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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민주화와 누가복음의 메시지

경제 민주화와 누가복음의 메시지


우병훈 목사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중요한 화두는 경제 민주화였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갈등의 중요한 원인이 경제 양극화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민주당은 물론, 새누리당에서도 이 문제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양 당의 중요 경제 정책은 겉으로 보기에 상당히 유사하게 느껴질 정도로 경제 민주화를 지향하는 것이었습니다.

 

독일의 사회학자 위르겐 하버마스가 말했듯이, 정치 발전과 경제 발전은 항상 같이 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이 둘을 동시에 이룩하고 있는 한국은 매우 독특한 나라라고 그는 경탄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버마스도, 한국은 민주적 정치의 발전에 비해서, 경제적 민주화는 아직 많이 이뤄지지 않았음을 알고 지적하였습니다.

 

정치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 자신을 많이 희생한 세대 역시, 경제적 민주화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그다지 많은 희생을 감수하지 않았습니다.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을 얽매고 있는 쇠사슬을 과감하게 끊어버리라고 하였지만, 김우창 교수가 여러 차례 지적한 것처럼, 그 쇠사슬 끝에는 밥통이 매달려 있기 때문에, 자신들을 얽어 맸던 정치적 악순환 고리를 끊는 데 힘썼던 세력들도, 경제적 불평등의 고리를 끊는 것에는 주춤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정치 개혁보다 힘든 것이 경제 개혁입니다. 그 이유로 하버마스는 두 가지를 지적합니다. 첫째 경제 개혁은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개혁의 대상과 주체가 가장 불분명한 것이 경제 개혁입니다. 둘째 현대 경제 현상은 전지구적 관계망에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경제적 문제는 이제 우리나라 혼자서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의 가장 큰 사회적 갈등은 경제를 개혁하려는 정치적 움직임 및 시민 연대의 움직임과 그에 저항하는 경제 주체들 간의 갈등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갈등을 풀기 위해서는, 개별 국가와 시민사회 내에서뿐 아니라, 국가간 연합체를 통해서도 다각도의 노력이 이뤄져야 합니다.

 

이런 상황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며, 그 누구도 뾰족한 해답을 내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때에 저는 누가복음이 주는 메시지가 이 시대에 매우 필요하며 적실하다고 생각합니다. 복음서 가운데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양극화 현상에 가장 민감한 복음서가 누가복음입니다. 특히 누가복음은 가난한 자들과 부자들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많이 다루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이 제시하는 메시지를 단순화시켜 요약하자면 이러합니다(1:51-53; 3:11-14; 11:39-42; 16:9; 18:29 ).

가난한 자들에게는 자족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 내세를 소망하면 현세의 고난을 능히 이겨낼 수 있다는 것,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자는 그 누구보다도 풍성한 자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부자들에게는 더 많이 갖기를 욕망하지 말 것과, 자신의 것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재물을 쓸 수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설교자는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전할 수 있어야 하고 동시에 전해야만 합니다. 이 중에 한 쪽으로만 치우치면, 가난한 자들과 부유한 자들의 분노를 살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우리 나라가 그래도 예전보다는 잘 살지 않느냐고 만족하며 살아야 하지 않느냐고 설교한다면, 그런 설교자는 시대의 정신을 잘못 읽어내는 설교자입니다. 특히 부유한 설교자가 그런 설교를 하면 마르크스가 말하는 바, 자기 배 부른 자가 민중에게 아편을 먹이는 것과 동일한 행위처럼 보일 것입니다.

 

부유한 이들에게 다짜고짜 자기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나눠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런 설교자는 노동의 가치와 사람의 심성 모두에 대해 몰이해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성경이 가난한 자들에 대한 부자들의 책임을 보다 많이 강조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언제나 자발성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유념해야 합니다.

 

이런 메시지는 목회자에 대한 신뢰 관계가 확실한 경우에만 조심스럽게 말할 수 있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한 은혜에 기반하여 전해질 때만 실효성이 생기며, 무엇보다 목회자 자신이 삶을 통해 보여주어야 설득력이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전제 하에 설교자가 누가복음에 나오는 메시지를 균형 있게 골고루 동시에 전할 때, 이 시대 화두인 경제 민주화에도 기여할 뿐 아니라, 무엇보다 하나님 나라 백성의 정체성을 제대로 지켜내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물론 설교자는 일차적으로 정치 민주화 혹은 경제 민주화를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설교자는 말씀의 사역자요 성례의 집행자요 양떼의 목자로서, 언제나 하나님 나라의 비전이라는 더욱 고상하고 높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 안에서 남자나 여자나 누구 할 것 없이 모두가 화합하고, 하나됨을 이루는 세계! 그 나라를 소망하며 설교자의 설교는 자신의 모든 설교와 사역을 통해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역사에 기여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누가복음의 메시지는 오늘날 더욱 절실하게 요청되는 필수적 복음이라 믿습니다. 오늘날 한국의 모든 설교자들이 경제 문제에 대한 메시지에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풍성한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는 분들이 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