 하나님의 역사이다. 고난은 하나님의 보편적 양육훈련이며, 고난에 대한 불평기도를 드릴 때 하나님의 통상적 응답은 고난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다루는지 가르쳐 주시는 것이다.
-불평기도에 응답하시는 두 가지 방식
1)우리를 지키시며, 고통에도 불구하고 계속 나아가도록 하신다.
바울의 가시 이야기는 우리가 연약한 가운데도 주님이 우리를 지켜 주시며, 계속 전진하게 해주신다는 것을 보여준다.
2)어떠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계속 믿음을 지니도록 하신다.
-너는 그런 일을 겪도록 할 때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겠느냐? 이것이 욥이 제기한 질문들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이다. 욥의 간결하고도 위대한 대답이 기다리고 있다. “보소서, 나는 비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욥 40:4)
-우리의 불평기도는 그저 우리 인생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자기 중심적 푸념이 아니다. 대신 우리의 불평은 두려움을 느끼고 상처를 받을 때, 만물을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아버지께 달려가는, 자녀로서의 불평이다.
-하나님과의 참되고 친밀한 교제에 필요한 참된 자기 지식, 실로 참된 자아됨은 처음에는 불평을 일으키는 고통, 상실, 슬픔, 상처 입은 경험을 통해서만 오는 경우가 많다. 
8 매달리기
-기도 생활에서 인내와 꾸준함 그리고 참고 견디는 것은 때로 힘들여 유지해야 하는 진정한 기독교적 미덕이다. 
-“도와 주세요”하고 말하는 것이 통상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기도이다.
-우리를 낙심시키는 모든 환경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주님과의 교제를 계속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구하는 것은 언제나 탁월한 기도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떻게 기도생활을 견디도록 도우시는가?
1)관계
열성적인 간구는 하나님의 팔을 비틀어서 원래는 주고 싶어하지 않으시는 것을 주시도록 달래고 어르는 것이 아니다.
①하나님 아버지는 우리가 그분을 모든 선한 것의 원천으로 인식하면서 간구하는 것을 좋아하신다
②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의 절실한 필요와 그 필요를 채울 수 있는 분이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우리가 대단히 진지하게 생각하기를 원하신다.
③하나님 아버지는 우리가 어떤 선물을 더 진지하게 구하고 오랫동안 기다릴수록, 그 선물이 주어질 때 더 귀중히 여길 것이며, 진심으로 감사하리라는 것을 아신다.
④하나님 아버지는 가장 좋은 때와 상황이 이를 때까지 우리가 구하는 것을 주지 않고 기다릴 수도 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최고의 특권이자 안전장치이다. 그리고 언제나 우리로 기도하게 하는 최고의 동기이다.
-성령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단언하는 자녀 본능을 우리에게 심어 주시고 계속 유지시키신다.
-신자들과 하나님 간의 언약 가족관계라는 틀 안에서, 성경에는 기도에 응답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들이 나온다.
-예수님에 따르면, 신실한 하나님의 자녀가 자신의 하늘 아버지께 요청했을 때 응답되지 않는 기도는 없다.
-우리가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에 매달려, 당면한 환경이 얼마나 낙심되는 것이든 우리의 내적 감정이 얼마나 기진맥진하든, 끈질기게 기도하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그렇게 기도하라고 지시하신다.
2) 격려가 되는 기록
①다윗의 기도: “내가 하나님을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렸다”
②느혜미야의 기도: 기다려야 했다. 끈질긴 기다림, 이것이 그들 기도의 특징이었다. 
③한나의 기도:
④스갸라의 기도:
3) 왜 끈질긴 기도가 필요한가? 
①우리가 하나님이 행동하시기를 인내심 있게 기다릴 수밖에 없도록 하심으로써, 하나님은 우리의 동기를 깨끗케 하신다. 우리가 어떤 요청을 할 때, 처음에는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경우가 많다. 우리가 기도 제목을 계속 새롭게 하면서 하나님을 기다릴 때, 하나님은 우리가 처음에 요청한 동기가 무엇인지 보게 하신다. 그것은 분명 진심에서 나온 것이긴 하지만 우리 자신의 평안함, 편리함, 명예에 더 관심을 가진 것이고, 하나님의 영예, 찬양, 영광에는 덜 관심을 가진 것이었다. 이렇게 우리의 간구를 반복하여 계속 수정하는 것은 우리의 열망을 점차 순수하게 증류시키는 것이다.
