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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의 물

창세기 1장에서 물은 지금 우리가 아는 물이라기보다 원물질로서 혼돈과 공허로 일렁이는 물이다. 이 물로부터 만물을 질서 지우며 땅과 하늘도 여기서 나온다. 창조기사는 혼돈과 공허를 내용충만, 형식충만으로 만드는 일이다. 이 창조의 정점에 에덴 동산이 있는데 이는 교회가 만물을 충만케 하는 곧 만물을 다스리는 대리인으로서 교회를 염두에 두고 있다.

창세기 기사는 이 창조력과 창조를 허무는 혼돈의 싸움이다. 1-11장은 이 관점에서 해석해야 한다. 12장의 아브라함의 부르심은 이 창조 질서로서 성전된 교회의 회복의 첫걸음이다.


창세기 1:1-3에서 1절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것으로 봐야 한다. 고대 근동 신화처럼 어떤 원물질이 있고 이것을 가지고 세상을 만드는 게 아니다.

1절의 창조는 혼돈으로서 세상을 여신 사건이다. 그러면 자연히 2절의 혼돈과 공허로서 물은 창조물의 일부로 이해하게 된다.

이런 혼돈으로서 세상의 개념은 주자학에서는 태허에 해당한다. 송도 삼절 중 1인인 화담 서경덕은 "태허가 움직여 양을 낳고 조용히 하여 음을 낳는다."고 해설했다. 양은 토후의 반대개념이며 음은 보후의 반대개념이다. 화담의 [태허설]에 의하면 "태허는 비어 있으나 비어 있지 않다. 태허는 곧 기이다. 태허는 끝이 없고 기 또한 끝이 없다."라고 한다.

이 비어있음이 태초의 토후이며 태허로부터 산출되는 양이(음양)가 혼돈과 공허인 셈이다. 이 토후와 보후에 질서를 부여하심이 하나님의 창조며 따라서 창조는 혼돈과 공허를 포함하는 개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