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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耽羅) 명칭의 유래와 의미

탐라는 오늘날 제주도의 옛 이름이자 고대 국가의 국호로, 오랫동안 동아시아 해상교류의 중심에서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했던 섬나라의 이름이다. 탐라라는 명칭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존재하지만, 현재 학계에서는 특정한 하나의 정설보다는 언어학·역사학·지명학적 해석이 함께 논의되고 있다.

고대 문헌에 나타나는 탐라의 명칭은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기록되었다. 《후한서》에는 주호국(州胡國), 《후위서》에는 섭라(涉羅), 《수서》에는 탐모라(耽牟羅), 《당서》에는 담라(儋羅), 《삼국유사》에는 탁라(托羅) 등의 표기가 등장한다. 이러한 기록들은 모두 동일한 지역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되며, 특히 「탐모라(耽牟羅)」가 가장 오래된 형태의 국명으로 주목받고 있다.

과거에는 탐라를 문자 그대로 ‘섬나라’로 해석하는 견해가 널리 알려졌다. 조선 후기 실학자 한치윤은 《해동역사》에서 ‘탐(耽)’이 섬을 뜻하고 ‘라(羅)’가 나라를 뜻하므로 탐라는 곧 ‘섬나라’라는 의미라고 설명하였다. 제주가 한반도 남쪽 바다에 위치한 독립적인 섬 왕국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해석이다. 그러나 현대 언어학은 당시의 음운 체계를 분석한 결과, 고대 한국어의 ‘섬’과 ‘탐(耽)’의 발음이 상당히 달랐다고 보고 있어 이 설을 역사적 해석으로는 참고하되 언어학적 근거는 약한 것으로 평가한다.

현재 가장 유력하게 논의되는 견해는 「탐모라(耽牟羅)」의 구조를 분석하는 방법이다. 《수서》에 기록된 탐모라는 당시 음가로 대략 *tomora 또는 *tomura 정도로 재구되는데, 여기서 뒤의 「모라(牟羅)」가 중요한 단서가 된다. 삼국시대 금석문과 《일본서기》, 《삼국사기》 등에 나타나는 모라(牟羅), 모루(牟婁), 모로(牟盧) 등의 지명 요소는 대체로 ‘마을’, ‘취락’, ‘고을’, ‘성읍’을 의미하는 고대어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울진 봉평리 신라비 등에 나타나는 ‘거벌모라’ 역시 취락 또는 성곽 공동체를 뜻하는 명칭으로 해석된다. 이에 따라 탐모라는 ‘탐+마을’, ‘탐+나라’, ‘탐의 땅’ 정도의 의미를 가진 복합어였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특히 언어학자들은 「모라」가 고대 한반도 남부 지역에서 널리 사용된 지명어였다고 본다. 백제어의 ‘담로(擔魯)’ 역시 지방 통치 거점이나 고을을 의미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탐라의 ‘라(羅)’ 역시 이러한 계통과 관련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탐라는 단순한 한자식 조어가 아니라, 원래 존재하던 토착어를 한자로 음차한 국명일 가능성이 높다.

일부 연구자들은 「모라」를 일본어의 ‘무라(村, 마을)’와 연결하기도 한다. 일본의 언어학자 알렉산더 보빈은 탐모라를 ‘타미(백성)+무라(마을)’ 또는 ‘타(밭)+무라(마을)’와 연관지어 해석하였다. 이는 고대 한반도 남부와 일본 열도 사이의 언어적 교류를 설명하려는 이른바 ‘반도 일본어설’과 연결된다. 다만 이러한 견해는 흥미로운 가설로 평가받지만 직접적인 증거가 충분하지 않아 학계의 폭넓은 합의를 얻고 있지는 못하다.

