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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신학/설교학

강해설교와 내러티브 설교

강해설교와 내러티브 설교

김지찬 

1. 서론
1970년대부터 미국의 main stream 교회들을 중심으로 신설교학의 바람이 불고 있으며, 이에 관한 저술들로는 Thomas Long의 일련의 저서들이 도움이 되며, 한국에서는 신설교학계 저술들이 ‘이야기식 설교’라는 부류로 번역되어 있다. 그러나 한국 대다수의 목회자들은 북미대륙에 불고 있는 신설교학 바람에 아직 둔감하다.
북미대륙의 강해설교와 오늘날 한국의 강해설교는 비슷하다. 신설교학자들은 자기들의 움직임이 종교개혁 이후 가장 획기적인 설교학계의 혁명이라고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강해설교자들은 신설교학에 대한 경계심이나 거부감을 감추지 않는다. 그 이유는 신설교학자들이 강해설교를 싸잡아 비난했던 것과 신설교학의 발생 과정이나 기술, 관계 등에서 배타적이었던 것을 이유로 들 수 있다. 


2. 강해설교란
2.1 정의: Farris Whitesell
①강해설교는 성경본문 말씀에 근거해야 한다.
②강해설교는 본문의 근본적이고 기초적인 의미를 찾는다.
③강해설교는 본문의 근본적 의미를 문맥에 연관시켜 찾는다.
④강해설교는 본문의 근본적인 의미에서 변하지 않는 보편적인 진리를 발견한다.
⑤강해설교는 이 보편적인 진리를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전개한다.
⑥강해설교는 본문의 진리를 회중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수사학적인 요소인 설명, 논증, 예화, 적용을 사용한다.
⑦강해설교는 회중들로 하여금 본문의 진리를 순종하도록 설득한다.
2.2 중심 아이디어의 중요성
∙위의 강해설교 정의를 따르면 본문을 오래 묵상하고 연구해서 본문의 중심 아이디어를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설교자는 한 가지 중심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설교를 작성해야 한다. 중심 개념을 전달할 때 설교 초기에 중심 아이디어를 밝힌 다음 연역적인 방법으로 3 대지 설교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이다. 이동원 목사의 경우 귀납적인 접근을 하는 것이 독특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2.3 삼 대지 설교 개요
말씀: 시편 19:1-14
제목: 하나님은 어떻게 우리에게 말씀하시는가?
I.하나님은 자연을 통해 말씀하신다. (19:1-6)
A.삶의 조용한 과정에서
B.세상의 우주적 경이에서
II.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을 통해 말씀하신다. (19:7-11)
A.성서에서
B.하나님의 사람의 설교와 가르침에서
III.하나님은 삶의 경험을 통해서 말씀하신다. (19:12-14)
A.실패와 죄의식에서
B.좀 더 신앙적이 되기 위한 굶주림에서
2.4 점검표
∙강해설교가들은 중심 아이디어를 축으로 설교를 구성하는 데 있어서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아래의 점검표를 갖는 것이 좋다고 한다. 
①일관성: 각 대지와 지는 논지를 지원해야 한다.
②순서: 주요 단락들은 다같이 중요성이 부과되어야 한다. 
③이동: 주요 단락은 이전단락과는 구별되게 전진하는 사상을 갖고 있어야 한다.
④배열: 주요 단락은 평행한 입장에서 설명되어야 한다.
⑤주요 단락들은 상향적으로 꾸며져야 한다.
∙한국의 강해설교가 위의 점검표를 따라 강해설교를 작성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실상은 많은 사람들이 강해설교라고는 하나 실상은 사뭇 다른 것을 느낄 수 있다. 
∙미국에서도 다른 종류의 설교들이 등장하면서 강해설교는 그 인기를 많이 잃었다. 


3. 한국 교회 강해설교 약사
∙한국 교계에 강해설교는 신학교의 설교학 강의를 통해서가 아니라 선교단체 출신의 중진 목회자들을 통해 본격적으로 소개되었다. 1980년대 초반 당시 40대 목사들이 Lloyd Johnson, John Stott 등의 설교를 접하면서 강해설교를 접하고 그 기법을 터득했다고 한다. 
∙데니스 레인 목사의 강해설교 세미나가 두란노에서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강해설교에 대한 강의가 이루어졌다.
∙여러 선교단체의 성경공부 교재를 통해 강해설교를 향한 접근이 이루어졌다. 
∙한국에 강해설교가 소개된 역사가 사실 이렇다면 미국의 신학교에서 교육받은 미국의 강해설교가들의 강해설교와는 차이가 날 것을 의심할 수 없다.


