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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현대교회사

복음주의 신학

복음주의 신학
정지영 간사 IVP 
*복음주의 DNA: 종교개혁(개신교)+대각성(청교도+경건주의)
*복음주의 특징: 1)성경주의 2)십자가중심주의 3)회심주의 4)행동주의 + 5) 초교파주의
*국가별 복음주의 정의
영국 복음주의: 종교개혁(성공회)+대각성(청교도+경건주의+감리교+케직)를 DNA로 가지고 있으며, 18C 이후 영국 전역(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에 침투한 신학적/사회적 자유주의를 성공회의 예전(고교회파)과 청교도 신학, 감리교의 열정, 경건주의의 영성을 근거로 저항하면서 분열과 연합을 통해 성장하고 있는 개신교 신학 운동.
미국 복음주의: 종교개혁(개신교)+대각성(청교도+경건주의+오순절)를 DNA로 가지고 있으며, 18,19C 신학적/사회적 자유주의에 저항하면서 반지성주의, 반문화주의, 분파주의로 쪼그라든 근본주의를 (구 프린스턴의 신학, 대각성의 영성을 통해) 극복하려 했고, 정통주의 회복과 전향을 모색하고 있는 개신교 신학 운동. *종교개혁이 일어난 유럽과 시간, 공간 차가 있고, 맥락과 정황도 사뭇 다름을 기억해야 함.
한국 복음주의: 미국 복음주의+평양대부흥을 DNA로 가지고 있음. 제국주의와 함께 2,3차 대각성의 지대한 영향을 받은 미국 선교사들을 통해 이식받은 복음주의 정신과 대각성적 경건이 자유주의자와의 전투 과정에서 교리·교파 중심적으로 축소 이해되어 (미국식) 근본주의화, 공산주의와의 싸움으로 반공주의화와 자본주의화, 친미화되었다가 1980년 중후반 이후 복음의 공공성을 발견하고(87년형 복음주의) 좌충우돌하고 있는(탈복음주의) 개신교 신학 운동. *김교신 등의 자생적 신학도 주목해야 함!
*연대별 주요 이슈
5-60년대: 한국 교회 분열. 기장/예장(53), 승동/연동(59), 합동(60)/환원(63), 파라처치 등장
70년대: 산업화/도시화. 폭발적 교회 성장과 대형 교회 등장. 종교 생활 강조, 양질의 외국 설교 자료 유입, 제자훈련, 파라처치와 교회의 갈등 그리고 봉합
80년대: 민주화/소비주의. 사회적 양심 각성(세계관, 학문, 문화 사역). 하나님나라신학, 학생선교단체 전성기, 세계복음화
90년대: 성장과 위기. 내면세계(가정/자아)와 영성(성령, 찬양)으로 중심 이동. 세속 이론(리더십, 마케팅) 교회 유입, 신앙 내용의 변질 또는 연성화(?) 시작
2천년대: 혼란기. 가톨릭 영성 개신교회 내 확산, 물질(번영)과 초월(성령) 추구라는 극단적 현상.
*주요 연표
1948 SFC
1953 생명의말씀사(TEAM)
1956 IVF
1958 순복음교회, CCC, JOY
1961 YFC
1962 UBF
1972 SU(선교단체들의 뿌려놓은 성경에 대한 관심 위에 성장)
1973 ACTS, 빌리 그래이엄 여의도집회
1974 엑스플로74(CCC가 한국 교회에 주도권을 잡음, 선교회 출신들 교회 유입)
1974 홍성사(일반 학문 책 출간)
1977 민족복음화대성회
1975 남서울교회, CLC
1978 사랑의교회, IVP(지성 복음화를 위한 문서사역)
1980 세계복음화대성회
1980 온누리교회, 두란노서원(하용조)
1981 기독교대학설립동역회, 창조과학회
1983<죄 많은 이 세상으로 충분한가>
1987 복음주의청년학생연합(공명선거),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기독교학문연구소
1988 선교한국, 도서출판라브리(박삼영)
1989 학원복음화협의회, 경실련, 낮은울타리(신앙언), 대장간(박기삼-풀무농업고, 김교신,내촌간삼 영향)
1990 한국라브리(성인경)
1991 두레시대(김진홍-쉐퍼 계열과 엘륄 책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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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흐름과 출판
1. 복음주의 준비기(50~60년대) 
40년대와 50년대 중후반 자생적으로 그리고 영미 복음주의 선교단체의 영향 아래 복음주의 학생단체들(SFC 1948, IVF 1956년, CCC, JOY 1958, UBF 1961)이 한국 교회에 등장했다. 그러나 한국 교회 신앙에 지대한 영향을 준 미국에서 치러진 자유주의와의 전투를 지켜보며 (전투적) 교리 중심적, 교파 중심적, 반문화주의적, 반지성주의적으로 경직되기 시작한 주요 교단과 지도자에게 복음주의 학생운동은 신앙 정통성에 있어 회색주의 신학이었던 ‘신복음주의’라는 의심을 받았다.
