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1장 관련 질의 응답
질문1. 창세기 11장 후반에 셈의 후손들이 쭉 열거되어 있는데 제가 계산을 해보니 아브라함이 태어 났을 때도 셈이 생존해 있고 데라가 태어날 때 까지도 노아가 생존해 있는 것 같은데 이게 맞나요?
답변1 (김창훈): 창세기 11장의 나이를 표로 그려서 계산해보면, 아브람이 태어났을 때에 노아, 셈, 아르박삿을 비롯해서 데라까지 모든 조상들이 다 생존해 있었습니다. 가장 빨리 죽은 조상이 벨렉(209)이고, 그 후에 나홀(119) 그리고 르우(207)가 사망하였습니다. 노아는 아브람이 60세 때 사망했다고 보여집니다. 셈은 아브람이 110세 때 사망하였습니다. 아브람은 175세에 사망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창 25:7), 오히려 그의 조상 중 에벨은 430세에 사망함으로써 아브람보다 30년 후에 사망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오래전 조상들이 생존해 있었지만, 서로 교류는 거의 없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수백 년을 살면서 계속해서 자녀를 낳았고, 그 자녀들이 또 자녀를 낳았고, 하면서 인구가 수천, 수만에서 아마 수십 만으로 인구가 늘어나면서 곳곳 지방으로 흩어져서 거주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린 표를 첨부합니다.
답변2 (강화구) :간단하게 나마 살펴보자면...우선 질문하신 분의 질문이 오랜 (아주 오랫동안..)이슈거리였음에는 틀림이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LXX나 SP에서 조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텍스트에 수정을 가한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은 사본상의 문제를 종합할 때 MT가 가장 근거가 있기 때문에 다른 두 사본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해결책들은 좋은 방법이 아닌 것같습니다. 과연 390년의 시간으로 노아와 아브람을 연결하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숫자상으로는 이상해 보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창세기에서 계보는 역사적이지만 (즉, 계보의 기술 방식들이 창세기의 내용을 더욱 역사적으로 이해하도록 하기는 하지만..), 역사를 전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일차적인 목적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계보는 보다 신학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별히 1-11장 안에서 5장과 11장의 계보가 연결되어 있고 비교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둘 사이를 함께 고려함으로 신학적인 의도들을 더 정확히 짚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뭐 한 두 가지 지적하자면, 두 개의 계보는 아담-노아, 노아-아브람이라는 창세기의 주요 인물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데 모두 10대라는 틀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볼 때 조심스럽게 나마 두 계보가 어떤 목적 (혹은 고대인들의 족보 기술 방식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겠네요)에 따라 10대에 맞춘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마 1장에서 14라는 숫자를 맞추기 위해서 계보에서 빠진 사람이 존재하는 것처럼 1-11장 안에 등장하는 계보에 있어서도 빠진 사람의 존재에 대해서 인정하는 것이 좀 더 안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두번째 예를 들면, 5장도 11장도 한 사람 한 사람 계보를 기술하는 일정한 패턴이 있는데, 11장에서의 특징은 노아의 죽음 이후 누군가의 죽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데라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죽음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이는 창세기의 저자가 11장의 족보를 기록하면서 숫자 맞춤이나 역사 서술 자체 보다는 노아로부터 시작된 역사가 아브람에게로 달려가고 있음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죽음의 행렬이 아니라 생명의 행렬로서 말입니다. 종합적으로 생각해 볼때, 아브람이 태어났을 때 셈이 여전히 살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좀 무리가 있을 듯합니다. 고대 근동의 역사를 보더라도 이는 무리가 따릅니다. 주전 2100년기 초에 아브람이 태어났다고 가정할 경우 노아의 홍수는 주전 2600년기라고 해야 하는데 이는 고대 근동의 역사에 비추어 볼 때 거의 가능성이 없는 견해라고 보입니다. 훨씬 더 긴 세월이 필요했을 것같구요...다만 성경은 어떤 목적에 따라 그 모든 역사를 기술하지 않고 패턴과 신학적인 목적을 이루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같습니다. 그러나 이 계보에서 꼭 집어서 "구속사적" 목적이라고 지나치게 제한할 필요는 없을 것같습니다.
