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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칼럼

기독교 윤리 소고

윤리는 실존-규범-상황 속에서 발생한다. 실존이란 내 존재를 가리키고 규범이란 교리를 일컫는다. 상황이란 우연히 내던져진 내 삶의 자리를 일컫는다.

사람은 안정을 경제에서만 찾지는 않는다. 종교에서도 안정을 찾고 그런 자들은 규범을 강화시키려 든다. 종교에서는 규범이 중요하다. 교리가 없는 종교는 그저 샤머니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규범은 우리가 피투된 존재로서 세상속에 산다는 사실을 삶에서 도려낸다. 그들은 종교를 철학으로 만든다. 우리는 세상에 내던져진 채로 산다. 상황은 규범에 의해 모두 설명되지 않는다. 예컨대,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의 예라든지, 베데스다 못가의 병자의 예가 그렇다.

율법으로는 그녀를 돌로 쳐야 하지만 규범은 그녀의 삶을 새롭게 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베데스다란 자비의 집이라는 뜻이지만 가장 자비롭지 않은 곳이기도 했으며 그곳에서 안식일에 자비를 베푼 일로 인해 이 규범 때문에 예수님의 이적이 논쟁의 대상이 된다.

두 경우 모두, 역설적이게도 규범 때문에 초월자의 존재를 곁에 두고도 인지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규범 때문이라기보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삶에서 상황이 지닌 우연성을 제거해버리고 규범 안에 안주하려는 종교인들의 눈에는 지극히 불편한 행동이었고 규범을 근거로 들어서 삶을 도래내어버렸다.

우리는 규범이 우리 자신의 죄를 드러낸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그 규범이 우리 삶의 우연성을 제거하려드는 것을 저항해야 한다. 모든 종류의 사랑의 실천은 항상 규범을 넘는 일이다. 그리스도 율법 밖에 계신 의인 까닭도 이 때문이다.

미국 도덕학자 콜버그에 의하면 최초의 도덕은 징벌의 회피로부터 시작하지만 점차 욕구를 충족하려는 거래로 주변인들의 평판을 중시하는 데로 법과 질서를 중시하는 데로 발달하다가 인습을 넘어서는 도덕 발달이 나타나는데 성경이 말하는 언약적 도덕 관념, 즉 사회 계약적 도덕 관념으로 발달하고 최종적으로 보편적 윤리로 발달한다고 설명한다. 이 보편적 윤리란 사랑의 윤리다.

역설적이게도 자비의 집인 베데스다는 자비가 없는 곳이었고 그곳에서 베풀어진 주님의 자비는 규범 아래 숨어 우연 속에 방문한 초월을 제거하고 안정을 얻으려는 자들로부터 안식 규범을 빌미로 공격을 당한다.

상황 속에 던져진 우리는 매일 우연을 맞는다. 그리고 그 우연들에는 규범이 들어 있지 않다. 그 자리를 남겨두라 그래야 기도하며 종교를 철학으로 만들지 않는다. 우연속에만 머물지 말라 그래야 규범을 통해서 진리 안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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