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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신학/변증학

종교 다원주의와 복음전도

종교 다원주의와 관련된 두 가지 핵심적 논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종교 다원주의는,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성경적 진리의 독특성과 구원자 예수의 배타적 유일성에 대한 일관된 신념에 반대한다.
 
둘째, 종교 다원주의는, 모든 종교는 본질적으로 동일하며 다같이 삶에 대한 타당성있는 관점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종교 다원주의는, 진리는 하나 (Sinular) 라는 주장을 배격하여 진리는 여러 개 (Plural) 라는 뜻에서 다원적이다. 또한 진리는 절대적이거나 유일하지 않고 상대적이라는 뜻에서 상대주의의 하부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종교 다원주의는 20세기에 비로소 나타난 것이 아니다. 사도바울이 유럽선교를 시작하던 그 때에도 이미 다원주의의 환경이었다. 초대교회 때 이미 이스라엘 밖의 상황은 매우 다원주의적이었다. 
 
종교 다원주의의 상황에서 복음의 유일성을 가진 교회가 가야 할  대안적 선택에 대하여 마이클 그린의 탁월한 해결점을 보자.
 
'초대교회가 직면했던 상황은 고대 신앙의 다양성으로 인하여
오늘날보다 더욱 심했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지혜롭고 용감했다.
초대교회는 기독교 복음 아닌 다른 신앙들을 비난하지 않았다.
그리고 초대교회는 할 수 있는 모든 힘과 설득력을 동원해서 예수를 전파했다.' (알리스터 맥그라쓰, 복음주의와 기독교지성, p.222) 
 
현대 교회는 초대교회를 본받아 다음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첫째, 다원주의 상황에서 다른 종교를 비난하는 것은 무례하고 무익하여 복음전도에 백해무익하다. 이런 점에서 보수주의 교회들이 다른 종교를 비난하는 태도는 가장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
 
종교다원주의의 상황에서 다른 종교나 신앙을 함부로 비난하는 것은 기독교 복음전파를 가장 어렵게 만들고 기독교를 고립시키는 일이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 다른 종교 비난의 태도는 자신의 신앙적 입장을 소위 '근본주의' 신앙으로 스스로 분류하는 일이 된다.
 
둘째, 다원주의의 상황이므로 전도가 어렵다는 것은 핑계이다. 사람들이 다원주의를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복음전도를 힘써 하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것은 선교적 상황인식에 대한 오해이다. 
 
마치 복음전도의 환경이 초대교회때에는 지금보다 더 용이했으며 지금 21세기에는 사람들이 복음의 배타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훨씬 어렵다는 것처럼 말을 하지만, 그것은 핑계에 불과한 것이다. 초대교회때는 복음전도를 목숨과 맞바꾸면서 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