답변2 (강화구) :간단하게 나마 살펴보자면...우선 질문하신 분의 질문이 오랜 (아주 오랫동안..)이슈거리였음에는 틀림이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LXX나 SP에서 조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텍스트에 수정을 가한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은 사본상의 문제를 종합할 때 MT가 가장 근거가 있기 때문에 다른 두 사본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해결책들은 좋은 방법이 아닌 것같습니다. 과연 390년의 시간으로 노아와 아브람을 연결하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숫자상으로는 이상해 보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창세기에서 계보는 역사적이지만 (즉, 계보의 기술 방식들이 창세기의 내용을 더욱 역사적으로 이해하도록 하기는 하지만..), 역사를 전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일차적인 목적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계보는 보다 신학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별히 1-11장 안에서 5장과 11장의 계보가 연결되어 있고 비교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둘 사이를 함께 고려함으로 신학적인 의도들을 더 정확히 짚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뭐 한 두 가지 지적하자면, 두 개의 계보는 아담-노아, 노아-아브람이라는 창세기의 주요 인물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데 모두 10대라는 틀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볼 때 조심스럽게 나마 두 계보가 어떤 목적 (혹은 고대인들의 족보 기술 방식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겠네요)에 따라 10대에 맞춘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마 1장에서 14라는 숫자를 맞추기 위해서 계보에서 빠진 사람이 존재하는 것처럼 1-11장 안에 등장하는 계보에 있어서도 빠진 사람의 존재에 대해서 인정하는 것이 좀 더 안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두번째 예를 들면, 5장도 11장도 한 사람 한 사람 계보를 기술하는 일정한 패턴이 있는데, 11장에서의 특징은 노아의 죽음 이후 누군가의 죽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데라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죽음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이는 창세기의 저자가 11장의 족보를 기록하면서 숫자 맞춤이나 역사 서술 자체 보다는 노아로부터 시작된 역사가 아브람에게로 달려가고 있음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죽음의 행렬이 아니라 생명의 행렬로서 말입니다. 종합적으로 생각해 볼때, 아브람이 태어났을 때 셈이 여전히 살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좀 무리가 있을 듯합니다. 고대 근동의 역사를 보더라도 이는 무리가 따릅니다. 주전 2100년기 초에 아브람이 태어났다고 가정할 경우 노아의 홍수는 주전 2600년기라고 해야 하는데 이는 고대 근동의 역사에 비추어 볼 때 거의 가능성이 없는 견해라고 보입니다. 훨씬 더 긴 세월이 필요했을 것같구요...다만 성경은 어떤 목적에 따라 그 모든 역사를 기술하지 않고 패턴과 신학적인 목적을 이루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같습니다. 그러나 이 계보에서 꼭 집어서 "구속사적" 목적이라고 지나치게 제한할 필요는 없을 것같습니다.
Wenham, Gordon J. Vol. 1, Word Biblical Commentary: Genesis 1-15. Word Biblical Commentary. Dallas: Word, Incorporated, 2002.
Smith, James E. The Pentateuch. 2nd ed. Joplin, MO: College Press Pub. Co., 1993.
답변3 (갈릭) : 먼저 성경의 연대기를 대할 때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원칙이 있습니다. 이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창세기 5장과 11장의 족보는 연대측정에 사용되도록 의도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그 두 족보를 연대측정에 이용한 예가 없습니다.
특히 아브라함 이전의 이름들을 부분적으로 골라서 기록한 것을 마치 완전한 전체의 기록으로 여기는 것은 문자지상주의에 빠지는 오류를 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있어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큰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큰 사건들 사이의 간격을 두 족보가 채워주고 있습니다. 이 두 족보는 연대기를 위한 것이 아닌,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담부터 노아까지 10대, 셈부터 아브라함까지 10대(혹은 노아부터 데라까지)로 맞추고 있습니다.
