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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신학/기타미분류

성경의 핵심적 흐름

성경의 핵심적 흐름
김영규 목사(개혁주의성경연구소)
성경에서 기록된 하나님의 계시들 중 몇 가지 중요한 분기점이 되는 기록이 있다. 첫째는 천지의 창조에 대한 기록이요, 둘째는 아담의 타락에 대한 기록이요, 셋째는 노아시대 홍수 심판에 대한 기록이요, 넷째는 아브라함의 선택에 대한 기록이요, 다섯째는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에 대한 기록이요, 여섯째는 예수님의 임재에 대한 기록이요, 일곱째는 오순절 성령을 부어주심에 대한 기록이요, 여덟째는 새 예루살렘에 대한 기록이다. 이 중에서 성경의 핵심적인 부분은 아브라함의 선택과 그와 언약에 대한 기록에 있다. 거기에서 구체적으로 성경의 실체들이 드러나고 있다. 
인간보편사에 대한 기록은 노아 홍수 사건에서 종결되고 아브라함에 대한 기록부터 특별역사에 대한 기록이 시작되고 있다. 아브라함으로 특별역사라 하는 것은 그 역사 때문이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내리신 계시의 내용 때문이다. 그 계시의 내용에 따라 특별한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하나님의 창조역사가 많이 언급되었고 그 다음으로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이 많이 언급되었다. 아담의 타락에 대해서는 사도바울을 통해서 그 특별한 성격이 잘 드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과 맺으신 하나님의 언약은 구약과 신약을 통해서 나타내신 하나님의 말씀의 중요한 맥을 드러내는데 결정적이다. 이 아브라함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은 출애굽의 본질적인 부분들과 가나안 정착의 역사, 이스라엘의 멸망과 유다의 멸망에 대한 예언들과 그 결과들에 대한 기록에 크게 집중된 선지서들 일반, 신약시대의 교회 곧 하나님의 나라의 본질적인 특성을 이해하는 열쇠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셨으나 아담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땅이 저주를 받았으며 인간의 죄악의 관영함이 넓게 퍼지고 심해짐에 따라서 노아시대에 홍수 심판(창 3:18)이 임하여 죄악의 확대가 저지되었으나, 노아의 자손을 통해서 인간의 죄는 사라지지 않아 잠시 언어의 혼란으로 그 죄의 확대를 막으셨다. 그 본질적인 해결책은 아브라함을 선택하여 언약하심으로 하나님의 독특한 역사를 비로소 시작하셨다. 하나님은 은총으로부터 천지를 창조하신후 은총의 계속으로 영생을 보증하는 생명나무와 약속의 말씀을 주셨고(창 2:9, 16-17), 역시 가정과 사회를 주셨다. 타락후에도 형벌과 더불어 원복음에 대한 비밀을 남기셨으며(창 3:15) 그들의 죄의 결과인 선악을 아는 그 밝아짐의 상징인 그들의 부끄러움을 가리도록 옷을 주셨다(창 3:21). 죄를 범하는 유리하게 될 가인에게 생명의 보존의 표를 주셨으며(창 4;16), 노아시대의 노아 심판후에도 여호와 하나님은 땅에 있는 모든 생물의 보존에 대한 언약을 행하셨다(창 8:22-9:17). 노아의 가족을 구원하기까지 은총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죄악의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 거기까지의 말씀이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하실 때에는 아주 특별한 은혜역사에 들어갔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의 하나님이 되시겠다는 선언이다(창 17:4-14). 즉 여호와 하나님이 은혜(cf. 신 10:15)로 택한 자의 하나님이 되시겠다는 약속이다. 이 언약내용(summa foederis Dei, foederis formula)이 신구약을 하나로 묶는 핵심이다. 이 내용은 하나님의 백성(하나님의 나라, 교회)의 근원과 신분과 삶에 관련된 말이다. 그렇게 하여 언약과 계명과의 관계, 언약과 성소의 관계가 드러났다. 후에 이 관계가 다윗시대의 시편들에서 형상화되었다. 그 언약의 표징(signum foederis, 할례)의 성격은 마음의 할례(신 10:16; 30:6; 렘 26:41; 롬 2:29), 귀의 할례(렘 6;10)로 오늘날 교회시대까지 유일하게 이어지고 있다. 이런 특별한 은혜언약을 행하시는 시기를 전후로 하여 아브라함에게 특별한 약속의 말씀들이 임하였고 이 말씀들은 이삭과 야곱에게서도 반복되었다(창 26:4; 28:14). 아주 이상한 요셉의 역사를 통해서 애굽에서 성취되기 시작하여 출애굽을 통해서 완전히 성취하게 된다. 
