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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자료

<더 깊게 공부하기, 벽돌책 번역 프로젝트: <장애의 발명> 번역 후기 #1>

2025년 하반기 내내 매일 3시간을 번역에 사용했다. 대략 계산해보면, 초벌 번역을 완성하는 데에만 600시간이 들어갔다.

번역을 하다 보면 예외 없이 막히는 부분이 생긴다. 그러면 한숨 돌리고 돌아와야 하는데, 그 한숨 돌리는 시간을 적절히 배치하기 위해 일상을 디자인해야 했다. 잠시 머리를 쉬게 해서, 그 문장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몸을 만드는 일이었다. 화장실에 다녀오거나 잠을 자거나 샤워를 하거나 밥을 먹는 게 그런 역할을 해주는데, 그 쉼의 시간을 번역을 중심에 두고 배치하기 위해 노력했다. 번역하다 막히는 부분이 나와야 비로소 학교 식당을 찾거나 화장실을 가는 식이었다.

물론 6년 전 <장애의 역사>를 번역할 때와 달리, 내게는 AI가 있었다. 하지만, AI를 통해 전체 내용을 파악하고 번역이 막힐 때 의견을 구할 수는 있었지만, 그 이상 의지할 수는 없었다. 초벌 번역에 도움을 받아보고자 시도했을 때, 한 문단마다 한 문장 정도를 의미를 미묘하게 왜곡했다. 번역된 문장의 결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는 공부를 깊게 하고 싶어서 번역을 시작했는데, 부대낌과 끙끙대는 시간을 잃어버리면 그 내용이 내 몸 안에 들어올 수 없었다.

역학과 통계를 이용해 취약계층의 삶과 건강에 대해 국제학술지에 주저자로 출판한 논문이 머지않아 100편에 가까워진다. 그 논문들 하나하나에 나름의 이유와 의미가 존재하고 자랑스러운 연구들도 있지만, 개별 문제에 대한 양적 분석을 하는 과정에서 내가 맥락(Context)을 고려한 통찰 능력도 키우고 있는 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통계적 결과가 쌓이는데, 그것들을 엮어 이야기로 만들고 불평등을 줄이기 위한 공유 가능한 도구로 세상에 내놓는 능력은 오히려 축소되는 듯했다. 어떻게 해야 내 공부가 그 본래의 목적에서 그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내 공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2019년 <장애의 역사>를 번역했던 일이 내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번역자였기에 책을 누구보다 깊게 읽고 문장 하나하나를 가다듬는 일을 반복해야 했고, 그 과정이 자꾸 나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책이 출간되고 지난 6년간 나는 그 책의 내용으로 족히 30번은 크고 작은 강의를 했다. 강의할 때마다 매번 조금씩이라도 새롭게 살을 붙여 이야기하려 했다. 그렇게 강의를 하고 학생들과 나누는 일을 계속하다 보니, 어느 순간 그 책의 내용이 소화가 되고 내 몸 안에 들어왔다.

2025년에 <장애의 발명>을 번역하기로 마음먹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깊게 들어갈 수 없을까. <장애의 역사>는 킴 닐슨(Kim Nielsen) 교수가 미국에서 콜럼버스가 도착하기 이전의 토착민 시기부터 1990년 미국 장애인법 제정까지 600년에 달하는 시간을 장애라는 렌즈를 통해, 장애인의 삶을 중심에 두고 서술한 역사다.

반면, <장애의 발명>은 사라 로즈(Sarah Rose) 교수가 근대적 의미의 장애가 만들어지는 90년 동안의 역사를 분석한 책이다. 원 제목은 <No Right to Be Idle: The Invention of Disability, 1840s–1930s>이다. 남북전쟁이 끝난 시기부터 1930년대 세계 대공황의 시기까지다. 이 시기에 발달장애인 시설과 표준 사업장이 처음 생겨났고, 산업재해로 인한 장애를 보상하고 예방하기 위해 산재보험이 처음 도입되었고, 전쟁에 참여했던 상이군인들의 사회복귀를 돕는 목적으로 직업 재활 프로그램이 처음 만들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노동시장에 참여할 수 없는 '비생산적인' '쓸모없는' 시민이라는 사회적 낙인이 장애인에게 처음 덧씌워진 시기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장애는 이 시기에 탄생했다.

번역서는 족히 500쪽은 넘을 벽돌책이다. 올해 2월 초벌 번역본을 보냈고 편집자와 몇 개월째 주고받으며 수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10월 초, 동아시아 출판사에서 출판된다. 이 책이 인간의 삶을 조금 더 깊고 더 복잡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세상에도, 내게도.

#김승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