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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신학/신앙고백서

구원의 확신

구원의 확신
믿음의 확신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Assurance of Faith and the Westminster Confession)
조엘 비키
이 글은 지난 2002년 9월 12일에 있었던 합동신학대학원 칼빈강좌에서 Dr. Joel Beeke(Puritan Theological Seminary 학장)의 강의를 정리한 것입니다.
관련된 성경 구절은 로마서 8:14 ~ 16입니다.
1. The Centrality of Saving Faith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8장 2항은 믿음의 확신을 설명하는 가장 핵심적 사항으로 오늘 강의의 주제입니다.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은 믿음의 확신을 아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특별히 청교도들에게 믿음에 있어 가장 충만하고 발전적인 부분이 바로 이 믿음의 확신이었습니다. 확신이란 “나는 내가 아는 것에 대한 확신을 가지며 나의 믿는 것에 대한 자신을 가진다”는 의미입니다. 성령께서 내 마음에 증거하시기를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신 것입니다.
2. Contemporary Need for Considering Assurance
오늘날 교회에서 이 믿음의 확신이라는 축복이 잘못 왜곡되고 있는 듯 합니다. 세상의 세속화와 혼돈됨이 가중될수록 더욱 큰 확신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확신이 중요한 이유는 오늘날의 문화 속에서 우리가 감정에 의존하기 쉽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감정이 무엇을 느끼느냐가 중요하지 우리의 의지에서 무엇을 믿느냐의 요소는 중요하지 않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은사중심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생각입니다. 우리가 개혁주의 입장에서 이것을 비판하는 것은 그것이 너무 감정중심으로 나아가 건강한 신앙으로 이끌지 못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감정은 순간순간 변하는 것입니다.
3. Puritan Thought on Assurance by the 1640s
1640년대까지 이 믿음의 확신이라는 교리는 청교도들의 신학속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졌습니다. 구원의 확신교리에 관해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는 가장 확실한 정리를 가지고 있는데 당시 웨스트민스터에 모인 청교도들의 공통된 확신은 구원의 확신이 성령의 감동으로 주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4.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18. 2에 설명되어진 교리의 내용은 세가지입니다.
4-1 Primary Ground: Divine Promises in Christ
청교도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떠나 개인적인 생각으로 구원의 확신을 가지려는 것은 잘못이라고 여겼습니다. 믿음의 확신은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하게 주어진 약속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어 우리에게 확신을 주시는 1)하나님의 주권 이상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믿음이 선물이듯 확신도 그렇습니다. 또한 2)예수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이해하고 설명하려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는 이 모든 약속의 최상이고 원천이고 마음의 인침이며 보화다”라고 했습니다. 3)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보다 훨씬 탁월한 그리스도 안에 이 약속을 담아 두셨습니다. 때로 우리는 주관적인 체험(느낌)을 가지고 또 어느 때는 이것을 믿음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과 비교해 볼 때 굉장히 부서지기 쉬운 것입니다. 우리의 확신은 우리의 내부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밖에 있는 견고한 반석에서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청교도들은 구원의 확신에 대한 교리가 완전해 졌다고 말하진 않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확신이 있다고 말하나 그들의 삶 속에서의 열매를 보았을 때는 오히려 그들이 그 밖에 있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고 합니다. 따라서 청교도들은 우리가 우리밖에 구원의 확신을 가지나 그것이 언제나 밖에 있는 것만이 아니라 그 약속을 믿는 사람의 마음 속에는 그리스도가 들어와 내주하신다고 설명했습니다.
4-2 Secondary Ground : Inward Evidences Verified by Syllogisms
청교도들은 내적인 구원의 확신을 요1 2:3의 말씀을 근거해서 찾았는데 ?우리가 알거니와 …? 우리가 안다는 것을 안다고 설명했습니다. 바로 이 구절로부터 실천적 삼단논법 (우리의 믿는 신앙이 어떤 근거에서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것인가를 설명하는 과정) 이라는 중요한 신학적 개념이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즉, 우리의 거룩함의 열망을 아주 실제적인 구원받은 증거로 말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생활에 드러나는 거룩한 성화의 삶을 통해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 실천적 삼단논법이 주는 중요한 논증은 선행과 성화의 열매를 입증함으로써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확신을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을 따라 성령 안에서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곧 “성경에 따라 구원 얻는 믿음을 가진 사람은 성화의 삶을 살게 하는 성령의 증거를 마음에 가졌다라고 말하고 그 명제에 근거해 하나님의 은총을 받았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게 되는데 왜냐하면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 선행과 거룩한 삶을 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마음 속에 구원얻는 믿음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청교도들도 자신의 선행과 삶의 열매를 통해서만 구원의 확신을 가지는 것은 신학적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자유의지로 그것을 행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성령의 열매라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4-3 Secondary Ground #2 : The Witnessing testimony of the Spirit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의 구원을 입증하시고 확증해 주신다는 이 교리는 그리 간단하게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굉장히 신비로운 문제로 청교도들도 논쟁했던 부분인 것입니다. 성령의 내적 증거에 대한 두 가지 견해로 1) 일부 신학자의 일치된 의견은 성령의 증거란 실천적 삼단 논법에서의 실천적 열매와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바로 롬 8: 15~16을 근거로 하나님의 약속과 우리의 선행과 구원받은 열매를 합함으로서 결론에 이른 것입니다. 왜 그들이 이 성령의 내적증거를 우리의 선행과 더불어 생각했냐하면 당시 퍼져있던 신비주의나 반율법주의 등에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서 분명한 표식(은총받은 열매)으로 정의해줄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성령께서 나에게 직접적으로 말했다?는 것을 구원의 확신으로 드는 위험을 경계하여 분명한 삶의 변화를 요구한 것이다. 2) 사무엘 레드포드, 토머스 굳윈 등의 학자는 롬 8:15~16의 성령의 내적 증거는 보다 승화되는 개념으로 설명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청교도가 다루지 않는 것으로 구원의 확신을 하나님이 날마다 우리를 다루실 때 우리에게 언제나 확신을 준다고 여깁니다. 저는 예전에 아내의 사랑을 확신하고 결혼을 했는데 날마다 그 증거를 점점 더 많이 가짐으로써 더욱 깊은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을 통해 성도의 확신도 날마다 점진되고 확장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그릇을 더욱 크게 하십시오. 우리의 삶 속에 풍성한 열매가 가득하게 해야 합니다. 그분의 자녀임을 확신하고 그 가운데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승리의 궁극적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라는 구체적 도구를 사용하십니다. 칼빈은 “우리 마음의 불치병을 그리스도께서는 치유하시기 원하신다. 그래서 충만한 믿음을 그의 약속 안에서 가지게 하셨다”고 말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이 삼위일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과 확신에 관한 모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