②우리가 그분을 기다릴 수밖에 없도록 하심으로써, 하나님은 자연스런 방식으로 응답하신다. 느혜미야는 하나님께 기도의 화살을 날렸고, 자신의 요청을 왕께 말했으며, 곧 문제를 해결하게 될 것이다. 기도가 응답을 받았는가? 그렇다. 기적에 의해서인가? 그렇지 않다. 자연스런 사건들의 흐름을 통해서다.그것은 시간이 걸렸다. 자연스런 흐름을 주관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통상적인 기도 응답 방식이며 그것은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매우 많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꺼이 기다려야 한다.
③하나님의 양육전략은 때로 즉각적인 응답을 유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성숙시키고 계시며, 이 교훈은 성숙한 기독교인에 필수적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적 근육을 단련시키고 훈련시키기 위해 응답을 늦추신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운다. 
4) 끈질긴 기도에 대한 저항을 극복하기
끈질긴 기도가 어려운 이유는, 세상과 육신과 마귀가 힘을 합해서 기도생활을 반대하고 그런 삶을 살려는 우리의 모든 노력에 저항하기 때문이다.
①세상: 기도생활은 언제나 세상의 넓은 길, 즉 하나님을 존중하지 않고 사는 삶에 빠져 들어가고 싶은 유혹은 받는다
②육신: 아직도 마음속에 존재하는 죄로 인해 비틀어지고 연약하다.
③마귀: 베드로는 마귀를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 너희 대적”이라고 말한다
-조용하게 기도하고 있을 때 생각이 옆길로 빠진다면, 큰 소리로 기도하라.
-언제나 끈질긴 기도를 하면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부르고 부활하신 주님이신 그리스도께 우리를 도와달라고 부르짖을 때, 이 전쟁은 승리를 거두기 시작한다.
9 함께하기
-개인적인 특질의 심화와 개체성의 강화를 강조하는 것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기도생활을 이해하고 살아가는 데 필수적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자급자족은 자아도취와 만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몸 안에 절대로 있어서는 안된다. 하나님은, 자신이 다른 그리스도인의 도움 없이 잘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교만을 그냥 놓아 두지 않으실 것이다. 영적 고립주의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미덕이 아니라 악덕이다. 의존과 사역과 목회라는 상호성을 통해서만, 그리스도인들은 진정 자라고 교회들은 앞으로 전진할 수 있다.
-우리 기도는 대부분 홀로 하는 일이다. 곧 우리 각자와 하나님 간의 직접적인 대화인 것이다. 하지만 교회 내에서 우리는 연합기도를 드림으로써 마음과 목소리를 합한다. 성경은 하나님이 한 마음으로 공동목표를 추구하는 경건한 사람들의 이러한 기도를 매우 귀중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거듭 강조한다.
-기도함께 하기의 삼중적 측면
1)하나님은 기도에서 함께하기를 바라신다.
-하늘 나라는 끝없이 함께 예배하는 장소로, 그 예배에는 하늘나라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참여한다는 것이다. 출애굽 직후부터 계속해서 나오는 하나님 백성의 삶의 핵심은 공동의 여호와를 경배하기 위한 백성들의 성회로서, 정기적으로 함께하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이 땅에서 신자들이 예배로 모이는 모든 모임은 앞으로 올 영광의 예행연습이라고 생각해도 적절한 것이다.
-내밀히 눈에 띄지 않게 않은 채 홀로 신앙생활을 하려는 것은 잘못이다. 함께하기야말로 어떤 일이 있어도 제자도의 진수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며, 영적 평안의 고속도로이다.
2) 하나님은 우리의 함께하기를 사용하신다.
하나님은 이 땅에서 우리의 함께 하시를 계몽, 확장, 격려를 위해 사용하신다.
①계몽: 지혜로운 사람은 다른 신자들의 경험을 통해 하나님의 건지시는 사랑의 자원이 얼마나 풍성하고 다양하고 다함이 없는지 배운다,
②확장: 경건한 사람들이 확장된다. 그들의 마음이 이렇게 축복받은 사람들의 감사와 찬양에 함께 참여하게 되기 때문이다.
③격려: 곤경에 처해 있었으나 하나님의 자비로 최종적인 재앙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는 분명 격려를 받는다.