그들의 수명을 기록해 놓은 것은 그것을 더해서 연대를 계산하라고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창세기 5장의 족보에서 수명을 기록한 것은 홍수 이전에 인류가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를, 그리고 11장의 족보는 홍수 후에 인류의 수명이 급격히 줄어들었음을 보여줍니다.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모든 개인들의 이름을 일일이 기록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둘째, 성경의 족보들은 중요하지 않은 이름들은 빈번하게 생략해버립니다. 또는 저자의 기록 목적상 생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의 생략의 법칙은 항상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 1장의 예수님의 족보에서도 생략된 부분이 있습니다. 8절에 요람과 웃시야 사이에 세 사람의 이름(아하시야, 요아스, 아마샤)이 생략되어있습니다. 11절에도 요시야 다음에 여호야김이 생략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역대상 6:3-14에서의 아론 자손의 족보와 에스라 7:1-5의 아론자손의 족보를 비교해보면, 에스라서의 족보에서 6명의 이름(아마랴, 아히둡, 사독, 아히마아스, 아사랴, 요하난)이 연달아 생략된 것을 보게 됩니다.
셋째, 히브리어 의 “벤(아들)”은 아들 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손자, 자손들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5장과 11장에서 “누가 누구를 낳았다는 것은 그것이 직계후손이든, 먼 후손이든 상관없이 쓸 수 있는 것입니다.
또 다른 성경의 예를 들면, 역대상 23:15,16, “모세의 아들은 게르솜과 엘리에셀이라 게르솜의 아들 중에 스브엘이 족장이 되었다”고 되어있습니다. 어떻게 모세의 손자가 다윗 시대에 살고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역대상 26:31, “헤브론 자손 중에 여리야가 그 세계와 종족대로 헤브론 자손의 족장이 되었더라.” 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리야는 레위의 증손입니다(레위>그핫>헤브론>여리야). 그런데 어떻게 다윗의 시대에 요직을맡을 수 있을까요?
에스라 8:1-2, “… 비느하스 자손(아들들) 중에서는 게르솜이요, 이다말의 자손(아들들) 중에서는는 다니엘이요, 다윗 자손(아들들) 중에서는 핫두스요”에서, 여기서 만일 족보에 생략이 없다고 한다면 아론의 증손(게르솜)과 아론의 손자(다니엘)와 다윗의 아들(핫두스)이 에스라와 함께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것이 됩니다.
넷째, 의미관계상 꼭 필요해 보이는 설명구절조차도 저자는 독자의 지식에 맡기고 과감하게 제거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독자들이 간격을 메꿀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저자가 생각하고있는 당시의 독자들은 저자의 의도를 알고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예로, 역대상 1:1, “아담, 셋, 에노스, 게난, 마할랄렐, 야렛, 에녹, 므두셀라, 라멕, 노아, 셈, 함, 야벳” – 이것이 족보인지, 아닌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저자는 전혀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만일 독자가 창세기를 읽었다면, 아담에서 그 계보가 노아까지 미치는 것과, 셈, 함, 야벳은 형제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뿐입니다.
또한, 대상 1:36, “엘리바스의 아들은 데만과 오말과 스비와 가담과 그나스와 담나와 아말렉이요”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부분만 읽게 되면, 데만부터 아말렉까지 다 엘리바스의 아들이라고 생각하게 될 겁니다. 하지만 창세기 36:11,12절을 보게 되면, 데만부터 그나스까지는 엘리바스의 아들들이지만 딤나는 엘리바스의 첩이고 아말렉은 엘리바스가 딤나에게서 낳은 아들임을 알 수있습니다.
출애굽기 6장에 나오는 모세와 아론의 족보도 압축되었음을 알 수있습니다. 왜냐하면, 야곱부터 모세까지 4대만 내려온다는 것은 야곱부터 여호수아까지의 족보가 11대임을 비교하게 되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노아와 아브라함을 동시대로 놓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이것은 성경에 대한 무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위의 도표도 계산이 잘 못된 것이 눈에 띕니다. 셈만 보더라도, 100세에 아르박삿을 낳았고, 낳은 후 500년을 더 살았기 때문에 셈은 600년을 산 셈이 됩니다. 그러므로 셈은 아브라함보다 35년을더 살았다는 것이 됩니다. 셈은 홍수 후 몇 안되는 인류 중에 한 사람입니다. 반면에, 아브라함은 인류가 온 지구에 퍼져 살았고, 인류의 문명이 벌써 꽃피웠던 시대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노아와 셈이 그때까지 살아있었다고 믿는다는 것은 무리일 것 같습니다.