이 출애굽 때에 비로소 구원의 특별한 전형이 좀 더 풍부하게 판명하게 계시되기 시작하였고 아브라함의 언약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하나님의 나라의 성격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하였으며 이 때를 기하여 특별한 계시들이 풍부하게 임하여 그의 나라의 영원한 법 곧 경건하고 의롭게 사는 규범(pie iusteque vivendi regula)에 대한 소개들과 죄로부터 구원이란 말씀들이 예표방식으로 이스라엘의 생활구조에 모형화되었다. 이미 족장들의 생애에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나그네)에 대한 사랑이 드러났지만 모세를 통하여 구체화되었고 욥기1)나 잠언2)등을 거처 예수님의 산상보훈에서 그 근본정신이 다시 분명히 드러났다. 모세시대의 이에 대한 계시는 거의 완전하여, 우리가 여호와를 사랑해야 하는 것은 앞서 여호와의 사랑에 근거하였고, 이것이 다시 모든 계명을 지키는 이유가 되었다. 즉 우리가 나그네와 원수를 사랑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보편은혜와 하나님의 특별섭리에 기초하였다는 점이다(신7장 이하; 10:18). 잠언에서 이웃사랑의 기초도 주를 경배하는 원리와 창조의 원리이다(잠14:31; 17:5; 19:17). 따라서 창세기는 이미 모세시대에 전혀 다른 성격으로 이해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형식으로 이스라엘의 역사와 삶 자체가 이미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모형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 이와같이 아브라함과 맺은 은혜언약이 소멸됨이 없이 더 분명하고 확대 풍부하게 되었으며 이스라엘은 이제로부터 분명하게 하나님의 기업이 되었고 거룩한 백성으로서 제사장 나라가 되었다(출 19:5-6, 신7:6-11)
그러나 가나안의 완전한 정착까지는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들(창13:14-17; 15:13-16); 17:8)이 성취되지 않았다. 결국 가나안 정착인들을 전부 완전히 쫓아내지 못하고(삿1:27-36)그들이 남아 잇게 되었는데 그들을 통하여 여호와께서 계속 시험하셨고(삿3:4), 모세에게 이미 말씀하신 이스라엘의 멸망에 관계된 예언들(신7-8장)이 이루어지게 되는 시험대에 올라서게 되었다. 왕제도의 허용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시험의 다양성을 여신 것이요 그것을 통해서 결국 이스라엘에게 하신 모든 하나님의 말씀의 진실성을 증명하였다. "오직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섬기라. 돌이켜 유익하게도 못하며 구원하지도 못하는 헛된 것을 좇지 말라"(삼상 12:20b-21). 이것이 바로 전도서의 주제이다. 자연과 인가의 모든 수고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전 1:13; 2:24-26; 3:10-13; 5:19; 6:2). 이 사실만이 영원한 것이다(전3:14,17; 7:18). 다른 것들은 헛되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애하는 것이 모든 지혜와 삶의 근원이다는 가르침이다(전 3:14; 5:7; 8:12-13; 12:13). 이것이 바로 언약의 핵심 내용의 단면이다.
이런 단면들이 이스라엘 안에서 시편들로 교훈들(잠 1:7; 9:10; 15:33)로 나타났다. 이런 문맥에서 역시 욥기의 자리가 있다. 욥의 시험의 핵심은 전도서 5장 2절("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에 있는 말에 있어서 적정과 절도의 원리에 대한 시험에 있다. 물질과 육체의 시험은 "주신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 지니이다"는 말씀으로 이기었으나 그 마지막 시험을 이기지 못하였다. 욥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자연의 모든 신비가 너의 모든 말의 고발자이다는 명제로 끝났다. 예수님의 시험의 핵심도 이 시험의 극복에 있다. 여기에 신구약 모두의 절정이 있다.
