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목회칼럼
중용
Lewis Noh
2023. 1. 8. 04:29
서양에서 중용은 사실 별로 주목을 못 받은 거 같다. 비슷한 개념을 찾자면, 휴브리스(hubris, 오만) 정도의 교훈을 찾을 수 있을 듯 하다. 인도의 역사학자 토인비는 '성공으로 인해 교만해져서 남의 말에 귀를 막고 독단적으로 행동하다 판단력을 잃게 되는 것'을 가리켜 '휴브리스'라고 정의하기도 했지만, 원래 개념은 그리스 신화들과 희비극의 주요한 소재이기도 했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태양을 향해 날아올랐던 이카루스, 끊임없이 돌을 굴려 올려야 했던 시치푸스, 소포클래스의 비극에 등장하는 오이디푸스가 대표적이다. 어느 쪽이 됐든지 과한 욕심이나 행동으로 판단력을 잃고 삶이 무너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에 비해 동양에서 중용은 하늘의 뜻과 인간의 마음 사이에서 하늘의 뜻이 사람의 삶 가운데 제대로 꽃을 피게 하는 것을 중용이라고 보았다. 유학에서 마음은 단지 사람의 마음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마음이란 하늘과 땅이 맞닿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중용에 서론에 해당하는 부분을 보면, 천심은 미미하고 인심은 위태롭다고 했다. 이 미약하고 알아보기 힘든 하늘의 마음의 기미를 보는 것,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삶을 기르는 것 이것을 중화(中和)라 했다. 그 마음을 살피는 것을 경(敬)이라 하고 그것이 화(和)하도록 실천하는 것을 의(義)라 했다.
사람의 마음을 하늘의 뜻을 담는 성소로 이해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퇴계의 문도들 중에서 천주학에 관심을 가진 유학자가 많이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원래 주자학은 일종의 정치철학이라 할 수 있다. 시경 등 삼경에는 인격신 개념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를 사회철학으로 환원한 것이 주자학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의 성리학은 이 정치를 도학정치로 이해하려고 한 것이다. 사람 간의 윤리와 인격적 관계를 강조한 것은 결국 하늘의 마음이 그와 같다고 이해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정치철학에 종교적 색채가 강하게 묻어 나게 된 것은 화담 서경석 때부터다.
실제, 광화문 서쪽으로 사직당이 있고 동쪽으로 종묘가 있다. 사직은 시경에 나오는 후토라는 인물로 후직이라고도 불리며 토지신으로 숭배된다. 반대로 종묘는 조상신을 모시는 사당으로 효가 조선 정치 원리의 중심인 이유이기도 하다. 이 종묘에는 왕들과 학문이 높은 유학자들을 사당에 두고 제례를 행했다. 우리가 사극에서 듣는 "종묘사직"은 이를 두고 하는 표현이다. 사람의 죽음을 표현할 때, 혼비백산이라 쓰는데 혼은 날아가고 백은 흩어진다는 말로 사람의 죽음은 종묘와 사직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하고 있다. 하늘과 땅을 잇는 것이 정치로 본 것이다. 중용을 그 조화를 이루는 삶으로 이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