그러면서도 뜨거운 구령 의식과 경건생활, 체계적 성경공부와 제자 훈련, 밀도 높은 친교와 유기적 조직체 등 전형적인 복음주의 특징을 발휘하며 한국 교회에 점차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복음주의 운동은 경건주의, 영적대각성의 영향으로 일어난 학생자원운동적 성격, 즉 그리스도 중심의 복음과 그에 따른 경건한 삶과 선교에 헌신하는 근본적인 신앙 그 이상의 것은 아니었다(오히려 이 점은 교단 지도자들에게 건전하고 매력적으로 보였고, 이는 교단 지도자들의 간접적인 지원을 낳는 원인이 되었다).
1890년 조선예수교서회로 시작한 대한기독교서회가 40년대를 지나며 진보적인 출판사로 전향하자 보수적인 교회 독자들은 크고 작은 개인 출판사를 통해 영적 갈증을 채우다가 1953년 복음주의연맹선교회(TEAM, The Evangelical Alliance Mission)의 갈필도가 설립한 생명의말씀사가 출간한 보수적이고 경건주의 중심의 책들을 소비하면서 갈증의 해소했다(처음엔 스칸디나비아연맹선교회(SAM, Scandinavian Alliance Mission)라는 명칭으로 북미 복음주의자들이 중심이 되어 세계 선교를 목적으로 1890년 설립되었다가 1948년 ‘복음주의연맹선교회’로 명칭을 바꾸었다. 1953년 가필드(W. R. Garfield), 왓슨(T. Watson) 두 선교사가 1953년 생명의말씀사를, 1954년 지금의 극동방송인 복음방송을 세워 문서, 방송뿐 아니라, 고아원 같은 사회사업으로 복음을 전했다).
2. 복음주의 발아기(70년대)
70년대 중반 문서 운동을 통한 ‘지성 사회 복음화’라는 새로운 전략을 세운 IVF와 개혁주의 신학의 영향으로 기독교적 지성을 강조해 온 SFC는 그리스도인의 문화 사명과 교회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인식을 진지하게 했다. 그 중심에 손봉호라는 인물이 있다. 유학생활을 통해 IVF 같은 복음주의 학생운동의 신학적 정통성과 역동성을 목격한 고신 출신의 손봉호는 구 프린스턴 신학을 계승한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와 영역주권을 주창한 아브라함 카이퍼가 세운 네덜란드 자유대학교에서 각각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1973년 귀국한 후 설교와 강연, 글을 통해 젊은 기독 지성인들에게 깊은 영향력을 행사했고, 이들을 자극했다. 1979년 지성적이면서도 감화력 있는 그의 강연과 글이<현대정신과 기독교적 지성>(성광)으로 출간되면서 교파, 교회 중심적이고, 사회문제를 간과했던 한국 교회 신앙을 극복하고 복음의 지향점을 사회, 문화, 정치 영역으로까지 확대시켰다. 물론 여기에는 아브라함 카이퍼의<칼빈주의>(세종문화사, 1971)와 카이퍼의 신학을 대중적으로 해설한 헨리 반틸의<칼빈주의 문화관>(성암, 1973), 헨리 미터의<칼빈주의 기본사상>(개혁주의실행협회, 1975)이 국내에 일찍 소개된 것이 큰 역할을 했다. 70년대 초 TEAM이 세운 생명의말씀사에 의해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프랜시스 쉐퍼의 책들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서양 지성사를 기독교적 관점에 근거해 비판하면서 기독교의 합리성을 문화적으로 변증한 책인 그의 책들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개혁주의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이와 동시에 70년대 교단 신학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던 복음주의자들은 진보와 보수 신학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기에 보수주의에서는 철저히 금기시되었던 칼 바르트, 디트리히 본회퍼, 라인홀드/리처드 니버 같은 이들의 사상을 조심스레 탐험하기 시작했고, 구스타포 구띠에레즈의 해방신학, 함석헌의 씨 사상과 김재준의 역사참여 신학, 안병무와 문익환의 민중신학 사이에서 교회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고민을 서서히 시작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이는 이후 복음주의 학생들이 교회의 사회적 책임과 참여 의식, 저항 의식에 대해 고민하며 진취적 의식을 갖게 만든 무시하지 못할 지적인 자극이었다. 이것은 복음주의운동이 교단 신학에 비해 훨씬 자유로운 초교파적 운동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87년 이후 복음주의 운동의 전개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3. 복음주의 개화기(80~90년대 초중반) 