*제 글은 William Henry Green의 "Primeval! Chronology"을 참고하였습니다.출처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 아티클은 구글 스칼라에 올려져 있습니다.
http://www.friendsofsabbath.org/Further_Research/e-books/Primeval!%20Chronology.pdf
답변3 (갈릭) : 먼저 성경의 연대기를 대할 때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원칙이 있습니다. 이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창세기 5장과 11장의 족보는 연대측정에 사용되도록 의도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그 두 족보를 연대측정에 이용한 예가 없습니다.
특히 아브라함 이전의 이름들을 부분적으로 골라서 기록한 것을 마치 완전한 전체의 기록으로 여기는 것은 문자지상주의에 빠지는 오류를 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있어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큰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큰 사건들 사이의 간격을 두 족보가 채워주고 있습니다. 이 두 족보는 연대기를 위한 것이 아닌,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담부터 노아까지 10대, 셈부터 아브라함까지 10대(혹은 노아부터 데라까지)로 맞추고 있습니다.
그들의 수명을 기록해 놓은 것은 그것을 더해서 연대를 계산하라고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창세기 5장의 족보에서 수명을 기록한 것은 홍수 이전에 인류가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를, 그리고 11장의 족보는 홍수 후에 인류의 수명이 급격히 줄어들었음을 보여줍니다.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모든 개인들의 이름을 일일이 기록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둘째, 성경의 족보들은 중요하지 않은 이름들은 빈번하게 생략해버립니다. 또는 저자의 기록 목적상 생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의 생략의 법칙은 항상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 1장의 예수님의 족보에서도 생략된 부분이 있습니다. 8절에 요람과 웃시야 사이에 세 사람의 이름(아하시야, 요아스, 아마샤)이 생략되어있습니다. 11절에도 요시야 다음에 여호야김이 생략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역대상 6:3-14에서의 아론 자손의 족보와 에스라 7:1-5의 아론자손의 족보를 비교해보면, 에스라서의 족보에서 6명의 이름(아마랴, 아히둡, 사독, 아히마아스, 아사랴, 요하난)이 연달아 생략된 것을 보게 됩니다.
셋째, 히브리어 의 “벤(아들)”은 아들 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손자, 자손들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5장과 11장에서 “누가 누구를 낳았다는 것은 그것이 직계후손이든, 먼 후손이든 상관없이 쓸 수 있는 것입니다.
또 다른 성경의 예를 들면, 역대상 23:15,16, “모세의 아들은 게르솜과 엘리에셀이라 게르솜의 아들 중에 스브엘이 족장이 되었다”고 되어있습니다. 어떻게 모세의 손자가 다윗 시대에 살고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역대상 26:31, “헤브론 자손 중에 여리야가 그 세계와 종족대로 헤브론 자손의 족장이 되었더라.” 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리야는 레위의 증손입니다(레위>그핫>헤브론>여리야). 그런데 어떻게 다윗의 시대에 요직을맡을 수 있을까요?
에스라 8:1-2, “… 비느하스 자손(아들들) 중에서는 게르솜이요, 이다말의 자손(아들들) 중에서는는 다니엘이요, 다윗 자손(아들들) 중에서는 핫두스요”에서, 여기서 만일 족보에 생략이 없다고 한다면 아론의 증손(게르솜)과 아론의 손자(다니엘)와 다윗의 아들(핫두스)이 에스라와 함께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것이 됩니다.
넷째, 의미관계상 꼭 필요해 보이는 설명구절조차도 저자는 독자의 지식에 맡기고 과감하게 제거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독자들이 간격을 메꿀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저자가 생각하고있는 당시의 독자들은 저자의 의도를 알고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예로, 역대상 1:1, “아담, 셋, 에노스, 게난, 마할랄렐, 야렛, 에녹, 므두셀라, 라멕, 노아, 셈, 함, 야벳” – 이것이 족보인지, 아닌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저자는 전혀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만일 독자가 창세기를 읽었다면, 아담에서 그 계보가 노아까지 미치는 것과, 셈, 함, 야벳은 형제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뿐입니다.
