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에게 있어서 영혼 (Soul)은 고아이다
현대인에게 있어서 영혼 (Soul)은 고아이다. 합리주의와 물질주의의 계모에게 쫓겨나 이리 저리 방황하는 고아와도 같다.
구약 성경에는 영혼이란 뜻의 "네페쉬"란 말이 450회 정도 나타나며 신약 성경에는 "프쉬케"란 말이 50회 이상 쓰여졌다.
초기 교부들은 영혼을 존중했다. 그러나 오늘날은 심리학이 영혼과 가장 근접을 하고 있지만 역시 심리학도 합리주의와 물질주의의 시녀 노릇을 하고 있을 따름이다. 또한 현대 자아의 자기 중심성과 편향성으로 말미암아 영혼은 더욱 고립화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처럼 거절당하고, 버림받고, 멸시 당하고, 공격 받지만 영혼은 죽기를 거부하고 끊임 없이 우리 가운데 생명을 유지해 오고 있다.
영혼은 꿈 속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을 한다. 영혼은 심상 (image)과 영혼이란 단어가 우리 안에서 불러 일으키는 감정을 통해 자신을 알리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영혼은 감정을 잉태하고 있으며 주관적이며 경험을 한다. 흔히 여성으로 표현되는 영혼은 고통을 느끼며 기뻐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영혼은 반성을 하는 기능이 있다.
영혼은 심리적 인상들을 받아들이기도 창조하기도 하는데 이 두 가지는 심리적 삶을 낳기도 하고 죽게도 한다. 환상, 이미지, 상상력, 그리고 가치와 의미에 대한 종교적 관심 이 모든 것들은 영혼의 활동영역이다.
영혼은 사랑 받기를 원하며, 사랑하기를 원하며 삶의 양식을 우리에게 갖다 주지만 또한 영혼 자신은 굶주림을 느끼기도 한다.
무엇 보다 영혼은 하나님을 갈망한다. 자신이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을 때 조차도 하나님이 거기 계심을 아는 것이 영혼이다. 영혼은 하나님이 그의 본향인 것을 본능적으로 알며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것이 영혼의 기능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다가오는 것도 오로지 영혼의 믿음을 통해서이다.
영혼은 가끔 우리 의 꿈 속에서 나타난다. 남자의 꿈에서는 그가 무척 사랑하거나 연모하는 보기 드물게 아름다운 여자로 가장하고 나타날 수 있다. 이를 아니마 (anima)라고도 부르는데 가끔은 새의 상징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새는 하늘과 땅에 동시에 속해 있고 육과 영 사이에 위치한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여성에게서 영혼은 여자로 나타날 때 가끔은 자기가 질투하는 여자의 꿈을 꾸기도 하며 혹은 그녀가 흠모하는 여자의 꿈을 꾸는 일도 있다.
영혼은 우리 안에서 우리의 의식을 깊은 내면과 연결시켜 주는 존재이다. 영혼의 근본적인 기능은 관계이며 자아와 내면 세계 사이의 관계는 모든 관계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관계가 파괴되는 경우 다른 사람과의 관계나 하나님과의 관계 맺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영혼을 통해 우리 자신과의 살아 있는 연결이 되어 있지 않으면 우리는 키 없는 배와 같거나 뿌리 뽑힌 나무와도 같다. 그런 사람은 병이 들거나, 성격이 잔인해 지거나 절망에 빠지거나 술이나 마약 같은 대용물을 찾기도 한다.
사람이 진정으로 영혼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외적인 가면과의 자기 중심적 동일시를 버리고 내면에 있는 존재와 기꺼이 직면하고자 해야 한다.
그러나 자신의 영혼을 찾는 사람은 그 가면을 버리는 일을 넘어 서서 에로스적 원리를 수용하고 간직해야 한다. 왜냐하면 연결의 기능을 감당하는 영혼은 에로스를 그 자체의 근본 특징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에로스는 탁월한 여성적 원리이다. 에로스는 결속시키고 연합시키고 종합하고 치료하는 원리이다. 에로스는 인간 관계의 시멘트이자 사회적 휴머니즘적인 목적에 사용하는 영감의 원천이고 의식과 내적 의미 사이를 잇는 접합제이며 한 개인이 영적 통찰로 나아가는 문이다.
에로스는 우리에게 사랑의 능력을 제공하기 때문에 또한 신앙의 근거이다. 신앙은 에로스에서 나오며 신앙에서 모든 소망이 나오므로 영혼과의 연결은 삶을 의미 있고 긍정적으로 확정하고자 하는 우리의 능력에 근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믿음, 소망, 사랑을 말하면서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말한 이유가 있다.
만일 에로스가 질식당하면 영성 또한 질식당하며 완고하고 거칠고 판단하고 비창조적인 성격으로 변하게 된다.
이 영혼은 우리의 인생에 가치를 주는 힘이다. 영혼은 한 개인을 내면으로 부터 생기가 넘치게 해 주는 심리적 실재이다.
그동안 교회 안에서 의식의 대상에서 배제되어 온 성과 에로스에 대한 의식적인 인식을 허용해야 한다. 이렇게 될 때 영혼과의 원만한 연결이 유지될 수 있다.
우리가 의식을 포기하고 우리에게 속한 것을 거부하고 그것을 어둠에 버리면 우리는 영혼을 잃는다. 그러나 영혼과의 적절한 연결을 통해 우리 자신의 전체가 의식적인 표현으로 바뀌기 시작할 수 있다. 이 때 우리의 삶은 잃었던 동전을 찾는 일이요 그 결과 놀라운 변화가 일기 시작할 것이다.
John A. Sanford의 The Kingdom Within 중에서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