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협의회(WCC)와 종교다원주의: 1990년의 바르 선언문(Baar Statement)을 중심으로
황대우 목사
고신대학교와 동대학원 졸업(M.A. M.Div. Th.M.)
네덜란드 기독개혁신학대학 졸업
(Theologische Universiteit van de Christelijke Gereformeerde Kerken in Apeldoorn) (Th.D.)
학위논문 : "Het mystieke lichaam van Christus.
De eccelesiologie van Mertin Bucer en Johannes
Calvijn"(Theologische Universiteit te Apeldoorn. 2002) -
『그리스도의 신비한 몸: 마르틴 부써와 존 칼빈의 교회론』
(아뻘도른 소재 신학대학교, 2002년)
현 진주북부교회 부목사, 부산외국어대학교 겸임교수
이논문은
지난 2010년 4월 3일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의 주최로 개최된 정기학술논문발표회에서 발표되었다.
고신대학교와 동대학원 졸업(M.A. M.Div. Th.M.)
네덜란드 기독개혁신학대학 졸업
(Theologische Universiteit van de Christelijke Gereformeerde Kerken in Apeldoorn) (Th.D.)
학위논문 : "Het mystieke lichaam van Christus.
De eccelesiologie van Mertin Bucer en Johannes
Calvijn"(Theologische Universiteit te Apeldoorn. 2002) -
『그리스도의 신비한 몸: 마르틴 부써와 존 칼빈의 교회론』
(아뻘도른 소재 신학대학교, 2002년)
현 진주북부교회 부목사, 부산외국어대학교 겸임교수
이논문은
지난 2010년 4월 3일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의 주최로 개최된 정기학술논문발표회에서 발표되었다.
서론
지금 한국교회는 2013년 부산에서 유치될 세계교회협의회 총회와 관련하여 보수주의 진영과 진보주의 진영 간의 상호 이견(異見)으로 인해 큰 갈등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그 갈등의 핵심에는 세계교회협의회가 종교다원주의를 지향하는 단체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가 놓여 있다. 오늘날 종교다원주의는 큰 장점을 가지고 있다. 김정우는 한국 상황에서 종교다원주의의 매력을 일곱 가지로 제시하는데, 그것은 특정 종교를 선택하고 거기에 억매이지 않아도 된다는 점, 종교 간의 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는 점, 타종교와의 대화와 협력을 추구할 수 있다는 점, 한국의 전통문화와 종교의 가치에 대한 자긍심을 높인다는 점, 다수를 차지하는 불신자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놓았다는 점, 조상의 구원문제를 해결해 준다는 점, 다원적인 시대 흐름에 부응한다는 점 등이다.1) 하지만 대다수의 한국교회와 교인들은 종교다원주의를 지지하기 보다는 오히려 거부하고 배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기독교 가운데 다수 교단들(major groups)은 세계교회협의회가 종교다원주의를 지향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세계교회협의회를 지지하는 반면에 몇몇 소수 교단들(minor groups)은 다수 교파와 정반대의 판단으로 인해 격렬하게 그것을 반대한다. 이런 시점에서 과연 세계교회협의회가 공적인 문서를 통해 종교다원주의를 지지 하는가 그렇지 않는가를 살펴보는 일은 시급하고 필수적이다.
본 논고는 세계교회협의회가 종교다원주의적인가? 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하지만 세계교회협의회가 종교다원주의적인 성향을 언제부터 보였으며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역사적으로 고찰하기 위해 작성된 것이 아니다. 또한 세계교회협의회와 깊이 연관된 인물들 가운데 종교다원주의를 지지하는 학자들의 개인적인 견해들은 한글로 작성된 여러 논문과 책에서 이미 비교적 상세하게 다루었기 때문에 이 논문에서는 다루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만일 세계교회협의회가 종교다원주의를 공적으로 지지하는지의 여부를 살피는데 주력할 것이다. 필자는 세계교회협의회와 종교다원주의의 관계를 논할 때 가장 중요한 문서가 1990년에 작성된 바르 선언문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에, 바르 선언문의 내용이 정말 종교다원주의 입장인지, 만일 그렇다면 어느 정도로 종교다원주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인지 분석할 것이다. 이를 위해 본 논고는 먼저 세계교회협의회의 역사를 간략하게 살필 것이다. 그리고 종교다원주의가 무엇인지 그 내용과 분류를 간단하게 논한 다음, 이 논문의 핵심부분인 바르 선언문을 상세하게 분석함으로써 세계교회협의회가 종교다원주의에 대한 입장에 서 있는 것이 확실한지,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어떤 종류의 종교다원주의인지 밝힐 것이다.2)
세계교회협의회의 역사
세계교회협의회(WCC: World Council of Churches)라는 명칭은 스톡홀름(Stockholm)과 로잔(Lausanne) 회의 이래로 진행되어 온 에큐메니칼 협력사업을 검토하고 미래의 정책 및 에큐메니칼 운동의 조직과 사업에 관련한 권고문을 만들어 옥스퍼드(Oxford) 및 에든버러(Edinburgh) 협의회에 제출하기 위해 1937년 7월 8-10일간 영국 런던(London)의 웨스트필드 대학(Westfield College)에서 35명의 위원들이 모였을 때, 교회연합을 위한 새 기구의 이름을 논하는 자리에서 회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피써르 엇 호우프트(W. A. Visser 't Hooft)가 제안했던 것이다.3)
세계교회협의회는 1910년 6월 14일부터 23일까지 에든버러에서 전 세계 159개 선교단체에서 1215명의 대표가 참가하여 개최된 세계선교대회(WMC: World Missionary Conference)4) 이후, 1919년 1월 10일에 에큐메니칼 총대주교구인 콘스탄티노플교회 성노회(Holy Synod of the Church of Constantinople)가 세계교회의 연합을 제안하고 나단 죄더블롬(Nathan Söderblom)이 1919년 4월에 에큐메니칼교회협의회(Ecumenical Council of Churches)를 만들자고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이 발단이 되어 삶과 사역을 위한 만국기독교협의회(Universal Christian Council for Life and Work)가 1925년 스톡홀름에서 개최되었고 1937년에는 옥스퍼드에서 개최되었으며 또한 1차 신앙과 직제 세계협의회(World Council on Faith and Order)가 1927년 로잔에서 개최되었고 2차는 1937년에 에든버러에서 개최되었다.5) 이 두 개의 세계적인 교회연합모임은 1938년에 네덜란드의 위트레흐트(Utrecht)에서 결합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이런 과정을 거처 드디어 1948년 8월 22일에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Amsterdam)에서 44개국 147개 교회의 대표들이 참가한 제 1차 세계교회협의회 총회가 개최되었다.6) “신앙과 직제 세계대회의 계속위원회는 1948년 8월 21일 암스테르담에서 최종 모임을 갖고, WCC 산하 신앙과 직제위원회의 헌장을 작성하였으니, 이는 WCC 중앙위원회에 의해서 채택되었다. 1937년 임명된 계속위원회의 구성원들은 WCC 산하 신앙과 직제위원회의 회원들이 되었다.”7) 암스테르담에서의 1차 총회 이후 2차 총회는 1954년에 미국의 에반스턴(Evanston)에서, 3차 총회는 1961년에 인도의 뉴델리(New Delhi)에서, 4차 총회는 1968년 스웨덴의 웁살라(Uppsala)에서, 5차 총회는 1975년 케냐의 나이로비(Nairobi)에서, 6차 총회는 1983년 캐나다의 밴쿠버(Vancouver)에서, 7차 총회는 호주의 캔버라(Canberra)에서, 8차 총회는 짐바부에의 하라레(Harare)에서, 9차 총회는 브라질의 포르토 알레그레(Porto Alegre)에서 각각 개최되었다.8)
