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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신학/성경자료

성경이 우리 손에 들어오기까지

성경이 우리 손에 들어오기까지 
 

변종길(고신대학교)  


1.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이 세상에는 수많은 책들이 있다. 각 나라와 민족들이 각 시대마다 각각의 언어로 출판해 온 책들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도 많고 다양하다. 그러나 이 중에서 항상 베스트 셀러의 자리를 지켜오고 있는 책은 성경이다. 성경은 지금도 수억 명의 사람들이 날마다 읽고 묵상하며 그 안에서 힘을 얻고 있다. 보통 어지간히 재미있는 책도 두 번, 세 번 읽으면 지겹고 싫증이 나지만 유독 성경만큼은 아무리 읽어도 싫증이 나지 않으며, 읽으면 읽을수록 재미있고 깊은 맛이 난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경을 가리켜 ‘가장 좋은 책’ 또는 ‘책 중의 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의 ‘특별한 책’이나 ‘책 중의 책’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그저 사람이 쓴 책 가운데서 가장 훌륭한 책 정도가 아니라, 그야말로 유일무이한 특별한 책이기 때문이다. 곧 성경은 비록 사람들이 기록하기는 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성경은 다른 인간적인 책들과는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독특한 책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다른 세상적인 책들과 분명히 구별되는 특징이 있다. 그것은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한다는 것이다(딤후 3:15). 세상의 책들 중에는 재미있고 유익하며 우리에게 지혜를 주는 책들도 많다. 예를 들어 중국의 고전 중에 「삼국지」같은 것은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로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그 안에서 제갈공명의 신묘한 지혜와 지략, 유비의 넓은 덕, 그리고 세 의형제의 의리를 배울 수 있다. 그렇지만 「삼국지」를 아무리 읽고 읽어도 발견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구원에 이르는 지혜’이다. 사람이 어떻게 하면 구원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 「삼국지」는 가르쳐 주지 않는다. 또한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어떤 과목이나 책들 가운데서도 ‘구원’에 대해 가르쳐 주는 것은 없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만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뿐만 아니라 성경은 우리의 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지 교훈을 주며, 옳은 길을 가게 하며, 우리로 하여금 선한 일을 행하도록 준비시킨다(딤후 3:16). 그래서 성경은 우리의 신앙과 생활에 필요한 절대적인 표준으로서, 평생 동안 가까이 두고서 늘 읽고 배워야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고 즐거워해야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다(시 1:2). 


2. 성경의 기록 과정 


  그렇다면 이러한 성경이 어떻게 기록되었으며 어떠한 과정을 통해 오늘날 우리의 손에 들어오게 되었을까? 성경은 한 사람이 기록한 책이 아니다. 성경은 약 40명의 사람들이 약 1,500년에 걸쳐 기록한 66권의 책들의 묶음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창세기에서 말라기까지 총 39권으로 되어 있는 구약은 주전 1,400여년경부터 주전 400년경에 이르기까지 천년에 걸쳐서 약 30명의 사람들을 통해 기록되었다. 이에 비해 27권으로 구성되어 있는 신약은 주후 1세기에 약 50년 정도의 짧은 기간 안에 8-9명의 사람들에 의해 기록되었다. 
  성경은 이처럼 오랜 기간 동안 여러 사람들에 의해 기록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한 사람이 기록한 것처럼 놀라울 정도로 내용의 통일성과 조화를 유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성경은 동일한 주제와 목적을 향하여 일관성 있게 나아가고 있다. 이는 곧 죄에 빠진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과 열정이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메시야를 이 땅에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으며, 또한 이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성경은 곧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하는 것이다(요 5:39). 
  이러한 것들을 살펴볼 때 우리는 신구약 66권의 책들을 기록한 배후에는 이 모든 것을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하고 준비하고 인도한 한 ‘연출자’가 있었음을 고백하지 아니할 수 없다. 이 연출자는 다름 아닌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친히 이 모든 성경의 배후에 계셔서 자신의 말씀을 기록할 사람들을 택하시고 준비시키셨으며, 때가 되매 부르셔서 이 말씀을 기록하도록 섭리하셨던 것이다. 이 섭리의 방법은 강제적이거나 이적적인 것이 아니라, 아주 자연스럽고 은밀해서 그 책을 기록하는 사람이 전혀 부자유함이나 부자연스러움을 의식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할 정도였다. 그래서 기록자는 그가 처한 상황에서 자기의 모든 생각과 지식과 언어를 통해 자기 자신의 글을 적는 것처럼 생각했었지만, 실은 배후에 하나님께서 은밀하게 섭리하시고 역사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그 기록한 글에 하나의 작은 오류도 없도록 특별하게 역사하셨을 뿐 아니라, 그 모든 내용과 표현들, 그리고 나아가서 단어 하나 하나와 그 순서들에 이르기까지 완벽하게 하나님의 말씀이 되도록 역사하셨던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성경의 영감’이라고 부른다. ‘영감’(inspiration)은 성경을 기록할 때에 성령께서 특별히 간섭하시고 역사하신 것을 말하며, 오늘날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에 깨우치고 은혜받게 하시는 성령의 ‘조명’(illumination)과는 구별된다. ‘조명’은 완전하지 못하며 오류가 있을 수 있으나, ‘영감’은 성경 기록시에만 역사한 완전한 것이며 오류가 없다. 따라서 성경은 이 세상의 인간적인 작품들과는 구별되는 특별한 책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라”(벧후 1:21; 필자 직역)고 말했던 것이다. 
  성경 기록에 있어서 배후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준비와 섭리를 생각할 때, 성경의 참 저자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고백하게 된다. 이것을 고백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아무리 성경을 읽고 연구해도 유익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개혁 신학에서는 전통적으로 하나님을 ‘제일 저자’(primary Author)라고 불렀으며, 성경 기록에 동원된 기록자들을 ‘제이 저자’(secondary authors) 또는 ‘인간 저자’라고 불렀다. 오늘날 현대 신학자들은 이러한 구별 자체를 아예 언급하지 아니하고 모든 초점을 인간 저자에게 맞추고 있지만, 이것은 성경을 그저 호머의 「일리아드」나 「오디세이아」와 같은 인간적인 작품들로만 보는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우리 신앙의 토대요 기둥일 뿐 아니라, 신앙 생활의 출발이자 또한 마지막인 것이다. 


