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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칼럼

미국 기독교의 현재 그리고 한국 기독교의 미래

하비 콕스라는 하버드 대 교수는 세속도시라는 책에서 세속화와 도시화는 신의 선물이라고 주장했다. 세속화로 인해서 전통적 의미의 교회를 형이상학적 속박으로 이해했고 도시화와 세속화는 이런 속박으로부터 해방되어 인간의 성장을 가져다줄 것으로 보았다. 남 침례회 소속의 목사이기도 한 그의 이런 주장은 남미에서 해방 신학이 발달하는 단초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65년 출간한 이 책의 예언과 달리 미국 교회는 70년대 들어서면서 메가 처치의 등장과 함께 폭발적으로 성장을 한다. 그래서 도시화와 산업의 발전의 꼭 종교의 감소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라는 좋은 예로서 미국이 언급되기도 했다.
현재도 미국인의 64%는 스스로 기독교인이라고 말한다. 이는 거의 한국에 세 배에 가까운 수치기도 하다. 그런 미국에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 어디로 어떻게 변화할 지는 알 수 없지만, 판데믹은 종교적 변화의 중요한 변수가 된 것을 우리는 역사적 사례를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유럽이 몽고와의 전쟁을 겪으면서 수입된 흑사병은 가장 먼저 이탈리아에 들어왔다. 수많은 사람의 죽음은 교회에 대한 기부로 이어졌으며 이것이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흑사병으로 가장 먼저 죽음에 내몰린 사람들은 신부나 수녀였다. 이는 종교인의 질적 저하를 가져왔으며 결국 교회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르네상스는 문화 예술의 측면에서만 새로운 시대를 연 것이 아니라 과학과 종교에서도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종교개혁은 이런 풍토에서 찾아왔다. 포스트 판데믹 사회에서 교회가 살아남는다면, 아마도 이런 모습을 예상해볼 수 있을 듯 하다. 그런 점에서 미국 교회의 쇠퇴는 한국 교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도 매년 6000개의 교회가 이슬람 사원이 되거나 향락 시설로 바뀌고 있다. 유럽이 68 혁명 이후 겪던 기독교의 쇠퇴가 미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64%나 되는 미국 교회의 교인의 상당수는 현재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 미국은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탈종교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성탄절에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하는 것이 미국의 주류 종교임에도 어려워지고 있다. 이는 PC주의로 일컬어지는 "정치적 올바름"이 부추긴 현상이기도 하며 오랜 세월 인종 차별을 겪은 이 사회의 사회 문화적 맥락에서 발생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문제에 교회가 정치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낙태와 동성애에 대한 미국 우파 기독교 교회의 목소리는 이와 다른 생각을 가진 진보 진영 기독교인들과 충돌을 빚는다.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많은 이들이 교회를 떠나게 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미국은 종교적 자유를 따라 건국된 나라답게 루터식의 개인주의가 사회적 관계의 기본적 바탕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시에 교회가 주는 커뮤니티 익숙한 나라다. 클럽이나 파티 문화도 이에 대한 하나의 증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단연코 미국인들의 최고의 커뮤니티는 바로 교회다(퓨리처시 조사 참조). 그들은 교회에서 형성된 커뮤니티에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있으며 한인 교회의 예에서도 보듯이 특별히 신앙이 없어도 사교의 장으로서 교회는 그들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공동체였다.
전염병에 대한 우려로 대면 예배가 중단되면서 시민들은 가장 강력한 커뮤니티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미국의 마스크 논쟁도 기실 내부에는 이 부분이 자리하고 있다. 보수적 교회들이 주로 비마스크를 주장했는데 이는 교회를 지키려는 몸부림이기도 했다.
그러나 비대면의 지속은 시민들로 하여금 교회를 대체할 커뮤니티를 다른 곳에서 찾게 만들었다. 취미나 클럽 활동의 커뮤니티에 대한 참여는 일부 사람들로 하여금 교회에 돌아갈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 미국 기독교 우파다. 1980년대 미국 정치와 손을 잡은 기독교 우파의 목소리가 가장 극대화된 시점이 있다면 아마도 지금이 아닌가 한다. 기독교 우파는 보수성향을 지닌 백인 복음주의와 가톨릭 신자가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2000년 대선에서 백인 복음주의자의 68%는 공화당 후보인 조지 부시를 찍었다. 백인 복음주의자의 공화당 지지는 갈수록 높아져 2004년에는 78%, 2016년에는 81%, 2020년에는 무려 84%에 이르게 된다. 민주당 지지자 중 종교를 가진 사람이 46%에 불과했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놀라운 수치다.
트럼프의 정치적 기반에는 기독교 우파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게 되었다. 트럼프의 대통령의 당선은 미국 북부 러스트 벨트라 불리는 백인 불루칼러가 집중된 지역에서의 승리의 결과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 때문에서 미국에서 기독교인은 자신의 의도와 상관 없이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덮어쓰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유럽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유럽이 급격하게 우경화하는 데는 시리아 난민이 빚은 사회적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이들의 엄청난 유입은 비교적 사회의 낮은 계층을 이룬 시민들이 자신들의 일자리에 대한 위협으로 느꼈고 이들을 수용하는 진보적 정당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졌고 유럽에서 극우 정당이나 극우 정책이 대세를 이루는 정치 지형의 변화를 가져왔다. 독일 영화 중에 보거스라는 영화가 있는데 난민이 우리 삶의 자리를 빼앗은 것에 대한 공포를 우화적 형태로 잘 묘사한 영화다.
다시 미국 이야기로 돌아와서 트럼프가 남미 접경 지역에 기둥을 밖아 국경 봉쇄를 하는 것 역시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다. 히스패닉 계와 최근에는 중국의 정치적 불안정성의 증가로 인해 중국 난민의 입국의 증가 등이 미국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을 기독교 국가주의(Chiristian naitonalism)로 만들고 있다. 이들은 기독교인인 미국에서 특권적 지위를 가져야 하며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은 온전한 미국 시민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여론과 미디어에 주목을 받은 사건은 지난 대선에서 바이든이 승리하고 나서 트럼프의 선동으로 미국 의회에 난입하여 점령한 사건으로 드러났다. 이들 중 상당수가 성경이라든지 기독교 상징물을 들고 언론 앞에 등장한다. 이 보도는 미국 기독교인들에게 충격을 안겨 주었다. 미국 내에서 이들은 10% 남짓으로 추산되며 이들에게 호의적인 사람들을 포함하면 거의 30%에 육박한다. 트럼프의 콘트리트 지지층에 이들이 있다.
그러나 교회의 이런 정치화는 교회가 지닌 커뮤니티 기능에 훼손을 가져오게 되었다. 신도들도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갈라지게 만들고 여기에 혐오감을 느끼는 사람을 교회로부터 떠나게 만들었다. 이런 분열이 커뮤니티 생태계를 망치는 외래종인 된 것이다. 이런 정체성을 뚜렷하게 하는 현상은 공동체 정신을 훼손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더해 판데믹은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는 합법적 이유나 구실을 가져다 준 것이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여성이 남성보다 더 종교적인 것은 추세다. 그런데 PC주의와 맞물려 젊은 여성들이 진보성향을 띠면서 2000년 이후 출생한 미국 여성은 남성보다 종교가 없을 확률이 더 높아진 것이다. 이는 조사를 안 했지만 현재 한국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미국의 기독교에는 정치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고 이런 현상이 신앙을 버리지 않았음에도 교회를 이탈하는 현상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는 2-30년 안에 한국 기독교 안에서도 재연될 개연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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