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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칼럼

유럽인의 마스크와 아시아인의 모자

유럽인들의 마스크에 대한 거부감은 한국인들의 모자에 대한 거부감이랑 유사합니다. 제가 한동안 대리운전을 한 적이 있는데요. 고객들은 대리기사가 모자를 쓰고 나타나면 몹시 불편해합니다. 특정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대부분의 한국인이 그렇습니다.

이것은 한국인이 감정을 표현할 때, 눈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이모티콘도 ^^나 ㅠㅠ로 표현하죠. 그런데 서양인들은 감정을 나타내는 이모티콘을 어떻게 표현할 까요? : ) 이게 웃음입니다. 차이점이 느껴지시나요? 눕혀두어서 그런데 : _콜론이 눈이고 )_가 입입니다. 그들은 입을 통해서 감정을 표현하고 읽는 것이죠.

한국인은 "아이고 괜찮습니다"가 여러 의미를 지닐 수가 있습니다. 겸양일 때도 진짜 괜찮을 때도 이런 것은 다양한 맥락과 경험에서 해석되어야 합니다. 그 때 중요한 포인트는 입이 아니라 그의 눈이 무엇을 말하는가? 하는 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의 진의를 파악할 때 상대의 눈이 중요한 포인트가 됩니다. 그래서 눈을 직접적으로 응시하는 것을 불편해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을 가리는 모자는 동아시아인들에게는 모종의 불안감을 안겨줍니다. 같은 방식으로 유럽인들과 서양인들은 입을 가리는 것에 대해서 모종의 불안감과 공포를 경험하는 것이죠. 그래서 마스크를 싫어합니다.

트럼프가 마스크를 잘 끼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죠. 이는 트럼프만의 정서가 아니라 대다수의 서양인의 정서이고 이 정서 때문에 마스크가 정치 쟁점이 되는 것입니다. 게다가 서양인들은 직접적입니다. 말이란 액면가이죠. 그래서 말에 대한 책임도 아시아보다 더 강렬합니다. 신뢰나 약속이 지닌 언어적 효력이 훨씬 강력하고 그에 대한 사회적 책임도 강하게 요구되죠.

그에 비해 아시아인들의 말은 모호합니다. 모호성은 서로 간의 갈등을 두드러지게 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전쟁이 날 확률이 줄어들죠. 그러나 동시에 책임을 회피할 개연성이 높아지고 실제로 그런 용도로 말의 모호성을 통해서 상대를 조정합니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게 박정희는 김재규에게 "임자 하고 싶은 대로 해 임자 옆에는 내가 있잖아"라고 합니다. 이 말로 인해 김재규는 친구였던 이후락을 해치워버리죠. 나중에 김재규는 같은 말을 전두환에게 하는 것을 보고 자신에게 "지 친구도 죽인 새끼가"라는 말에 박쳐버리고 말죠.

모종의 암시나 모호한 말로 상대의 자발성을 끌어내고 자신은 책임을 피해가는 게 아시아인들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스캔들이 터지면 항상 머리들은 다 빠져나가고 연일 보도에서는 "꼬리 자르기"라는 말과 과거 어느 사건에서 유행했던 "깃털"과 "몸통"이란 말이 나도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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