또한, 대상 1:36, “엘리바스의 아들은 데만과 오말과 스비와 가담과 그나스와 담나와 아말렉이요”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부분만 읽게 되면, 데만부터 아말렉까지 다 엘리바스의 아들이라고 생각하게 될 겁니다. 하지만 창세기 36:11,12절을 보게 되면, 데만부터 그나스까지는 엘리바스의 아들들이지만 딤나는 엘리바스의 첩이고 아말렉은 엘리바스가 딤나에게서 낳은 아들임을 알 수있습니다.
출애굽기 6장에 나오는 모세와 아론의 족보도 압축되었음을 알 수있습니다. 왜냐하면, 야곱부터 모세까지 4대만 내려온다는 것은 야곱부터 여호수아까지의 족보가 11대임을 비교하게 되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노아와 아브라함을 동시대로 놓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이것은 성경에 대한 무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위의 도표도 계산이 잘 못된 것이 눈에 띕니다. 셈만 보더라도, 100세에 아르박삿을 낳았고, 낳은 후 500년을 더 살았기 때문에 셈은 600년을 산 셈이 됩니다. 그러므로 셈은 아브라함보다 35년을더 살았다는 것이 됩니다. 셈은 홍수 후 몇 안되는 인류 중에 한 사람입니다. 반면에, 아브라함은 인류가 온 지구에 퍼져 살았고, 인류의 문명이 벌써 꽃피웠던 시대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노아와 셈이 그때까지 살아있었다고 믿는다는 것은 무리일 것 같습니다.
*제 글은 William Henry Green의 "Primeval! Chronology"을 참고하였습니다.출처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 아티클은 구글 스칼라에 올려져 있습니다.
http://www.friendsofsabbath.org/Further_Research/e-books/Primeval!%20Chronology.pdf
질문 2. 그리고 아브라함이 하란을 나올 때가 75세(창12:4)이고 아버지 데라가 죽을 때 나왔다고(행7:4) 되어 있는데 창세기 11장 후반에는 아브라함이 출생할 때 데라의 나이가 70이고 하란에서 죽을 때가 205세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러면 아브라함의 나이가 135세에 인데 ...???? 일반적인 계산으로는 맞지 않는 것 같은데요?
답변1 (김창훈): 이 문제는 David Peterson의 주석(Pillar주석; The Acts of the Apostles)에 나오는 설명을 사용해 답변하겠습니다.
스데반의 스피치에서 몇 개지 연대상의 문제점이 있는데, 두 번째 것이 바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약속의 땅으로 보내셨을 때(행 7:4)가 바로 그의 아버지가 죽은 후였다”라는 주장이다. 창 11:26, 32에 의하면, 데라는 70살이었고, 그 때 아브라함이 태어났다. 그리고 하란에서 데라가 죽었을 때 나이는 205세였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하란을 떠날 때에 75세였다고 창 12:4이 기록한다. 이 구절에 따르면 데라는 145세에 죽었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에, 창 11:32의 205세 사망 기록과 60년이 차이가 난다. 75세에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났다면 12장부터 일어나는 일들을 데라가 살아서 목격했어야 하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크게 두 가지 의견이 학자들에 의해 제시되었다.
(1) 어떤 학자들은 스데반의 스피치는 창세기 본문의 다른 전승을 따르고 있다고 본다. 사마리아 역 오경은 그가 145세에 죽었다고 기록하기 때문이다. 또한 필로도 그가 사용한 오경 번역에 근거해서 아브라함은 데라가 죽은 이후에 하란을 떠났다고 결론내린다(참조. Philo, On the Migration of Abraham 177; 이 해결책을 선호하는 학자는 Marshall 1980, 135; Bruce 1988, 134 note 21; Barrett 1994, 342–43).
