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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칼럼

논어(論語) 안연편(顔淵篇)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비례물시 비례물청 비례물언 비례물동)

논어(論語) 第十二 안연편(顔淵篇)에 나오는 표현으로 공자(孔子)가 제자인 안연(顔淵)에게 전한 가르침의 한 부분이다.

번역은 ,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는 뜻이다

최근 넷플릭스 TV쇼 삼체에서 문화대혁명에서 홍위병 이야기가 나온다 들었다. 홍위병의 사상 논쟁은 상대성 이론을 가르쳤다고 대학교수를 죽여버리고 만다.

좌파들의 사상 논쟁의 참화였다. 그럼 우리라고 다를까 우파들의 사상 논쟁이 빚은 참화가 있어 왔다. 최인훈의 소설 광장은 이런 현실에서 주인공이 제3국행을 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풍자였다.

물론 우리 선배들의 공산주의 경험은 가족을 살해하는 홍위병에게 입은 피해와 같은 트라우마였다. 이게 빚은 증오 감정은 같은 결과를 야기했다. 이런 걸 심리학에선 공격자와 동일시라고 한다. 미워하면서 닮는 것이다. 니체도 비슷한 말을 했다.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면, 심연 또한 당신을 들여다볼 것" 이라고 했다.

증오에 기반한 선배들의 행동은 이해되는 면이 있다. 나라도 그런 방식으로 가족을 잃었다면 분노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요즘 보아는 진영논리와 색깔론은 홍위병의 것과 흡사하다. 무지하고 가진 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감과 분노 같다고 할까? 억눌린 사회적 욕구불만의 표출 같은 그것도 중재와 화해의 사도여야 할 종교인들에게서 이런 구시대적 잔재를 본다는 게 슬픈 현실이다.

적어도 예의는 갖추었으면 한다. 누구에게 어떤 프레임을 씌우기 전에 토론이나 사실 확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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