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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신학/설교학

설교는 수사학을 필요로 하는가?

설교는 수사학을 필요로 하는가?


설교에 있어서의 수사학의 도입에 관한 한 연구

정 인교 

I. 들어가는 말
우리가 본 주제에 집중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에서 이다.
첫째는 오늘 우리 기독교가 위기의 시대를 맞고 있다는 상황론이다. 인간의 첨단 과학이 만들어 낸 문화 낙관주의(Kulturoptismus)는 1,2차 세계 대전의 쓰라린 교훈에도 불구하고 인간 능력에 대한 낙관을 고조시켜 왔으며 이를 바탕으로 20세기 이후 인간에 의한 ‘기술천국’(technophia)을 추구해 왔다. 이런 흐름은 자연스레 세속화, 탈신화(脫神化), 탈종교화를 촉진시켜왔고 이 위세 앞에서 ‘모임’으로서의 교회는 급격한 위축의 길을 걸어왔다. 상황의 성격으로 볼 때 기독교의 위기는 어쩌면 그 자체의 처방을 넘어선 전방위적 심각성을 띠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설교의 갱신을 통해 무엇인가 긍정적인 방안을 강구해 보려는 우리의 노력은 처음부터 한계를 가진 작업일는지도 모른다. 
둘째는 설교 자체가 지향해야 할 본질론이다. 위에서 언급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설교’라는 주제에 집중하는 것은 말씀의 종교인 기독교 역사에서 설교가 차지하는 비중이 다른 주제에 비해 압도적인 위치를 차지해 왔고 교회의 양적인 부흥에 절대적인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환원하면 기독교 부흥에 설교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면 기독교의 위기에 대한 원인에서도 설교가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설교라는 주제가 시대흐름인 탈종교화에 대한 처방이 될 수는 없다 하더라도 기독교 자체가 갖는 자정적 노력에서는 매우 시급한 주제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설교에 있어서의 수사학의 필요성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 이다. 첫째 설교가 그 실행적 성격에서 일종의 ‘연설’일 수밖에 없다는 설교의 본질에 대한 인지이다. 오늘의 한국 강단을 위기로 몰고 간 내적 원인으로 과다한 설교횟수, 설교신학 및 훈련의 부족, 현실과 괴리된 설교주제, 성경적 설교의 상실 등을 들 수 있지만 설교의 신학적 성격과 실행적 성격에 대한 혼동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원인이다. 즉 신학적 성격으로서의 선포와 연설이라는 실행적 성격이 지향하는 ‘설득’이 실행적 성격으로서의 선포로 혼동된 채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설교가 연설이라면 연설을 학문의 대상으로 삼는 수사학과의 연관성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둘째는 수사학을 필요로 하는 변화된 상황이다. 엄밀히 말해 수사학의 도입 여부는 상황이전에 설교의 본질 문제와 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지만 변화하는 상황 역시 중요한 고려 요인이 아닐 수 없다. 수사학자인 박 우수가 밝히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전파매체의 획기적인 발전으로 인해 또다시 수사학적인 시대에 살고 있다. 지구촌 시대라는 표현이 말해주듯 오늘의 세계는 넘쳐나는 인간의 복잡성과 논쟁의 충만함으로 인해 설득을 목표로 하는 수사학의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더욱이 ‘성숙한 성인의 시대’를 사는 청중들은 과거의 일방적 커뮤니케이션을 거부한 채 납득이 되는 내용만을 선택적으로 수용하며 쌍방적 대화를 모토로 한 의사교환에 익숙해 있다. 따라서 일방적 지시적 설교방식은 더 이상 시대적합성(Zeitmaessigkeit)을 가질 수 없다. 1950년 대 이래 설교자에서 청중으로, 설교 내용에서 설교 형식으로, 연역법에서 귀납법으로 패러다임의 변화를 모색하는 ‘새로운 설교학 운동’(The New Homiletics)이 설교학계에서 진행된 것은 이런 시대흐름을 따라잡으려는 자구적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위에서 아래로의’ 권위적 커뮤니케이션을 포기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설교를 위한 수사학의 요청은 피할 수 없는 당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II. 연구의 틀로서의 수사학에 관한 이해
1. 우리의 연구를 위해 일차적으로 필요한 것은 수사학에 대한 이해이다. 그러나 수사학을 규정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역사의 흐름 속에서 수사학에 대한 이해는 시대와 인물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수사학(修辭學 rhetoric)은 어떠한 생각을 특별한 방법으로 전달하려 할 때에 표현과 설득에 필요한 언어의 표현기법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가장 일반적인 의미를 담고 있으면서도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수사학 정의는 퀸틸리아누스(Quintilianus. 주후 30-100)가 내린 ‘말을 잘하는 학문’(bene dicendi scientia)이라는 ’담화의 기술‘ 혹은 말 잘하는 기술(ars bene dicendi)로서의 수사학 이해이다. 말을 잘하려 하는 이유는 남을 이해시키고 행동하게 만들고 믿게 하기 위해 즉 설득을 위해서인데, 설득한다는 말은 감정적인 수단과 합리적인 수단을 통해 상대방에게서 믿음을 불러일으키는 행위를 의미한다. 
타인에 대한 행위의 수단으로서의 설득은 물리적 육체적 힘과 근본적인 대립관계에 있다. 설득은 청중에 대한 화자(話者)의 각별한 관심을 반영하는 것이며 청중이 자유로이 거부할 수 있는 어떤 것에 대한 담론을 얻어내려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타고난 재능(ingenium)과 기술(ars, techne)의 온전한 조합을 필요로 하며 이를 위해 유명인사에 대한 모방(imitatio), 적절한 법칙(doctrina)의 숙지 그리고 지속적인 훈련(exercitium)이 요구되었다. 수사학이 설득을 지향한다 할 때 그것은 개인이든 다수의 청중이든 설득해야 하는 상황 또는 담론을 통해 어떤 주장이 받아들이게 하고 행동하게 하는 상황을 전제한다는 말로, 이는 설득의 기술로 정의되어온 수사학이 사회의 필요성에 부응하기 위해 탄생했음을 의미한다. 
수사학의 기원과 관련하여 롤랑 바르트는 그의 논문 ‘옛날의 수사학’에서 잘 정돈된 정보를 우리에게 전달해 준다: “수사학은 소유권 분쟁에서 생겨났다 기원전 485년경 두명의 시칠리아 폭군인 겔론과 히에론은 시라큐즈(Syracuse)에 사람이 살도록 만들고 용병들의 몫으로 나누어주기 위해 강제이주와 인구이동과 토지수용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민주주의의 봉기에 의해 전복되었을 때 그래서 원래 상태로 사람들이 복귀하고자 했을 때 토지소유권이 모호해 졌기 때문에 많은 소송들이 발생하였다 이런 소송들은 새로운 유형의 것이 되었다. 즉 이 소송엔 저명한 민간 배심원들이 동원되었는데 그들을 설득시키기 위해서는 그들 앞에서 화술이 능란할 필요가 있었다. 이 웅변술은 동시에 민주적이고 선동적인 성격 재판적이고 정치적인 성격을 띠면서 급속히 교육의 대상으로 설정되었다. 이 새로운 학파의 초기 선생들로는 아그리젠토의 엠페도클레스, 코락스 티시아스가 있다. 시라큐즈와 아테네에서 공동으로 권익을 변호하던 상인들의 분쟁덕분에 아티카에서도(페르시아 전쟁이후) 이 교육은 상당히 빠르게 이루어졌다”.
2. 수사학은 주전 5세기 시라쿠사의 코락스로부터 비롯된 이래 매우 긴 역사를 거치면서 시대마다 각기 다른 모습을 보여왔다. 프로타고라스․고르기아스 등, 아테네 소피스트에 의해 수사학이 궤변술로 몰리는 역기능의 위기를 거쳐, BC 4세기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을 거치면서 비로소 학문적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그 후계자 테오프라스토스․데메트리오스 등을 거쳐 수사학은 특히 로마시대에 키케로, 세네카, 퀸틸리아누스 등에 의해서 크게 발전하였다. 중세에 들어와 수사학은 문법․논리학․음악․산수․기하학․천문학과 함께 <자유 7과>로 불리는 중등교육 교과목의 하나가 되었으며, 중세 교양인, 특히 성직자의 기본적 학문으로서 중요시하게 되었다. 이 전통은 중세 이후에도 오랫동안 서유럽 세계를 지배하고 20세기 초엽까지 미쳤으며 현대에 이르러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관심으로 다시 한번 중흥기를 맞고 있다.