세계선교대회(WMC)는 1921년에 국제선교협의회(IMC: 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로 개명된 이후 1958년 가나(Ghana) 대회까지 독립적으로 활동하다가 1961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세계교회협의회에 통합됨으로써9) 명칭에 부합하는 명실상부한 세계교회협의회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이 뉴델리 총회에서 이미 세계교회협의회는 기독교 이외의 타종교를 “산 신앙”(living faith)이라고 표현하면서10) 종교 간의 대화를 모색함으로써 장차 종교다원주의를 지향하게 될 역사를 암시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타종교와의 대화가 공식적인 기구를 통해 진행된 것은 4차 웁살라 총회(1968) 이후 1970년 5월인데, 이 때 세계교회협의회 회장이 레바논의 아잘톤(Ajaltoun)에서 모인 회의에서 대화 프로젝트에 찬성했고, 그 결과 제네바에 그것을 위한 새로운 부서가 만들어지게 되었던 것이다.11) 그래서 5차 나이로비 총회에는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유대교 등 타종교의 대표들이 참관자의 자격으로 참여하게 되었다.12) 6차 밴쿠버 총회에서는 세계교회협의회 역사상 처음으로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지 않는 타종교의 대표자들인 힌두교, 불교, 유태교, 이슬람교, 시크교 등의 지도자들이 공식석상에서 연설을 하는 일이 벌어졌고 총회의 지도자들이 인디안 토템 주상을 세운 사건뿐만 아니라 이교의 예배에 참석하는 사건도 발생했다.13)
이런 모든 일련의 사건들에도 불구하고 세계교회협의회는 나이로비 총회와 밴쿠버 총회까지 종교혼합주의 내지는 종교다원주의를 공식적으로 받아들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웨슬리 아리아라자(S. Wesley Ariarajah)는 바르 선언문을 발표하면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WCC의 나이로비 총회와 밴쿠버 총회 둘 다에서 대화는 쟁점이 되었는데, 그 이유는 일차적으로 다른 신앙들의 신학적 중요성에 관한 대화 속에서 형성된 암묵적인 가정들 때문이다. 예컨대, 밴쿠버에서 총회의 주요 흐름은 이웃의 종교적 삶에 하나님께서 실존하시고 활동하신다는 가능성을 거부했다.”14) 이와 같은 설명이 강력하게 시사하는 바는 바르 선언문이 이 문서 작성 이전까지 타종교에 대해 가지고 있던 세계교회협의회의 기존 공식 입장을 결정적으로 수정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 문제는 바르 선언문을 분석하면서 상세하게 논하게 될 것이다.
종교다원주의
종교 간의 대화를 추구하는 것 자체가 곧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어떤 그리스도인이 개종을 목적으로 타종교인과 대화를 시도한다면 대화는 기독교를 선전하는 전도의 한 방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타종교와의 대화 자체를 종교다원주의로 규정하고 비판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하지만 기독교를 상대화하여 모든 종교를 대등한 것으로 간주하는 입장에서 대화를 시도한다면 이것은 전도를 목적으로 한 대화와는 완전히 다른 성질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이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본 종교다원주의의 전형이다.
기독교가 타종교에 대해 가지는 입장은 다양하다. 엘런 레이스(Alan Race)는 1982년 뉴욕(New York)에서 출판된 자신의 책<그리스도인들과 종교다원주의: 종교들에 대한 기독교 신학의 유형들>(Christians and Religious Pluralism: Patterns in the Christian Theology of Religions)이라는 책에서 타종교에 대한 기독교적인 입장을 크게 세 가지 즉 배타주의(exclusivism)와 포괄주의(inclusivism)와 다원주의(pluralism)로 구분한다.15) 웨인 스트릭랜드(Wayne G. Strickland) 역시 그것을 세 가지, 즉 배타주의와 포괄주의와 상대주의(relativism)로 구분하면서16) 첫 번째로 배타주의란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는 이론인데,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특별계시에 의한 구원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일반계시 즉 내재적 믿음에 의한 구원을 지지하는 사람들로 나누어지며, 두 번째로 포괄주의란 교회 밖의 숨은 신자를 의미하는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는 칼 라너(Karl Rahner)의 표현을 따라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는 것으로 인정하는 이론이고, 마지막 세 번째로 상대주의란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기독교 진리의 절대성을 거부하는 다원주의(pluralism) 혹은 통합적 다원주의와 동일시되는 이론이라고 설명한다.17) 그리고 이런 종교적 다원주의의 형태는 또 다시 종교들 사이의 공통 기반을 중시하는 학자들과 종교 상호 간의 차이점을 중시하는 학자들에 의해 나누어진다.18)
기독교가 타종교와 대화하는 자세는 크게 두 가지, 즉 절대주의인 배타주의와 상대주의인 포괄주의로 구분될 수 있다.19) 배타주의는 기독교만이 참된 종교라고 믿기 때문에 다른 종교는 모두 우상숭배로 간주한다. 포괄주의는 기독교 외에 타종교에도 참된 신앙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배타주의자이든 포괄주의자이든 모두 신은 하나라는 유일신론의 입장에 서 있다. 포괄주의를 좀더 세분한다면 차등 포괄주의(distinctive inclusivism)와 동등 포괄주의(equivalent inclusivism)로 나눌 수 있는데, 차등 포괄주의란 어떤 면으로든 다른 종교보다 기독교가 상대적으로 우월하다는 입장이고 반대로 동등 포괄주의란 다른 모든 종교를 기독교와 본질적으로 다를 것이 전혀 없는 동등한 것으로 간주하는 입장이다. 종교다원주의는 종교적 포괄주의에 속한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적인 다원주의는 역사적으로 차등 포괄주의 입장에서 동등 포괄주의의 입장으로 변천되어왔다고 볼 수 있다.20)