3)함께 함을 배우고 사랑하기
-존 웨슬리는 이렇게 말했다. “고독한 그리스도인보다 더 비기독교적인 것은 없다.” 소위 “외톨이 기독교”를 믿는 사람은 진정한 영적 성장이 일어나는 곳인 형제자매들과의 교제에 참여하지 못한다. 그들의 기독교는 불가피하게 성장 발육을 저해 받는다. 우리는 구세주와 개인적으로 교제하듯이,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몸인 그분의 백성들과 진정으로 함께하는 법을 의식적으로 익혀야 한다. 이것이 신실한 제자도가 지닌 교회성이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그리스도인의 예배와 그리스도인의 성장을 모두 공동의 것이라 말한다. 기독교는 몸의 삶이며, 몸의 삶은 언제나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염두에 두고 친밀함과 신뢰로 우리 자신을 솔직하게 나누는 공동생활이다.
-공동기도에는 두 가지 형식이 있다.
①가정이나 친구들 그리고 교회 내의 기도 모임에서 격식없이 자연스럽게 드리는 즉흥기도이다. 
②교회 예배 때 드리는 기도이다.
-예배 의식에서건 즉흥적으로건 기도를 인도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들이 드리는 기도를 분명하고 질서정연하게 하도록 애써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가능한 제대로 마음속으로 기도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10 전심으로 기도하기(with my whole heart)
-패커는 시편이 참이라는 것, 즉 시편이 기도의 본보기라고 들은 것을 진심으로 믿기까지 20년이 걸렸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 시편 기자들은 시인들이므로 논리적으로 이리저리 비약한다. 둘째, 시편기자들은 도와주소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때 감정을 절제하지 않고 굉장히 열렬하다.
-우리는 시편이 전심으로 기도하기의 실제적 본보기라고 말했다. 
-좋든 나쁘든 우리의 모든 욕구와 동기와 목적과 계획들, 모든 판단과 의심과 회의와 확신들, 모든 사랑과 미움과 소망과 두려움과 기쁨과 슬픔들, 모든 상상과 창의성들은 우리의 영혼 혹은 마음에서 나온다. 성경적 의미에서 내 마음은 나라는 진정한 산자의 본질을 이룬다.
①성경적 종교는 본질적으로 마음의 종교이다 리쳐드 백스터 “진정한 기독교는 마음의 역사(heart-work)이다.
②새롭게 되지 않은 사람의 마음은 근본적으로 상태가 좋지 않다.
-인간의 마음은 언제나 자기 중심적으로 자기 주장을 하는 내적 충동을 일으키고, 변덕스런 본능으로 성경이 죄라 부르고 교만이라 진단하는 자기 신격화를 일삼는다. 교만의 나 중심주의에는 모든 하나님 중심성이 절대적으로 배제되어 있다. 내부의 교만은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지지하게 만든다. 교만은 우리가 한 일과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선하고 멋진 행동이라고 생각하여, 자신을 정당화하라고 가르친다. 교만은 그리스도인들이 원죄라고 부르는 것의 실상이다.
-신약은 마음이 새롭게 된 모든 사람의 특징을 세 가지 보여준다.
①그들은 끊임없이 회개한다.
②날마다 의식적으로 하나님께 돌아간다.
③하나님과 하나님 안에 있는 충만한 삶을 바라는 마음으로 귀환자들이 달려가도록 만든다.
-우리 마음이 하나님과 얼마나 연합(unite)되어 있는지 알 수 있는 네 가지 시험
①우리의 머리는 얼마나 올바른가?
새롭게 된 모든 마음들은 본능적으로 성경의 교리를 하나님의 진리로 받아들이고, 그것에 의해 모든 삶을 해석하고 평가하며, 도처에 있는 모든 좋은 것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선물을 감지한다.
②우리의 손은 얼마나 올바른가?
손은 삶의 활동, 우리가 실제로 하는 많은 것을 나타낸다. 문제는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가 아니면 그저 우리 자신이나 우리 주위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가 하는 것이다. 
③우리의 습관은 얼마나 올바른가?
우리의 일상생활은 어떤 식으로 시간을 보내기를 좋아 하는가.
④우리의 소망은 얼마나 올바른가?
-성령 안에서 전심으로 기도하기
-패커가 오랫동안 시편 기자의 전심을 다한 기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고 하였다. 자신의 경건함은 상당히 표면적 차원의 열정이었고, 그 때문에 여전히 너무 지적이었으며,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은 여전히 “얼어붙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제 그는 마음이 따뜻하게 데워질 필요가 있음을 안다.