1980년대 초 일어난 광주민주화운동은 복음주의자들에게 철저한 현실 인식과 기독교적 양심을 일깨웠다. 그러나 70년대 운동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이념적으로 더욱 과격해진 마르크스주의적 세계관을 갖고 있는 운동권에 동참할 수도 없었던 당시 상황에서 복음주의 학생들의 정체성과 운동 방향에 대한 고민은 더 깊어지기만 했다. 80년대 초반 몇몇 작은 연구 모임에서 시작해 중후반 폭발적으로 전개된 ‘기독교세계관운동’은 복음주의적인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곧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복음주의운동을 이끌어 갈 것인가’에 대한 답을 얻으려는 몸부림의 결과였다.주1) 이런 노력은 그들로 하여금 1974년에 열린 로잔언약을 발견하게 만들었다. 로잔언약은 1세대 복음주의자들에게 복음이 매우 정치적인 사건이고 개인과 구조적인 문제를 모두 포괄하는 것이므로 통전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7,80년대를 지나면서 가졌던 자신들의 고민이 올바른 것이었음을 확증해 주었다. 
80년대 학생운동의 격랑 속에서 많은 복음주의자들, 심지어 이현주 목사 같은 비복음주의자들도 쉐퍼의 책이라면 닥치는 대로 읽었고(신망애 판 에디스 쉐퍼의<작은 공동체 라브리>역자 후기 참조), 당시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 참여 의식을 대변하는 기독교 세계관이 얼마나 관심이 높았는가는 순복음교회 계열의 서울서적에서 ‘크리스찬 윤리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크리스토퍼 라이트, 알란 스토키, 올리버 오도노반, 그레그 포스터 등이 인권, 구약 윤리, 결혼과 가족, 낙태, 사회 구조와 책임 등을 다룬 문고판을 냈다는 사실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2세대 복음주의자들에게 로잔언약은 그것 이상이었다. 한마디로 한국 복음주의자들이 가야 할 길이었다. 로잔언약을 설파하고, 그와 관련한 문서를 소비하고, 그와 직간접적으로 관련한 인물들의 생각을 우리식으로 재생산하는 것이 그들의 지상목표로 보일 만큼 그들과 그들이 속한 단체는 이 언약을 소개하는 데 주력했다. 
존 스토트의<현대사회문제와 기독교적 답변>(기독교문서선교회), 찰스 말릭의<대학의 위기>(ESF), 프레드 캐서우드의<산업 사회와 그리스도인>(총신대학), 하비 칸의<복음전도와 사회참여>(엠마오), 리처드 마우의<정치 전도>(나비, 사실 이 책은<기독교와 정치>라는 제목으로 1975년 기독교서회에서 출간된 적이 있다.), 로버트 웨버의<기독교 문화관>, 아더 홈즈의<기독교 세계관>(이상 엠마오), 하워드 스나이더의<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그리스도 공동체>, 칼 헨리의<신, 계시, 권위>(이상 생명의말씀사), 톰 사인의<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제자도>, 월드런 스코트의<사회정의와 세계선교를 향한 제자도>(이상 두란노), 로날드 사이더의<기아와 빈곤으로부터의 해방>(보이스), 폴 마샬의<기독교 세계관과 정치>(IVP), 르네 빠디야의<통전적 선교>(나눔사), 올란도 코스타스의<성문 밖의 그리스도>(한국신학연구소) 등이 당시 출간됐고, 이 책들의 저자들은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문서 속에 서로 인용되었다.