(2) 또 다른 해결책은 아브라함이 데라의 큰 아들이 아니라 막내 아들로 보는 것이다. 창 11:26이 아브라함을 제일 먼저 언급하는 것은 후에 이야기에서 그가 중요한 인물로 나타나기 때문에 그렇게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 이론을 따라가면 아브라함은 데라가 70세 때가 아니라 60년 후인 130세 때에 태어났을 것이고, 데라가 205세에 죽은 후에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날 때는 75세가 되는 것이다(이 해결책을 선호하는 학자들은 G. L. Archer, Encyclopedia of Bible Difficulties [Grand Rapids: Zondervan, 1982], 378, endorsed by Larkin 1995, 106–7; Beale and Carson, Commentary, 557). 이 해결책이 가지는 문제점은 1세기 스데반의 독자들이 그것을 받아들였다는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신학적으로 스데반이 주장하려고 한 논점은 데라가 가족들을 데리고 메소포타미아에서 하란으로 이주하는 데 어떤 역할을 했든지 간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관심을 가지셔서 그를 인도하셨고 사용하셨다는 것이다.
David G. Peterson, The Acts of the Apostles (The Pillar New Testament Commentary; Grand Rapids, MI; Nottingham, England: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09), 272.
답변2 (강화구) : 두 번째 질문에 한 두 가지 추가하자면, 우선 사마리아 오경이나 70인역의 독법을 따르는 학자들이 숫자를 재조정하려는 시도들을 하는 것같습니다. 사본상의 변이들을 받아들일 타당한 이유가 없기 때문에 MT의 독법 안에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할 것같습니다. 둘째, 하란의 나이를 우리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하란의 나이는 다른 두 사람 나홀과 아브람에 비해 많았던 것같습니다. 하란은 우르에서 먼저 죽었고, 하란의 딸은 데라의 또 다른 아들인 나홀이랑 결혼을 합니다. 대신 나홀의 경우는 아브람의 경우와 계보가 비슷하게 흘러갑니다. 나홀-브두엘-리브가의 흐름은 아브라함-이삭의 흐름과 연대적으로 비슷합니다. 그렇게 볼 때 하란의 출생이 나홀이나 아브람의 출생보다 훨씬 더 이른 시기의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을 것같습니다. 이렇게 볼 때 데라가 70세에 아이를 낳았다는 표현은 70세부터 아이를 낳기 시작했다는 뜻이고, 아마도 그 첫 아이는 하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60년에 걸쳐서 나머지 두 아들을 더 낳은 것으로 보는 것이 가능한 이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답변 3 (갈릭) : .제시한 답(1번 김창훈 목사의 답변) 중 첫번째의 경우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145세에 죽었다고 하는 것은, 데라가 70세에 아브라함을 낳았다는 성경의 구절과 일치시키기 위해 사마리아 역본에서 의도적으로 빼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마리아 역본의 경우, 성경의 내용을 조화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고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마리아 역본은, 히브리어 원문과 비교해보면, 창세기 5장의 족보에서 야렛, 므두셀라, 라멕의 나이를 의도적으로 100을 빼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담과 셋을 제외하고는, 100세 이후에 자식을 낳지 않았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삭제를 한 예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역본을 근거하는 것은, 신빙성 없는 문서를 증거자료로 내놓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두번째의 경우가 옳다고 봅니다. 창세기 11:27절에서 “데라가 아브라함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다”고 했는데, 아브라함이 먼저 언급이 되고 있다고 해서 아브라함을 장자로 볼 이유가 없습니다. 성경은구원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을, 또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먼저 언급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예로, 창세기 7:13,9:18, 10장 1절을 보게 되면, 노아의 아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하지만, 10장 21절을 보게 되면, 히브리어 본문은 ‘야벳이 셈의 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사본들의 해석은 다양합니다. NASB, JB, RSV, 그리고 개역 성경은 셈을 형으로, KJV, NIV, 그리고 70인역본은 야벳을 셈의 형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리엑센트 ‘티프하’가 ‘아히(히브리 음역)’ 밑에 있어, ‘하가돌(히브리어 음역)’은 야벳은과 더 밀접하게 붙습니다. 그래서 야벳이 형이됩니다. 셈이 구원역사에 중요하기 때문에 비록 셈이 동생이더라도 맨 앞에 기록하고있다고 생각합니다.