대표적인 기독교 종교다원주의자 힉(John Hick)은 종교 다원성(religious plurality)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간단히 말해서 한 기독교 신자, 유대교 신자, 회교도, 시크교도, 힌두교인, 불교도, 혹은 마르크스주의자, 모택동주의자라는 사실은 거의 항상 그들이 세계의 어느 부분에서 출생하게 되었는가에 달려 있다. 신뢰할 만한 종교 신앙을 소유한 자라면 누구나 이 분명한 사실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신뢰할 만한 기독교 신앙을 가진 자라면, 신이 지역적인 주관자가 아닌 우주적인 주관자(universal sovereignty)이며 한 인종의 아버지가 아니라 전 피조물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점을 깨달아 이상의 사실과 관련시킴으로써 하나의 새로운 의미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신이 전 인류의 창조주이시며, 인류에 대해서 무한한 사랑을 가지고, 기독교인과 그들의 구약 시대의 영적 조상들만을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인간 남녀를 구원하시려고 하는 사실을 믿기 때문이다.21)
이런 진술에서 알 수 있듯이 종교다원주의의 출발점은 모든 종교의 공통분모인 “신”의 개념과 인류의 보편적 구원이라는 개념이다. 힉은 모든 종교 간의 상이성을 신에 대한 그들 각자의 고유한 사유 방식으로 간주함으로써 기독교를 상대화하고 종교의 다양성과 다원성의 근거를 마련하고자 한다. 그래서 그는 “신의 우주적인 구속 역사를 믿는다면, 구원이 오로지 인간 역사의 한 특정한 부분에서 살아온 유대-기독교인에게만 존재한다고는 결코 주장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22) 따라서 그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오늘날 우리들의 대부분은 다른 종교의 이해에 있어서 이상과 같은 코페루니쿠스적 혁명을 필요로 하는 것 같이 보인다. 지금까지의 전통적인 교리는 기독교를 신앙 세계의 중심에다 놓고, 다른 종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주변을 회전하고 있다고 보았으며, 그리고 그 중심에서의 멀고 가까움에 따라 등급을 매기는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인위적인 창적보다는 지금 기독교 중심으로부터 신 중심으로 그 축을 바꾸고 나서 우리 자신의 것과 다른 세계 종교 모두를 똑같은 신의 실재(divine reality) 주위를 회전하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욱 더 실제적이지 않을까? 그러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즉 우리가 신이라고 부르는 존재는 항상 실존해 왔으며 신의 성령(divine Spirit)이 항상 인간의 영을 움직여 왔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칼 야스퍼스(Karl Jaspers)가 축(軸)을 이루는 기간(axial period)으로 정의한 기원전 800년경에서부터 위대한 계시적인 경험들이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발생하게 되었는데, 이 경험들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 종교의 형태로 굳어지면서 서로 다른 영적 생활의 흐름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종교들 안에서 인간 남녀들은 “초월적인 존재”(Transcendent Being)에 응답함으로써 구원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23)
힉의 이러한 종교다원주의는 단지 기독교 진리의 절대성만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종교가 가지고 있는 그들 각각의 고유성조차도 거부하는 것이다. 따라서 힉의 종교다원주의는 기독교를 향하여 “그리스도만을 통한 구원”이라는 그리스도 중심의 진리를 포기하도록 요구한다.24) 즉 힉은 기독교가 그리스도 중심적 패러다임에서 하나님 중심적 패러다임으로 전환되어야 할 것을 요구한다.25)그는 현대 기독교가 타종교에 대한 배타주의 입장에서 차등 포괄주의 입장으로 유의미한 발전을 도모해 왔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여기서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왜냐하면 그의 생에는 차등 포괄주의가 기독교를 모든 종교 가운데 하나로 상대화시키지 못한 상태, 즉 기독교 우월주의의 잔재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미숙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기독교를 과감하게 상대화하여 세상의 모든 종교 가운데 하나일 뿐임을 인정하는 종교다원주의, 즉 종교 상호 간의 동등 포괄주의야 말로 기독교 정신을 가장 종교적으로 반영한 형태이다. 따라서 힉은 기독교가 타종교에 대해 동등 포괄주의의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교회협의회는 과연 타종교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는가? 힉이 말하는 이와 같은 종교다원주의 입장, 즉 동등 포괄주의를 지지하는지의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세계교회협의회의 공식문서 바르 선언문을 분석할 것이다. 이 문서를 통해 세계교회협의회는 자신들이 타종교에 대해 어떤 입장을 지지하는지 매우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바르 선언문
이 선언문을 발표하게 된 배경은 아리아라자가 밝히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나의 이웃인 힌두교도의 기도를 들으시는가?”26)라는 기독교 입장에서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었다. 이 질문에 대해 아리아라자는 지금까지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종교적 전통을 가진 우리의 이웃과 하나님의 삶이, 그리고 하나님을 가지고 있는 그들의 삶이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를 묻는 신학적인 질문들을 무시해왔다”27)고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좀더 심오한 신학적 질문을 제시한다. “하나님의 자기계시는 자연과 모든 인류 역사와 인간 존재 속에서 발생하는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단지 역사의 한 지류에 속한 백성의 특별한 역사적 경험을 통해서만 하나님 자신을 계시하는가?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듣기 시작하기 전에 하나님이 누구인가에 대한 적절한 이해는 중요한가?”28) 나아가 기독교 신앙 자체의 중심부에 놓여 있는, 근본적인 성질에 속한 질문들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제시한다. “하나님의 존전에서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 속에서의 하나님의 구원행위와 모든 역사 속에서의 행위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땅은 주의 것이요 그의 충만이라’는 주장을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느니라’는 요한복음의 구절과 어떻게 조화시키겠는가?”29)
