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노승수의 강해설교/사도행전강해

사도행전 9장 메인아이디어

사도행전 9장 메인아이디어


노승수 목사


사도행전 9장에 사울의 회심 후에 베드로의 두 가지 표적, 곧 애니야의 중풍병을 고치고 도르가를 죽음에서 건지는 일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10장에서 고넬료 집에 가는 환상이 나온다. 이 구성은 의도적이다. 이방인과 임금을 위한 사도로 준비되는 사울과 베드로의 사역을 통해 그에게 신적 권위가 있음을 보여주고 그 다음에 복음이 고넬료로 대표되는 이방인 구원에 관한 환상으로 이어진다.


사울의 회심하고 베드로가 마치 예수님처럼 묘사가 된다. 그리고 이어서 이방인을 향한 계시가 이어진다.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받는 사울의 사도적 권위가 이 구성을 통해서 묘사되고 있다. 


유대의 정결례 상, 부정한 것에 접촉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할례받지 못한 이방인과 함께할 수 없었다. 특히 식탁의 교제는 더욱 그랬는데, 갈라디아서에 베드로가 외식하는 장면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를 알 수 있다.


동시에 이 환상은 아무거나 먹어도 된다는 의미가 그 직접적 의미가 아니라 구약의 의식법들이 성전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되었으며 그 성취의 결과로 이방인도 복음을 받을 수 있고 이방인도 복음 안에서 교제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환상이다.


그런데 고작 여기서 적용하는 것이 이젠 우리는 아무거나 먹을 수 있다는 정도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구약의 정결법은 성전과 연결되어 있다. 달리 말하면 죄와 연결된 비유인 것이다. 물론 정결법에 건강이나 위생상의 문제가 포함될 수도 있지만 이것은 정결법이 말하는 본질이 아니다. 근데 국내에는 이것을 들어 구약적 식사법을 가르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정결법은 성전과 제사에 나오는 방식이고 이것은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준비 단계였다. 그것이 전통이 된 것이다. 동시에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으로 이 모든 것이 깨끗케 된 것이다.


그럼 이 본문이 우리에게 교훈하는 바가 무엇인가? 아무거나 먹으라는 것인가? 유대인으로서는 도무지 받을 수 없었던 이방인이라도 복음 안에서 받으라는 것 아닌가? 그런데 우리는 복음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혐오와 배제, 위협을 행하는가 여러분이 받으셔야 할 것은 오징어 같은 어폐류를 먹어도 좋다는 정당화가 아니라 우리 이웃을 진심으로 사랑함과 그를 마음에 받는 것이다. 그들이 어떤 죄인이더라도 그리스도께 오면, 회개하고 돌아오면 주께서 용서하신다는 이것이 복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