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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근세교회사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 1854-1921)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 1854-1921) 성경적 기독교철학과 교육의 토대를 쌓은 신학자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창궐하는 성경파괴의 자유주의 신학 사상과 현대주의 철학에 대항하여 유럽과 미국의 기독교회를 거뜬히 지켜낸 3대 개혁주의 신학자를 들자면, 대개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벤자민 B. 워필드(Benjamin B. Warfiel),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를 든다. 이들은 개혁교회의 전통을 잘 이어받고 또 멋지게 후대에 전달하여 준 시대의 영적 파수꾼들이었다. 이 가운데 특히 헤르만 바빙크는 개혁주의 신학 사상에 입각한 기독교철학과 교육을 정립하는 데 크게 기여한 신학자로서, 기독교를 훼파하려는 수많은 적들로부터 여호와의 신앙을 수호하.. 더보기
31조파의 형성기원 약사 31조파의 형성기원 약사 황대우 교수 고신교단과 자매인 화란의 31조파의 형성기원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31조파는 1944년에 클라스 스힐더가 개혁교회로부터 축출될 때, 그를 지지하는 일단의 목사들과 교인들에 의해 형성되었으나, 그 뿌리는 1834년에 발생한 헨드릭 더 꼭 (Hendrik de Cock) 목사의 국가교회로부터의 축출 사건 (이 사건은 흔히 '분열(Afscheiding)'이라고 명명된다)에서 찾을 수 있다. 더 꼭이 제명되자 그의 가장 절친한 친구인 스홀떠 (Hendrik Peter Scholte) 목사는 자신을 따르던 일부 무리를 이끌고 스스로 국가교회를 나와 더 꼭과 동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채 5년이 되기도 전인 1838년에 스홀떠를 따르던 무리는 도르트 신조를 거부함으로.. 더보기
스펄전과 내리막길 논쟁 스펄전과 내리막길 논쟁 (청교도 시대 마지막에) 이런저런 방법으로 처음에는 사역자들이 그 다음에는 교회들이 '내리막길'에 접어들었고, 어떤 경우에는 그 걸음이 급하여 대개 매우 참혹했다. 사역자들이 옛 청교도의 경건한 생활과 옛 칼빈주의 교리에서 벗어나는 만큼, 일반적으로 그들의 설교는 진지함이 떨어지고 단순해지고, 그들이 이야기하는 문제는 더 사변적이고 덜 영적이며 계시의 위대한 핵심 진리보다 신약의 도덕적 가르침이 더 많았다. 자연 신학은 복음의 위대한 진리가 마땅히 차지했던 자리를 대신하는 적이 많고, 설교에는 그리스도가 덜 등장하게 되었다. 첫째는 설교자와 그 다음으로는 일반 사람들의 성품과 생활에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매우 분명하게 나타나게 되었을 뿐이다.The Sword And The Trow..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