수사학의 역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그리이스 수사학과 라틴 수사학을 포괄하는 고대수사학의 중심은 아리스토텔레스이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 이전에 이미 수사학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었고 수사적 실천이라고 부를 수 있는 언어 행위의 중요성이 일반적으로 널리 용인되고 있었지만 이런 실천을 이론화 시키고 거기에 체계를 불어넣은 이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이다. 그는 수사학을 철학적이고 논리적인 방법론 위에 정초시켰을 뿐 아니라 수사학에 있어서의 도덕과 윤리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따라서 소피스트들에 의해 개인적인 기술로 경도되면서 진실의 추구가 아닌 비굴한 술책위조 속임수 등으로 사용된, 진리의 적인 기교적 산문술(logographie)로 낮게 평가되었던 수사학은 그에 의해 한 단계 향상된 지위를 보장받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헬라시대 수사학의 특징은 문체와 연설의 기교에 대한 관심의 고조, 모든 주제들을 이론적으로 토의할 수 있는 교실에서의 심의를 위한 수사학(liberative rhetoric)그리고 교육을 위한 강의 및 대중 연설을 위한 낭독이라(declamation)불리는 연설형태가 본격적으로 개발되었다. 즉 수사학이 본래의 정치적이며 비평적 특성을 잃는 대신 문화를 위한 것으로 자리매김 되어졌다. 수사학은 고상한 것들로 여겨졌던 덕들과 가치들 즉 고전시대를 이상화하고 그 시대의 문체를 모방함으로서 그 시대의 기원을 축하했던 에토스를 변호하고 표명하고 그리고 가르치기 위해 사용되어졌다. 
한편 로마 시대에는 로마 공화정이 발달하고 안정됨에 따라 수사학은 로마교육의 한 부분으로 편입되어졌다. 즉 군중집회의 광장에서 밀려나 법정의 변론이나 교실 안에서 학생들의 재치를 발전시키는 쪽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고대의 재발견에 대한 관심을 특징으로 하는 르네상스 시기(1350-1600년)에 이르러 수사학은 중세에 비해 보다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주목 역시 본질적인 부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수사학은 시학에 종속된 채 일종의 ‘시작법’(詩作法)으로 간주되어졌다. 주로 발음이나 운율 등 운문 형식을 다루는 분야를 ‘제2 수사학’으로 불렀는가 하면 16세기 프랑스 수사학 개론서들은 주로 표현술을 그 대상으로 삼고 있을 뿐이다. 
수사학 쇠퇴는 19세기에 이르러 절정에 달하게 되는데 객관성을 내세우는 실증주의와 독창성을 내세우는 낭만주의에 의해 수사학이 철저히 거부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1885년 수사학은 프랑스 교육 프로그램에서 사라졌고 그것이 존재하는 나라에서도 미미하게 연명할 뿐 이었다. 이제 수사학은 모든 담론의 기술이 아니라 논리적인 담론의 기술로만 간주된다. 즉 수사학이란 낭만주의가 추구하려 했던 낭만적 감정이나 정념들을 고려할 수 없는 기술로 치부된 것이다.
이런 동면기에서 수사학이 깨어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중반이후이다. 대중 사회가 출현하고 의사소통의 중요성이 점차 부각 그리고 이데올로기 및 권위주의의 쇠퇴는 수사학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토양으로 작용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3. 크게 보면 수사학은 텍스트의 문학화 연구를 지향하는 문체의 수사학과 설득하고 논증하는 기술을 의미하는 논증의 수사학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 양자는 사회적 성격과 문화적 차원을 그 속에 내포하기 마련이다. 즉 제도적 틀 내부에서 인간들의 태도 관계 입장들의 역학관계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것을 준수하는가의 여부가 사회의 토대를 이루는 관습 풍속 법칙 규범들의 세계 속에서 유통되는 말의 의미와 양상을 따진다는 의미에서 수사학은 사회적 성격을 지닌다. 동시에 수사학이 지향하는 사회적 실천은 인간 집단들을 집결시키고 역동화 시키는 상징적 가치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을 때에만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문화적 차원을 지닌다.
수사학의 초기 단계를 이루는 고대 수사학을 보면 수사학은 당시의 사회적 필요로 맞물리어 세 가지 종류의 담화에 대한 기술적 바탕으로 자리 잡게 되었는데 법정에서 상대방을 고발하거나 자신을 변호하는데 목적이 있는 재판적 장르(genre judiciare), 정치적 집회에 모인 사람들에게 충고를 주는데 목적이 있는 정치적 장르(genre deliberatif) 그리고 대중 앞에서 찬사를 하는데 목적이 있는 과시적 장르(genre epidictique)가 그것이다. 이 세 가지 담화는 그 목적의 상이성만큼이나 기술적인 접근도 다를 수밖에 없었는데 가령 재판담화는 생략삼단논법, 정치담화는 예증법 그리고 종교적 담화를 그 내용으로 하는 과시적 담화는 과장(amplication)을 주된 기법으로 갖는다.
프랑스의 유명한 수사학자로 전통수사학의 역사와 개념망에 대해 상당히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설명을 제시한 바 있는 롤랑 바르트의 구분에 의하면 수사학은 기술로서의 수사학, 교육으로서의 수사학 그리고 학문으로서의 수사학이라는 다양한 제도적 층위를 갖고 있다. 기술로서의 수사학은 설득이라는 궁극적인 목표에 도달하게 해주는 기술 즉 규칙들과 비법들의 총체를 뜻한다. 여기서의 문제는 재능에 의한 것이냐 훈련에 의한 것이냐의 문제 즉 자연과 기술의(소피스트들) 대립으로 수사학의 윤리성의 문제가 등장하게 된다. 교육으로서의 수사학이란 처음 수사학자라는 개인적 인맥에 의해 전수되어온 수사술이 교육제도 속으로 편입되어 중세 때 3학문 또는 7학문의 한 분야로 자리 잡고 그 이후에도 서구 교육의 한 자리를 차지해왔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편 학문으로서의 수사학은 대상언어에 대한 일종의 메타언어로 기능함을 주 내용으로 하는 것으로 우리가 말하는 통상적인 수사학이 여기에 속한다.
상술한 퀸틀리아누스의 견해처럼 수사학이 ‘말 잘하는 기술’과 연관되어 있다고 할 때 수사술로서의 수사학을 구성하는 개념망은 무엇인가? 수사학에서는 연설을 위한 기본 요소가 ‘말할 주제’(res)와 이에 ‘적절한 언어’(verba)라는 두 축으로 상정 하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세운 수사학의 다섯 가지 기본 개념망을 그 토대로 삼고 있는데 이것을 약술하면 다음과 같다: 
i. 논거발견술(inventio) - 설득에 필요한 논거들의 수립에 관련된 기술 즉 말할 재료의 발견과 확보를 의미한다. 여기에서 논거는 변론가 스스로가 독창적인 논거들을 창조해 내는 것이라기보다는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논거들을 재발견하고 재활용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환원하면 주제를 이해하고 자기가 알고 있는 것과 자기의 생각을 모은 일로 주제를 발견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논거를 찾아야 하는데 논거에는 예증법과 생략 삼단 논법 등이 있다
ii. 논거배열술(dispositio) - 이는 논거들을 어떤 순서에 의거하여 배열하는 기술을 의미하며 우리가 흔히 초안(plan)이라 부르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즉 자신이 생각한 것을 순서있게 나열하여 초안을 짜는 일로 주제들의 자료들을 순서있게 정돈하는 단계이다. 이것의 기능은 가르치고 감동시키고 즐겁게 하는데(ut doceat, moveat, delectet) 있다.
iii. 표현술(elocutio) - 이는 문장의 차원에서 논증들을 언어화하는 작업 또는 그와 관련된 기술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발견되고 배열된 논증이나 논거들의 골격에 살을 붙이고 보다 명료하고 생생하게 구체화시키는 기술로 우리가 흔히 문체(style) 혹은 문채(figure)라 부르는 것은 표현술의 한 양상 혹은 기술 의미하는 것이다. 표현술은 미사여구법이라고도 불리우는데 일종의 담화의 문체화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고상한 문체와 단순하고 간결하고 명확한 문체 그리고 일화와 유머를 대신하는 절도있는(중간정도의) 문체가 있다.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고상한 문체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단순한 문체를 그리고 남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는 절도있는 문체를 선택한다. 
iv. 기억술(memoria) - 이상과 같이 작성된 담론을 청중들에게 이야기하기 위해 그 프로그램을 보다 효과적으로 기억해 두는데 필요한 기술을 의미한다. 이는 표현법과 구술문화의 연관성을 시사해주며 구술문화에서 문자문화로 이동되었을 때 제일 먼저 퇴색해 버린 기술이다. 
v. 연기술(actio/pronuntiatio) - 이는 변론가에 의한 전반적인 담론의 연출에 관계되며 변론가가 취해야할 동작이나 목소리 억양 등에 대한 상세한 기술을 담고 있다. 위대한 웅변가였던 데모스테네스는 변론가의 첫 번째 자질도 두 번째 세 번째 자질도 모두 연기술이라 주장할 만큼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강조한다.