4. 강해설교자에 의한 강해설교의 수난
∙강해설교의 대가인 Haddon Robinson은 “오늘날 강해설교가 강해설교가들에 의해 수난을 받고 있다”고 통탄한다. 장두만 박사 역시 한국 기독교계의 강해설교라는 옷을 입은 많은 강해설교가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1986년에 지적했다.
∙강해설교를 잘한다고 하는 목사들조차도 기실은 강해설교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즉 문맥 안에서 성경 본문이 말하는 원래의 의미를 찾아 청중들에게 던지고 도전하고 있는가의 의심을 떨칠 수가 없다.


5. 전통적 강해설교의 내용적 문제
5.1 설교의 중심명제가 본문의 중심명제가 아님
∙본문의 중심사상을 교인의 삶에 적용하는 것이 강해설교의 목적이어서 첫 번째 과제는 본문의 중심사상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강해설교가들의 경우 설교의 중심명제가 본문의 중심사상이 아닌 것을 볼 수 있다. 
∙특별히 한국의 저명한 강해설교가들 가운데 히브리어와 헬라어에 정통한 사람들이 없다는 것도 중요하게 지적할 문제이다. 원어를 모르더라도 강해설교를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것인데 그릇된 인식이다. 
5.2 본문의 성격 오해
∙성경 본문 한 절 한 절을 독립적으로 떨어진 덩어리로 보고, 한 절 한 절에서 설교 대지 혹은 소지를 찾는 문제이다. 
5.3 중심 명제를 전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강해설교에서는 아이디어를 전달하는 것이 목적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디어를 전하는 것이 성경적 설교인가라는 심각한 질문이 제기되었다. 소설이나 영화의 경우 아이디어를 전달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이외에도 많은 것들을 전달하고 있다. 따라서 성경 역시 아이디어 뿐만 아니라 그 아이디어를 전달하고 있는 장르와 기법, 형식 등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6. 전통적 강해설교의 형식적 문제
6.1 전통적 3 대지 설교의 불만
∙대지와 소지를 나누고 설교를 진행하는 것은 일련의 사상들의 집합이 된다. 복음을 전달할 때 연역적 전달뿐만 아니라 은유적 논리, 이야기 논리를 통한 전달도 가능하다. 
∙하나의 대지에서 다른 대지로 넘어가는 데 있어서 관계가 자연스럽지 못하고 인위적인 전이를 보게 된다. 
6.2 연역적 접근의 한계
∙초반에 설교의 중심사상이나 명제를 제시하고 세 개 혹은 네 개의 대지로 그 중심사상을 설명한다. 연역적 접근은 명료하고, 조직적이며, 설교가 어떤 방향으로 흐르는지를 확실히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연역적 접근은 삶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무시하고 단순화시키기 때문에 삶의 정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를 갖고 있다. 


