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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칼럼

감시와 공포

1988년 8월 4일, MBC 뉴스데스크 도중에 소창영이란 청년이 난입해서 "귓 속에 도청장치가 들어 있습니다, 여러분! 귓 속에 도청장치가 들어 있습니다!"라고 말한 것이 생방송으로 전국에 송출되었다. 소창영은 이후에도 여러 차례 이런 사건사고를 일으켰다.

그의 정신과적 질병은 군사정권의 공포를 반영하고 있다. 시대별로 공포는 다르게 반영된다. 예컨대, 전래동화 속의 호랑이, 60-70년대를 자란 학생들의 화장실 귀신과 망태 할아버지 이런 것들은 공포의 아이템이다.

최근 tvN에서 "싸이코지만 괜찮아"라는 드라마를 하고 있다. 드라마에서 자폐인 역할을 하는 오병세는 나비를 두려워 한다. 드라마적 맥락을 이해하는 우리는 나비에 대한 두려움을 이해하지만 이런 맥락을 모른다면 일반인에게는 낯선 두려움이다. 예수 심리학이라는 책에는 유사한 공포증이 나오는데 "꽃"을 무서워 한다. 이것은 나비보다 더 낯설다.

우리는 귀신, 호랑이, 괴물 등에 대해서 갖는 공포는 당연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 공포는 꽃이나 나비에 대해서 갖는 공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외부의 문제가 아니라 내면의 문제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군사정권의 서슬퍼런 권력의 시대에 한 정신질환 환자에게 감시라는 메커니즘이 병증으로 찾아왔다. 정도에 차이가 있지만 우리가 페북에서 불편한 포스팅을 나 자신과 연관 짓거나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거나 다른 사람들의 평판을 생각해서 체면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못하는 것은 모두 우리 안에 하나의 감시체계로서 타인이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엄마의 지나친 간섭에 시달리는 아들은 여자들이 자기를 보고 비웃는다는 증상을 보인다. 사람들이 내 생각을 다 알 것이라고 착각하는 신학생도 있었다. 자신이 자위한 것이 촬영돼서 인터넷에 떠돌고 있고 여자들이 웃는 것은 그것을 본 여학생들이 자기를 비웃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환자도 있었다.

이런 망상은 감시를 특징으로 한다. 그리고 이 감사는 간섭의 산물이다. 특히 동아시아인들의 도덕 체계는 이 감시를 특징으로 한다. 우리가 흔히 민폐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이런 특징을 보유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고맥락 문화인 것도 이런 특징의 반영이다.

그리고 이런 두려움이나 감시에 대한 망상은 사람마다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 거기에 갇혀 있어서 도덕적 주체로서 자기 결정을 하기보다 이 내적 감시 메커니즘을 달래며 살아간다. 현실과의 관계에서 내면적 침습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를 흔히 정신병이라고 한다.

어떤 정보도 이런 내적 감시 체계로만 해석되는 것이다. 공포도 일종의 그런 메커니즘이다. 우리가 삼위일체적인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이런 단절적인 내적 체계를 벗어나 진정한 실재이신 삼위하나님과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다. 사랑의 윤리는 거기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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