또 다른 해석은 탐라가 제주의 자연환경과 관련된 지명이라는 견해이다. 양주동, 나까지마 히로미 등은 탐라의 어원을 한라산의 옛 이름인 두무악(頭無岳)과 연결하였다. 이들은 ‘담·돔·둠’ 계열의 음이 둥글게 둘러싸인 산이나 해안, 혹은 바다로 에워싸인 공간을 의미했을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제주섬 전체가 거대한 화산체인 한라산을 중심으로 형성된 점을 고려하면, 탐라는 ‘둥근 산의 땅’ 또는 ‘바다로 둘러싸인 지역’을 뜻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탐라는 외부 세력이 붙여준 이름이라기보다 제주인들이 스스로 사용하던 고유 국호였을 가능성이 높다. 《삼국사기》에는 백제 문주왕 2년(476)에 이미 탐라가 조공을 바쳤다는 기록이 나타나며, 《수서》에도 탐모라국이라는 명칭이 등장한다. 이는 백제 멸망 이후 신라가 이름을 부여했다는 후대 설화보다 훨씬 이른 시기의 기록이다. 따라서 탐라는 제주 지역에서 오랫동안 사용된 자생적 국명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종합하면, 탐라의 명칭은 단순히 ‘섬나라’를 뜻하는 이름이라기보다 고대 제주인의 언어와 문화가 반영된 토착 국호로 보는 견해가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다. 특히 초기 형태인 「탐모라」에서 ‘모라’가 마을·고을·나라를 의미하는 고대어였다는 점은 비교적 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다만 ‘탐’의 정확한 의미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며, 섬·바다·둥근 산·지역 공동체 등 다양한 해석 가능성을 남겨두고 있다. 결국 탐라는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고대 제주가 독자적인 해양 문명과 정치 공동체를 이루었던 역사를 보여주는 상징적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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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

탐라(耽羅)는 제주도의 옛 이름이자 고대 탐라국의 국명으로, 크게 ‘섬나라’라는 뜻과 ‘땅/마을’을 의미하는 고대어에서 유래했다는 두 가지 주요 어원적 해석이 있습니다:

▪︎‘섬나라’ 해석: 섬을 뜻하는 ‘탐(耽)’과 나라를 뜻하는 ‘羅(라)’가 결합하여 ‘섬으로 이루어진 독립국’을 의미한다는 설입니다.

▪︎언어학적 해석: ‘탐모라(耽牟羅)’라는 초기 기록을 바탕으로, ‘탐(耽)’은 ‘섬’, ‘모라(牟羅)’는 삼한·삼국시대에 ‘마을’, ‘나라’, ‘땅’을 뜻하던 우리 고유어(예: 가야어 등)에서 유래했다는 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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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위키 - 탐라의 명칭

명칭에 여러 가지 설이 분분하다. 《탐라국 왕세기》에 따르면 삼국시대 말기 신라 문무왕 때 고을나의 15대손인 고후 형제가 원래 복속했던 백제의 멸망 이후 신라에 탐라국을 대표하여 입조할 때, 전라남도 강진군의 옛 지명인 '탐진(耽津)'의 '탐'과 '라(羅)'를 합쳐서 붙여준 것이라고 전한다.

다만 백제가 아직 건재했던 476년 백제 문주왕 때 이미 탐라국에서 조공했다는 기사가 《삼국사기》에 나오며, 백제 멸망 이전에 편찬된 《수서》에도 탐모라국(耽牟羅國)에 표류한 사신들이 백제를 거쳐 중국으로 돌아갔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따라서 위의 설화와 달리 '탐라'라는 국호는 외부에서 붙여준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쓰이고 있었던 자생적인 국호로 보인다. 오히려 '탐진(耽津)'이 '탐라로 건너가는 나루'라는 의미에서 파생되었다고 보는 편이 더 자연스럽다.

'탐라(耽羅)' 또는 '탐모라(耽牟羅)'는 당시 음가로 *tomora ([도모라]) 정도로 재구된다. 《양서》 〈백제전〉에 따르면 백제어로 '읍(邑)'을 '담로(擔魯)'[23]라 부르고, 《신당서》에는 탐라가 '담라(儋羅)'로 쓰여져 있기 때문에 '탐라'는 '고을'을 뜻하는 고유어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있다.

'제주'라는 한문식 지명은 건널 제(濟)자를 쓰는데, 고려 무렵에 쓰이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탐라와 제주란 이름은 조선 시대까지는 어느 정도 혼용되어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 시대 제주 목사 등이 편찬한 〈탐라순력도〉 등을 보면 지명인 제주도 섬 자체는 '탐라', 행정구역인 제주목(현 제주시) 지방은 '제주'라 칭하는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이 밖에도 언어학자 알렉산더 보빈은 반도 일본어설을 주장하면서 탐라가 '타미(民 - 백성)'+'무라(村 - 마을)', 또는 '타(田 - 밭)'+'무라(村 - 마을)'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24] 반도 일본어설은 근거가 있는 가설로 평가받으며 제주 방언 이전에 존재했을 수도 있다고 추정되는 토착어인 탐라어와도 관련이 있었다고 보기도 하지만, 탐라라는 명칭의 유래가 되었다는 것에는 반론이 많은 편이다. 게다가 고대 일본에서는 탐라를 '도라(度羅, トラ)'라는 명칭으로도 불렀다는 상반되는 증거도 있다. 일본의 전통 궁중 음악 가가쿠(아악)의 탐라 음악도 이를 따라 '도라가쿠(度羅楽)'이다.

