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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수의 강해설교/유다서강해

사랑하는 자들을 위한 마지막 권면(유 1:17-25)

사랑하는 자들을 위한 마지막 권면(유 1:17-25)

 

노승수 목사

 

[17]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의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 [18]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치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하였나니 [19] 이 사람들은 당을 짓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은 없는 자니라

 

[20]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21]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22]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23]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이라도 싫어하여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

 

[24]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자 [25]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만고 전부터 이제와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1. 멸망에 이를 자들의 특징(17-19)

사도들이 미리 말한 것이란 무엇보다도 거짓 교사의 출현에 대해서 미리 예언한 것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이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경건치 않는 정욕대로 행한다고 했습니다. 제가 경건에 대해 여러차례 설명을 드렸지만 경건이란 성경을 좇는 삶을 말합니다. 경건치 않은 정욕대로 행한다는 말은 자기 마음에 있는 생각대로 행하는 자를 말합니다. 그들을 스스로 성령을 소유했다고 생각했으며 자신을 그렇게 신령한 자라고 하지만 성경을 따르지 않고 정욕을 따르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기롱하는 자'란 비웃는 자라는 뜻인데, 특히 계시 즉 하나님의 말씀과 신앙에 적대감을 가진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신령한 자로 이해하고 계시를 우습게 여기고 자기 마음에서 나오는 생각을 계시인 성경보다 우위에 두는 자들입니다. 이렇게 육에 속하고 그 안에 성령이 없는 사람의 전형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당을 짓는 것입니다. 내 사람, 내 세력을 만드는 것이지요. 시쳇말로 '~~빠'라는 것 있지요? 흔히 어떤 지도자나 사람을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당을 짓는 무리나 그것을 따르는 무리는 다 같은 무리입니다. 여러분 이단의 전형적인 특징이 무엇입니까? 강력한 내부 결속입니다. 이것이 바로 당짓는 특징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섹터가 되는 것이지요. 교회의 보편성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당짓는 무리의 전형적인 특징이며 이러한 자는 성령이 없는 자입니다. 육에 속한 자입니다. 오늘 본문이 이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혹시 내게는 이런 특징이 없습니까? 자신의 삶을 잘 돌아보아야 겠습니다.

 

2. 구원에 이를 자들의 특징(20-23)

여기서는 거짓 교사의 위험 속에서도 올바른 삶의 태도를 취할 것을 요구합니다.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건축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지극히 거룩한 믿음이란 4절에 나타난 것처럼 '홀로 하나의 주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유일한 기초는 바로 '그리스도 예수가 바로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누구도 대신하거나 여기 저기서 그리스도가 나타났다고 말하는 적그리스도의 미혹에 빠져서는 안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하여줍니다. 이 바탕위에 자기를 그리스도의 교회로 건축하는 것입니다.

 

또한 기도하는 자는 모두 성령안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다른 보혜사로 그리스도께서 보냄을 받고 그가 가르치신 것을 기억나게 하며 그리스도의 것을 가지고 우리에게 알리시는 분이며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할 때, 우리를 위해 탄식하여 기도하시는 분이십니다. 당연 하나님의 사람들은 성령을 따라 기도합니다. 성령을 따라 기도한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다. 제가 앞서 설명드린대로 성령께서는 자기를 드러내시기 위해서 오시지 않고 그리스도를 드러내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당연 자기의 것으로 말씀하시지 않고 그리스도의 것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의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내적으로 조명하여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를 깨닫게 하는 일을 주된 사역으로 행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안에서 기도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자기를 지킵니다. 강조점은 '하나님의 사랑안에서'에 있겠지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 4:16) 여기서 사랑안에 거한다는 것은 하나님 안에 거한다는 말씀입니다. 말씀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고 그 안에 거함으로 자신을 지키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 마지막은 영생에 이르는 것일텐데, 그 때까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고 권면합니다. 주님은 마지막에 우리에게 긍휼을 나타내시는 분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거짓 교사의 거짓 교훈으로 그 믿음이 약하여져서 흔들리는 자들에 대해서도 권면하고 그들을 긍휼히 여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컨대,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을 의심하는 자들이 있더라도 그들도 긍휼히 여기라고 합니다. 일부 수사본에는 '의심하는 자들을 확신시키십시오'로 되어 있습니다. 믿음에서 넘어진 자들을 돌아보라는 것이지요.  또는 더 나아가 불구덩이에 빠진 것 같이 믿음에서 떠난 자들을 끌어내어 구원하라고 합니다. 23절 하반절이 일반적으로 읽어서는 이해하기 힘든데요. 당시의 사람들은 죄인들은 자신들에게 속한 모든 것을 더럽힌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더럽힌 옷이라도 싫어하며'라는 표현은 이 죄에 빠진 사람의 더러워진 속옷까지라도 미워하라는 뜻입니다. 바울이 권면하듯이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려야'(살전 5:22)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불에 빠진 사람, 의심하는 자들을 두려워하면서 불쌍히, 긍휼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긍휼히 여기라는 뜻이지요. 나는 혹시 사람을 미워하면서 죄는 가볍게 여기고 있지 않습니까? 죄를 지은 사람을 돌팔매질로 무자비하게 정죄하면서, 자신의 날마다 짓는 죄에 대해서 심상하게 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3. 마지막 찬송(24-25)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십니다. 여기서 '거침이 없게 한다'는 표현은 비틀거리지 않고 넘어지지 않게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셔서 넘어지지 않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나는 믿음에서 선자입니까? 너희로 그 영광 앞에서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즐거움이십니다. 웨스트민스터소요리문답 제 1 문은 인생의 제일되는 목적을 '하나님을 영화롭게하고 그를 인해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개혁신학자들은 기독교신앙을 기쁨과 즐거움의 신앙이라고 합니다. 육체적 기쁨과 즐거움이 아니라 하나님 그 자체가 우리의 즐거움이 되는 신앙 말입니다. 우리가 주님앞에 서게 될텐데 즐거움으로 서게 될 것입니다. 그분이 누구이십니까?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이시며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마고 전부터 이제와 세세에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에 이 찬송은 너무 아름답지 않습니까? 주님의 성호와 그에 있을 놀라운 영적 풍요들 주님의 이름을 찬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