그렇게 여호와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신다는 사실이 모세 이후 모든 역사에서도 여전히 확신시키셨고 옛 말씀의 본질적인 성격을 분명하게 드러내셨다(삼상12:17). 사울왕이 말씀을 온전히 그대로 지키지 않음으로 벌을 받았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삼상 15:11,19)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씀(삼상 15:22-23)을 계시하시는데 핵심이 있고 그 계시로 언약의 실체를 확인하신 것이다. 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역사와 시험이란 하나님이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신다는 말씀의 확증이다. 여로보암을 택하고 버림도 같은 기준이였다. 엘리야의 예언(왕상 19:15-17)도 그대로 이루시고 엘리사의 말씀도 그대로 이루셨지만, 그러나 지엽적인 예언들을 포함하여 그 모든 역사기록은 선지자 아히야의 예언(왕상 14:10-13)이 성취되는 것으로 역사가 종결된다. 
결국 선지자들의 예언들은 좀더 구체적이거나 일시적인 것들 차이가 있을 뿐 모세로부터 예언한 것이 증명되는 말씀들의 연속들이었다. 즉 출애굽당시 광야 40년 생활처럼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착 후에도 낮추시고 시험받았으되 멸망하지 않고 구원되었으며 다윗왕을 통해서 언약들을 신실히 지켜서 그의 왕국의 보증을 받았으나(삼하 7:8-16) 그의 아들 솔로몬은 다윗과 같지 않았고(왕상 11:4-6) 솔로몬의 아들의 대에 와서 하나님이 조상들로 세우신 풍부한 언약의 말씀들이 파기되기 시작하여 결국 그것으로 이스라엘이 멸망하게된다는 것이 성경의 역사서들의 주제이다. 그 멸망 때까지 이스라엘의 지속된 것은 다윗과 세운 언약을 기억함이었다. 모든 것들이 선지자들이 예언한 대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우리에게 남아있는 선지서들의 글들에 나타난 마지막 날이란 그런 이스라엘의 존속과 멸망에 대한 예언과 관련된 것들이다. 즉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대한 증험사로 그리고 표징으로 남아있다.
대략 이스라엘 멸망후 유다왕 히스기야 시대쯤에 그 기록이 정리되거나 유명하게 된 대부분 선지서들(이사야서, 아모스서, 미가서, 호세아서 혹은 요엘서)은 이스라엘 곧 사마리아의 멸망을 예언하였고 사마리아의 멸망은 그의 종 모든 선지자들로 하신 말씀대로 된 것이었다(왕하 17:23). 유다의 멸망이 역시 중요한 역사적 계기로서 그 멸망은 참된 선지자들의 예언들이 증명된 중요한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증험에 의해서 확고히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증명되었던 기록들은 예레미야서, 에스겔서, 스뱌냐서등을 들 수 있고 여로보암시대에 활동하였던 요나 선지자의 기록과 니느웨의 멸망에 관해서 기록한 나훔서, 갈대아인들의 일어남에 대해서 예언한 하박국서, 에돔의 멸망을 예언한 오뱌냐서 외에 대부분 유다 멸망후 기록된 것이다.