마지막으로 아리아라자는 바르 선언문이 이러한 근본적인 질문들을 깊이 고민하고 격렬하게 토론한 결과물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세계교회협의회의 대화분과(Dialogue sub-unit)는 ‘나의 이웃의 신앙과 나의 신앙-종교를 초월한 대화를 통한 신학적 발견’이라는 4년간의 연구 프로그램을 맡았다. 정교와 개신교와 로마교의 대표자들로 구성된 이 연구의 최고위원들은 이 문제들 가운데 몇몇을 숙고하기 위해 함께 모였다. 한 주간 동안 격렬하게 논쟁한 것들의 핵심은 종교적 다원성의 의미와 기독론과 같은 문제들, 그리고 세상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활동의 이해하는 논점의 문제들과 연관된 것이었다. 다음 자료는 1990년 스위스의 바르, 즉 취리히 근교에서 개최된 이러한 토론모임의 회원들이 만든 선언문이다.”30)
그렇다면 과연 바르 선언문은 종교 간의 효과적인 대화를 위해 위의 질문에 대한 기독교적인 답변이 어떠해야 한다고 가르치는지 살펴보자. 바르 선언문 서문의 첫 문장 주어는 “산 신앙들을 가진 사람들과의 대화”(Dialogue with people of living faiths)이다. 여기서 “산 신앙들”이란 표현은 이미 3차 뉴델리 총회 때 나타났던 것이지만 여기서는 타종교와의 대화를 “교회들 공동의 모험(the common adventure of the churches)”으로 이해했던 1971년도를 언급한다. 그리고 “세계교회협의회의 1975년 나이로비 총회 이후 이 공동의 모험은 일차적으로 ‘사회 속의 대화’로 여겨져 왔다. 이것은 평화와 정의,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와 같은 논점들을 탐구하면서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그들과 함께 살고 있는 이 사회 속에서 다른 신앙을 가진 우리의 이웃과의 대화를 시도하는 것을 의미해왔다. 우리가 반복적으로 발견한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상호 의존적인 세상에서 공동의 문제들을 직면할 경우 마치 우리만이 신앙의 유일한 사람들인 것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명백한 것은 세상의 다양한 종교적 전통들이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지혜와 영감을 제공할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31) 더불어 사는 세상의 문제를 세상 속에 사는 모든 종교인들이 공동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이와 같은 논조에는 거의 아무런 종교다원주의의 색채가 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타종교와의 대화를 위해 이런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결정을 내리게 된 근거로 1979년 자메이카의 킹스톤(Kingston)에서 중앙위원회가 작성한 문서인 대화 안내서(Guidelines on Dialogues)에 나와 있는 문구, 즉 “대화에 돌입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향한 생각과 마음의 문을 열도록 요청한다.”라는 문구를 제시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다른 산 신앙들을 가진 사람들과의 대화는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종교적 전통들의 다양성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묻게 만든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초기부터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만났고 때때로 신학자들은 종교적 다원성의 의미와 씨름해왔다. 현대 에큐메니칼 운동은 가장 이른 초기부터(에든버러 1910) 기독교 메시지와 많은 신앙들의 세계와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수없이 시도해왔다.”32) 이러한 바르 선언문은 타종교의 신앙에 대한 기독교 선교 차원에서 고민했던 1910년의 에든버러 대회조차도 조금 다른 각도, 일종의 종교다원적인 시각에서 해석하고 싶어 한다.
이제 바르 선언문의 본론을 살펴보자. 본론은 먼저 “종교적 다원성에 대한 신학적 이해”(A Theological Understanding of Religious Plurality)라는 제목으로 시작되는데, 여기서 초점은 시종 ‘만물의 창조주 하나님’이다. “종교적 다원성에 대한 우리의 신학적 이해는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 처음부터 만물 속에 현존하시고 활동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더불어 시작된다. 성경은 만국과 만민의 하나님이신 하나님에 대해 증거 하는데,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은 온 인류를 포함한다. 우리는 노아 언약에서 만물과의 언약을 본다. 우리는 그분이 민족들을 그들의 지혜와 이해라는 전통들을 통해 인도하실 때 땅 끝까지 펼쳐진 그분의 지혜와 정의를 본다. 하나님의 영광은 피조물 전체를 관통한다.”33) 이 말은 마치 구원에 대해서는 간접적인 일반계시의 차원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는데, 그 이유는 이 문구에 이어지는 문장이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들 가운데 임재하시고 활동하시는 하나님께 언제 어디서나 응답해 왔으며, 그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난 그 만남에 대해 증언해왔다. 이런 증거를 통해 그들은 구원이나 완전성이나 깨달음이나 신적인 인도나, 안식이나, 자유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발견해왔다고 말한다.”34) 즉 타종교인들은 그들의 신앙을 통해 기독교가 말하는 동일한 하나님을 만났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추구하는 ‘구원’도 역시 발견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 외에 타종교에도 구원의 길이 열려 있다는 종교적 포괄주의의 전형적인 주장이다. 바르 선언문이 지지하는 종교적 다원성을 어떻게 변호하는지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증언을 지극히 진지하게 취급한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나라와 민족들 가운데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임재가 항상 있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스도인들로서 언제나 우리의 증언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경험한 그 구원에 대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능력을 제한할 수는 없다’(CWME, 산 안토니오, 1989).
우리는 종교적 전통들의 다원성을 하나님이 민족들과 국가들과 관계를 맺어온 다양한 방법들의 결과로 볼 뿐만 아니라 또한 인류의 많음과 다양성의 표시로 본다. 우리가 천명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추구와 발견 속에 임재 해 오셨다는 것이요, 또한 그들의 가르침 속에 진리와 지혜가 있고 그들의 삶 속에 사랑과 거룩함이 있는 곳에서, 우리 가운데 발견되는 일종의 지혜와 통찰력과 지식과 이해와 사랑과 거룩함과 같은 것은 성령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천명하는 것은, 우리가 그렇게 하듯이, 그들이 정의와 자유를 위해 싸울 때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신다는 것이다.
