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S. Lewis가 무신론자였다가 회심하여 하나님을 믿게 될 때 그의 회심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영국의 변증학자이며 작가인 체스터턴(G. K. Chesterton, 1874-1936)일 것이다. 루이스 자신도 체스터턴 책을 통하여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반틸(1895–1987)은 체스터턴보다 약 20년 뒤에 태어났다. 반틸도 체스터턴의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해 확인할 길은 없지만 어떤 내용들은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체스터턴은 그의 책 『정통』(Orthodoxy)에서 “현대 사회는 본래 기독교에 속했던 미덕들이 균형을 잃은 채 난폭하게 독주하는 세상이다.”(“The modern world is full of the old Christian virtues gone mad.”)라고 비평했다. 현대 세상은 기독교로부터 미덕들을 빌려왔지만 마치 자기들 것인 양 함부로 사용하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틸 역시 “빌려온 자본”(borrowed capital)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일반은총(common grace)에 속한 것만 아니라 합리성, 도덕성, 인간의 존엄성, 아름다움(美), 자연의 일관성(the uniformity of nature) 등은 하나님에게서 빌려와서 사용하는 것인데 정작 하나님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틸은 자주 “불신자는 2+2는 무엇인지 모른다”라는 말을 하곤 했다. 반틸의 제자, 반슨은 이 말이 무슨 뜻인지 학생들에게 설명함에 앞서 칠판에 숫자 2를 쓰고 학생들에게 이것이 뭐냐고 물었다. 학생들은 “two”라고 대답하면 반슨은 “이것은 two가 아니다. 이것은 숫자 two 개념을 표기한 아라비아 숫자일 뿐이다”라고 답했다. 반슨이 의도하는 것은 인간이라면 다 숫자 이(two) 개념을 가지고 있는데 이 개념을 표시하고 서로 소통하기 위해서 2라는 기호(혹은 표식)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아라비아 숫자 외에 로마 숫자, 중국 숫자 등이 있다). 인간이라면 다 개념적으로 이(two) 다음에 삼(three)이 오는 것을 안다.[태어나서 몇 살부터 알게 되는지 모르겠지만]
만약 다음 날에는 이(two) 다음에 삼(three)이 아니라 사(four)가 온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질서가 틀어진다. 그렇게 되면 산수, 수학, 경제, 심지어 AI도 불가능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려면 이(two)라는 개념 다음에는 항상 삼(three) 개념이 와야 한다. 이러한 수량적 질서는 우연히 주어진 것이 아니다. 우연이라면 한 날에는 이(two)가 사(four) 다음에 올 수도 있고 다른 날에는 이(two)가 구(nine) 다음에 올 수도 있다. 이것을 우연이라고 한다. 또한 이런 수량적 질서는 인간이 아라비아 숫자, 로마 숫자, 중국 숫자를 만든 다음에 생겨난 것이 아니다. 이런 숫자들을 창안하기 전에 이미 인간들은 수량적 질서 개념을 다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표시하고 서로 소통하기 위해 그런 부호(표식)를 창안한 것뿐이다. 이 수량적 질서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다. 우연은 질서를 만들 수 없다. 결국 창조주가 천지를 창조하실 때 이런 수량적 질서도 만드신 것이다. [마치 자연의 존재물만 아니라 자연 법칙과 질서를 같이 만드신 것과 같다.]
불신자 가운데 “우리가 왜 2+2를 모르느냐 그것은 4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반틸은 “I know you know how to count 2+2, but you don’t know how to account for counting 2+2=4.”(당신이 2+2 계산을 할 줄 아는 것, 나도 안다. 그러나 당신은 왜 2+2는 4인지 설명할 줄은 모른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나님에게 수량적 질서를 빌려와서 2+2를 계산해 놓고 정작 그 수량적 질서를 만드신 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질서를 빌려 가놓고 정작 하나님은 모른다고 한다.
#정승원




'조직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합리주의(rationalism)의 한계” (0) | 2026.05.26 |
|---|---|
| “경험주의(empiricism)의 모순” (0) | 2026.05.25 |
| ‘일자와 다자’(the one and the many) (0) | 2026.05.19 |
| "이슬람교의 인위성" (0) | 2026.05.10 |
| "우주론적 증명의 한계" (0) | 2026.05.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