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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수의 강해설교/예레미야강해

변해버린 사랑을 고발하다.(렘 2:1-8)

변해버린 사랑을 고발하다.(렘 2:1-8) 

노승수 목사

[1]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가서 예루살렘의 귀에 외칠지니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네 청년 때의 인애와 네 신혼 때의 사랑을 기억하노니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그 광야에서 나를 따랐음이니라 [3]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위한 성물 곧 그의 소산 중 첫 열매이니 그를 삼키는 자면 모두 벌을 받아 재앙이 그들에게 닥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4] 야곱의 집과 이스라엘의 집 모든 족속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5] 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너희 조상들이 내게서 무슨 불의함을 보았기에 나를 멀리 하고 가서 헛된 것을 따라 헛되이 행하였느냐 [6] 그들이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 곧 사막과 구덩이 땅, 건조하고 사망의 그늘진 땅, 사람이 그 곳으로 다니지 아니하고 그 곳에 사람이 거주하지 아니하는 땅을 우리가 통과하게 하시던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하고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7] 내가 너희를 기름진 땅에 인도하여 그것의 열매와 그것의 아름다운 것을 먹게 하였거늘 너희가 이리로 들어와서는 내 땅을 더럽히고 내 기업을 역겨운 것으로 만들었으며 [8] 제사장들은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말하지 아니하였으며 율법을 다루는 자들은 나를 알지 못하며 관리들도 나에게 반역하며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무익한 것들을 따랐느니라(렘 2:1-8, 개정)
1. 첫사랑의 추억하다(1-3)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해서 그 어린 시절 출애굽하여 광야를 지내던 시절,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던 시절을 추억합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어떻게 나를 좇았음을 내가 너를 위해 기억하노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사실 광야 생활의 실상은 그렇게 로맨틱하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광야 생활에는 수많은 반역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아름다운 것만 기억하시고 이 백성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의 잘못을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죄과에 대해 기억지도 않으시는 분입니다(사 43:25). 이스라엘을 책망하시지만 그 중심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첫사랑을 추억하십니다. 그 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성물 곧 하나님의 첫열매였습니다.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자는 누구든지 벌을 받아 재앙을 만났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쉽게 말해, "누가 내 애인을 건드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추억하실까요? 돌아오라는 것이지요? 나의 환난날에 나의 기도를 들으셨던 주님을 잊어버리고 살지는 않습니까? 주님은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2. 변해버린 사랑을 고발하다(4-8)
매일성경은 본문을 8절까지 구분했지만, 그 이유는 9절에 나옵니다. 이렇게 변해버린 사랑에 대해 하나님의 소송을 거십니다. 9절을 다른 번역으로 보면, 새번역은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다시 법대로 처리하겠다.\나 주의 말이다.\내가 너희 자손의 자손들을\법대로 처리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을 사랑하던 백성들의 주를 떠나는 일에 대해 주님께서 소송을 하십니다. 그 소송의 이유를 4-8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법정에 고발하시는 사유가 오늘 말씀의 핵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들으라고 외치십니다. 5절에, "너희 열조가 내게서 무슨 불의함을 보았관대 나를 멀리하고 허탄한 것을 따라 헛되이 행하느냐?" 하나님이 오히려 이스라엘의 반역에도 불구하고 광야에서 이 백성을 품으시며 사랑하였건만, 그 사랑이 식어지고,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을 가까이 하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아마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열조의 핑계를 많이 일삼았던 것 같습니다. 예레미야 31:29에 보면, "그 때에 그들이 다시는 이르기를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 하지 아니하겠고"는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 조상이 신포도를 먹어서 자손들이 이가 시리다고 하는 속담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우리 속담에도 잘 못되면 조상 탓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오늘 5절에, "너희 열조가 내게서 무슨 불의함을 보았건대"는 이런 문맥에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 백성이 하나님을 멀리하는 까닭이 조상에게 하나님이 불의하게 행해서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곧이어지는 6절은 다른 설명을 합니다. 