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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강의

방언에 관련하여서

방언에 관련하여서


노승수 목사


이사야서 28:10-11
대저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되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는구나 하는도다 그러므로 더듬는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그가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 (Isa 28:10-11 NKR)

개정역은 이렇게 번역하고 있지만 사실 이 본문의 뉘앙스는 잘 살지 않는다. 본문의 뉘앙스를 살려 번역한 쉬운성경의 경우,

또 그들은 여호와의 예언자를 비웃으며 ‘단순한 말을 똑같은 방법으로 되풀이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Isa 28:10 AEB)

라고 번역했다. 이것은 개정역이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되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는구나"라고 번역한 부분이 이사야의 의도에서는 "의성어"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직역은 그런 점에서 이 본문의 뉘앙스를 살리지 못한다.

히브리어 음역본인 BHT를 인용해보면,


Kî caw läcäw caw läcäw qaw läqäw qaw läqäw zü`êr šäm zü`êr šäm (Isa 28:10 BHT)


굳이 우리말 소리로 옮기자면, "차우 라차우 차우 라차우 카우 라카우 카우 라카우 즈에르 삼 즈에르 삼"인데 예언자의 예언의 소리가 마치 의미없는 주술을 반복하는 주술사의 주문처럼 여겨지는 것을 이렇게 의성어로 표현한 것이다. 이는 예언자에 대한 조롱을 담고 있다. 술주정처럼 들리기도 한다.


왜냐하면 이 단락 그러니까 7-13절의 단락은 거짓 제사장과 선지자들에 대한 예언으로서 제사장과 선지자들이 술에 취해 헛된 예언과 판결을 해대는 것을 비난하는 문맥이다.


그 다음 11절에 이런 이유로 주님께서 이런 더듬는 입술과 다른 언어로 이 백성에게 말씀하실 것이라고 말하는 데 이는 정말 그렇게 예언을 주시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교훈의 말씀을 듣지 않는 백성에게(사 28:12) 제사장과 선지자의 타락으로 이렇게 주절대는 것처럼 예언을 주어서 못알아 듣게 하고 덫에 걸리게 하겠다는 예언이다.


그런데 이 이사야 28:10-13을 요약해서 바울이 방언을 설명하는 고린도전서 14장에서 인용하고 있다. 그게 14:21이다. 인용해보면,


NKR 1 Corinthians 14:21 율법에 기록된 바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방언을 말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이 여전히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1Co 14:21 NKR)


그래서 다음절에서 이 표적이 불신자 곧 불신앙의 사람들에게 주어진 표적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21절은 너무 얌전하고 신사적으로 "다른 방언"이라고 번역했지만 인용인 이사야 28장의 분위기는 술취해 주절거리는 "꼬인 혀"이다. "다른 방언"이란 신약에서 여기만 등장하는 데 "헤테로글로소스"로 직역하면 "다른 혀"이다. 선지자와 제사장의 그런 주절거림같이 믿지 않고 불신앙의 태도를 보이는 이스라엘에게 이와같이 예언을 들려주어서 알아듣지 못하게 하겠다는 내용의 본문이다.


그것을 바울이 인용해오면서 하는 말이므로 "다른 방언"과 "다른 입술"은 이사야식으로 표현하자면, "차우 라차우 차우 라차우 카우 라카우 카우 라카우 즈에르 삼 즈에르 삼"인 셈인데, 이는 제사장과 선지자의 주절거림같이 믿지 않는 자들에 대해서 알아듣지 못하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표적이다.


이런 말을 해대니, 바울이 23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무식자나 불신자가 와서 이들의 이런 기도를 보면서 미쳤다고 말하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27절 이하 세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첫째, 최대 세 사람 정도만 말하게 하라. 
둘째, 차례대로 하게 하라. 
셋째, 한 사람은 통역을 하라.


통역이 없다면 다시,


첫째, 교회에서 잠잠하라.
둘째, 혼자서나 하나님께만 말하라.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다. 질서대로 하고 품위있게 하라.


그럼 고린도전서 14장에서 방언은 불신자들을 위한 표적이라고 할 때, 이 불신자는 누굴 가리킬까? 교회 밖에서 미쳤다고 하는 자들? 미쳤다 하는 이들에게 어떻게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의 표징이 될 수 있을까? 그럼 누굴까? 이사야서대로 이스라엘 공동체 가운데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한 표적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통역되게 하라고 하고 할 수 있으면 예언으로 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나마도 이젠 성경이 오므로 다 그쳤다. 지금도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계속하는 것은 스스로 완악함을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