7. 신설교학의 등장
∙1971년 Fred Craddock은 As One Without Authority라는 책을 통해 그동안의 연역적인 설교를 통해 설교가들이 권위있는 자처럼 접근했는데, 이제는 권위없는 자처럼 귀납적인 접근으로 설교하자는 주장을 폈다. 이 저서가 바로 신설교학의 출발점이라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회중을 설교의 모든 부분에, 처음부터 참여할 권리가 있기 때문에 설교의 끝에 적용에서만 회중을 끌어들이는 기존의 관례를 깨뜨려야 한다는 것이다. 
∙아래의 것들이 신설교학의 한 군을 이룬다. 이들 설교의 공통적인 특징은 ① 결론을 미리 애기하기를 거부하고, ② 순차적으로 이동하며, ③ 설교가가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전략적으로 지연시키며, ④ 
7.1 귀납법적 설교(inductive sermon)
∙성경을 주해할 때 성경 본문의 중심 아이디어를 가지고서 주해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귀납적인 접근으로 중심 아이디어를 찾아가는데, 왜 설교는 그렇게 하지 않는가? 우리의 삶은 귀납적인 요소들이 참 많다. 부부 사이의 사랑의 확인, 우리에 대한 타인의 인식 등등이 귀납적인 절차를 거친다는 것이다. 
∙미국의 히피 운동의 영향으로 Craddock의 전알서는 대히트를 치고, 저자는 신설교학의 창시자가 되었다. 
7.2 스토리 설교(story sermon)
∙스토리 설교와 내러티브 설교는 다르다. 스토리 설교는 설교를 하나의 스토리로 하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이 접근에 대해 상당히 제약을 받는다. 창의력이 없기 때문에. 
∙미국의 경우 어렸을 때부터 이야기를 해주는 데 익숙해 있기 때문에 본문과 상관없는 것같은 데로부터 본문으로 끌어오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능력이 탁월한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성경적 근거는 예수님께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씀하실 때, 그 비유 자체가 한 편의 이야기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조심스럽게 준비되지 못한 경우 성경의 본문과 전혀 상관없는 개인 잡담에 그칠 수밖에 없다. 
7.3 내러티브 설교(narrative sermon; 이야기식 설교, 혹 이야기체 설교)
∙내러티브 설교는 한국어로 “이야기식” 설교 혹은 “이야기체” 설교 등으로 알려져있다. 스토리 안에서는 플롯이 있다. 갈등과 호기심으로 시작되어 반전을 거쳐 해소되는 것이다. 이러한 플롯을 가진 설교를 내러티브 설교라고 한다. 
∙청중으로부터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다음 청중의 주의집중을 끌고 가서 호기심을 증폭시킨다. 증폭시킨 호기심을 갈등의 구조를 통해 반전시킴으로써 해소하는 것이다. 달란트 비유의 경우 “한 달란트 받은 종이 왜 잘못된 것인가? 그가 잘못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변론과 같은 질문을 던져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면서, 주인이 잘못된 주인이라는 식으로 논리를 전개함으로써 호기심을 증폭시킨다. 이 때 지나치게 증폭시키면 자신이 처리할 수 없는 단계까지 가고 만다. 따라서 증폭은 자신이 처리할 수 있을 정도로 자제하는 것이 좋다. 증폭된 호기심을 반전할 때는 생경한 용어와 다소 과격한 언어를 구사하기도 한다. 
∙내러티브 설교를 주창하는 Lowry는 공간을 조직하는 사람(space construction)이 아니라 시간을 조직하는 사람(doing time player)이라고 한다. 즉 청중의 시간을 가지고 그 시간 내에 효과를 노린다는 것이다. 
∙자칫 내러티브 설교는 복음의 핵심이 빠져버리기 쉽다. 성령과의 밀착된 관계, 깊은 기도, 성도와의 친밀한 교제, 성경 연구 등등의 바탕 위에 내러티브 설교가 시도되어야 할 것이다. 
7.4 초의식적인 African American 설교(transconscious African American sermon)
7.5 현상적 이동설교(Phenomenological move sermon)
∙인간의 의식의 렌즈를 통해 세상을 인식하는데, 설교가들은 성경 가운데 흥미있는 장면 흥미있는 아이디어를 던져주면서 그것들에 대한 사진을 찍도록 한다는 것이다. 아이디어를 그림 그리듯이 설명하면서 계속 다른 아이디어로 넘어가면서 청중이 하나의 완성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
7.6 대화체-삽화체 설교(conversational-episodal sermon)
∙최근 대학로의 어떤 교회에서 시도했다고 한다. 한 주제나 본문을 놓고 벌이는 소그룹 토의처럼 설교가와 예배자들이 원탁에 둘러 앉아 모두가 말씀의 신비를 토의해가며 추구해가는 것이다. 


8. 내러티브 설교의 장단점
∙성경 자체가 다양한 장르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설교가는 설교본문에 따라 적합한 설교 양식을 선택해야 한다. 따라서 설교 양식을 선택하는 것은 목양활동의 일부이다. 그런 면에서 다양한 설교 양식을 접하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8.1 장점
∙성경이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다른 종교의 경전들은 철학적 교훈, 신비스러운 이야기, 환상 등인데 반해, 성경, 특히 구약의 75%가 내러티브로 구성되어 있다. 
∙예수님과 초대교회의 설교방식도 내러티브이다. 예수님께서는 비유(스토리 형식)로 말씀하셨고, 초대교회 역시 함께 떡을 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현대 매체들이 모두 이야기식이다. 
8.2 단점
∙회중을 즐겁게 하는 데에는 강하나 말씀으로 교훈하고 가르치는 데는 약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특별히 미국의 경우 성경보다는 설교가 자신의 일상 체험을 이야기하고 마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내러티브 설교의 경우 교인 스스로 결론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9. 결론
∙내러티브 설교 방식은 강해설교를 더욱 성경적으로 만드는 방식이 될 수 있을 것같다. 즉 본문의 중심 주제를 드러낸 다음, 그 주제를 성경의 형식에 민감한 내러티브 형식으로 전달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강해설교는 청중에 맞게 설교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청중이 좋아하는 이야기식으로 본문의 중심 주제를 전달하는 것은 성경적이면서 강해설교가 추구하는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특정 설교 형식이 성경적 설교라고 고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이다. 다양한 설교 형식의 장단점을 살펴서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을 잘 드러내고 전달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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