만물의 창조주로서 하나님께서 종교들의 다원성[=다양한 종교들] 속에 임재하시고 활동하신다는 확신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활동이 어떤 하나의 대륙이나 문화적 유형, 혹은 민족들의 집단들에 제한될 수 있다는 가능성조차 생각하지 못하도록 한다... “하나님의 영은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방법으로 일하시며 우리가 거의 기대하지 않는 곳에서 일하신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를 시작함에 있어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헤아릴 수 없는 부요함과 하나님께서 인류를 다루시는 방법을 분별하려고 시도한다.” (CWME 선언, 선교와 복음)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기독교적인 신앙은 우리로 하여금 종교적인 다원성의 전 영역을 진지하게 취급하도록 요청한다... 우리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아는 하나님을 다른 신앙을 가진 우리 이웃의 인생 가운데서도 만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개방”을 천명해야 한다. (CWME 보고서, 산 안토니오, 1989, para. 29)35)
바르 선언문은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활동이 어떤 하나의 대륙이나 문화적 유형, 혹은 민족들의 집단들에 제한될 수 있다는 가능성조차 생각하지 못하도록 한다.”고 단언함으로써 종교적 상대주의를 천명하고 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알려진 하나님은 얼마든지 다른 종교의 신앙을 통해서도 알려질 수 있다는 것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이런 주장의 근거는 성경의 하나님이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주의를 표명한 이러한 주장이 차등 포괄주의인지 동등 포괄주의인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바르 선언문의 본론 가운데 두 번째 부분은 “기독론과 종교적 다원성”(Christology And Religious Plurality)의 관계를 다룬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것과는 다른 길과 방법을 따르는 자들 가운데 선함과 진리와 거룩함을 보았고 경험했기 때문에 모든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우주적 창조와 구원 행위에 관한, 그리고 이스라엘 역사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나타난 하나님의 특별한 구원 행위에 관한 대화 안내서(Guidelines on Dialogue)에서 발생되는 질문을 매우 진지하게 다루도록 해야 한다. (para. 23).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우리가 구원을 예수 그리스도께 명백하게 개인적으로 위임된 것에 제한하는 신학을 넘어서야할 필요를 인식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성육신한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 인류의 가족이 취소할 수 없는 끈과 언약으로 하나님과 연합했음을 천명한다. 만물과 인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임재 활동은 그리스도의 사건의 초점이다.
예수의 말과 행위에서, 그분의 설교에서, 그분의 치유와 봉사 사역에서 하나님은 지상에 자신의 통치를, 즉 주권적인 지배를 세우고 계셨는데, 그분의 임재와 능력은 어떤 하나의 사회나 문화에 제한될 수 없다. 자신이 이스라엘의 집 밖에 있는 자들에게 가셨을 때 예수의 자세들은 이러한 우주적 통치를 증거 한다. 그분은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실 때 영과 진리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모든 사람들을 천명하셨다. (요 4: 7-24)...
하지만 지상 사역 동안 예수 안에 나타난 하나님 통치의 구원 능력이 어떤 의미에서는 제한적이었던 것처럼 보이지만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의 사건을 통해, 즉 부활절의 신비 그 자체를 통해 이러한 제한들은 극복되었다. 십자가와 부활이 우리를 위해 계시하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신비의 우주적 차원이다.
이런 구원하는 신비는 하나님의 계획이 그것의 완성을 향해 펼쳐져 있는 것처럼 수많은 그리고 다양한 방법으로 중재되고 표현된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울타리 밖에 있는 자들에게 유용할 수 있는데, (요 10:16) 그들이 자신들의 구체적인 환경 속에서, 그리고 그들을 인도하고 감동시키는 종교적 전통들의 구조 속에서 신실하고 진실한 삶을 살 때 그것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일어난다. 그리스도 사건이 우리에게는 모든 인류 역사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 의지에 대한 가장 분명한 표현이다. (딤전 2:4)36)
여기서 바르 선언문은 기독교의 배타적 구원 교리의 전거인 그리스도의 사역과 십자가, 부활조차도 과감하게 보편화한다. 바르 선언문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이제 더 이상 기독교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의 우주적 구원, 즉 보편구원을 위한 가장 강력한 증거이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을 찾아가신 사건은 바로 이러한 우주적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의지를 보여주는 증거로 설명된다. 바르 선언문에 따르면 그리스도라는 울타리 밖에 있는 자들에게 구원의 길을 마련하신 분은 다름 아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바르 선언문은 이것을 구원의 신비로 정의하고 해석하는데, 그 결과 모든 기독교의 특수성과 독특성, 및 고유성은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이러한 바르 선언문의 종교적 상대주의와 포괄주의, 즉 종교다원주의 색채는 “성령과 종교적 다원성”(The Holy Spirit And Religious Plurality)의 관계를 다루는 본론의 세 번째 부분에서 좀더 분명해진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진 하나님의 보편구원은 지면을 운행하는 보편적인 성령의 역사를 통해 강력하게 증거 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그 동일한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해석자요 성경의 해석자이시라는 것이다. 따라서 바르 선언문은 기독교와 다른 세계 종교는 바로 그와 같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 하나가 될 수 있고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력하게 천명하고 있다.
이 토론모임에서 특별히 우리는 창조하시고 양육하시고 자극하시고 갱신하시고 유지하시기 위해 지면을 운행하셨고 지금도 운행하시는 성령의 위격과 사역에 대한 관심을 가졌다. 우리가 다시 보도록 배웠던 것은 성령의 활동이 우리의 정의들과 기술들과 한계들을 넘어선다는 것이며 “원하는 곳으로 부는 바람”과 같다는 것이다.(요 3:8)...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에 속하는 모든 것은 당연히 성령의 활동의 열매로 인식되고 인정되어야 한다.(갈 5:22-23. 참고. 롬 14:17)
그러므로 우리에게 분명한 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교회 밖에서도 하나님의 사역을 이해하는 것이 정당하고 유익한가?”(para. 23)라는 대화 안내서(1979) 속의 질문에 대해 긍정적인 대답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신 성령께서 살아 있는 신앙들을 가진 민족들의 삶과 전통 속에서 일해 오셨다는 것을 명료하게 천명한다.
나아가 우리는 우리가 아마도 다른 종교들의 진리와 선함을 해석할 수도 있고 혹시 “다른 것들”을 구분할 수도 있는 것은 성령의 영역에 속한다고 천명하는데, 그 결과 우리의 “사랑이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될” 것이다. (빌 1:9-10)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의 해석자이시며 우리 자신이 가진 성경의 해석자이신 성령께서(요 14:26)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믿음의 저장소를 새롭게 이해하도록 우리를 인도하실 것이며 또한 우리가 다른 신앙들을 가진 우리의 이웃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배울 때 신선하고도 뜻밖에 새로운 지혜와 통찰력을 발견하도록 우리를 인도하실 것이라고 천명한다.37)
바르 선언문은 이제 “성령으로 말미암아 교회 밖에서도 하나님의 사역을 이해하는 것이 정당하고 유익”하다고 천명함으로써 아무런 거리낌 없이 종교다원주의 입장을 지지한다. 즉 기독교가 타종교와 대화하는 것은 기독교의 고유한 무엇인가를 포기해야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구원의 신비를 좀더 깊고 풍성하게 누릴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고 바르 선언문은 과감하게 주장한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성령 하나님의 역할이요 역사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바르 선언문은 “상호종교적인 대화: 신학적 관점”(Interreligious Dialogue: A Theological Perspective)이라는 부분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우리가 다른 종교 전통들을 가진 남녀 속에서 구원의 신비를 인식하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상호종교적인 대화를 통해 그들에게 접근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자세를 정해준다.”38) 바르 선언문은 세계교회협의회가 더 이상 기독교 중심의 구원관을 견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과감하게 포기한다고 것을 보여준다.