-서구의 개인주의적 문화는 자연히 혼자 떨어져 있을 때 정체성을 갖도록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성경적 실상은 두 가지 엄청난 진리를 깨달음으로 생겨나는 영적이고 초자연적인 총체성이다. 첫 번째 진리는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우리는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헤멜 것이며 영원토록 불만족하리라는 것이다. 두 번째 진리는 우리를 멸망에서 구해주신 성삼위의 사랑을 통해 우리는 이미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고,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며 안전함을 누리는 새로운 삶, 기쁨과 평화와 찬양과 거룩함에서 행복을 누리는 삶을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신약에서는 두 번에 걸쳐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고 명한다. 그 말은 무슨 의미인가. 매번 황홀경에 빠지는 내적 체험을 하면서 기도라는 것은 아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는 것은 삼중적 인식에 근거해서 하나님과 반응하며 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①첫 번째 인식은, 그리스도 중심적인 사물의 질서를 파노라마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들에 대한 전 세계적인 인식을 통해 다음과 같은 것을 알 수 있다.
ㆍ거듭난 새로운 피조물로서 각자 새 마음을 축복으로 받는다는 것을 안다
ㆍ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으심을 통해 속량 받고 하나님의 가족으로 입양된 것을 안다.
ㆍ자신들 안에 성령님이 내주하신다는 것을 안다.
ㆍ대단히 기복이 심하며 때로는 험한 길을 따라 영광스러운 하늘 집으로 여행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ㆍ자신이 교회의 지체이고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일에 헌신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ㆍ그리스도께 충성하는 자로서 사탄에 맞서야 한다는 것을 안다.
ㆍ그리스도를 알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선한 일을 하여야 하는 임무를 띤 것을 안다.
②두 번째 인식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한 점진적이고 증대되는 깨달음이다.
-성령님이 보여 주시는 것은,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 그분의 탁월하심과 능력,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신원과 위엄, 그분의 과거 현재 미래의 행동, 사랑, 신실하심, 약속,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들, 우리를 돌보시는 것, 즉 간단히 말해 예수님에 대한 모든 것이다. 이처럼 성령님은 예수님을 영화롭게 사사, 우리가 보기에 영광스럽게 하신다.
③세 번째 실상은 창조 질서와 자연의 섭리에 나타난 성부, 성자, 성령의 아름다움과 지혜와 능력이다. 무한히 풍성하신 하나님, 구속의 불가사의뿐 아니라 자연의 불가사의로 인해 끝없이 찬양받으실 만한 하나님의 매혹적인 전시장이다.
-이 책의 요점은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은 성령님의 사역에 끊임없이 우리 자신을 연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성령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다양한 측면들을 묵상하고 기뻐하도록, 그리고 남은 평생의 기도 생활의 틀이며 토대가 되게 그 측면들에 반응하도록 인도하시는 분이다. 이것이야말로 단언하건대, 그리스도인들이 전심으로 기도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 준다는 것이다. 즉 주님의 영광에만 집중하여 기도하는 것이다.
후기: 기도를 멈춘 그리스도인들에게
-실제적인 제안들
-소리내어 기도하라. 적어도 속삭이면서 기도하라.작은 목소리라도 입 밖에 내어 말하는 것, 기도를 “입술로 소곤거리리는 것”은 당신이 기도에 집중하고 생각이 이리저리 헤메지 않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개인 기도를 할 때 전혀 소리를 내지 않고 해야한다는 생각은 상당히 최근에 생겨난 것이며, 또 상당히 어리석은 것이다.
-특히 기도를 시작할 때 하나님의 거룩하신 엄위함을 묵상하다가 말을 잃은 적이 있다면, 또한 마음이 꽉 막힌 듯해서 뭔가 풀어낼 필요가 있는 것 같은 때면 언제나 주기도문을 드려 보라. 그리고 이 기도의 각 문항을 발판으로 당신 자신의 생각을 확장해 나가라. 마르틴 루터는 “네 가닥으로 된 화관”을 추천한다. 첫째, 각 문항이 나타내는 은혜로운 진리를 경축하고, 그 항목이 상기시켜 주는 바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선물들에 감사의 고백을 드린다. 그 다음에 그 말을 진지하게 삶의 지침으로 삼아, 어떤 것이든 자신의 실패를 고백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조항이 촉구하는 구체적인 간구들을 말로 표현한다.
-당신이 읽고 기도할 때 하나님에게 들은 것을 적어 놓으면 계속 지혜를 얻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일반화된 경건이라는 단조롭고 상투적인 것을 넘어 다양한 통찰과, 하나님과 당신 자신에 대한 현실주의, 거룩한 방식 등을 더욱 깊게 발견하게 될 것이다.