이상의 요소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에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는 일종의 유기체적 구조를 이루고 있으며 키케로(Cicero)에 와서 보다 체계적으로 정비되었다. 물론 이들 요소 중 수사학 발전에 자양분 역할 한 것은 논거 발견술, 논거 배열술 그리고 표현술이다. 기억술과 연기술은 문화중심축이 구술문화에서 문자문화로 이동했을 때 그리고 수사학이 말해진 담론이 아닌 씌어진 작품을 그 대상으로 삼기 시작하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다.
III. 설교에 있어서의 수사학의 도입에 대한 부정적 입장
엄밀히 말해 수사학은 가치론적 중립의 위치에 있으며, 따라서 경우에 따라 좋은 수사학이 될 수도 있고, 나쁜 수사학이 될 수도 있는 성격을 갖고 있다. 그것이 말하는 기술이든 글을 쓰는 기술이든 무엇을 지향하는 가에 따라 긍정적 부정적 극단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즉 가치론적으로 하나의 결과만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유용과 오용이라는 두 개의 결과를 유발할 수 있는 것이 수사학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수사학의 위험성에 대한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고 실제 역사에서도 이런 수사학의 오용 사례를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소피스트들의 궤변은 수사학의 초기역사에서 보여지는 대표적인 수사학의 오용사례이다. 원래 소피스트(sophist)는 지혜(知慧, Sophia)가 있는 사람인 현자(賢者), 식자(識者)를 뜻하였지만 그 뜻이 변질되어 그럴싸한 궤변(詭辯)을 구사하여 변론술(辯論 述)과 수사학(修辭學), 처세술(處世術) 등을 가르친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이들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변증법의 아버지라 불리던 제논(Zenon)등 엘레아 학파의 논법을 그들의 능변술(能辯術)로 삼았다. 그들이 표면에 내세웠던 것은 국가를 위해 선을 추구하고 언론과 행동에서 가장 유능한 사람이 되는 방법을 가르친다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선에 대해서는 무지하면서도 스스로를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방법과 일의 진위 여부를 불문하고 단지 대중을 선동해서 논쟁에서 이기기 위한 방법을 가르치고 논리적 정확성이 갖추어지지 않았으면서도 전제가 되는 명제의 뜻이 일상적으로 애매한 것을 이용하여 진실된 전제에서 진실되지 못한 결론을 이끌어 내는 논법을 젊은이들에게 가르침으로 그들을 그릇된 길로 경도시켰던 것이다.
현대의 대표적인 수사학의 오용 사례로는 히틀러의 나치 수사학을 들 수 있다. 1차 세계대전의 패망이후 총체적 위기 속에서 모두가 허둥될 때, 히틀러는 상황을 꿰뚫어 보고 본능적으로 대중의 동경과 욕구를 파악해 내어 이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적용시켰다. 그는 독일인들의 상처 입은 국민감정을 포함하여 독일의 총체적 위기를 안겨다 준 온갖 것들을 조합하여 대중이 수긍하는 방식으로 알기 쉽게 연결시켜 나갔던 것이다. 그리하여 대중은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를 파국의 시대에서 새로운 세계로 도약할 수 있는 내적인 통합운동으로 받아들였으며, 이 운동에 동참하면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확신에 이르게 되었다. 이런 대중 조작에 절대적인 공헌을 한 것이 나치의 수사학 혹은 나치 언어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나치언어는 의사소통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나치의 이데올로기를 실현하기 위한 첨단의 무기로 나치는 언어가 갖고 있는 대중조작적이고 주술적인 마력의 힘을 십분 활용하여 그들의 이데올로기를 실현해 나갔던 것이다. 나치는 그들의 선전활동에 있어서 평범한 사람들의 독자적인 사고를 현혹시키기 위하여 표어와 선동구호를 냉소적으로 그리고 탁월한 솜씨로 혼합시킨 말을 사용하였다. 이를 위해 대중의 감성에 호소하는 선전선동, 일정한 관심이나 이념에 입각하여 공공의 언어사용을 의도적으로 조정하는 언어유도(Sprachlenkung. 가령 유태인 문제를 다룰 때 ‘셈족 배척의’ 혹은 ‘셈족 배척주의의’ 라는 낱말 대신 ‘유태인 배척주의의’라는 낱말을 사용하도록 지침) 열정적 톤과 뜨겁게 과열된 긴장감으로 점철된 연설, 극단적 표현에 치우친 ‘사이비 장엄 문체(Pseudomonumentalstil.)’ - 운명, 세계관, 운명공동체, 총통, 민족감정과 같은 낱말들 - 표현 집적(集積) 특성(표현의 반복) 등은 나치 수사학이 보여주는 독특한 특징들이다.
이러한 수사학 자체의 양면적 문제 때문에 독일의 지성인 칸트(Immanuel Kant)는 그의 “판단력 비판”(Kritik der Urteilskraft)에서 웅변설(연설의 기술 Rednerkunst/ ars oratoria)이 인간의 약점을 자신의 의도대로 이용하려는 재주라는 이유에서 전혀 고려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평가한다: “웅변(Beredtheit)과 능변(Wohlredenheit)은 수사학과 더불어 좋은 기예(Kunst)에 속한다. 그러나 기예(Kunst)로서의 연설기술(ars oratoria: 연설의 기술)은 자신의 의도를 달성하기 위하여 인간의 약점을 보완하는데 이용하는 것으로... 전혀 고려의 가치가 없다“. 
칸트는 수사학을 연설의 기예로 보면서 능변으로서의 수사학이 주어진 사안을 적절한 단어로 잘 처리하도록 하려는 환영할만한 시도임을 인정하면서도 아름다운 포장으로 청중의 의지를 속이려는 위험한 시도를 수사학에서 간파했던 것이다. 
한편 설교가 수사학과 연결되어 수사학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수사학 자체가 가질 수 있는 부정적 측면뿐 아니라 설교 자체가 가진 성격의 차원에서도 적지 않은 논란을 불러 왔다. 일부에서는 양자의 결합을 반대하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양자의 결합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음을 주장하기도 한다. 
수사학에 관한 부정적인 입장은 수사학을 강조했던 중세 교회에서도 그 흔적이 발견되는데 설교를 독립된 영역으로 보지 않고 교의학에 다룬 것이 그 한 예이다. 교의학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다루면서 이 맥락에서 설교를 취급했는데 신학과 교리의 권위를 하나님의 자기계시의 권위로 강조하다보니 설교자 개인에 의한 ‘설교효력’의 문제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모든 효력은 말씀 그 자체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자인 마르틴 루터가 수사학을 반대했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중세 설교가 사용하던 치밀한 수사학적 구성을 반대하고 단순한 설교를 주창했던 사실로 미루어 적어도 그 당시 만연했던 일반 수사학을 거부했음을 알 수 있다.
수사학에 대한 거부는 신비주의나 경건주의 등 경건주의 등 영적인 차원을 강조하는 입장일수록 더욱 강하게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말씀 그 자체의 능력에 대한 신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직접적인 역사가 있는데 구태여 수사학이라는 인위적인 ‘치장’이 왜 필요하단 말인가? 경건주의 말기에 나온 랑게(Joachim Lange)의 “공허함으로 채워진 설교 이론에 반대하는 거룩한 연설”(Oratoria sacra ab artis homilecticae vanitate repurgata, 1707)은 벌써 그 제목에 방법형식주의에 대한 전투적 비장함이 묻어있음을 알 수 있다.