마태복음 1:1절 역시 저자인 마태의 의도에 따라 기록되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개역성경은 예수님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헬라어 성경은 다윗이 먼저 등장합니다. 그리고 모든 영어 번역본 역시 다윗을 먼저 언급합니다. 만일 그것이 예수님의 역사 기록이라면, 아브라함이 먼저 기록되어졌여야 합니다.
그리고, 창세기 11:29 에서 아브람과 나홀이 장가를 들었는데, … 나홀의 아내의 이름은 밀가니 하란의 딸이요…”에서 보면 하란이 적어도 나홀보다는 훨씬 나이가 많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28절에서 “하란은 그아비 데라보다 먼저 본토 갈대아우르에서 죽었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란이 그의 아들, 롯, 딸인 밀가, 이스가를 낳고 하란에서 죽었을 정도라면 아브라함보다 훨씬 많다고 해서 문제될 것이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데라가 성경에 언급된대로, 205세에 죽었고, 아브라함이 아닌, 하란이 데라의70세에 태어났다면, 아브라함은 데라가135세 이후에 낳았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본다고 해서 성경의 무오성을 해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경의 기록을 더욱 신뢰하게 되고, 조화를 이루게 됨을 볼 수 있습니다.
스데반의 스피치에서 몇 개지 연대상의 문제점이 있는데, 두 번째 것이 바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약속의 땅으로 보내셨을 때(행 7:4)가 바로 그의 아버지가 죽은 후였다”라는 주장이다. 창 11:26, 32에 의하면, 데라는 70살이었고, 그 때 아브라함이 태어났다. 그리고 하란에서 데라가 죽었을 때 나이는 205세였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하란을 떠날 때에 75세였다고 창 12:4이 기록한다. 이 구절에 따르면 데라는 145세에 죽었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에, 창 11:32의 205세 사망 기록과 60년이 차이가 난다. 75세에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났다면 12장부터 일어나는 일들을 데라가 살아서 목격했어야 하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크게 두 가지 의견이 학자들에 의해 제시되었다.
(1) 어떤 학자들은 스데반의 스피치는 창세기 본문의 다른 전승을 따르고 있다고 본다. 사마리아 역 오경은 그가 145세에 죽었다고 기록하기 때문이다. 또한 필로도 그가 사용한 오경 번역에 근거해서 아브라함은 데라가 죽은 이후에 하란을 떠났다고 결론내린다(참조. Philo, On the Migration of Abraham 177; 이 해결책을 선호하는 학자는 Marshall 1980, 135; Bruce 1988, 134 note 21; Barrett 1994, 342–43).
(2) 또 다른 해결책은 아브라함이 데라의 큰 아들이 아니라 막내 아들로 보는 것이다. 창 11:26이 아브라함을 제일 먼저 언급하는 것은 후에 이야기에서 그가 중요한 인물로 나타나기 때문에 그렇게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 이론을 따라가면 아브라함은 데라가 70세 때가 아니라 60년 후인 130세 때에 태어났을 것이고, 데라가 205세에 죽은 후에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날 때는 75세가 되는 것이다(이 해결책을 선호하는 학자들은 G. L. Archer, Encyclopedia of Bible Difficulties [Grand Rapids: Zondervan, 1982], 378, endorsed by Larkin 1995, 106–7; Beale and Carson, Commentary, 557). 이 해결책이 가지는 문제점은 1세기 스데반의 독자들이 그것을 받아들였다는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신학적으로 스데반이 주장하려고 한 논점은 데라가 가족들을 데리고 메소포타미아에서 하란으로 이주하는 데 어떤 역할을 했든지 간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관심을 가지셔서 그를 인도하셨고 사용하셨다는 것이다.
David G. Peterson, The Acts of the Apostles (The Pillar New Testament Commentary; Grand Rapids, MI; Nottingham, England: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09), 272.