3. 성경의 인정 과정 


  그러면 신구약 66권은 어떤 과정을 거쳐 하나의 책으로 묶어졌으며, 신적인 권위를 가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되었을까? 곧 이 66권의 책들은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성도들의 신앙과 생활의 유일한 표준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 곧 ‘정경’(正經, canon)으로 받아들여진 것일까? 
  먼저 구약의 경우를 살펴보자. 구약 39권은 전통적인 유대인들의 분류에 의하면 ‘율법’(토라)과 ‘선지서’(느비임)와 ‘성문서’(크투빔)로 나누어진다. ‘율법’은 모세오경을 말하며, ‘선지서’에는 대선지서와 소선지서 및 역사서들이 포함된다. ‘성문서’(聖文書)에는 시편과 잠언, 전도서, 욥기 등이 포함된다. 이 구약 책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신적 권위를 가진 정경으로 받아들여졌다. 예수님은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과 ‘시편’에 자기를 가리켜 기록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할 것을 말씀하셨다(눅 24:44). 또한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가 주후 37년에 쓴 책(Againt Apion)에서 “우리는 22권의 신적 문서들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모세 때부터 아닥사스다 왕까지 되어진 일들이 기록되었다”고 하며, “이 문서들에 있는 글은 어느 누구도 감히 변경하지 못하고 가감하지도 못한다”고 하였다. 여기서 요세푸스가 말한 22권이란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39권과 일치한다. 
  그리고 신약 성경도 기록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대부분 신적 권위를 가진 정경으로 받아들여졌다. 사복음서와 사도행전, 그리고 바울의 13 서신은 1세기말과 2세기초에 별 무리 없이 권위 있는 정경으로 인정되었으며, 소수의 책들만 일부 지역에서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4세기에 와서는 정경 문제가 종결되었다. 367년에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우스가 발표한 부활절 서신에서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과 똑같은 27권을 신약 정경으로 말하였으며, 이어서 397년 아프리카의 카르타고에서 열린 교회회의에서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27권이 정경으로 인정되었다. 그리하여 정경에 대한 논의는 4세기말로서 종결되었으며, 그 후 중세 시대를 지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신약의 정경에 대해서는 사실상 더 이상의 논란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구약 정경의 범위와 관련하여서는 중대한 의견 차이가 있었다. 소위 구약 ‘외경’(Apocrypha)의 문제인데, 원래 히브리어 구약 성경에는 없던 것이 희랍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칠십인역」 번역자들이 유대인들의 작품 몇 개를 함께 번역하여 구약 정경과 함께 나란히 실은 것이 문제의 발단이 되었다. 이것을 주후 4세기의 제롬이 라틴어로 번역함으로써, 구약 외경들이 로마 가톨릭 교회의 정경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러나 이 외경들은 유대인들에 의하여 결코 정경으로 인정된 적이 없었으며, 예수님에 의해서도 인용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은 히브리어 원본 성경에 근거하여 이 외경들을 배척하였는데, 오늘날 개신교가 이 입장을 따르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정경은 우리 인간들에 의해 정경으로 인정될 때에야 비로소 정경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정경은 원래부터 정경으로서의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성경의 自證). 우리 인간은 원래 정경이 아닌 것을 정경으로 만들 수 없으며, 또한 정경인 것을 정경이 아니라고 결정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인간은 그저 원래 그 자체로서 신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는 정경을 ‘인지’하고 ‘인정’하고 ‘고백’할 따름이다. 여기에는 성령의 감동과 역사가 필요했으며(성령의 內的 證據), 경우에 따라 시간이 제법 걸리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마침내 하나님의 말씀은 그 권위와 위엄이 우리 인간에 의해 깨우쳐지고 인정되고 수납되기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기록된 그 순간부터 하나님의 말씀이었고, 그 충만한 권위와 능력을 그 때부터 부단없이 나타내고 증거하면서 우리 인간의 인정과 수납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4. 