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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칼럼

어둠과 빛

어둠은 하나님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실은 그렇지 않다. "여호와께서 캄캄한 데 계시겠다 말씀하셨사오나"(왕상 8:12) 이는 솔로몬의 성전 봉헌 기도 중의 일부다.

구약의 현존하시는 하나님은 빽빽한 흑암과 같은 구름 가운데 현존하시는 하나님이셨다. 그래서 어둠은 하나님의 현현의 상징이기도 하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의 배경이 된 이탈리아 피에몬테의 산 미켈레 수도원이다. 높은 산 위에 지어진 이 철옹성 같은 수도원은 외벽을 두텁게 쌓고 햇빛을 차단해 하나님의 현현하시는 세계로 들어가려는 열망을 담은 건물이다.

그러나 에코의 상상력처럼 이 어둠의 폐쇄적인 공간은 사람들의 부패한 본성을 자극하고 있었다. 장미의 이름에 등장하는 수도사의 추악한 욕망과 살인 사건들은 이런 지점을 잘 보여준다. 션 코네리가 주연한 영화로도 만들어진 적이 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찾아보시기를 바란다.

중세 동안 빛을 차단한 어두운 교회 내부는 인간의 부패와 죄를 쉽게 감출 수 있게 했다. 그리고 그렇게 감추어진 채로 내부로부터 부패해갔다. 이것은 로마네스크라는 로마인들의 수평적 삶을 추구하는 그들의 건축 방식이 그들에게 제공한 삶의 자리였다.

그에 비해 13세기부터 퍼지기 시작한 고딕 양식은 우리가 잘 아는대로 오늘 한국의 수많은 교회들에서 보이는 뾰죡한 첨탑에서 보듯이 수직적 질서를 강조한 양식이며 수많은 창문과 채광 그리고 스탠드글래스에서 보이는 신비로운 빛을 통해서 빛 가운데 현현하시는 하나님을 형상화한 건축이다.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요일 1:7)라는 본문에서도 알 수 있듯이 빛을 형상화한 건물이다. 깍아 지르는 듯한 첨탑은 하늘에 닿을 듯해서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를 더 드러낸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얼마전 불타서 세계인들을 안타깝게 했던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이 바로 고딕 양식의 대표적 형태의 교회 건축 방식이다. 고딕 교회에 들어선 사람들은 빛과 색채로 인해서 신비로움을 경험하게 된다. 게다가 잘 공명된 음향적 효과는 천상에 이르는 듯한 신비감을 주게 된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로마네스크의 어둠이 사람의 부패한 본성을 불러 일으켰던 것처럼 깍아지르는 듯한 첨탑과 빛의 향연은 하나님의 권위와 장엄을 자기 것으로 훔쳐오는 결과를 낳았다. 스탕달의 소설, "적과 흑"은 군복과 사제복을 의미했다. 돈 많은 정부를 총으로 쏴 죽였던 주인공 줄리앙의 "가장 선하다는 것도, 가장 위대하다는 것도, 모든 것이 위선이다. 아니면 적어도 사기다"라는 대사처럼 모든 것이 위선이었다. 부르봉 왕가의 복귀 이후의 시대는 평민이 수도사가 되는 것 외에 출세의 길이 없다는 것을 암시하는 제목이 바로 "적과 흑"이었으며 이런 교회의 하늘을 찌를 듯한 사기적 권위를 보여주는 은유이기도 하다.

오늘 우리 시대의 한국은 로마네스크 시대의 음침하고 축축한 범죄와 권력과 약탈의 죄가 함께 교회를 잠식하고 있는 듯 하다. 어떤 양식으로 건축을 하더라도 우리 죄를 씻을 수는 없다. 교회는 건축물이 아니라 성령의 전이며 말씀이 깃든 곳이 아니라면 부패할 수밖에 없다.

#히브리서강의안만들다가문득생각나쓴글
#히브리서
#로마네스크
#고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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