수사학에 대한 반대 입장이 보다 전문적인 학문 영역에서 다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금세기에 들어와서 이다. 수사학을 부정적인 시각에서 보는 학자 가운데 대표적인 경우가 칼 바르트(K. Barth) 투르나이젠(E. Thurneyzen) 그리고 불트만(R. Bultmann)으로 대변되는 말씀의 신학자들이다. 
바르트의 설교에 관한 입장은 그의 “설교학” 전체에 걸쳐 잘 드러나 있다. 그는 설교 사건이라는 의미가 바로 하나님 자신의 말씀하심(Deus loquitur)이기 때문에 우리가 설교에서 어떤 형태로든 드러나게 된다는 것은 논의의 핵심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설교는 초림과 재림 사이에서 행해지는 데 그 설교에서 발생하는 일체의 행동은 이 신적 주체 자신의 행동이다”(48). 따라서 그는 설교가 어떤 지적 논증에 의해 특정한 명제를 주장하거나 인상지움에 의해 하나님을 증명하려 의도할 수 없으며 하나님 증명은 하나님 자신만이 자증(自證)하는 방법만이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49). 바르트는 설교작성과 관련하여 “핵심적인 것은 첫째, 둘째 셋째의 순서로 이야기되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숙고하는 것이 아니라 설교자가 본문에 나타나 있는 것을, 소위 한 가지 만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 한가지란 하나님의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이다... 우리는 다만 이 한 가지 본문의 목표만을 증언할 뿐이다”(148)라고 주장한다. 그는 설교를 인간의 정지작업이나 보조없이 오직 하나님 한분만이 홀로 기적을 행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기량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152). 이런 내용들을 종합해 볼 때 바르트에게 있어 설교는 인간이 아닌 하나님, 기량이 아닌 내용, 창조적 작업이 아닌 복명복창(nachsprechen)의 작업이다. 바르트가 설교의 기본적 형식을 이루는 서론이나 결론까지도 거부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따라서 이러한 바르트의 설교관 어디에도 수사학이 자리 잡을 공간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바르트 보다 덜 과격하지만 수사학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취하기는 불트만 역시 마찬가지이다. 불트만은 ‘선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하며 수사학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다: "선포는 말걸음(Anrede)이다. 권위적인 말걸음인 바 하나님의 말씀의 말걸음으로 설교자라는 인간을 통해 말해지는 역설적인 말걸음이다. 여기서의 핵심은 하나님의 부름(Ruf Gottes)이며 그의 특별한 권위이다. 설교가 다른 연설과 구분되는 것은 성경의 말씀을 텍스트로 하기 때문이다. 그것에 대한 해석위에 서있기 때문이다. 또 이것에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보편적 진리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예술에서는 항상 인간 자신이 말을 하지만 하나님 말씀의 말 걸음은 지금 여기서 나에게 부딪쳐 온다. 이때 어떤 특별한 것이 전달되는데 소위 예수 안에 발생한 하나님의 계시사건이다. 역설적이라는 것은 이 전달에서 역사적인 사건이 종말론적인 사건으로 선포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단을 요구한다. 이 선포에는 고로 토론이 없다. 이것은 단지 믿음만을 요구한다. 설교는 권위적인 말걸음이다. 설교는 형식적, 내용적인 면에서 필수적으로 본문과 결합(schriftbindung)되어야 한다. 성경의 말씀은 다른 말씀과 구분되는 자기의 권위와 고유한 성질(Qualtaet)을 갖는다. 회중은 결단 앞에 직면해 있다. 여기에는 신앙과 경외만 필요하고 이것은 토론의 대상이 아니다.” 불트만 역시 말씀이 갖는 일방적 성격에 우선권을 두면서 설교가 어떤 토론의 대상이 되는 것을 금함으로 수사학과의 거리를 두고 있다. 
이런 경향은 말씀의 신학의 막내에 해당되는 보렌(R. Bohren)에게서도 확연하게 발견되어진다. 그는 설교가 단순히 인간의 연설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설교가 진실한 인간의 인간적인 연설이라면 설교는 수사학에 속하며 따라서 기예로(Kunst)자리매김해야 한다. 이것은 또한 하나님 말씀을 인간적 기예의 작품으로 낮게 처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언어를 연습하고 기예에 충실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말씀의 신학자들이 말씀 그 자체의 자증적(自證的) 능력에 주목하여 인위적 기교를 배제하였다면 수사학에 대한 시각적 차이에서 부정적 입장을 취하는 경우도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슈타이넨(Ulrich von den Steinen)을 들 수 있는데 그는 수사학을 ‘도구적 수사학’(instrumentelles Rhetorikverstaendnis)으로 이해하여 수사학의 무용론을 주장한다: “진리는 간청하는 게 아니다(unerbittlich). 진리는 관용과 타협을 조화시키는 것도 아니다. 설교자와 회중간의 하나의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목적으로 추론과 토론을 조화시키는 것도 아니다. 기독교 설교와 연관이 있는 진리라는 것은 수사학적-민주적 정화과정을 통해 전달되는 게 아니라 역사의 사건과 신앙의 증언으로서의 성경으로부터 찾아지는 것이다. 고로 설교의 수단으로서의 수사학이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이 진리를 인간들이 타당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즉 실존적으로 이 진리와 부딪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라이드는 “설교의 위기”에서 수사학이 기독교의 진리 전달에 심각한 악 영향을 주었다고 주장하면서 기독교의 독특한 전달을 세속적인 수사학으로부터 건져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수사학이 서구 강단을 지배하면서 웅변이 대화를 대신하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고 진단하면서 웅변가의 위대함이 예수의 놀라운 사건을 대신하고 설교자와 청중 사이의 대화가 설교자의 독백으로 대치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수사학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취하는 견해들을 종합해 보면 대화가 독백으로 대치되었다는 형식상의 문제제기 뿐 아니라 다음과 같은 보다 본질적인 문제제기가 그 기저에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능변(Wohlredenheit)으로서의 수사학은 십자가의 복음을 선포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 복음은 설득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포되는 것이며 이성적으로 이해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신앙적으로 경외되는 것이다. 수사술이나 웅변술(Redenkunst)이 설득술로 이해될 수 있는 한 복음을 다루고 하나님을 말하는 설교에 전혀 고려의 가치가 없다! '허나님 말씀의 설교‘(praedicatio verbi Divini) 혹은 ’하나님 말씀의 설교는 하나님 말씀‘(praedicatio verbi Dei est verbum Dei) 이라는 종교개혁자들의 설교 이해에서 보이는 것처럼 설교는 비록 인간이라는 통로가 사용되지만 위로부터 아래로의(von oben nach hinten) 사건이며 수평적 사건(von rechts nach links)이 아니다. 따라서 거기에는 설득이 필요치 않으며 오직 경청과 수용 그리고 결단만이 있을 뿐이다!
IV. 수사학을 필요로 하는 설교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설교와 수사학의 결합을 거부하는 주장에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나름대로의 분명한 논리가 담겨져 있다.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가 지닌 위력은 완벽의 필요충분조건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으며 이런 맥락에서 복음 역시 완벽하다. 문제는 이 완벽한 복음이 전달되는 대상이 완벽한 하나님이 아니라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만일 이런 편차가 없다면 굳이 ‘기록된 말씀’을 ‘선포된 말씀’으로 바꾸는 수고가 필요치 않을 것이며 설교는 성경을 읽는 것만으로 충분할 것이다. 왜냐하면 ‘완벽한 인간’은 기록된 말씀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의지와 뜻을 스스로 이해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에서 아래로’라는 선포의 무게를 회중이 수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보다 효과적인 완충장치가 필요하며 완전한 복음이 불완전한 인간의 눈높이에 맞도록 키를 맞추는 작업이 필요하다. 말하자면 수사학은 복음과 인간 사이의 편차를 최대한 줄일 수 있는 하나의 도구로 충분한 효용 가치가 있다는 말이다. 설교가 수사학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 차원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1. 설교는 언어적 차원에서 수사학을 필요로 한다. 언어는 인간에게 있어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됨(humanitas)의 본질이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언어의 사용이다. 또한 창조와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계시의 중심 역시 말씀이었다. 기독교 신앙에서 ‘말해진 그리고 쓰여진 말’은 기본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행동이 예언자들에 의해 말씀으로 말해진다든지 하나님을 본 자가 없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하나님이 알려진다든지 하는 것은 기독교의 근본 성격이 봄(seeing)보다는 일종의 들음(hearing)임을 말하는 것이다. 신약 역시 동일한 성격을 드러낸다. 이그나시우스(Ignatius)의 말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침묵보다 선재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는 거짓을 모르는 입이며 하나님 아버지는 바로 이 입으로 참되게 말씀하신다”. 나사렛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그들 시대의 작문과 언어 그리고 침묵의 세계 속으로 고상하고 능력있는 발성 즉 말씀을 가지고 보통 사람의 말을 가지고 들어온 것이다.
