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준비교리에 대한 오해를 풀기 위해 디테일을 설명드렸더니 좀 헷갈려 하시는 분이 계신 거 같다.
2. 쉽게 전체 구조를 말해드려야 할 필요가 있다.
3. 선행은총은 어거스틴이 오리지널이다. 이는 자유의지만을 주장하던 펠라기우스를 논박하는 과정에서 생긴 성경해석으로 원죄 교리와 부패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4. WCF10.의 효과적인 부르심이 바로 이 선행 은총이다. WCF. 13.이 후행은총이다.
5. WCF.9.3.에서 말하는 대로 우리는 진정한 회심의 준비를 할 수 없다.
사람이 타락한 후에는 구원에 이르는 영적인 선을 행하고자 하는 모든 의지력을 완전히 상실 당했다. 그러므로 중생하지 못한 상태의 그 자손들은 영적인 선을 전적으로 싫어하여 죄로 인해 죽은 자가 되었으며, 그 자신의 능력으로는 회개하거나 회개를 위한 준비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6. 그러나 WCF.10.3.이 설명하는 바 우리가 거듭나는 방식에 대한 장로교회의 해석은 말씀과 함께(Cum Verbo)로서 "말씀과 성령"께서 함께 일하시며 이 일의 주체는 성령이시다.
7. 그 결과, WCF.10.3.이 말하는 것처럼 말씀에 반응하지 못하는 자들, 곧 정신지체, 자폐, 금치신자, 영아기 사망자 등은 성령에 의해 주권적으로 말씀에 통하지 않고도 구원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
8. 이 말은 몇 가지의 경우를 가능하게 해준다. 2 by 2로 4개의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1) 성령의 역사와 말씀이 함께 있는 경우 : 통상적 구원의 형태다.
2) 성령이 역사하지만 말씀이 없는 경우 : WCF.10.3.의 경우
3) 말씀은 있는데 성령이 역사하지 않는 경우 : WCF.19.6.의 경우
4) 말씀도 성령도 없는 경우 : 교회 밖의 불신자들이다.
9. 8.3)의 경우는 WCF.19.6.뿐만 아니라 WCF.10.4.에서도 나타난다.
선택받지 못한 자들은 비록 #말씀선포에_의해_형식적인_부름을 받아 #성령의 어떤 #일반적인_역사를_체험한다 할지라도 진정으로 그리스도께 나아오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은 구원을 받을 수 없다.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지 않는 자들은 그 어떤 방법으로도 구원을 받지 못한다. 설령 #그들이_일반_계시로_인한_지혜와 #그들이_신봉하는_종교적인_계율에_따라_열성을_다한다 하더라도 그들은 구원을 받을 수 없다. 그런 자들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단언하며 주장하는 것은 매우 해로우며 가증한 일이다.
10. 마태복음 13장의 천국 비유에 "돌짝 밭"과 "가시떨기 밭"은 위 8번의 3)의 경우에 해당한다. 이들이 WCF.9.3.처럼 스스로 돌이킬 수 없는 상태이면서 WCF.19.6.과 10.4.처럼 종교적 열심을 내기도 하며 마태복음의 기록처럼 "말씀을 기쁨으로 받으며" "뿌리를 내리며" WCF.10.4.의 표현대로 "성령의 어떤 일반적인 역사를 체험" 할 수도 있다.
11. 위 10번의 여러 상태를 청교도들은 "준비교리"라고 한 것이다. 이것이 WCF가 후택에 의해 진술된 이유이기도 하다. 전택이라면 이런 식의 독법이 불가능하다.
12.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끊임없이 모든 타락한 자들을 부르고 계시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은 "혼인 잔치 비유"이다. 말씀으로 부르셨을 때, 즉, 구약의 율법을 주시고 그들을 부르셨을 때, 아무도 제대로 응답하는 이가 없었다.
13. 그래서 에스겔 36:29에서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라고 약속하셨다.
14. 예레미야를 통해서도 약속하셨다.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31:33)
15. 이것은 예수께서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 1:4)는 성령의 약속이었다.
16. 이 약속은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갈 3:14)
17. 이것이 장로교회의 거듭남의 원리를 보여주는 "말씀과 함께(Cum Verbo)"의 핵심이다.
18. 신약과 구약은 다른 경륜이 아니며 "하나의 경륜"이다. 참고로 회중주의는 연속성보다 불연속성이 더 강하다.
19. 말씀, 곧 율법으로도 우리를 부르셨다. 구약의 결과는 아무도 응답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20. 그래서 아버지께서 에스겔과 예레미야를 통해서 새마음과 새 영을 부어주실 것을 약속하셨으나 이는 이미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것이었다.
21. 8번 처럼 4개의 경우는 우리 주변에 항상 있다. 그중 가장 자연스럽고 통상적인 방법은 1)이며 2)와 같이 "특별섭리"로 비상하게 부르시는 경우도 있으며 3)과 같이 거듭나지 못한 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도 있으며 4)와 같이 교회 밖의 불신자도 있다.
22. 8번의 3)의 경우는 다시 2개의 경우로 나뉜다.
1) 택자의 경우로 이 경우는 "준비 교리"에 해당한다.
2) 불택자의 경우로 이 경우는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을 텐데, 그들이 "유기"되는 것은 그들이 아버지께로 오기를 기뻐하지 않은 까닭이다.
23. WCF가 후택의 논리를 따라 구성됐다고 보는 이유가 위와 같다.
24. 말씀과 성령은 신약과 구약을 관통하는 "통상적 원리"임에도 불구하고 "오순절 성령 강림"이 "역사적 오심"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25. "성령의 내주"가 신약의 신자들의 특권인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26. 이렇게 "성경신학"과 "조직신학"의 결합을 잘 보여주는 학자는 필라델피아 웨신의 리처드 개핀이다. 그의 저술을 참고하라.
27. 위의 논리 중 16은 합신의 구약학 교수셨던 김성수 교수 강의록에서 가져온 것이다.
28. 로마서와 마태복음의 "먼저"와 "나중"의 유대인과 이방인의 경륜은 "말씀과 성령"의 원리의 배경이다.
29. Cum Verbo와 관련해서는 김병훈, 박윤선 박사님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30. 결론1. "준비 교리"는 알미니안 교리가 아니라 "장로교" 특유의 칼뱅적 성경해석, 곧 Cum Verbo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이는 자력으로 회개를 준비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며 말씀에 의한 부르심에 의한 일반적인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는 과정에서 생긴 결과로 이들 중 택자는 온전히 그리스도께 인도되고 이 때, 효과적 부르심의 구체적 역사가 발생한다.
32. 결론2. 이 교리는 회중파와 크게 관계가 없다. 요즘 회중파 드립을 하는 경우를 보면 안타깝다. 지금 한국교회의 문제가 회중파의 문제인가? 우리가 회개해야 할 문제인가? 이를 회중파와 연결짓는 것은 한국교회의 원죄의 희생양을 찾는 행동으로밖에 안 보인다. 회중파의 영향을 받아서 이 모양이 아니라 우리가 부패한 죄인이기 때문 아닌가?
33. 결론3. 나 역시 장로주의자이고 장로교회가 옳다고 믿는다. 그러나 작금의 행태는 보편교회를 추구했던 칼뱅의 교회관을 허물고 섹터주의로 밖에 안 보인다. "내가 옳다"라고 주장하는 것밖에 무슨 덕이나 기림이 있던가? 자중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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