-어느날 하루 온종일 기도하는 자세로 지내는 것을 목표로 정해보라. 그러면서 끊임없이 하나님의 임재를 연습하고, 모든 환경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상기시키는 것들을 찾아보며, 생각을 끊임없이 하나님께 향하게 하고, 계속해서 “기도의 화살”을 날려보라.
-의미 있는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정하고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지 미리 계획하는 것이 대단히 유용하다는 것을 안다.
-시편 97편은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나니”라는 말로 시작된다. 이 말로 시작되고 끝나는 기도문을 적어 보라.
-성경의 유명한 기도문(예컨대, 다니엘 솔로몬 느혜미야..,)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 이 기도를 쓰되, 어떤 사람의 이름을 쓰고, 필요하면 적적한 인칭대명사를 사용하여, 이것을 어떤 개인을 위한 기도문으로 만들어 보라.
-3분 동안 하나님의 이름을, 기억할 수 있는 한 많이 써 보라.
-하나님에 대한 당신의 찬양을 표현하는 한 두 개의 중대한 행이나 문단을 만들어 보라. 그리고 그것은 이용하여 당신 자신의 찬양기도를 써 보라.
-CS 루이스는 우리가 매번 기도를 드릴 때 “진정한 내가 말하게 하옵소서. 진정한 하나님께 말하게 하옵소서”라고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쓴다.
-한 가지 계획은 요일마다 주기도문 한 단락씩을 택하여 다른 모든 기도의 제목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를 가지고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에 대한 감사의 기도, 그분의 성품에 대한 찬양의 기도, 가지고 있지 않고 필요하지 않은 것을 탐낸 죄로부터 구해달라는 기도, 낭비하는 습관에 대한 고백의 기도, 특별히 가난한 나라와 그 나라의 지도자를 위한 기도, 궁핍한 가족들을 위한 기도, 지난 주 거리에서 본 이름 없고 집 없는 사람을 위한 기도, 궁핍한 사람들을 섬기는 사람과 기관들을 위한 기도, 하나님이 다른 사람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공급하기 위해 당신을 쓰시고자 하는 장소를 찾는 기도 등을 드리는 것이다.
*모든 간구 기도는 하나님이 채워 주시기를 바라는 필요 상황을 하나님 앞에 내어 드리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간구 기도는 나의 정욕에 의해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하나님의 뜻에 맞는 간구이어야 한다. 나의 편안함을 위해 주저리 주저리 기도 제목을 들이대고 이것을 이루어달라고 해서는 안된다 한다. 말은 백 번 맞는 말이지만, 곰곰이 따져 보면,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라면 그건 말 안해도 응답이 있는 것은 당연지사다. 말할 필요조차 없다. 나의 번영, 편안함이 아닌 중보기도나 공적인 기도는 쉽사리 하나님 뜻에 맞는 기도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와는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에게로 돌아올 때 물론 내가 선교사로 나가고 싶다든지 하는 어떤 공적인 기도는 위의 범주에 들 수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병을 낫게 해주세요, 좋은 직장 주십시오, 자녀가 건강하게 해달라는 둥, 개인의 번영과 편안함을 추구하는 기도가 태반을 차지하리라 본다. 이런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기도가 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면 그런 기도는 정녕 해서는 안되는 기도일까. 나로서는 쉽게 해답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굉장히 어려운 문제로 나타난다.
예수님께서는 구하라 그리하면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또 악한자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는 말해서 무엇하겠느냐고 마태복음에 말씀하고 계신다. 그런데 이때는 본문만 보면 사실 아무 조건을 다신 것은 아니다. 너희가 구하는 대로 내가 다 줄 것이다. 단 내 뜻에 맞거든 주겠다라고 뒤늦게 클레임을 거신 것은 아니다. 우리가 살면서 드리는 간구 기도를 하다보니 응답이 없는 것도 있고 그것을 역으로 생각해 보니 역시 아무리 구하라 하고 무조건 주신다고 했지만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것은 곤란하다고 사후로 추론한 것은 아닐까.
주기도문에서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인간의 가장 필요한 것을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밥을 먹고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찬가지 논리로 우리의 사소하고 잡다한 욕심에 의한 간구 기도도 적용시킬 수는 없을까. 도움이라는 단어, 헬프는 자기 중심적이지 않을 수 없다. 기도의 근본 이념은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