따라서 수사학의 기술이 바로 이 ‘말’을 잘 사용하도록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할 때 설교는 수사학을 포함한다. 언어적으로 보면 설교는 사역자가 하나님의 계시의 언어에 스스로의 언어적 종속을 연습하는 것이다. 설교자가 말씀을 배치할 수 있는 훈련된 능력이라는 맥락에서 이러한 종속이 보다 효과적이 되면 될수록, 강단의 선포를 위한 채널은 더욱 더 좋아진다.
2. 성서와 수사학의 밀접한 관계에서 수사학의 필요성을 찾을 수 있다. 성서의 저자들 특히 신약성서 기자들은 그들 자신들의 명제를 지지하기 위해 빈번하게 수사학을 이용하였다는 것이 성서 곳곳에서 드러난다(갈 6, 2이하; 히 2, 1-4; 마 5장’등). 수사학이 서구 교육과 문화의 중심에 오랜 동안 자리 잡아 왔던 것을 염두에 둘 때 성서기자들이 관례적인 논증의 패턴과 수사학의 형태를 따랐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어거스틴은 성서저자들이 수사학을 사용했다고 주장하면서 그 특징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렇다고 내게 참으로 매력을 주는 것은 성서의 인물들과 이방인 웅변가들이나 시인들이 공통으로 사용하는 수사학이 아니다. 내가 탄복하고 놀라워하는 것은 우리가 말하는 이 자기 나름의 기교를 성서 저자들이 부족하지도 않고 지나치지도 않을 정도로 사용하였다는 점이다”. “그러나 잘못 배운 사람들이 성서 저자들을 경시해도 좋다고 여기는 태도가 언짢아 (성서 저자들이) 언변을 갖추지 못한 것이 아니고 그자들이 수사학을 너무도 애지중지 한데 비해 (성서 저자들이) 드러나게 과시하지 않았을 뿐이라는 답변을 하기 위함 이었다”.
18세기 들어 성서와 수사학의 연관성에 대한 학문적 관심과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바우어(Karl Ludwig Bauer) 가 쓴 ‘바울의 논쟁의 방법’(1774) 및 ‘바울의 고전 수사학적 기술’(1778)에 관한 논문은 이 연구의 효시를 이룬 것으로 평가된다.. 성서학 분야에서의 수사학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이 고조된 것은 1968년 SBL(the 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모임에서 제임스 뮐렌버그(James Muilenburg)가 행한 “양식 비평 이후에 무엇?”(After Form Criticism What?) 으로 이를 계기로 수사비평으로의 전환이 성서학계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후 체임 페렐만(Chaim Perelman), 올브렛츠- 타이테카(L. Olbrechts-Tyteca)의 논문 “새로운 수사학: 논쟁에 관한 논문”(The New Rhetoric: A Treatise on Argumentation)이 등장하면서 사회역사의 눈을 가지고 텍스트를 접하는 수사비평의 길을 열어놓았다.
3. 설교와 수사학의 연관성은 역사적 조명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다. 기독교 설교가 시작되면서 설교는 수사학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존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과 어거스틴(Augustine) 등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의 대표적인 설교자들은 모두 체계적인 수사학의 훈련을 받은 자들로 그들의 설교자로서의 명성에서 수사학적 훈련이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였음은 불문가지이다. 특히 어거스틴은 소명 이전에 수사학 교사를 했을 만큼 수사학에 정통한 인물이었는데 4권으로 이루어진 자신의 저서인 “기독교 교리에 관하여"(De Doctrina Christiana) 제 4권에서 그는 기독교 최초의 수사학 공리를 제시하였다. 여기서 그는 웅변술은 그리스도인들을 설득시켜서 거룩하고 의로운 삶을 살도록 인도하는 수단임을 강조하였다. 어거스틴의 이런 입장은 진리에 대한 지식만 갖고는 그 진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 까지를 보장해 주지 않음을 분명히 밝히는 것이었다. 그는 양식에 관한 키케로(Cicero)의 범주를 빌려오면서 그와 동시에 이것들을 성경의 문학적 양식들과 배타적으로 결부시켰다. 
중요한 것은 어거스틴이 일반 수사학을 토대로 기독교적 수사학을 발전시킨 대표적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설교라는 독특한 장르에 대해 무지할 수밖에 없었던 이방인 수사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수사학을 설교에 그대로 적용하는 데에는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다고 보았다. 가령 그는 법정 담화의 핵심 기법인 “증명”(probare)이 신앙과 고백을 토대로 하는 설교에 적합지 않은 것으로 보고 “가르침”(docere)으로 대치시켰으며 설교자의 선(善)함을 주장했던 퀸틀리안(Quintilian)과 달리 설교자의 말은 설교자의 것이 아니라는 이유에서 그것을 발견하는 지혜를 강조했고 같은 맥락에서 고안(invention)이 아닌 전달(transmission)을 주장했다. 
그는 설교자가 언변의 능력(facultas eloquii)을 갖추어야 할 것을 강조하는데 그렇다고 전달의 방법이 어거스틴의 주안점은 아니었다. 진정 그가 강조하려 한 것은 기술로서의 수사학 보다 그 내용인 진리 자체의 중요성이었다. 그리고 그것의 유일한 교과서를 성경으로 잡았다. 즉 그는 수사학을 기독교 진리의 가장 중요한 주장과 연계시켜 최초의 기독교적인 수사학을 탄생시켰으며 천년 이상 지속될 기독교적 수사학의 규범을 제시하였다.
중세에 이르러 설교와 수사학과의 관계는 설교의 침체와 함께 그다지 큰 진전을 이룩하지 못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시대보다 수사학적 도움을 힘에 업은 설교기법(artes praedicandi)에 관련된 연구와 서적의 출판은 활발하였다. 예를 들어 도미니크 수도사인 샬랑(T. M. Charland)은 150여편의 설교기법과 관련된 글을 썼는가하면 로버트(Robert of Basevorn)의 "설교의 형식"(Forma Praedicandi), 웨일즈의 설교수사 토마스(Thomas of Waleys)가 쓴 "설교의 준비방법"(De Modo Componendi Sermones)등은 이 시대의 대표적인 수사학적 설교학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중세에 설교준비를 위한 기술로 장려된 것을 보면 테마의 발견 - 주제도입의 다양한 방식(introductio thematis) - 주제의 구분(divisio thematis/ 대지를 2-4부로 나눔 3중 구분은 청중을 지치지 않게 하는 것으로 장려됨) - 선포와 확신의 부분(declartio et confirmatio partium) - 분할의 완성부(해설용 예화 성구인용 교부저작물)등으로 정리 할 수 있는데 이런 논리적 배열은 13세기 서구를 주도했던 스콜라 철학의 영향에 힘입는 바 크다고 할 수 있다.
중세 설교 방법(ars praedicandi)과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자료가 로버트(Robert of Basevorn)의 “Ornamentation”(The Form of Preaching. 1322년)이다. 그는 설교의 형식을 다음과 같이 여섯 개의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1) theme: 성서의 인용 2)protheme 기도로 이어지는 주제의 도입부 3) 설교목적의 설명을 통한 주제의 반복 4) 주제의 대지구분(3가지로) 5) 주제의 소대지로 구분(subdivision of theme) 6) 각 부분의 확장(amplification of each division).