답변2 (강화구) : 두 번째 질문에 한 두 가지 추가하자면, 우선 사마리아 오경이나 70인역의 독법을 따르는 학자들이 숫자를 재조정하려는 시도들을 하는 것같습니다. 사본상의 변이들을 받아들일 타당한 이유가 없기 때문에 MT의 독법 안에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할 것같습니다. 둘째, 하란의 나이를 우리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하란의 나이는 다른 두 사람 나홀과 아브람에 비해 많았던 것같습니다. 하란은 우르에서 먼저 죽었고, 하란의 딸은 데라의 또 다른 아들인 나홀이랑 결혼을 합니다. 대신 나홀의 경우는 아브람의 경우와 계보가 비슷하게 흘러갑니다. 나홀-브두엘-리브가의 흐름은 아브라함-이삭의 흐름과 연대적으로 비슷합니다. 그렇게 볼 때 하란의 출생이 나홀이나 아브람의 출생보다 훨씬 더 이른 시기의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을 것같습니다. 이렇게 볼 때 데라가 70세에 아이를 낳았다는 표현은 70세부터 아이를 낳기 시작했다는 뜻이고, 아마도 그 첫 아이는 하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60년에 걸쳐서 나머지 두 아들을 더 낳은 것으로 보는 것이 가능한 이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답변 3 (갈릭) : .제시한 답(1번 김창훈 목사의 답변) 중 첫번째의 경우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145세에 죽었다고 하는 것은, 데라가 70세에 아브라함을 낳았다는 성경의 구절과 일치시키기 위해 사마리아 역본에서 의도적으로 빼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마리아 역본의 경우, 성경의 내용을 조화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고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마리아 역본은, 히브리어 원문과 비교해보면, 창세기 5장의 족보에서 야렛, 므두셀라, 라멕의 나이를 의도적으로 100을 빼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담과 셋을 제외하고는, 100세 이후에 자식을 낳지 않았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삭제를 한 예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역본을 근거하는 것은, 신빙성 없는 문서를 증거자료로 내놓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두번째의 경우가 옳다고 봅니다. 창세기 11:27절에서 “데라가 아브라함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다”고 했는데, 아브라함이 먼저 언급이 되고 있다고 해서 아브라함을 장자로 볼 이유가 없습니다. 성경은구원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을, 또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먼저 언급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예로, 창세기 7:13,9:18, 10장 1절을 보게 되면, 노아의 아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하지만, 10장 21절을 보게 되면, 히브리어 본문은 ‘야벳이 셈의 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사본들의 해석은 다양합니다. NASB, JB, RSV, 그리고 개역 성경은 셈을 형으로, KJV, NIV, 그리고 70인역본은 야벳을 셈의 형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리엑센트 ‘티프하’가 ‘아히(히브리 음역)’ 밑에 있어, ‘하가돌(히브리어 음역)’은 야벳은과 더 밀접하게 붙습니다. 그래서 야벳이 형이됩니다. 셈이 구원역사에 중요하기 때문에 비록 셈이 동생이더라도 맨 앞에 기록하고있다고 생각합니다.
마태복음 1:1절 역시 저자인 마태의 의도에 따라 기록되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개역성경은 예수님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헬라어 성경은 다윗이 먼저 등장합니다. 그리고 모든 영어 번역본 역시 다윗을 먼저 언급합니다. 만일 그것이 예수님의 역사 기록이라면, 아브라함이 먼저 기록되어졌여야 합니다.
그리고, 창세기 11:29 에서 아브람과 나홀이 장가를 들었는데, … 나홀의 아내의 이름은 밀가니 하란의 딸이요…”에서 보면 하란이 적어도 나홀보다는 훨씬 나이가 많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28절에서 “하란은 그아비 데라보다 먼저 본토 갈대아우르에서 죽었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란이 그의 아들, 롯, 딸인 밀가, 이스가를 낳고 하란에서 죽었을 정도라면 아브라함보다 훨씬 많다고 해서 문제될 것이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데라가 성경에 언급된대로, 205세에 죽었고, 아브라함이 아닌, 하란이 데라의70세에 태어났다면, 아브라함은 데라가135세 이후에 낳았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본다고 해서 성경의 무오성을 해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경의 기록을 더욱 신뢰하게 되고, 조화를 이루게 됨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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