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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토론

기독교와 자본주의

기독교와 자본주의


노승수 목사 


개신교는 자본주의와 함께 성장한 면이 없지 않다. 종교개혁 당시 선진 사회였던 프랑스의 위그노들의 사회계층은 대부분 기술자, 상공인, 무역업자였다. 중세적 봉건 체제, 곧 왕과 영주, 그리고 농노로 대변되던 토지 중심은 경제 체계에서 기득권 세력이던 왕과 영주들은 대체로 로마 가톨릭 신자였다.


그러나 산업 전반이 바뀌면서 사회 구조도 달라졌다. 가톨릭 국가였던 스페인과 프랑스는 각기 무슬림과 위그노를 내치면서 국가 산업의 붕괴를 가져왔다. 그에 비해, 이들을 수용했던 네덜란드, 영국, 독일 등은 산업적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다. 지금도 베를린에는 위그노들의 집성촌이 있으며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베를린 인구의 절반이 위그노였다. 뿐만 아니라 네덜란드에서 위그노들의 지지자였던 오라녜의 빌럼 3세(Willem III van Oranje)는 영국의 왕위 계승자로 영국 국왕 윌리엄 3세(William III)로 취임하면서 수많은 위그노들을 데리고 영국으로 건너 간다. 


이것이 영국의 산업혁명과 네덜란드의 해상제국의 배경이 된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자본주의는 이들과 함께 성장한다. 이들 중에는 다수의 칼빈주의 전통이 스며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유럽의 격변기인 16-17세기에 과연 위그노로 대표되던 이 무리들은 정말 신앙의 사람들만 존재했을까? 우리는 어쩌면 역사를 미화하고 있는지 모른다.


북유럽의 루터교가 국교인 국가들, 예컨대,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 등은 깨끗한 정치, 특권 의식 없는 정치인, 높은 사회 복지, 조세 제도를 통한 소득 재분배, 고소득자들은 소득의 세금이 50%에 달한다. 등으로 기독교적인 세계관과 정신이 구현된 데 반해서, 칼빈주의적 궤를 따라가다 보면 칼빈주의와 칼빈주의자들은 어쩌면 동상이몽이었 수 있겠다는 결론에 이른다.


유럽에서 산업혁명의 주체 세력이 되었던 위그노들의 계급은 결국 부르주아지가 되고 산업자본과 제국주의로 발전했다. 노예 무역과 설탕무역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수탈하면서 현대 유럽 자본의 80%가 이 때 형성되었다. 그래서 칼빈주의의 출발은 당시 로마 가톨릭의 기득권에 대한 저항에서 출발했지만 근현대로 오면서 더 보수적이 되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네덜란드 인들에 의해서 세워진 남아공에서는 현대까지 아파르헤이트 정책이 있었고 이 정책을 신학적으로 개혁신학에서 뒷받침을 했다. 대표적인 것이 노아 이야기로 함과 가나안이 흑인이고 야벳인 자기들이 백인이라는 신학이다. 옛 신학 서적에서 심심치 않게 지금도 찾아 볼 수 있다.


어쩌면 이 계급은 프랑스나 스페인에서 로마 가톨릭은 신봉하던 위정자들에게 당하던 수탈을 피하기 위해 임시적으로 개혁신앙과 한 배를 탔거나 혹은 신앙과 무관하게 시대의 발전에서 당시는 제정일치적 사회였기 때문에 같은 기원이나 자신들의 이익을 좀더 옹호하는 종교개혁의 교회가 정치적 뒷배로 필요했는지 모른다.


루터파 지역에서 나타나는 정치 사회적 현상과 장로교회가 뻗어 나간 지역에서 보이는 정치 사회적 현상은 이런 점에서 대비를 이룬다. 그것이 어쩌면 오늘날 이 땅의 장로교인들이 보이는 정치 지형의 이유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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