결론
바르 선언문이 모든 피조물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을 강조하고,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과감히 포기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친히 유대교적 배타성을 타파하심으로써 우주적 구원, 즉 보편적 구원을 실행하신 분으로 묘사하며, 또한 우주의 보편적 영이라는 관점에서만 성령의 역사를 서술하는 것은 종교다원주의자 힉의 사상과 매우 닮았다. 따라서 바르 선언문이 세계교회협의회의 공식문서이며 그와 같은 동등 포괄주의 입장을 수정하거나 철회하지 않는 한 세계교회협의회가 종교다원주의를 강력하게 지지하고 옹호한다는 비판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비록 바르 선언문이 기독교적인 용어로 해설되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분명한 사실은 타종교에 비해 기독교가 우월하다는 입장의 다원주의 즉 차등 포괄주의 입장이 아니라 모든 세계 종교를 동가(同價)의 것으로 보는 동등 포괄주의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이다.
바르 선언문이 해석하는 것처럼 성경은 종교다원주의를 지지하며 그러한 종교다원주의의 길을 여신 분이 그리스도 자신인가? 신약신학자 칼슨(D. A. Carson)은 바르 선언문과 정반대의 결론을 내리면서 오늘을 사는 우리를 향해 강력한 권면을 던지고 있다. “우리는 신약 기자들은 당시의 다원주의와 당시의 우상숭배를 별개의 것으로 보지 않았다고 확실하게 결론 내릴 수 있다. 둘 중 하나가 무너지면 다른 하나도 따라서 무너지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방금 인용한 그 구절들[=엡 4:4-6; 롬 1장; 고전 8장], 그리고 다른 많은 구절들은 초대교회가 (철학적인 근거 하에서) 다원주의의 존재에 대해서 반대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에 대항해서 싸웠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그분의 복음 안에 있는 구원의 배타적인 능력을 강조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자신들의 선포를 듣는 사람들을 이해하면서 그 같은 일을 행했다. 우리도 이러한 견고함과 유연성을 겸비해야 한다.”39)
기독교는 구원 교리에 관한 한 배타적 종교이다. 그리고 그 배타적인 구원 교리를 견고하게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실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분의 지상 사역과 십자가, 그리고 부활은 인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유일성의 근본이기 때문에 기독교를 배타적 종교로 만드는 핵심이다. 하지만 구원에 관한 이러한 기독교의 종교적 배타성이 결코 타종교와의 대화 자체를 불필요한 것으로 만들지 않는다. 구원의 길로서 기독교의 배타성과 유일성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어떤 형태로든 타종교와의 대화는 가능할 뿐만 아니라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그들도 구원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의 참된 계시를 가진 기독교는 타종교나 이단에 비해 상대적 우월성이 아닌 절대적 우월성을 갖고 있으며 기독교의 이러한 절대적 우월성은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선포되고 가르쳐져야 한다. 그러므로 타종교와의 대화는 그것이 일종의 전도 수단 가운데 하나인 한 그 자체가 거부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1) 김정우, “종교다원주의와 제1계명,”<목회와 신학>116(1999), 58-59.
2)2013년 부산에서 개최될 세계교회협의회와 관련하여<목회와 신학>은 지난 해 10월호에 진보주의 진영의 입장에 대해 글을 실었고 2010년 1월에는 보수주의 진영의 입장을 다룬 논문을 게재했는데, 공교롭게도 두 글 모두 바르 선언문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참고. 이형기, “WCC에 대한 오해와 이해,”<목회와 신학>244(2009), 156-165; 양광호,<복음주의 입장에서 본 WCC와 에큐메니칼 운동>, 247(2010), 172-181. 최덕성은 세계교회협의회를 비판하는 자신의 글에서 바르 선언문을 비교적 상세하게 다루었다. 참고. 최덕성,<에큐메니칼 운동과 다원주의>(서울: 본문과현장사이, 2005), 131-154.
3) 비셔트 후프트,<세계교회협의회: 기원과 형성>, 이형기 역(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1993), 71-72. Visser 't Hooft는 네덜란드 사람이므로 ‘비셔트 후프트’가 아니라 ‘피써르 엇 호우프트’라고 읽어야 할 것이다. ‘엇’('t)는 네덜란드 중성 정관사 ‘het’(헤트 = 헷)의 약어이므로 ‘피써르 헷 호우프트’로 읽어도 된다.
4) 박영호,<현대 에큐메니칼운동과 사회선교>(서울: 개혁주의신학사, 2010), 112.
5) 참고. 비셔트 후프트,<세계교회협의회: 기원과 형성>; 이형기,<에큐메니칼 운동사: 세계교회협의회(WCC)가 창립될 때까지>(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4)
6) 비셔트 후프트,<세계교회협의회>, 122.
7) 이형기,<에큐메니칼 운동사>, 176.
8) http://en.wikipidia.org/wiki/World_Council_of_Churches. 세계교회협의회 역대 총회와 동향에 대한 상세한 연구에 대해서는 다음 참조. 박영호,<현대 에큐메니칼 운동과 사회선교>(서울: 개혁주의신학사, 2010), 159-219.
9) 비셔트 후프트,<세계교회협의회>, 101.
10) 이상규, “종교다원주의에 대한 역사적 고찰과 비판,”<고려신학보>제24집(1992), 15.
11) 박영호,<현대 에큐메니칼 운동과 사회선교>, 184.
12) 박영호,<현대 에큐메니칼 운동과 사회선교>, 185.
13) 최덕성,<에큐메니칼 운동과 다원주의>, 150.
14) http://www.moravians.org/NCC&WCC/Baar_WCC_Article.html: “At both the Nairobi (1975) and Vancouver (1983) assemblies of the WCC, dialogue became a controversial point, primarily because of the implicit assumptions made in dialogue about the theological significance of other faiths. At Vancouver, for example, a major stream within the Assembly rejected the possibility of God's presence and activity in the religious life of our neighbours.”
