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새인들은 비열했다. 온갖 고상을 다 떨며 돈을 사랑할 줄은 알아도 이웃을 사랑할 줄 모른다. 고상한 체 하며 뒤에서 호박씨 까는 성격을 주님께서는 회칠한 무덤이라 하셨다.
차라리 창기나 세리는 회개의 기회라도 있지만 바리새인처럼 회칠로 자기 본심을 감추는 부류는 자기는 다 감춘 줄 아는데 자기만 모를 뿐 남들은 다 안다는 사실을 모른다. 우리 속담에 고쟁이를 12벌 입어도 보일 건 다 보인다고 했다. 바리새인의 의로는 천국에 못 간다.
처방전은 좀 자기 인생에 솔직해지고 삶을 던지면서 사는 것이다. 그런 내던져짐이 없이 자기체계에 갇히면 평생 주를 못 만난다. 주께 마음도 쏟을 줄 모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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