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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신학/기타미분류

‘조용기 목사’의 동국대 강연을 보며

‘조용기 목사’의 동국대 강연을 보며 
이광호 목사 
종교다원주의 사상은 복음을 포기하게 만든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은 다양한 종교들을 통한 구원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진리를 버리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은 마침내 ‘사랑과 화해’라는 달콤한 이름으로 진리마저 해체하고 있다.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는 지난 (2005년)5월 12일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에서 특강을 하며 자신의 사상을 드러냈다. 그는 특강에서 기독교와 불교의 평등관계를 강조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구원의 길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기독교의 구원은 기독교식 구원이며, 불교의 구원은 불교식 구원이라는 논리를 전개했던 것이다. 
이 즈음에서 짚고 넘어가고자 하는 것은 대세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우리 민족의 감성적 자세이다. 한국교회에는 그동안 수많은 이단들을 정죄했다. 올바른 교회라면 마땅히 그렇게 해야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말씀과 원리가 아니라 분위기에 따른 이단 정죄라는 점이다. 한국교회는 처음에 이단이라 했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신학적 충분한 검증없이 이단의 족쇄를 해제하는 모순을 숱하게 범해오고 있다. 
조용기 목사와 순복음교회에 대해서도 한때 이단으로 규정한 교단들이 있었지만 덩치가 커지자 여론의 추이에 따라 지금은 이단이 아닌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것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검증이 아니라 단순한 종교경험에 의한 논리였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순복음교회의 성장을 부러워하는 자들은 조 목사의 사상 뿐 아니라 그의 말투까지도 따라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이번 조용기 목사의 동국대학교 특강이 문제가 되었다면, 만일 그가 그 날 동국대학교에서 그 강의를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현재 많은 기독교인들이 문제삼고 있는 것은 그 날의 발언이다. 그러나 우리가 신중하게 생각해 보아야할 점은, 5월 12일 동국대학교에서 특강을 하기 전과 후의 조용기 목사의 사상은 동일하다는 사실이다. 그가 그 날 특강에 초청받지 않았다 해도 그의 속 사상은 여전히 동일하다. 즉 그런 불순한 신학사상을 가졌다할지라도 자기의 목적에 의해 때와 장소에 따라 달리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용기 목사의 그 날 특강내용을 살펴보면 분명히 종교다원주의적이다. 즉 그는 종교간의 평등과 대화를 매우 강조하고 있다. 그는 “종교는 불교나 기독교나 마호메트교나 평등하다"(특강원문)고 주장했다. 그리고 “불교나 기독교가 더 열심히 전도해서, 우리 한국의 불교나 기독교의 지배종교가 지배한다면 지배문화를 만들어서 그 문화 속에 윤리, 도덕이 서고 인생관과 철학이 서고 생활가치가 설 것”(특강원문)이라며, “그런 면에서 불교가 왕성해야겠고, 기독교가 왕성해야 되겠고, 불교와 기독교간에 긴밀한 대화를 해야겠다”(특강원문)고 말했다. 
어떤 참석자가 “예수 밖에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기독교 교리”에 대한 질문을 했을 때, 조 목사는 “(일반) 목사님들이 (다른) 종교의 특수성과 차별성을 인정하지 않고 유아독존적으로 생각하므로 많은 분쟁이 생길 요인이 있기 때문에 은퇴를 하고 나서 더 많은 대화를 통해서 이해와 화해의 길을 모색해야 되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종교는 평등하다”(특강원문)고 하자 참석했던 불교 신도들의 박수가 뒤따랐다. 뒤이어 다른 참석자가 마치 재확인이라도 하듯 “오늘 목사님의 말을 기독교의 예수님, 하나님 외에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로 생각해도 되겠는가?”라고 질문했을 때도 그는 긍정적인 답변을 했다. 그는 자기 집안 이야기를 하며 “우리 동생은 불교를 통해서 구원을 받겠다고 확신을 믿기 때문에 존중하고 인정하고, 나는 기독교 목사니까 기독교를 통해서 구원을 받는 것을 인정하고, 내 것만 절대진리라고 인정할 수 없다. 너는 죽이고 나는 살겠다 그렇게 되면 상생의 의미가 없어진다. 그것은 부처님도 예수님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자비와 사랑의 원리에서 어긋난다고 생각한다”(특강원문)고 답변했다. 그리고 그는 불교의 개유불성(皆有佛性)을 언급하면서, “풀속에도 하나님이 계시며 벌레 한 마리에도 신성이 계신다”(특강원문)며 비기독교적인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는 사실 종교다원주의의 한 배경이 되는 범신론 사상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동국대학교에서 있었던 특강 내용을 살펴보아 조용기 목사는 매우 불건전한 인물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가 가져야 할 진정한 혜안(慧眼)은 설령 그가 지난 5월 12일 동국대학교에서 그런 특강을 하지 않았다 해도 그의 사상을 아는 것이다. 동국대학교 강의 중에서도 그랬지만 그는 현세기복적 사상을 가진 사람이다. 즉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바를 균형있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자기가 목회하는 교회의 교인수가 75만이라고 밝혔으며 매주 그의 설교를 듣는 사람이 5백만 명이라고 자랑했는데 그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그의 말을 듣는 어린 교인들은 그것을 하나님의 가르침으로 알 것이기 때문이다. 
조용기 목사가 아니어도 한국에는 그와 비슷한 사상을 가진 목사들이 수없이 많이 있음을 기억했으면 한다. 그들에게는 단지 그<5월 12일>이 오지 않았으며, 불교대학교의 특강 요청이 없었을 따름이다. 더욱 염려가 되는 것은 조용기 목사가 당하는 비난을 보며 그들은 더욱 자신의 비복음적인 사상을 숨기려 할것이라는 점이다. 그런만큼 우리는 더욱 민감하게 한국기독교를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진리는 죄악된 세상과 구분되는 개념에서 출발한다. 그 벽을 허물고자 하는 노력은 ‘종교적 대화’에서 구체화하게 된다. 잘못된 기독교 지도자들은 ‘사랑과 화해’의 모습을 보임으로써 세상 사람들로부터 환영을 받을 것이며, 마치 그것이 세상에 존재하는 기독교의 의미인 양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눈을 부릅뜨고 그런 사조들을 경계해야 한다. 
문제는 조용기 목사의 종교다원주의 발언이 있은 후 한국기독교의 어느 교단, 어느 신학교도 공식적인 대응을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아무도 그에 대한 공적인 비판선언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우리시대에 일어나는 보수주의 교회들의 신에큐메니즘은 그런 것을 별것 아닌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포스트모던 사상과 궤를 같이 하는 개교회주의로 인한 폐단 때문인가? 건전한 교회의 지도자들은 성도들을 말씀으로 보호해야할 의무가 있으며 잘못된 신학사조가 퍼져나갈 때 그에 대한 분명한 대응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 
기독교개혁신보. 2004.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