4. 복음주의 혼란기(90년대 후반 이후)
80년대 기독교 세계관의 기초에는 하나님 나라 신학이 굳건히 자리잡고 있다. 게할더스 보스, 헤르만 리덜보스, 조리 래드에 이르기까지 기존의 교회와 개인 구원론 중심의 복음을 하나님과 복음을 중심으로 통전적으로 이해하는 신학적 근거가 된 하나님나라신학은, 90년대 초반까지 구속사라는 이름으로 S. D. 그라프의<약속과 구원>(백합출판사), 윌리엄 반 게메렌의<구원 계시의 발전사>(ESP), 잭 스코트의<구원 사역>(나침반) 등으로 대중화되었고, 김홍전, 최낙재, 윤종하라는 토종 신학자들을 통해 널리 설파돼, 복음주의권의 필독서가 됐다(위의 저자 대부분이 직간접으로 구 프린스턴 신학 전통과 관계가 있다.<약속과 구원>의 경우, 영어번역자 에반스 러너는 카이퍼의 영역주권을 북미에 소개한 대표적 인물이자 ICS 설립자이기도 하다.) 
8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 복음주의 지성운동을 견인하고 이로부터 탄력을 받으며 폭발적인 성장을 보이던 출판은 90년대 두란노서원의 변신으로 전환기를 맞는다. 존 스토트의 영향을 받아 현대 문화에 의욕적으로 관심을 보이던 두란노서원은 헨리 나우웬 같은 가톨릭 영성가의 책을 번역 보급하며 복음주의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지만, 당시 미국 중산층 복음을 확대, 재생한하는 보수주의 교회의 상담, 치유, 가정사역, 자아상 같은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을 연결하는 책들을 적극 수입하고, 설교와 강연을 통해 효과적으로 보급함으로써 복음주의의 내면화 내지는 연성화를 주도했다.
*최근 복음주의 출판계, 작가들의 지형도
복음주의 작가들의 지형도, 계보를 대충이라도 그리는 일은 쉽지 않다. 신학적, 역사적, 문화적 접근과 이해를 다차원적으로 요구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지면의 한계상 이 글은 최근 전환기를 맞고 있는 복음주의 출판계의 기상도를 대략적으로 기술해 독자들의 자신의 독서가 어느 진영에 친숙한지를 깨닫고 이를 통해 균형 잡힌 독서로 발돋움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는 데 만족하고자 한다. 이 주제와 관련해 좀더 깊이 있는 개관과 분석을 원하는 이들에게 부르스 다마레스트의 [영혼을 생기나게 하는 영성]과 로버트 웨버의 [복음주의의 뿌리]와 [젊은 복음주의자가 온다]를 추천한다.
최근 한국 복음주의에 여전히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영미 복음주의는 구파와 신파의 영역 싸움이 한창이다. 먼저 오래된 복음주의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구파는 지성, 그러니까 신앙에서 지성과 이성을 강조하며 교리, 신학, 신앙고백, 부흥, 설교의 수위성을 중요시한다. 이 범주에 포함되는 작가들은 신학적으로 칼빈주의와 청교도 신앙을 지향점으로 삼고 있다. 칼빈, 어거스틴, 청교도들, 조나단 에드워즈 등을 원류로 해 로이드 존스, R. C. 스프라울, 존 맥아더 등을 가장 표준적인 인물로 삼고 있다(제임스 패커, 존 스토트, 프란시스 쉐퍼, 찰스 콜슨 등은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 진영에 속한다). 