그 외에 그는 정선된 그 당시의 설교들로부터 다음과 같은 설교를 치장하는 요소들을 추출하였다: 주제의 고안(Invention of Theme), 회중의 확보(Winning -over of the Audiance), 기도, 도입부, 대지구분, 대지의 언급, 대지의 증거(Proof of the Parts), 대지의 확장, 여담(digression- Transition 으로 부름) , 일치(조화), 일치의 동의, 간접적인 언급에 의한 발전, 회선(convolution 돌아옴), 일치(Unification), 결론, 채색, 음성의 조절, 적절한 제스처, 시의 적절한 유머, 암시, 확고한 표현, 주제에 대한 숙고. 이것들을 보면 이미 중세에 수사학적 기법으로 설교의 치장에 주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종교개혁을 기점으로 기독교안에서의 설교와 수사학의 관계는 끊임없는 부침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인위적 기교로 경도된 수사학의 폐혜로 인해 어거스틴과 같은 수사학적 열정이 교회 안에서 많이 수그러진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부침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여전히 수사학과 설교는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종교개혁기의 대표적 이론가로 어거스틴의 전통에 서서 설교학과 수사학을 결합시켰으며 “기초 수사학 상. 하”(Elementorum Rhetoricum libri duo)를 통해 정통주의 시대의 설교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던 멜랑히톤(Ph. Melanchthon)은 말할 것도 없고 핵심적인 종교개혁자인 루터와 칼빈 역시 수사학을 설교에 도입했다. 
설교에 관한 루터의 입장은 1528년 발표한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것이 아닌 것”(Nihil nisi Christus praedicandus)이라는 루터의 글에 잘 나타나 있다: 그리스도의 생애를 단지 그에 관해서만 그리고 역사적 연대적으로만 발생한 것으로 설교하는 것 즉 회중을 다루지 않는 피상적이고 역사적인 설교는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설교하며 살아있는 음성으로 나는 그대에게 그리스도를 가슴속으로 불러온다”.
설교학자인 히르쉬(E. Hirsch)는 “루터의 설교방법”(Luthers Predigtweise, in: Luther. Mitteilung der Luthergesellschaft 1954,)라는 글에서 루터 설교의 특징을 본문주석(Schriftauslegung), 청중인지, 살아있는 음성(viva vox)으로의 설교, 무(無)장식 무(無)기교로 규정하면서 특히 단순함을 상조하는 것이 종종 수사학과의 절연으로 오해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히르쉬에 의하면 루터가 이해하는 설교의 과제는 가르치고(docere) 권고하는(exhortari) 것인 바 가르침은 분명한 명확성(이해)에 의존하고 권면은 회중의 의지를 지향하는데 이해와 의지, 가르침과 권면 이 두 가지는 설교의 역사에서 항상 수사학의 영향 아래 만난다는 점에서 이미 루터가 수사학적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분명한 것은 중세의 기교 중심의 수사학으로부터 루터가 거리를 두고 있지만 청중을 향한 효과적인 전달기법에 지대한 관심을 두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미 수수학적이라 말할 수 있다.
칼빈 역시 화려한 수사적 치장보다는 키케로의 영향을 받아 평범한 스타일을 주장했다. 칼빈은 그 당시 수사학적 영향력을 끼치던 퀸틀리안의 “Institutes of Oratory”가 말에 의해 영혼이 조각되는 도구라 보는 견해가 반 성경적이라고 보면서 고안(Invention), 배열(arrangement), 작문(언어화/wording 목적과 회중에 적합한 언어로) 암기(memorization), 실행(delivery)이라는 키케로의 평범한 패턴을 수용하였다. 
종교개혁 이후 정통주의시대에 와서 일종의 시이소 같은 부침을 계속하게 되는 데 철저한 수사적 방법주의를 표방하게 했던 정통주의 시대, 경건주의에 의한 수사학적 방법의 퇴색, 설교학을 ”강단웅변“과 ”영적 웅변“의 지침으로 표현하면서 설교 자체를 수사학의 특수형태로 이해했던 계몽주의와 합리주의시대, 말씀의 신학에 의한 수사학의 냉대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이론의 발달과 50년 대 이후 ‘새로운 설교학 운동”(The New Homiletics)에 힘입은 수사학의 재 조명 등의 흐름으로 요약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설교의 형식문제는 금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설교내용에 우선순위를 내준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교학의 중요 과제로 지속적인 관심을 끌어왔으며 이런 맥락에서 수사학은 설교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해 왔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설교학의 차원에서 수사학은 19세기 이래 지속적인 연구의 대상으로 다루어 졌고 또 폭넓은 영역을 확보해 왔다. 
19세기 설교학은 수사학에 관한 학문적 관심이 높았으며 각기 다른 시각에서 수사학을 조명하려 했던 노력이 돋보인 시기였다. 쇼트(Heinrich August Schott)는 3권으로 이루어진 “영적 연설에 응용할 수 있는 웅변이론” 의 1권에서 수사학과 설교학의 철학적 신학적 근거를 다루면서 웅변이 산문과 시문이외에 독립적인 언어영역임을 밝히면서 웅변은 인간의 소망 및 의지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설교란 다름아닌 영적 웅변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Bd. 1, 99). 테레민(Franz Theremin)은 1814년 “고귀한 덕성인 웅변”을 통해 연설을 설명이나 교육의 차원에서 이해하는 것을 반대하면서 연설이 갖는 윤리적 성격을 주장하였다. 그는 교회의 설교란 윤리법칙을 따라 작용하는 일종의 숙련행위로 보았으며 고귀한 덕성으로 보았다(Die Beredsamkeit, 62). 비네(Alexandre Vinet)는 1853년 출판된 그의 ■설교학■에서 설교학을 수사학의 한 種(species)으로 파악하면서 설교의 특징을 가르침과 논리적 전개로 본다. 이밖에도 바서만(Heinrich Bassermann), 쉬안(Martin Schian) 등도 설교에 있어서의 수사학의 중요성을 강조한 대표적인 설교학자이다.
4. 마지막으로 설교가 수사학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설교가 가진 연설적 성격에 의해 분명해 진다. 설교학과 역사학을 합한 인물인 로렌스(Johann Lorenz von Mosheim)는 설교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설교는 일종의 연설로 성경의 한 부분의 안내를 따라 이미 신앙의 기초가 다져진 성도들은 설교에서 부분적으로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강화하고 부분적으로는 경건한 신앙생활을 북돋움 받고 각성케 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설교가 일종의 연설이라는 이해이다. 설교는 연설 일반이 갖고 있는 연설의 기본적인 요소 즉 연설자와 청중 그리고 말하는 주제를 갖고 있다. 그리고 설교자는 자신이 말하려는 것이 청중들에게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되기를 기대하기 마련이다. 이렇게 본다면 어거스틴이 제기했던 연설 일반의 우려를 설교 역시 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즉 거짓을 전하는 자가 능란한 수사적 기법을 동원하여 진리를 공격하고 거짓을 방어하는데 반해 진리를 전하는 자가 수사적 기법에 무지하여 진리를 방어할 수 없고 거짓을 거절할 수 없는 경우이다 .
물론 설교는 일반적 의미에서 선을 지향하고 성도의 온전한 양육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그 전체가 진리에 속하는 것이라 할 수 있기에 진리와 거짓이라는 어거스틴의 구도와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설교가 분명한 목적을 지향하고 수사학이 목적지향적 연설의 이론과 실제라면 양자의 관계는 절대적이다. 즉 설교전달의 효과라는 차원에서 그리고 진리 전달이라는 설교의 목적적 차원에서 수사학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역사적으로 보면 설교에서 수사학의 무용론이 고개를 드는 것은 성서적 설교에 대한 관심의 고조와 그 맥을 같이 하여 왔는데 그것은 본문설교가 성경 텍스트에 집중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문설교에 수사학적인 보조 수단을 첨가하는 것은 오히려 설교를 해치고 대치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그 어떤 성경적 설교라 하더라도 형식에 담기지 않은 설교는 존재할 수 없다. 오토(Gert Otto)의 주장처럼 진리나 비진리는 즉자적(an und fuer sich)/合的인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전파되는 형식 및 상황과 밀접한 연관을 갖기 마련이다. 수사학(Rhetorik)이란 찬성과 반대 논증(Argument)과 반증(Gegen- argument)속에서 진리가 발견되는 일체의 과정이다. 따라서 수사학에 관여한다는 것은 곧 사안 자체와 진리에 대한 질문, 구체적 상황 그리고 청중들에 관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본다면 연설로서의 설교가 그 목적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수사학과의 조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예를 들어 한 편의 설교가 만들어지려면 설교본문이해를 위한 주석 작업이 필요하고, 이 내용을 오늘의 선포로 바꾸기 위한 조직신학적 도움을 그리고 회중의 파악을 위해서는 교회 -사회학적 고려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설교의 독백화와 일방성을 지양하고 지루함과 건조함을 추방하며 효과적인 설교의 형태를 확보하기 위해서 언어 과학 즉 수사학의 도움이 필요한 것은 지극히 자명하다. 연설로서의 설교가 그 근본에 있어 언어의 문제이기에 언어를 다루는 수사학은 설교에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V. 설교에의 수사학 도입 가능성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설교가 수사학을 필요로 하는 것은 보다 성공적인 설교의 전달을 위해서이다. 키케로가 주장한 것처럼 수사학의 기능이 이성에 의해 발견된 진리에 청중으로 하여금 올바로 반응하도록 그들을 설득하는 것(Cicero, De Inventione)이라면 설교에서의 수사학은 신앙이라는 토대위에서 전하려는 진리가 회중에 의해 거부감 없이 수용되도록 조력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 과정에서 핵심적인 단어는 ‘설득’이다. 설득이란 것은 청중의 마음에 영향을 미침으로 설교자가 의도하는 방향으로 동의하고 움직이고 믿음을 형성케 하고 행동하게 하는 일체의 과정을 의미한다. 