성경의 전수, 번역 과정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오늘날 우리 한국의 성도들 손에까지 들어오게 되었을까? 성경은 원래 고대 근동 및 지중해 연안의 언어로 기록되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구약 성경은 대부분이 히브리어로 기록되었으며 다니엘서 일부와 에스더서 일부가 아람어로 기록되었을 따름이다. 히브리어와 아람어는 사촌간으로 그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 한편 신약 성경은 모두 다 헬라어로 기록되었다. 물론 마태복음에 대해서는 마태가 원래 히브리어(또는 아람어)로 기록했다고 전해내려 오지만 그 히브리어본은 상실되었으며, 어쨌든 오늘날 우리에게 정경으로 주신 것은 헬라어본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신구약 성경 66권은 많은 사람들이 읽기를 원했기 때문에 기록되자마자 사람들이 이것을 필사(筆寫)하기 시작했다. 옛날에는 아직 인쇄술이 발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이 잉크와 펜으로 일일이 옮겨 적는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이집트의 나일강 유역에서 생산되는 값싼 파피루스(papyrus) 종이에 필사하다가, 4세기 이후에는 양의 껍질을 말려서 만든 종이에다 필사하기 시작했다. 이 양피지(羊皮紙)는 대단히 고급스런 종이로서 버가모 지역에서 많이 생산되었기 때문에, 그 지역 이름을 따서 ‘페르가멘트’(pergament)라고 불리었다. 그리고 처음에는 헬라어 글자를 대문자로 썼기 때문에, 이 당시의 사본들을 우리는 ‘대문자 사본’(uncials)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4세기 이전의 사본들은 그 재질이 파피루스로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파피루스 사본’(papyri)이라고 부른다. 그러다가 9세기경에 간편하고 쓰기 쉬운 소문자 알파벳이 발견되었으므로 이전의 책들을 소문자로 옮겨 적게 되었다. 그래서 소문자로 기록된 헬라어 사본을 우리는 ‘소문자 사본’(minuscules)이라고 부르는데, 그 대부분이 비잔틴 제국 내에서 사용되었다 하여 ‘비잔틴 사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다가 15세기 중엽에 독일의 구텐베르크(Gutenberg)가 인쇄술을 발명한 후(물론 최초의 발명은 한국에서 있었지만), 신약 성경을 활자로 인쇄하게 되었다. 이렇게 인쇄되어 나온 성경을 우리는 ‘편집판’(editions)이라고 부르는데, 1516년에 에라스무스(Erasmus)가 편집한 것이 최초의 헬라어 신약 성경 편집판이다. 
  한편, 히브리어로 된 구약 성경과 헬라어로 된 신약 성경은 다른 언어를 쓰는 민족들을 위하여 번역될 필요가 있었다. 특히 히브리어는 팔레스틴을 중심으로 한 유대인들에게만 국한되어 사용되는 언어였기 때문에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기 위해서는 번역이 필요했다. 특히 지중해 연안의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디아스포라’(diaspora)의 유대인 2,3세들을 위해 구약 성경 번역이 시급히 요청되었다. 그래서 주전 3세기경에 구약 성경이 헬라어로 번역되었는데, 우리는 이것을 칠십여 명의 사람들이 번역했다고 해서 「칠십인역」(Septuagint)이라고 부른다. 이 「칠십인역」은 경우에 따라 히브리어 원문에 충실하지 않고 벗어나는 것도 있지만, 헬라어라는 언어의 편의성 때문에 초대 교회 성도들이 많이 사용하였다. 그러나 「칠십인역」 번역자들이 구약을 번역할 때 유대인들의 문학 작품인 외경들 몇 편을 함께 번역했기 때문에 외경이 기독교회에 들어오는 계기를 제공해 주었다는 것이 두고두고 큰 문제로 남게 된다. 
  신약 성경이 원래 기록된 헬라어는 비교적 넓은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고 사용하는 언어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헬라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을 위해 번역이 필요했다. 그래서 2세기 이후로 신약 성경이 번역되기 시작했는데, 그 중요한 ‘역본’(versions)으로는 수리아 역본들과 라틴어 역본들, 아르메니아 역본들과 콥틱 역본들 등이 있다. 특히 4세기말에 교부 제롬(Jerome)이 라틴어로 번역한 「벌게이트」(Vulgate) 역본은 신구약 성경뿐만 아니라 「칠십인역」의 외경까지도 포함하고 있으며, 또 어떤 부분은 너무 성급하게 번역하였다고 비판받기도 하지만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공적 권위를 갖는 성경으로 받아들여져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 
