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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철학함

소크라테스는 문답법을 통해 대화 상대를 아포리아 싱태로 몰고 갔다. 아포리아는 고대 그리스어로 "막다른 골목"이라는 뜻으로 철학에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나 "논리적 모순"을 의미한다. 예컨대,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놓은 올무, 곧 가이사에게 바치는 세금 문제는 바치라고 하면 민족의 반역자 내지 참 선지자가 아니라 할테고 바치지 말라고 하면 로마의 통치를 거부하는 자칭 왕이라는 올무에 걸리게 하려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아포리아는 자기 지식의 모순을 깨닫게 함으로 참된 지식을 추구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논박술과 산파술로 뭘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무지를 깨닫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우리가 참된 지식에 이르면 이는 실천을 내포한다고 보았다.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운 후, 10년을 안 탔다고 못타게 되지 않는 지식이 참된 지식이라고 보았다.

칼뱅이 믿음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라고 할 때도 실은 이런 종류의 지식이다. 달라스 윌라드의 "하나님의 모략" 앞부분에 나오는 기독교 윤리학 A학점을 받은 인종차별주의자 신학생과 같은 지식은 참된 지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참된 지식은 반드시 실천을 부른다. 소크라테스가 이게 가능했던 것은 그가 참으로 철학함을 실천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며 다이몬의 목소리에 귀를 귀울이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신학함도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신학적 지식이 많다는 것이 곧 산학함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신학함이란 우리 본질을 아포리아 상태로 몰아넣고 그리스도께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 과정의 생략은 마치 십자가를 생략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좋은 교사는 안심하게 하는 교사가 아니라 신학함을 실천하게 하는 교사다.

모든 성도는 그런 점에서 신학자다. 신학함이 없는 신학은 죽은 신학이다. 성령께서 우리 교사이시다. 갖은 지식에 속지 마라. 새로운 것을 듣는 것 외에 시간을 쓰지 않던 그리스인들처럼 되지 말라. 우리가 아는 것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충분히 신학함을 실천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