15) 한인철, “종교전통 간의 대화: 유형론적 접근,”<고려신학보>제24집(1992), 31. 이 논문에는 타종교에 대한 기독교 입장의 유형에 대한 다른 학자들의 구분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다. 예를 들면, 파니카(Raimundo Panikkar)의 네 가지 유형론(배타주의, 포괄주의, 평행주의, 다원주의), 다른 종교들에 대한 기독교 입장을 과학의 패러다임의 변천에 유비하여 설명한 힉(John Hick)의 네 가지 역사적 발전 단계설(전적인 배척의 단계, 초기 주전원의 단계, 후기 주전원의 단계,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의 단계), 언어와 경험의 관계성에 기초한 린드백(George A. Lindbeck)의 네 가지 유형론(명제주의, 경험적 표현주의, 두 유형의 결합, 문화-언어적 접근), 트뢸취의 종교다원주의와 바르트의 배타주의 사이의 스펙트럼을 따라 구분한 코워드(Harold Coward)의 세 가지 모델의 접근 이론(그리스도 중심적 접근, 신 중심적 접근, 대화적 접근), 계시와 구원의 입장에서 분석한 니터(Paul F. Knitter)의 네 가지 유형론(보수주의적 복음주의적 모델, 개신교 중심 모델, 가톨릭 모델, 신중심적 모델) 등이다.
16) 웨인 G. 스트릭랜드, “이사야, 요나, 그리고 종교다원주의,”<목회와 신학>116(1999), 70.
17) 하지만 스트릭랜드의 이런 구분과 설명에는 문제가 있다.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는 라너의 표현은 엄밀하게 말하면 기독교 밖의 그리스도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가톨릭 밖의 그리스도인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반은혜에 의해 구원이 가능하다는 주장은 배타주의와 포괄주의의 경계선상에 있기 때문에 배타주의의 한 형태로 분류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뿐만 아니라 포괄주의에는 이미 다원주의 개념이 내포되어 있다.
18) 한인철, “종교전통 간의 대화: 유형론적 접근,” 49-53. 이 글 43페이지에서 저자는 이 두 종류 이외에 일본의 선불교학자 아베(Masao Abe)의 ‘중심 없는 다원주의’도 다원주의의 한 유형으로 언급한다.
19) 참고. 탄 킴 사이, “종교다원시대에 처한 복음주의 신학의 역할과 과제,”<목회와 신학>40(1992), 116: “그리스도를 유일한 주와 구세주로, 그리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을 선포하는 배타주의자들의 신학적 전형과는 반대로, 포괄주의자들의 신학적 전형은 그리스도를 유일한 주와 구세주로서 인정을 하지만, 그러나 구원은 하나님의 신비로운 은혜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들에게도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즉 다원주의자의 범례는 다른 종교에도, 주들 혹은 구세주들을 통하여 각각 구원에 이르는 정당한 길들이 있다고 옹호한다.”
20) 기독교가 본 타종교에 대한 견해의 변천사에 대해서는 다음 책 참조. 전호진,<종교 다원주의와 타종교 선교 전략>(서울: 개혁주의신행협회, 1992), 78-105. 종교다원주의의 역사적 발전에 대해서는 다음 참조. 이상규, “종교다원주의에 대한 비판,”<기독교사상연구>제2호(1995), 24-36.
21) 존 히크(John Hick),<기독교 신앙의 중심>(Christianity at the Centre), 이근홍 역(서울: 전망사, 1983), 192.
22) 존 히크,<기독교 신앙의 중심>, 193.
23) 존 히크,<기독교 신앙의 중심>, 197-198.
24) 참고. 이상규, “종교다원주의에 대한 비판,” 36-41.
25) 참고. 크리스 라이트, “종교다원주의와 그리스도의 유일성,”<목회와 신학>40(1992), 57. 힉은 자신의 다른 저서<하나님은 많은 이름을 갖고 있다>(McMillan, 1980)에서도 기독교가 그리스도 중심이 아닌 하나님 중심의 입장을 견지해야 할 것을 요구한다.
26) http://www.moravians.org/NCC&WCC/Baar_WCC_Article.html: “Is God listening to my Hindu neighbour's prayer?”
27) http://www.moravians.org/NCC&WCC/Baar_WCC_Article.html: “... Christians have ignored theological questions relating to God's life with our neighbours of other religious traditions and their life with God.”
28) http://www.moravians.org/NCC&WCC/Baar_WCC_Article.html: “Does God's self-revelation take place in nature, in all human history, and in human experience? Or does God reveal Godself only through the specific historical experience of a people within one stream of history? Is it important to have an adequate (if any) understanding of who God is, before God begins to listen to our prayers?”
29) http://www.moravians.org/NCC&WCC/Baar_WCC_Article.html: “What is the relationship between God's saving activity in the life, death and resurrection of Christ to God's presence and activity in all history? How does one reconcile the affirmation that "the earth is the Lord's and the fullness thereof" with the Johannine verses "No one comes to the Father except through me"?”
30) http://www.moravians.org/NCC&WCC/Baar_WCC_Article.html: “The Dialogue sub-unit of the WCC undertook a four-year study programme on 'My Neighbour's Faith and Mine - Theological Discoveries through Interfaith Dialogue'. As the apex of this study, delegates from the Orthodox, Protestant and Roman Catholic traditions were brought together to reflect on some of these issues. A week of intense discussions centred on questions such as the significance of religious plurality, christology, and the issues in understanding the activity of the Spirit in the world. The document which follows is a statement made by the members of this consultation, which was held in Baar, near Zurich, Switzerland in January 1990.”
31) http://www.oikoumene.org/en/resources/documents/wcc-programmes/interreligious-dialogue-and-cooperation/christian-identity-in-pluralistic-societies/baar-statement-theological-perspectives-on-plurality.html: “Since the Nairobi WCC Assembly in 1975 this common adventure has been seen primarily as "dialogue in community". This has meant entering into dialogue with our neighbours of other faiths in the communities we as Christians share with them, exploring such issues as peace, justice, and humanity's relation to nature. We have found repeatedly that Christians may not behave as if we were the only people of faith as we face common problems of an interdependent world. It is evident the various religious traditions of the world have much to contribute in wisdom and inspiration towards solving these problems.”
32) http://www.oikoumene.org/en/resources/documents/wcc-programmes/interreligious-dialogue-and-cooperation/christian-identity-in-pluralistic-societies/baar-statement-theological-perspectives-on-plurality.html: “From the beginning Christians have encountered people of other faiths, and from time to time theologians have grappled with the significance of religious plurality. The modern ecumenical movement from its earliest beginnings (Edinburgh 1910) has made many attempts to understand the relation of the Christian message to the world of many faiths.”