  종교개혁 이후에는 그 동안 교회에서 사용되던 라틴어 성경 대신에 각기 모국어로 번역하는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게 되었다. 그 이유는 그저 교회가 가르치는 교리를 맹목적으로 따르고 순종하던 수동적 신앙에서 벗어나,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사람들이 직접 읽고 깨우치고 또한 그 말씀을 따라 살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종교개혁이 가져다 준 최고의 선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교회라는 창고에서 끄집어내어 각 성도의 가정과 각 사람의 책상 앞에 갖다 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종교개혁 이전에 영국의 존 위클리프(1330경-1384)가 이미 신구약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였으며, 종교개혁자 루터는 1522년에 신약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여 독일 민족에게 큰 선물을 안겨 주었다. 그 후 윌리엄 틴데일의 영어 성경 번역에 이어 1611년에는 유명한 ‘흠정역’(King James Version) 영어 성경이 출간되어 그 후 300여년 동안 영어권 세계의 기독교인들로부터 사랑받아 왔다. 그 외에도 오늘날에는 많은 영어 번역 성경들이 나와 있다. 
  한편 우리 나라에 성경이 최초로 전래된 것은 1816년 영국 군함의 맥스웰 함장이 가지고 있던 대형 성경을 조선의 조대복 첨사에게 준 것이었다. 그 후 1832년에 독일인 선교사 귀츨라프 목사가 조선 백령도 부근에 와서 한문 성경을 대량으로 배포하였다. 그러다가 성경을 우리말로 번역한 최초의 선교사는 스코틀랜드의 존 로스(John Ross) 목사였다. 그는 만주에 있으면서 조선 청년 이응찬, 서상륜 등의 도움을 얻어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을 번역하여 1882년에 간행하였다. 이것이 우리 나라 최초의 한글 성경이다. 1884년에는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이 간행되었고, 1887년에는 「예수셩교젼서」라는 신약 전권이 간행되었다. 이것을 흔히 「로스 번역」이라고 말한다. 
  만주에서 성경 번역이 이루어지자 조선인들이 그 한글 복음서를 짊어지고 전국 곳곳을 다니면서 판매하였다. 이렇게 성경을 판매하면서 보급한 사람을 우리는 ‘매서인’(賣書人)이라고 부르는데, 이들을 통하여 우리 나라에 성경이 급속도로 보급되게 되었다. 그리하여 한국 교회는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이전에 이미 성경을 읽고 감화를 받아 세례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한국 교회는 그 출발부터 하나님의 말씀 위에 든든히 세워져서 성경과 함께 발전하는 교회가 되었던 것이다. 
  그 후에 체계적인 성경 번역 작업이 이루어져 1906년에 최초의 공인역본 「신약젼서」가 나오게 되었으며, 이어서 1911년에는 「구약젼서」가 나오게 되었다. 이것들은 다시금 각각 개역되어서 1938년에 개역판 「성경젼서」가 나왔으며, 해방 후 새로운 맞춤법에 따라 개역되어 1952년에 새로이 출판되었다. 그러다가 1962년에 다시 개정된 「개역 한글판」이 나와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처럼 성경이 오늘날 우리 손에 들어오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었으며, 수많은 사람들의 헌신적인 수고와 노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 가운데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보존하고 그 권위를 회복시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전해 주기 위해 위험한 국경을 넘나들기도 하고, 때로는 붙잡혀서 투옥되기도 하였으며 게 중에는 목숨을 잃은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지구상의 거의 대부분의 지역에 자신의 말씀인 성경을 보급되게 하시고, 그 말씀을 통해 많은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고 계신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히 4:12), 어느 곳에서든지 진지하게 그 말씀을 읽고 듣는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허락해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날 교회의 외적인 화려함 가운데서 자칫 소홀히 하기 쉬운 ‘성경’의 의미와 가치를 다시 생각하고, 옛날 믿음의 선배들이 가졌던 성경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이 시대에 다시금 불러일으키도록 힘써야 하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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