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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칼럼

피지상심과 맹모삼천

맹모삼천지교는 성호 이익이 성호사설에서 말한 피지상심의 의미를 잘 드러내어 보여준다. 피지상심이란 가지를 자르면 마음이 상한다는 의미로 교육에 있어 제재를 특징으로 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는 맹자의 어머니가 아이를 제재하기보다 환경을 바꾸어준 데서도 확인이 된다. 실제로 동아시아인들은 자녀의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삼강오륜에서도 부자간의 윤리는 친밀함이다.

이익의 피지상심에서 가지를 자름은 제재뿐만 아니라 칭찬도 포함하는 것이다. 간섭은 줄이고 환경에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는 맹모삼천이 그 특징을 잘 드러내 보여준다.

우리 근대 교육은 일본의 영향이 절대적이었고 이것이 제재를 특질로 해서 가지를 자르는 특징이 열등감을 키우거나 자존감의 손상을 가져오게 했다. 대표적 왜색인 혼네와 다테마에는 겉과 속이 다름을 특질로 하고 겉으론 친절한 척하지만 책방에 버젓이 혐한서적을 메인 코너에 널어 놓고 팔기도 한다. 이런 이중적 태도는 그 교육이 제재를 특질로 한다는 점을 보여주며 한국 사회에도 여전히 이런 일제의 잔재가 남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동아시아인의 공동체적 특질은 자기 정체성에서 항상 가족과 자기가 맺은 관계가 자기 소개에서 핵심을 이루는 데서도 확인이 된다. 서양인의 자기 소개는 이름과 학교 자기는 뭘 좋아하는지가 주를 이루며 가족과 속한 관계들은 낯선 것으로 그런 소개를 하는 경우가 없다. 이는 그들의 문화가 개인주의적임을 보여준다. 그래서 칭찬을 받을 때 혹은 자기 가치를 높이 평가 받을 때 더 동기부여를 받는다.

한국인은 서양인의 이런 특질을 파지상심을 통해 이룬다. 경쟁과 비교의 환경을 통해 자신을 사회작 기준에 맞추려 노력하고 거기서 긍지를 갖는다. 이런 문화적 특징은 정원에서도 드러난다. 일본인들은 정원을 자르고 갖군다. 화분도 분재로 뿌리를 잘라 소형화하고 가지를 이리저리 비튼다. 사무라이적 제재를 특질로 하는 그들의 문화적 단면을 확인된다. 그러나 조선의 정원은 자연미를 특질로 한다. 가능한한 손대지 않는다. 자연을 대하는 방식은 자녀를 대하는 방식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부자간에 친근히 하나 칭찬이나 제재를 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그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것을 환경을 통해 스스로 확인해가도록 돕는다.

현재 한국의 문화 상품은 모두 이런 특질로 아시아인의 매력을 어필한다. 과거 일본 문화가 서구에 소개될 때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면 확인되지만 지금도 만화의 주인공은 모두 서양인이다. 일본이 EU에 가입하려 하거나 탈아시아를 꿈꾸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가지를 자름으로 마음이 상하고 열등감과 함께 시기와 질투 그리고 우월한 문화에 대한 동경을 특징으로 하는 것이다. 지금 20대들의 한국에 대한 동경도 같은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피지상심과 맹모삼천은 공동체적 가치에 자신을 스스로 맞추고 거기서 긍지를 얻는 한국 특유의 주체성 문화의 한 단면이다. 사회적 연대가 높으면서도 주체적이다. 북한이 주체 사상을 건국이념처럼 삼은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한민족 특유의 결기다. 몽고가 세계를 점령했을 때 다 몽고군 앞에 전의를 상실했지만 강렬히 저항하고 마침내 정벌을 포가하고 속국의 지위로 고려를 둔 것을 몽고 장수의 말로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다. 이런 강렬한 저항을 본 적이 없노라고 그것이 한국인의 기개이다. 사회적 연대 안에서 민족적이고 개인적인 긍지를 얻고 서로를 배려하는 것이다. 이것이 피지상심이란 교육적 모토의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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