그러나 적어도 탐라의 뒷부분만큼은 보빈의 가설대로 일본어족 어휘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있다. 《수서》에서는 탐라를 탐모라(耽牟羅)라고 표기했는데, 여기서 모라(牟羅)라는 지명 요소는 《일본서기》[25], 《양서》[26], 〈울진 봉평리 신라비〉[27] 등 삼국시대의 각종 문헌에서 문증되며 《삼국지》[28], 〈광개토대왕릉비〉[29], 《삼국사기》[30]에도 비슷한 단어가 등장한다. 학자들은 이 단어를 보통 일본어의 무라(むら)와 연관지어 마을이라고 해석하는 편이다. 참고로 중세 한국어에서 'ᄆᆞᅀᆞᆶ(/*mʌzʌlh/)'이었던 현대 한국어의 '마을'과는 별개의 어원을 가진다.

다만 '모라/모로' 어휘가 차용된 방향성은 명확하지 않다. 반도 일본어파의 잔재일 수도 있으나, 반대로 고대 한국어 어휘가 일본조어로 넘어갔다가 한국어족에서는 사라졌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31] 또한 '모라(牟羅)'와 '모로(牟盧)'는 '산(山)'을 뜻하는 고대 한국어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그 근거로는 《일본서기》에 구례모라성(久禮牟羅城)이 구례산(久禮山)으로도 표기되었다는 점, 모로비리국의 옛 땅이 신라에 편입된 뒤 고창군(高敞縣)이 되었다는 점,[32] 《용비어천가》에 '·피모·로(椵山)'라는 산 이름이 나온 점 등이 있다.

한편, '탐라'의 앞부분 '탐(耽)' 또는 '탐모(耽牟)'는 *tom- 또는 *tomo- 계열 음으로 재구되며, 이는 백제 지명 '동음(冬音)', '도무(道武)', '침명(浸溟)' 등과도 연관될 수 있다. 이들 지명은 고대 전남 지역의 소국이었던 '침미다례(忱彌多禮)' (*tomotare, [도모다레])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양주동과 나까지마 히로미(中嶋弘美)는 '탐라(耽羅)'를 한라산의 원명 '두무악(頭無岳)·원산(圓山)'에 의한 명칭으로 보았는데 그 의미는 '圓四圍(둥근/둘러싸인) 산' 정도로 해석된다.[33] 천소영은 이와 같은 '담/둠'계 지명에 대해서 "山谷이나 하천 또는 해양으로 둘러싸인 지역을 일컫는 이름"이라 하였고[34], 박용식은 덤·담은 바위나 벼랑과 달리 '사람이 오를 수 없는' 혹은 '막은/막힌'의 의미가 있으며, '마을'을 가리키는 땅이름의 뒤형태의 하나인 '땀'도 '덤'과 '막음'의 의미 자질을 공유한다고 하였다.[35] 송하진은 백제 지명에서 '탐(躭)'과 '도름(冬音)'이 대응한다는 사실에서[36] '도름'이 모음 간 'ㄹ'의 모음화를 거치면서 1음절의 ‘돔’으로 축약된 것이며 그 의미는 '海浦'라고 하였고[37], 나까지마 히로미도 '冬音'이 '도름~소림' 내지는 '담' 정도로 읽히는데, 바다와 인접한 지역의 지명으로 나타남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하였다.[38][39] 또한 김영일은 둥근모양을 뜻한다고 하였다.[40]

과거 실학자 한치윤(韓致奫)은 그의 저서 《해동역사》에서 "우리말로 도(島)'를 '섬[剡]'이라 하고, '국(國)'을 '나라[羅羅]'라 하며 '탐, 섭, 담' 이 세 음은 모두 섬과 비슷하다"고 풀이한 바 있다. 이 풀이를 따른다면 '탐라'는 말 그대로 '섬나라'가 되는 셈이다. 다만 이는 언어학적 지식이 모자라던 조선 후기에 나온 가설이라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한계가 많다. 단적인 예시를 들자면 섬을 뜻하는 당시 고대 한국어는 *syema ([셔마])에 가깝게 발음된 반면[41] 한자 탐(耽)의 당대 발음은 *tom ([톰])이었으므로 큰 차이가 있다.[42]

#Francis Minchang 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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