이들의 유산을 이어받아 최근 활약하고 있는 작가들로는 알버트 몰러, D. A. 카슨, 존 파이퍼, 데이비드 웰즈, 마이클 호튼, 낸시 피어시, 등이 있다. [예스 데이팅]의 조슈아 해리스, 콜린 한센, 케빈 드영, 그리고 논쟁 여지가 있지만 마크 드리스콜 등이 이 유산을 신세대들에 맞게 해석하는 새로운 작가들이다. 교리에 대한 분명한 이해와 신학적 선명성에 방점을 둔다고 해서 이들을 신앙고백적 복음주의라고 부른다. 국내에는 김남준, 김서택, 백금산, 멀리로는 김홍전 등을 여기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출판사로는 부흥과개혁사, 지평서원. 그책사, 흑곰북스, 그책사 등). 이 운동은 최근 마크 드리스콜, 릭 워렌 등 대중적인 인물들을 포섭하며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새로운 복음주의 진영의 성경적(정확히는 교리적) 취약성과 문화적 타협성을 강도 높게 비판한 케빈 드영의 최신간의 제목,<우리가 거의 잊고 있던 복음>은 이 진영의 지향점을 잘 요약하고 있다. 그러나 새 것이 언제나 좋다는 생각은 신화이며 검증되지 않은 새것에 열광하기보다 검증된 고전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이렇게 말한 이가 신구 세대를 막론하고 깊은 사랑을 받고 있는 C. S. 루이스였음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에 반해 포스트모더니즘의 성찰에 힘입어 이성에 과도한 믿음을 두었던 현대화된 기독교의 모습을 자성하고 모더니즘의 사유방식에 함몰되어 날 것으로서의 진리가 갖는 길들여지지 않는 야성, 신비를 잃어버린 구파의 복음 이해에 의문을 제기하며 “떠오르고 있는” 진영이 신파, 바로 새로운 복음주의다. 이들은 머리와 가슴이라고 주장하지만 언제나 머리에 우선권을 둔 구파의 행태를 비판하며 진리는 가슴과 머리라고 교정한다. 
스탠리 그렌즈, 로저 올슨, 존 프랑케 등이 이 진영의 신학자군으로 토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 운동의 대중적 인사는 누가 뭐래도 브라이언 맥라렌이다. 이머징 처치의 선구자이기도 한 맥라렌은 자신의 사상적 스승으로 레슬리 뉴비긴과 톰 라이트를 꼽는다. 선교의 주체에서 대상이 된 서구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으로 나타난 인식론적 전환과 기독교 기원과 발전에 대한 진지한 탐구가 신학적 활력소를 제공한 것이다. 이 진영은 거대담론보다는 일상의 소중함을, 사용자 친화적인 시장 중심의 교회론에서 선교적 교회론으로, 프로그램 중심의 예배에서 예전 중심의 예배로 전환하며 실천과 사회참여 중심적인 복음을 강조한다. 
마이클 프로스트, 알란 허쉬, 스캇 맥나이트, 쉐인 클레어본, 조나단 하트그레이브 등도 여기에 속하는 작가다. 하지만 이 진영의 가장 대중적인 작가는<재즈처럼 하나님은>의 도널드 밀러다. 그를 중심으로 때아닌(?) 지옥론으로 이슈가 된 랍 벨,<오두막>의 윌리엄 폴 영,<거침없이 하나님>의 짐 팔머 등이 포진하고 있다. 이 진영은 신학적으로 신비주의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는데 이는 신비주의가 교리, 신학을 강조하는 구파의 신학적 대척점에 있기에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달라스 윌라드, 리처드 포스터, 유진 피터슨 등 레노바레 영성 운동이 최근 몇 년 간 복음주의 출판에 큰 흐름을 형성했던 이유가 바로 기독교 신비주의 신학과 영성에 잇대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새로운 복음주의자들이 교리와 신학을 언제나 폄하하는 것만은 아니다 영성과 지성, 성령의 삼각구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현대 복음주의 지성 달라스 윌라드와 J. P. 모어랜드가 좋은 예다.
그 외에도 존 하워드 요더, 자끄 엘륄, 하워드 스나이더, 로날드 사이더, 르네 빠딜라, 토니 캄폴로, 짐 월리스, 파커 파머 등의 급진적 복음주의 신학자 작가들은 그동안 복음주의 운동의 브레인 역할을 감당해왔던 개혁주의와는 또다른 신학 지평을 선보임으로써 복음주의 신학과 영성에 신선한 자극을 주고 다양한 실천의 장소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들의 사상은 스탠리 하우어워스, 로드니 클랩, 쉐인 클레어본 등을 통해 복음주의에 정교화되고 실천적인 영역에서 전수되고 있다.