설득은 수사학과 그 연관 학문들에서 지금까지 계속되는 위대한 신비 중의 하나이며, 이러한 설득의 기본 원칙을 밝혀내는 것이 바로 수사학에서 연구 초기부터 계속되어 온 관심의 초점이다. 20세기에 사회 과학이 꽃피면서 심리학, 커뮤니케이션, 사회학, 정치학, 인류학 등의 사회과학 뿐 아니라 그것들과 연관된 광고, 마케팅, 공중 보건 등에서 설득에 관한 관심이 고조되어 왔다. 사회 과학적인 설득 연구는 대상의 일반적인 평가로 이해되는 태도변화attitude change에 우선순위를 두고 태도의 본질과 구조를 연구하는 태도 이론(theories of attitude), 자발적 행위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을 연구하는 자발적 행동이론(theories of voluntary action), 설득 자체의 설명을 목표로 하는 설득 이론(theories of persuasion) 등으로 연구가 진행중에 있다.
일반적으로 설득은 회중의 마음에 영향을 끼쳐 반감과 반대로부터 찬성으로, 불확실과 모호함 밋밋함에서 확신과 확실로, 적대감과 분노에서 완화로 바뀌게 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설교 역시 이런 일반론에서 크게 다르지 않지만 통상의 목회 설교의 회중을 세례 받은 자를 기준으로 볼 때 신앙고백이라는 기본적 토대가 전제가 되어 있고 이를 바탕으로 한 신앙적 주제들에 대한 ‘설득’이라는 점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 설교에서 이러한 설득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요소들에 대한 고려가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첫째는 설교의 내용과 관련된 고려이다. 흔히 수사학을 방법이나 기교로만 국한시켜 이해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수사학은 ‘말할 내용’으로부터 시작한다. 수사학에서 중요시하는 ‘고안’(Inventio)이 여기에 해당된다. 진정한 설득이란 설득의 기술에 달렸다기 보다는 설득의 내용에 의해 좌우된다. 따라서 ‘설득되어지는 설교’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성경으로부터 ‘말할 것’을 추출해 내야 한다. 설교자로 부름받았다는 것은 ‘말씀속으로’의 부름을 의미하기 때문에 성경 본문에 대한 철저한 주석과 이를 바탕으로 한 ‘설교적 관찰’은 필수적이다. 다른 연설과 달리 설교의 핵심 메시지는 설교자가 창작해 내기 보다는 -성경적 설교라는 원론적 의미에서 - 기록된 계시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경청하고 찾아내는 것이다. 한국 교회의 강단이 가진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바로 ‘들을 거리가 없는 설교’이며 이것은 본문에 대한 처절한 씨름의 부족, 주석을 설교로 착각하는 무지, 본문위에 군림하는 설교자등으로 인해 생기는 문제이다. 따라서 진정한 설득을 위한 설교자의 일차적인 임무는 말할 내용을 본문으로부터 관찰해 내는 것이다.
둘째 설득을 위한 설교에서의 수사학적 적용은 설교의 구성 및 형식(dispositio)에 관한 것이다. 이는 논거들을 어떤 순서에 의거하여 배열하는 기술을 의미하며 자신이 생각한 것을 순서있게 나열하여 정돈하는 단계이다. 어거스틴이 ‘가르침’(docere)을 설교의 핵심적인 항목으로 강조한 이래 전통적으로 설교는 내용의 문제였고 설교의 형식은 상대적으로 덜 주목을 받아온 게 사실이다. 내용에 독점적인 중요성을 부과하는 자들은 설교의 목적이 아름다움에 있지 않고(not to be beautiful) 신앙적인데 있고(to be faithful), 설교의 목적이 설교자나 설교 그 자체에 주목시키는 것이 아니라 복음에 주목시키는 데 있기 때문에 본질적인 부분은 아니라는 주장을 펴왔다. 그들은 복음이란 전달에 있어 그 자체로 자연스런 형식을 갖고 있어서 굳이 설교 형식은 수사학적으로 혹은 전략적으로 구성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런 입장에 서 있는 자들은 그 근거로 복음서나 서신서 저자들이 이런 형식의 문제로 애태우지 않았다는 사실을 든다. 즉 그들은 단지 급하게 말해야 하는 복음만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것을 전했으며 그들이 복음을 전하는 그 형식은 복음 그 자체의 본질로부터 온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들은 극장에 불이 난 것을 알릴 경우를 대비해 탈출구가 어딘가를 소리치기 위해 극장 안내원이 수사학적인 형식을 배울 필요가 없는 것처럼 설교에서도 형식은 불필요하며 설교는 오직 복음에 대한 신앙만 필요로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설교의 내용이 회중에게 전달되어야 한다'는 면에서 형식의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즉 '일방적인 선포'의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는 설교는 동시에 화자(話者)의 견해(見解)를 회중에게 전달하고 그 견해에 동의하도록 설득함을 지향하는 '연설적 성격'을 선포적 성격 이면에 갖고 있다. '일방적 선포'라는 설교의 신적 차원을 올바로 강조하려면 '설득적 연설'이라는 인간적 차원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물론 결정적으로 인간의 마음을 감화시키는 것이 성령의 소관사항이며 설교에서 말해야 하는 '하나님'이 신앙고백적인 차원을 전제하는 것임은 분명하지만 이러한 요소들이 인간적 차원의 노력을 포기하게 하는 구실은 될 수 없다. 아무리 훌륭한 내용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실어 나르는 형식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내용의 가치는 반감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설교의 힘은 장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구성에 있다"는 루코크(H. E. Luccock)의 지적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H. E. Luccock, In the Minister's Workshop, 1944, 118).