서두의 '그들이'에 그들은 조상들입니다.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 곧 사막과 구덩이 땅, 황량하고 사람이 다니지 안니하고 거주하지 않는 땅을 통과케 하시던 여호와께서 어디계시냐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조상들은 하나님을 기억했고, 그 하나님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문장 곧,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라는 질문은 바로 지금 예레미야 시대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하는 질문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시 14:1, 53:1)고 한다 했습니다. 마치 오늘날 성경의 기적을 보면서, 성경은 가짜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이적의 요소를 다 제해버리는 신학자가 있습니다. 한국에도 있더군요. 고양에 있는 모 신학교에 어떤 교수님은 출애굽기의 나일강이 피로 변하는 기적을 상류의 붉은 황토 지역에 비가 많이 와서, 나일 강물이 핏물처럼 보였다고 설명하더군요. 성경에 어디에, 붉은 황톳물이라고 했던가요? 그리고 그럼 그게 무슨 하나님의 역사이겠습니까? 마치 예레미야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그 열조에게 행했던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기억치 않고, 그 마음에 이런 하나님의 기사는 없다하는 사람들이 바로 어리석은 자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에게 소송을 거십니다. 
7절에 보시면, 하나님이 이 백성을 인도하여 기름진 땅에 들여 그 과실과 아름다운 것을 먹게 하였건만, 이 백성이 이 가난 땅으로 들어와 하나님의 땅을 더럽히고 하나님의 기업을 가증히 만들었습니다. 지금의 내가 그냥 생긴 줄 압니다. 뿐만 아니라 과거의 하나님이 인도하심을 다 망각할 뿐 아니라 망령되게 행합니다. 이 땅이 자신의 것인 줄 압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의 기업입니다. 오늘 본문은 명확히 "내 땅" "내 기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것에 들어와서는 마치 자신의 것인양 그 모든 것을 역겨운 것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롬 1:22-23)으로 바꾸었습니다 나는 어떻습니까?
8절은 약간 오해를 불러 일으키게 번역을 했습니다. 제사장은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하고 묻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즉, 제사를 드리면서 하나님을 찾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목사에게 빗대어 설명하자면, 목사가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것입니다. 재판관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무익한 것을 좇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 본문을 보니 바알과 하나님이 명확히 구분되는 것같지요. 예레미야 시대로 들어가면, 아마도 바알과 여호와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배를 하지만 그것들 중에는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는 많은 무리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예배의 대상은 성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은 영향력이 아니라 성부, 성자와 동등한 인격이시며, 그 존재에 있어서는 성부와 성자와 일체를 이루시고 그 인격에 있어서는 성부와 성자와 구별이 되시는 제 삼위격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인격자이시어 우리와 교제하시며, 특별히 말씀하실 때, 그리스도 예수의 것을 가지고 말씀하시며(요 16:14), 그분은 아버지께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보내신 분(요 14:26)이시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인격(엡 6:17)이십니다. 성부와 성자와 동등하게 지성과 의지를 가지신 위격이시란 말입니다. 그런데 어떤 자들은 성령을 마치 무슨 물건이나 능력처럼 분여(임파테이션)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바알을 섬기는 것입니다. 각종 은사 집회와 신유 집회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인격자인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제정신인 아니며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말들을 하면서, 하나님과 교제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뭐라 말씀하시는지 듣지도 않으면서, 뒤로 넘어지면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이것이 바로 바알 숭배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해지만 거기에는 하나님의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예레미야 당시의 사람들 곧 제사장이나 재판관과 같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가 어제 말씀 드렸죠 우상숭배가 무엇이라고요.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만든 것을 좇는 것이라고요.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계시는 성경입니다. 나는 참으로 성경을 믿으며 신앙생활을 합니까? 성경을 사용하는 것과 믿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나는 참으로 성경을 믿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