구파와 신파 모두를 아우르는 통전적 복음주의자 그룹의 활동도 여전히 역동적이다. 한 세대 전에 제임스 패커, 존 스토트, 프란시스 쉐퍼, 찰스 콜슨이 했던 역할은 이제는 알리스터 맥그라스, 크리스토퍼 라이트, 팀 체스터 등의 새로운 리더십 아래 전파되고 있다. 또한 토마스 머튼, 헨리 나우웬, 장 바니에, 도로시 데이, 브레넌 메닝 등의 가톨릭 영성과 알렉산더 슈머만, 안토니 블럼의 동방정교회 영성, 복음주의자의 카테고리 안에 쉽게 포함하기 어려운 웬델 베리, 앤 라모트, 애니 딜라드, C. S. 루이스 등 문학적 상상력으로 충만해 있는 전문 작가들의 생태적, 실존적, 일상적, 지성적으로 잘 정비된 영성이 척박한 복음주의 영성에 중요한 지표를 제공했고 앞으로 더욱 그럴 것이다.
무엇보다 개혁주의 세계관과 레슬리 뉴비긴의 교회론을 결합시킨 마이클 고힌이나 개혁주의 신학에 밀접하게 관계해 있으면서 비평적 성서 연구 방법론을 적극 도입해 기독교의 기원을 둘러싼 역사적, 신학적 문제들에 깊이 몰두해 있는 톰 라이트, 신앙고백적 복음주의자이면서도 이머징 처치 운동에 가담해 도시 사역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 티모시 켈러, 아브라함 카이퍼와 존 하워드 요더의 문화관을 접목하는 데 삶을 헌신해 온 리처드 마우 같은 이들은 복음주의 미래가 어떠해야 함을 생각해보게 하는 진지한 모델로 복음주의 안에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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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86년 김세진, 이재호, 이동수 등의 분신자살, 서울대 기독인 모임의 집회와 총학생회 집회 간의 충돌 등을 계기로 기독교문화연구가 탄생했다. 기문연 초기 구성원들은 SFC 출신으로 개혁주의 문화관과 기독교 세계관 등을 공부한 최은석과 이덕준, 대학촌교회 박문재 전도사의 주도로 밥 하웃즈바르트의<자본주의와 진보사상>,<현대 우상 이데올로기>(이상 IVP), 대천덕 신부의<토지와 자유>(무실) 등을 읽으면서 한국 사회를 기독교적으로 분석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는 우리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는 판단을 한 후 모임 성격을 사회과학 세미나로 확장했으며 우리 현실을 분석하는 데는 마르크스주의가 유용하다고 판단해 방법론적으로 마르크스주의를 차용하기까지 이르렀다. 또한 봉천5동의 빈민촌에 세운 기초 공동체 등을 미뤄볼 때 당시 마르크스주의적 사회과학서의 일환으로 해방신학 관련 책을 냈던 일월서적 등 일반 사회과학책까지 섭렵했다. 
이와는 정반대로 청교도 개혁주의의 정통을 지킨다는 일부 보수 복음주의에서는 바르트와 본회퍼의 고백교회 신학을 신전통주의라는 명분으로 배척하고, 해방신학, 민중신학 등을 사회복음이라는 이름으로 배격하며 지속적으로 마르크스주의를 경계하는 영미 복음주의자들의 책들(이종윤 목사가 번역한 클라우스 보크뮤엘의<마르크스주의의 도전>, 전호진 교수가 번역한 엔드류 커크의<해방신학>, 김재영 목사가 번역한 미국 재건주의자 게리 노스의<성경이 주장하는 사회변혁론>등이 대표적이다)을 출간했는데, 이는 한국전쟁 이후 반공 정신과 레드컴플렉스 DNA를 갖게 된 한국교회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이는 로버트 웨버와 니콜라스 월터스토프가 자신들의 책에서 이미 해방신학을 기독교의 변혁적 모델로 삼은 것과 비교해 볼 때 그리고, 일제강점기 이후 잃어버린 한국교회의 사회주의적 전통의 한 단면을 여실히 보여 준다는 점에서 매우 안타까운 대목이다. (이점에서 쉐퍼는 기독교 문화관에 있어 개혁주의자인 반틸에 의해 철저히 비판을 받으면서도 칼 바르트를 신정통주의라 평가함으로써 분별력 있는 개혁주의 인물로 존재감을 확보한 반면, 쉐퍼의 문화신학에 결코 만족하지 못한 급진적인 복음주의자들은 칼빈과 마르크스주의, 바르트를 온전히 통합하면서 네덜란드 개혁주의와는 다른 변혁적 신학을 제시하고 그러한 삶을 몸소 보여 준 프랑스 사회학자 자끄 엘륄을 새로운 대안적 인물로 주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