그러나 호세아서에서 분명히 계시된대로 이스라엘과 유다의 멸망으로 아브라함과의 세우신 언약의 본질이 현저히 드러난 계기가 되었으며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저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름을 얻으리라"(호 1:10, 롬 9:26), "내 백성이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저희는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니라 하니라"(호5:2) 하였으니 이것은 이스라엘과 유다 자손이 흩어져서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이라"(호 1:8) 함이 마치 이방인들과 같으며 그런 역사의 모형화는 메시야 시대의 예언을 향하여 상징기능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즉 은혜언약의 실체는 계속 되는 것이다. 그밖에 이스라엘과 유다의 멸망에도 불구하고 언약의 실체의 연속성에 대한 현저한 비유들을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미 창세기 여호와의 동산이 상징하는 면도 있지만, 좀더 구체적으로 이스라엘 역사 자체가 특별하게 포도원(시 80:8-19; 호 9:10; 사 5:1-7; 겔 17:1-10; 마 21:33-43, cf.막 12:1-10; 눅 20:9-19)으로 표상되어, 경륜의 실체가 가시화되고 있다. 거기에서 나타난 포도원 주인과 포도원과의 관계가 언약의 핵심이다. 포도원에서 포도원 주인의 기대는 나무의 꽃의 만발(?νθητ?ν δ?νδρεων)과 그로부터 하나님의 나라의 열매(마 21:43) 곧 완전한 열매(? καρπ?? τ?λειο?)들을 맺는 일이다. 포도원 주인의 역사안에 경륜의 실체로서 메시야에 대한 계시가 자리를 얻는다.
모세에게 말씀하신바, 이스라엘 가운데 일으키실 한 선지자(신 18:18)가 메시야의 표상이었다면 이제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 "그 줄기에서 한가지"(사 11:1), 다윗의 위를 앉을 자(사 9:7; 호3:5)는 메시야의 표상을 가지고 메시야의 나라가 게시되고 있다. 유다가 멸망한 후에는 메시야를 고대하는 시대로 계속 남아있게 되며, 결국 그 선지자들의 마지막 날(히 1:2)에 그 예언대로(마 1:22; 2:6; 눅 1:70) 오셔서 천국이 가까웠다 말씀하셨으니, 복음서의 기록은 듣고 보고 주목하여 손으로 만진 자들의 증거요(요일 1:1), 말씀의 목격자들이고 일군 된 자들의 전해준 것이며(눅 1:2),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으로 확증된 것이다(히 2:4; 행 2:42; 5:12; 14;3).
그러나 근본적으로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그 말씀이 육신이 되었기 때문에(요 1:1-2, 14). 생명의 빛이였고(요 1:4,5; 8:12),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요 1:14,17). 그러나 성령으로 명하시고(행 1:2) 행하신 일은 목격자들에 의해서 모두 낱낱이 기록되지 못하고(요 21:25), 믿고 생명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 기록된 것으로서(요 20:31) 우리에게 내려진 증거들이란 4복음서만 주어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영원 전부터 존재하였던 독생자가 육신이 되어 나타내신 것들은 어느 것이나 세상의 빛이였고 은혜와 진리였기 때문에, 그리고 세상에 처음으로 유일하게 나타내신 하나님 자신의 진리였기 때문에 영원한 진리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 기록에 있어서도 그때 말씀하신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성령의 특별한 역사가 있었다(요 14:26). 또한 무슨 말씀을 말할 것인가도 그들 속에서 그들에게 주어진 아버지의 성령이 말씀하시는 성령의 큰 역사를 전제한다(마 10:20).
그렇게 기록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복음(막 1:1)에 대한 기록 외에도 편지형태로 남겨진 유대인들을 향한 사도들의 기록들과 이방인을 위한 복음으로 편지형식 속에서 사도 바울의 서신들(롬11:13; 갈2:8-9)이 남아있게 되었다. 마지막 사도 요한을 통해서 자기 때와 장래 될 일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가 기록된 요한 계시록으로 성경은 종결하고 있다(계1:1-2,19). 사실상 요한계시록과 4복음서들과 서신들은 분리되지 않는다. 4복음서를 기록한 근본적인 성격(마28:20; 막15:20,16:20; 요14장 이하)을 고려해 볼 때, 그 복음서를 히브리서 문맥 속에 되어야 함을 보게 된다. 즉 부활하시고 천상에 계신 그리스도가 땅에 와서 무슨 일을 행하셨느냐에 대한 관점이다. 이런 관점에서 기록된 모든 것들이 근본적으로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원의 성취자로서 혹은 보증자로서 그려주고 있다. 그렇게 그리스도는 임마누엘로서 우리 안에 거하셨고(마1:23) 승천하셨으며 다시 그로부터 나오신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다(고전3:17-17,6:19; 고후6:16). 