설교의 형식은 두 가지 사항을 고려해야 하는데 일차적으로 설교본문이 가진 문학적 형식과 회중의 의사소통의 패턴 변화에 대한 인지가 그것이다. 이것은 두 가지 사항에 대한 용인을 의미한다. 첫째 본문의 문학적 다양성이 항존하는 한 설교의 형식이 어느 하나로 고정될 수 없다는 의미이다. 논리전개를 연역적, 귀납적 방식으로 대별할 수 있다면 설교자의 형식 선택의 일차적인 기준은 성경 본문에 가장 적합한 방식을 찾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소위 ‘귀납적 논리’의 시대인 오늘에도 전통적인 연역적 설교 방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둘째로 변화하는 회중들의 커뮤니케이션 형태를 염두에 둔다면 설교의 형식은 유행을 탈 수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의 회중이 수동적인 수용형이었다면 오늘의 회중은 일방적 전달을 거부하고 납득되는 것만을 선택적으로 수용하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이런 변화를 염두에 둘 경우 전반적인 설교의 패턴은 귀납적인 패턴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으며 설사 본문에 대한 논리적 고려에 따라 연역적 방식을 선택하는 경우에도 일방성의 탈피를 위한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셋째는 설교의 내용이 설득적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수사학의 표현술(elocutio)을 적절히 사용하여야 한다. 표현술은 문장의 차원에서 논증들을 언어화하는 작업 또는 그와 관련된 기술을 의미하는 것으로 발견되고 배열된 논증이나 논거들의 골격에 살을 붙이고 보다 명료하고 생생하게 구체화시키는 기술이다. 표현술은 미사여구법이라고도 불리며 일종의 담화의 문체화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고상한 문체와 단순하고 간결하고 명확한 문체 그리고 일화와 유머를 대신하는 절도있는(중간정도의) 문체가 있는데,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고상한 문체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단순한 문체를 그리고 남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는 절도 있는 문체를 선택한다. 즉 설교의 성격에 따라 설교자는 적절한 문체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 
표현술과 관련하여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파토스적 접근이다. 파토스는 시대에 따라 그 이해가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대체로 열정이나 감정에 토대를 둔 호소로 청중을 행동하도록 만드는 결정적인 요소이다. 설교는 행복, 즐거움, 괴로움, 분노, 황당함, 모욕, 슬픔, 비애 증오 등 부드러움에서 격렬함에 이르는 감정의 영역을 담기 마련으로 그 자체가 메시지인 경우도 없지는 않지만 대개는 핵심 메시지를 위한 정적 터치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기 마련이다. 감정에 의한 돌발적 행동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감정은 그것이 적절하게 표출될 경우 이성적 사고를 압도하는 힘이 있다. 따라서 설교자가 전하려는 메시지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하려면 회중의 정적 터치가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으로는 센스어필(sense appeal)과 감정이입을 들 수 있다. 센스어필이란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 등 인체의 오감에 호소하는 기법으로 각각의 감각을 회중들이 느끼도록 실제적이고 생생한 표현으로 내용을 전개하는 것이다. 감정이입은 설교자가 센스어필을 포함하여 정적인 터치를 시도할 때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을 설교자가 먼저 감정을 이입하여 표현하는 기법이다. 키케로의 견해에 따르면, 웅변가는 자신이 청중들에게 바라는 감정을 스스로 먼저 느껴야 한다. 현실적인 관점에서 볼 때, 웅변가가 느낄 수조차 없는 감정을 청중이 경험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둔다면 설교자는 청중을 사로잡기 전에 먼저 자신이 그런 감정에 사로잡혀 자기 자신의 말에 넋이 나가야 한다. 키케로는 연설가가 개인 감정을 표출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기도 믿지 않는 주장을 논하다는 의미에서 도덕적인 궤변이라고 주장했는데 설교자 역시 이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즉 자기 설교에 대한 확신을 전제로 어색함이나 과도한 조작에 대한 위험성을 경계할 수 있다면 설교의 내용에 담긴 감정의 파장을 살아있도록 만듦으로 설교에 요철(凹凸)을 까는 작업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설득되는 설교를 위해 필요한 것이 설교자에 대한 신뢰의 문제이다. 이것은 도덕적 수사학에 해당하는 것으로 그 핵심은 에토스이다. 에토스의 의미를 정확하게 밝혀내는 것은 용이하지 않지만 플라톤식으로 말하면 에토스는 언어와 진실이 만나서 이것들이 개개인 속에서 구체화되는 공간을 말한다. 따라서 플라톤의 에토스 정의의 전제는 도덕적으로 보나 궁극적으로는 신학적으로 보나 언어행위와 연설가-행위자 사이에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곧 진실은 개인 안에서 실현되어야 하며, 특정 개인의 언어는 이 진실을 표현해야 하거나 아니면 먼저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꾸로 말하면, 개인의 연설을 그의 실제 성격과 분리하려는 시도는 어떤 것이든지 진실과 언어 모두의 구체적 양상을 부정하게 된다. 이러한 연설가의 인격과 도덕성의 문제는 수사학의 중요한 주제가 되어 왔다. 이것은 수사학이 인격이 배제된 단순히 말 잘하는 기술이어서는 안된다는 자기 천명이기도 하다. 
이소크라테의 주장처럼, “말을 잘하는 힘”은 “건전한 이성의 가장 확실한 지표이고, 진실되고 합법적이며 공정한 연설은 훌륭하고 성실한 영혼의 외적 이미지이다”라는 이소크라테스의 주장이나 “어떤 형식으로든 에토스는 화자가 훌륭한 인격과 관용을 갖춘 사람이기를 요구”한다는 퀸틀리안의 단언은 연설에서의 인격의 문제를 확인시켜 준다.
이처럼 일반 수사학에서도 이상적인 연설가를 “말하는 데 숙련된 훌륭한 사람”으로 규정한다면 신앙과 경건 그리고 성숙한 인격이 요구되는 설교자의 경우에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는 설교의 성패가 달리는 부분이다. 설교에 있어서의 설교자의 도덕성과 인격의 문제는 이미 기독교 수사학의 대표자인 어거스틴에 의해 제기된 문제이다. 그는 에토스를 방법의 한 단면으로 축소시키는 것에 반대하며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화자의 삶은 그의 말이 충실하게 들리는지 규정할 때 언어의 훌륭함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 (오히려) 그는 사물을 말하는데 사용된 말들보다는 말해진 사물들에 대해 더 기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는 무엇에 대해 말하든 진실하게 하는 것보다 말을 더 잘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존 브러더스가 말한 것처럼 설교는 “인격의 전달”로 설교의 내용과 설교자의 인격은 불가분리의 관계를 맺고 있다. 따라서 엄밀한 의미에서 설교의 성패는 설교단 밑에서 판가름된다고도 말할 수 있다. 설교자에게 중요한 것은 경건과 지식 그리고 하나님의 은총이며 기술은 이에 비해 덜 중요하다. 헐스가 간파한 대로 “설교는 전하는 메시지와 모든 면에서 모순이 없는 생활을 하는 하나님의 전권대사를 통해 행해지는 신성한 웅변이다”. 따라서 인격과 진실성이야 말로 설득되는 설교를 위해 설교자가 갖추어야 하는 일차적인 과제이다.
VI. 나가는 말 - 여전히 열려진 문제
설교학과 수사학의 관계는 여전히 논쟁이 끊이지 않는 문제이자 설교자 각자가 선택을 놓고 고민해야 하는 과제이다. 그러면서도 오토(Gert Otto)가 지적한 것처럼 설교에 있어서 내용의 문제(Was-Fragen)와 방법의 문제(Wie-Fragen)는 동떨어지거나 선후의 문제가 아닌 나란히 다루어야 하는 밀접한 연관성의 문제임도 부인할 수 없다.
필자는 설교가 지닌 실행적 성격이 연설인 이상 언어의 문제를 다루는 수사학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진술하였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설교의 실제를 다루는 과목에서 수사학적 훈련이 설교자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는데 괄목할만한 효과가 있음을 수년 동안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실제적 훈련의 성과나 2000년 설교의 역사에 나타난 대설교자들이 대부분 수사적 훈련을 받았음을 염두에 둘 때 이런 훈련 과정을 가져 본적이 없는 한국 강단에 시급히 도입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행적 효능에도 불구하고 설교와 수사학의 관계가 정리된 것은 아니다. 당장 수사학의 전체를 보지 않고 하나의 기법으로만 보는 편견의 극복이 시급한 과제이다. 반대로 수사학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낙관주의 역시 동일한 위험을 지니고 있다. 수사학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설교가 신적 차원과 인간적 차원을 갖고 있다면 온전한 설교를 위한 과제 역시 성령께서 감당하시는 부분과 설교자가 짊어져야 하는 부분이 있기 마련인데 수사학적 접근은 바로 설교자가 스스로의 과제를 수행하기 시도하는 노력의 일환일 뿐이다. 따라서 수사학은 그 자체로 설교가 갖는 근본적인 문제 즉 명령과 경외의 문제를 처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둘은 커뮤니케이션을 필요로 하지 않고 오직 수용을 필요로 하며 경외 역시 일종의 복종 행위속의 가상(假象) 커뮤니케이션(Scheinkommunikation)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반커뮤니케이션적인 구조(anticommunikative Struktur)는 수사학으로 해결되는 사안이 아니다.
또한 어거스틴이 제기한 “계시받은” 언어의 문제 역시 수사학으로는 풀 수 없는 설교의 독특함이다. 우리가 설교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인정한다면 인간의 노력인 수사학의 한계 역시 수긍해야 한다. 어거스틴이 “훌륭한 행위”의 에토스와 영감 받은 웅변의 에토스를 구분한 것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4.32).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 것인지 생각하지 말라. 그 때에 말할 것이 너에게 주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말하는 것은 네가 아니라 네 속에서 말씀하시는 네 아버지의 성령이기 때문이다” (마 10.19-20)는 말씀은 모든 설교자들이 앙망하는 ‘약속’이다. 이러한 불가해한 설교의 성격을 인지하면서도 여전히 수사학을 말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설교자가 수행할 수 있는 노력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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