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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신학/이단사이비

무속적 신앙이 미신적 이단 부른다

무속적 신앙이 미신적 이단 부른다 

이단 그리고 미신 왜 이렇게 활개치나
말띠와 쥐띠가 만나면 가정불화가 많이 난다는데 괜찮을까요? 이웃집 부부는 처음부터 궁합이 잘 안 맞아서인지 가정에 문제가 많은 것 같아요. 자주 다투는 것 같기도 하고요. 요즘엔 아홉 수(29세 등)에 결혼해야 하는 것도 맘에 걸리고요. 좋지 않다고 하잖아요. 지난 해 이사할 때 ‘손 없는 날’을 잘 골랐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기 때문인지 이사한 이후로 계속 일도 잘 풀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저희 어머니는 요즘 한 가지를 단단히 벼르고 계신 것이 있습니다. 오는 윤달에는 꼭 수의(壽衣)를 장만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아무런 탈이 없고 또 장수한다고 은연중에 믿고 있습니다. 그것이 저에게도 영향을 미친다고까지 하면서 말이죠.”
위는 한국 사람들의 대화중에 흔히 나올 수 있는 무속주의적인 표현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은 것이다. 12개 동물의 성향을 나타내 준다는 ‘띠’를 살펴봄으로 결혼하는 사람들의 궁합을 봐야 한다는 것이며, 악귀와 악신이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소위 ‘손이 없는 날’ 이사를 가야 불행한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탈이 없는 달이라고 믿는 윤달에 수의를 해 놓아야 장수와 건강의 복이 온다고 믿는다는 것 등이다. 여기에 기독교인이라고 자유로울 수만은 없다. 한국사회가 그러한 무속신앙에 오랫동안 노출되어 왔기 때문이다. 집사님, 권사님, 장로님 즉 소위 교회 다니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일부 성도들은 위와 같은 표현과 또 그렇게 행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주장하기도 한다. 혹 누군가가 “집사님,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자식 결혼에 궁합 같은 것에 의존해서야 되겠습니까?”라고 충고라도 하면, “무슨 말씀을···. 남들이 다 안 좋다는데 구태여 억지로 그것을 무시할 필요가 있나요. 좋은 게 좋은 것이지요”라고 말하곤 한다. 기독교 신앙생활을 하기는 하지만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무속신앙도 필요에 따라 소유하겠다는 식이다. 다시 말해 생각은 기독교식, 생활은 유교식, 버릇은 무속식 등으로 짬뽕(?)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성도들의 이러한 혼합적 신앙 형태가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웃에게 반기독교적인 삶의 영향을 미치고 심지어 이단과 사이비종교에 빠지게 되는 원인으로 작용된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오늘날 이단사이비 종교가 이렇게 활개를 치고 있는 원인 중 하나는 교회 내부적으로 성도들 스스로 이단사이비에 빠질 수 있는 혼합적인 신앙 양태를 이미 충분히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삶의 문제를 기독교적인 세계관에 입각해서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전통적으로 이어져 온 무속적, 신비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려 한다는 말이다.
‘가계저주론 사상’이 그 대표적인 것 중 하나다. 1990년대 후반 한국교회에는 가계저주론이라는 사상이 유행처럼 급속히 번졌다. 가계저주론은<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이렇게 끊어라>(이윤호 목사),<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야 산다>(메릴린 히키) 등과 같은 여러 서적들이 기독교서점에 진열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한국교회에 알려졌다. 또한 그 사상의 중심에 있는 이윤호 목사가 이곳저곳에서 집회 강사로 활동하면서 그 사상의 문제점이 더욱 크게 드러나게 되었다(본 기자의 ‘가계저주론을 차단하라’ 등 참조).
가계저주론 관련 서적들 
가계저주론이란 한 마디로 조상의 죄가 가계를 통해서 오늘 우리들에게까지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나타는 어떤 죄악된 행위(또는 형태)의 원인을 자신의 죄악된 행위에서 찾기보다는 조상의 그것에서 찾는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조상 탓’이라는 말이다. 원인이 조상에게 있으니 해결도 그곳에 있다는 식이다. 가계저주론 주장자들은 조상의 죄를 찾아서 자신이 대신 회개해야 한다고 말한다. 심지어 ‘아담의 죄’를 우리가 회개해야 한다는 엉뚱한 주장까지 하고 있을 정도다.