이 때에도 이 성격은 언약의 내용처럼 그리스도의 교회(하나님의 나라)의 근원과 신분 및 역사와 삶의 원리로서 표현되고 있다. 즉 성령은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은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역사하고, 인간은 하나님의 영 안에서, 영과 함께, 영에 따라서 인도되고 행한다. 이것이 신의 일에 참여하는 성령의 열매이다. 영의 것(거룩)을 가지고 생각하고 말하며 그런 역사로 인하여 하나님의 아들과 양자의 영이 확인되며 소유의 성격이 달라진 것으로 표상되고 있다. 구원의 보증(고후1:22.5:5)이란 이런 그의 것이란 사실과 연관되어 교훈되고 있다. 이런 식으로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신대로, 그 안에서 건물마다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해서 함께 지어져 가는 것이다(엡2:21-22). 
그러므로 마지막 새 예루살렘이란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으로서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이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는 것이다(계21:3). 즉 은혜언약의 내용이 성취되는 것이다. 
이렇게 마지막 판명하게 계시된 내용들을 기준하여 창세기까지 소급하여 이해하는 방식이 성경을 보는 자세이다. 즉 성삼위일체 하나님을 선행시키고 하나님의 작정, 창조와 섭리, 죄, 은혜언약(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계시(성경)등의 순으로 정리하게 되는 것이다. 성경의 흐름을 더 간결하게 표현하자면, 하나님의 택한 백성과 하나님의 관계가 은혜언약의 방식으로 결합되기 시작하여 이 세상에서 그 언약의 핵심이 더 판명하게 드러나며 그 언약의 내용이 실제적으로 이루어지고 영원히 정착된 상태가 하나님의 나라이며 그 나라의 마지막 종결은 성삼위일체 사이의 교통에서 종결된다(고전15:24)는 말이다. 이런 하나님의 독특한 역사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고 따라서 그 말씀을 하나도 가감함이 없이 전체와 모든 부분으로 만족하고 영원히 그것으로 먹고 살며, 그에게 속한 자의 하나님이 되시고자 하시는 그 하나님과 영원히 즐거워하는 것이 성도의 삶이요 마지막 축복이다. 
미주
1) 욥기에서는 친구들을 통하여 신약시대의 산상보훈의 내용들과 서신들의 가르침과 비교되는 중요한 내용들이 드러났다: 1)마지막 날까지 완전성화는 이룰 수 없다. 2)분노나 시기 자체가 살인이다. 3)인간의 경외, 경건, 지혜가 하나님의 완전성을 보충하는 것이 아니다. 4)하나님의 역사는 은혜의 역사이다. 5)하나님은 완전한 사람을 버리시는 일이 없다 등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산상보훈이 신약의 교훈들이 욥기 속으로 들어와야 바른 자리를 얻을 수 있다.
2) 여기에서는 모세시대와는 달리 많은 변화들이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1)의로운 길, 의로운 자와 지혜자의 길이 생명길로서 표상되어 있다. 2)경건의 성격에 있어서 여호와는 마음을 보신다는 명제가 특성이다. 3)가정과 교육이 강조되고 그 둘 사이가 분리되지 않지만, 그 가정의 성격은 바른 지식으로 채워지는 성격으로 나타나고 있다(잠 24:4). 4)원수의 사랑은 좀 더 구체적이다(잠24:17; 25:21-22). 5)빈부의 발생과 격차가 사회적 원인으로 돌려지지 않고 도덕적 원인(근면, 게으름등)으로 돌려지고 있다. 6)사회적 정의나 의는 하나님의 것이다는 사상이다. 따라서 소득의 방법과 정신이 중요시 되고 있다. 7)음부와 지옥, 악인까지 온갖 것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지으셨고(잠15:11; 16:4)마음조차도 여호와의 손에 있는 물의 도관처럼 그가 원하시는 방향으로 기울게 하고(잠16:33;21:1;29:26) 그 걸음을 인도하신다(잠16:9;1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