33) http://www.oikoumene.org/en/resources/documents/wcc-programmes/interreligious-dialogue-and-cooperation/christian-identity-in-pluralistic-societies/baar-statement-theological-perspectives-on-plurality.html: “Our theological understanding of religious plurality begins with our faith in the one God who created all things, the living God, present and active in all creation from the beginning. The Bible testifies to God as God of all nations and peoples, whose love and compassion includes all humankind. We see in the Covenant with Noah a covenant with all creation. We see His wisdom and justice extending to the ends of the earth as He guides the nations through their traditions of wisdom and understanding. God's glory penetrates the whole of creation.”
34) http://www.oikoumene.org/en/resources/documents/wcc-programmes/interreligious-dialogue-and-cooperation/christian-identity-in-pluralistic-societies/baar-statement-theological-perspectives-on-plurality.html: “People have at all times and in all places responded to the presence and activity of God among them, and have given their witness to their encounters with the Living God. In this testimony they speak both of seeking and of having found salvation, or wholeness, or enlightenment, or divine guidance, or rest, or liberation.”
35) http://www.oikoumene.org/en/resources/documents/wcc-programmes/interreligious-dialogue-and-cooperation/christian-identity-in-pluralistic-societies/baar-statement-theological-perspectives-on-plurality.html: “We therefore take this witness with the utmost seriousness and acknowledge that among all the nations and peoples there has always been the saving presence of God. Though as Christians our testimony is always to the salvation we have experienced through Christ, we at the same time "cannot set limits to the saving power of God" (CWME, San Antonio 1989).
We see the plurality of religious traditions as both the result of the manifold ways in which God has related to peoples and nations as well as a manifestation of the richness and diversity of humankind. We affirm that God has been present in their seeking and finding, that where there is truth and wisdom in their teachings, and love and holiness in their living, this like any wisdom, insight, knowledge, understanding, love and holiness that is found among us is the gift of the Holy Spirit. We also affirm that God is with them as they struggle, along with us, for justice and liberation.
This conviction that God as creator of all is present and active in the plurality of religions makes it inconceivable to us that God's saving activity could be confined to any one continent, cultural type, or groups of peoples... "The Spirit of God is at work in ways that pass human understanding and in places that to us are least expected. In entering into dialogue with others, therefore, Christians seek to discern the unsearchable riches of Christ and the way God deals with humanity" (CWME Statement, Mission and Evangelism).
It is our Christian faith in God which challenges us to take seriously the whole realm of religious plurality..., we must affirm our "openness to the possibility that the God we know in Jesus Christ may encounter us also in the lives of our neighbours of other faiths" (CWME Report, San Antonio 1989, para. 29).”
36) http://www.oikoumene.org/en/resources/documents/wcc-programmes/interreligious-dialogue-and-cooperation/christian-identity-in-pluralistic-societies/baar-statement-theological-perspectives-on-plurality.html: “Because we have seen and experienced goodness, truth and holiness among followers of other paths and ways than that of Jesus Christ, we are forced to confront with total seriousness the question raised in the Guidelines on Dialogue (1979) concerning the universal creative and redemptive activity of God towards all humankind and the particular redemptive activity of God in the history of Israel and in the person and work of Jesus Christ (para. 23). We find ourselves recognizing a need to move beyond a theology which confines salvation to the explicit personal commitment to Jesus Christ.
We affirm that in Jesus Christ, the incarnate Word, the entire human family has been united to God in an irrevocable bond and covenant. The saving presence of God's activity in all creation and human history comes to its focal point in the event of Christ.
In Jesus's words and action, in His proclamation, in His ministry of healing and service, God was establishing His reign on earth, a sovereign rule whose presence and power cannot be limited to any one community or culture. The attitudes of Jesus as He reached out to those beyond the house of Israel testify to this universal reign. He spoke with the woman of Samaria, affirming all who would worship God in Spirit and truth (Jn. 4.7-24)...
But while it appears that the saving power of the reign of God made present in Jesus during His earthly ministry was in some sense limited (cf. Matt. 10.23), through the event of His death and resurrection, the paschal mystery itself, these limits were transcended. The cross and the resurrection disclose for us the universal dimension of the saving mystery of God.
This saving mystery is mediated and expressed in many and various ways as God's plan unfolds toward its fulfillment. It may be available to those outside the fold of Christ (Jn. 10.16) in ways we cannot understand, as they live faithful and truthful lives in their concrete circumstances and in the framework of the religious traditions which guide and inspire them. The Christ event is for us the clearest expression of the salvific will of God in all human history. (I Tim. 2.4)”
37) http://www.oikoumene.org/en/resources/documents/wcc-programmes/interreligious-dialogue-and-cooperation/christian-identity-in-pluralistic-societies/baar-statement-theological-perspectives-on-plurality.html: “We have been especially concerned in this Consultation with the person and work of the Holy Spirit, who moved and still moves over the face of the earth to create, nurture, challenge, renew and sustain. We have learned again to see the activity of the Spirit as beyond our definitions, descriptions and limitations, as "the wind blows where it wills" (Jn. 3.8)... Everything which belongs to 'love, joy, peace, patience, kindness, goodness, faithfulness, gentleness, self-control' is properly to be recognized and acknowledged as the fruit of the activity of the Holy Spirit. (Gal. 5.22-23, cf. Rom. 14.17).
We are clear, therefore, that a positive answer must be given to the question raised in the Guidelines on Dialogue (1979) "is it right and helpful to understand the work of God outside the Church in terms of the Holy Spirit" (para. 23). We affirm unequivocally that God the Holy Spirit has been at work in the life and traditions of peoples of living faiths.
Further we affirm that it is within the realm of the Spirit that we may be able to interpret the truth and goodness of other religions and distinguish the "things that differ", so that our "love may abound more and more, with knowledge and all discernment" (Phil. 1.9-10).
We also affirm that the Holy Spirit, the Interpreter of Christ and of our own Scriptures (Jn. 14.26) will lead us to understand afresh the deposit of the faith already given to us, and into fresh and unexpected discovery of new wisdom and insight, as we learn more from our neighbours of other faiths.”
38) http://www.oikoumene.org/en/resources/documents/wcc-programmes/interreligious-dialogue-and-cooperation/christian-identity-in-pluralistic-societies/baar-statement-theological-perspectives-on-plurality.html: “Our recognition of the mystery of salvation in men and women of other religious traditions shapes the concrete attitudes with which we Christians must approach them in interreligious dialogue.”
39) D. A. 칼슨, “다원주의에 도전하는 복음 선포,”<목회와 신학>116(1999),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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