정훈택 교수(총신대신대원 신약학)는 가계저주론 사상을 ‘정령숭배사상과 물신론 등 한국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미신적 샤마니즘을 기독교식으로 각색한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조상의 저주가 가계를 통해서 흐른다는 것은 또 하나의 무속신앙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관직 목사(전 총신대신대원 목회상담학 교수)도 동일하게 말한다. ‘조상숭배와 불교문화, 한(恨) 등의 문화가 섞인 대표적인 사상’이라고 가계저주론을 설명했다. 결국 가계저주론 사상은 지난 2001년 예장합신측으로부터 ‘위험한 사상’ 등으로 공식 규정되고 말았다. 
한 마디로 정령숭배, 조상숭배 등과 같은 무속적 신앙이 내재되어 있는 한국교회 성도들의 생각과 삶이 가계저주론과 같은 비성경적인 사상이 빠르게 유행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정작 끊어야 할 것은 가계에 흐르는 저주가 아니라 성도의 삶에 존재하고 있는 무속적 신앙의 연결고리인 셈이다. 
서재생 목사(서울대현교회 담임)는<목사님도 모르는 교회 안의 무속신앙>이라는 책을 통해서 성도들의 생각과 삶이 잔존해 있는 무속신앙을 50가지로 요약 설명하고 있다. 승려 출신인 서 목사는 특히 ‘살이 끼었다’, ‘액운이 따른다’는 등의 사고 방식은 전통적인 한국 무속의 사상이라며 반기독교적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 목사는 또한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행하고 있는 ‘안찰’ 행위에 대해서 비판했다. 특히 안찰을 통해서 귀신을 쫒아낸다는 방식은 무속적 신앙행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 목사는 귀신이 사람 몸속에 들어가 질병과 재앙을 일으킨다는 것은 전통적인 무속신앙 중 하나라며 조상들은 그 귀신을 쫓는 방법으로 ‘구타법’과 ‘경악법’ 등을 대표적으로 사용했다고 언급했다.
귀신들린 사람의 몸을 구타하여 그 귀신이 견디지 못하고 나가도록 하는 것이 구타법이라는 것이며, 귀신에게 소리를 지르는 등 놀라게 하거나 억압하므로 떠나게 하는 것이 경악법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귀신을 쫓아낸다고 하는 방식이 알게 모르게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교회 안에 적지 않게 스며들어와 있다는 것이다.
서 목사는 “상담을 많이 하게 되는데 심지어 복숭아 나뭇가지로 구타하면서 기도한다고 하는 곳도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완전히 무속적인 방법입니다”며 무분별한 안찰 행위를 지적했다. 즉, 귀신들렸다고 하는 사람을 구타해서 치료한다는 것뿐 아니라 무속적 행위나 도구를 이용하는 것도 잘못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심상훈 목사(안동중앙교회, 유사기독교 연구위원)도 ‘안수와 안찰에 대한 올바른 이해’라는 기고문을 통해 구타적 안찰행위는 전혀 성경적이지 않은 신비주의적인 행위라고 언급했다.
한국교회 내에서는 이미 귀신을 쫒아낸다는 방식으로 귀신들렸다는 사람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비인격적인 말을 던지는 등의 행위는 상당히 알려져 있다. 이초석 목사(예수중심교회), 김기동 목사(성락교회) 등이 주요 인물들이다. 이미 한국교회로부터 각각 이단으로 규정받은 그들은 각종 집회를 통해서 귀신을 쫒아낸다며 이런 류의 행위를 해오고 있다. 
한국교회가 예배 중에 사도신경이나 주기도문을 주문처럼 반복한다거나, 또한 기도할 때 웅얼거리고 의미 없는 말을 반복하는 행위 그리고 젊은이들 중심으로 찬양할 때 지나칠 정도로 열광하는 것조차도 한국교회의 무속적, 신비적 풍토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즉, 지나친 행위중심과 체험중심의 신앙생활이 객관적인 성경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 신앙과 은근히 빗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변종길 교수(고신대신대원 신약학)는 한국교회가 오랫동안 무속적이고 신비주의적인 토양 위에서 성장해왔다며 그에 영향 받은 행위들이 특히 1990년대 이후로 ‘기도’와 ‘찬양’ 등을 통해 적지 않게 드러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관적 체험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기도와 찬양이 여기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변 교수는 ‘한국교회 안의 신비주의’라는 기고문을 통해 1990년대 이전과 이후의 무속적, 신비주의적 경향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고 진단했다. 1990년대 이전에는 병 낫고 부자 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면 어느 정도 경제발전이 이루어진 1990년대 이후에는 주관적인 체험을 주목적으로 하는 신비주의적이고 기복주의적인 행위가 잘 나타난다고 한 것이다. 그러한 신앙행위가 모두 이기적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성경 중심의 생각, 판단, 결정을 하는 기독교세계관적인 신앙이 결국 무속주의, 신비주의의 바람을 타고 나타나는 비성경적 행위를 막아준다는 것이다. 또한 무속주의, 신비주의를 이용해서 활개를 치려는 이단사이비 단체(또는 사상)의 움직임을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교회와 신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