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실천신학/상담학

아담스의 권면 상담 그 이후?

아담스의 권면 상담 그 이후?

김 수연

     

                한국 개신교 교회 안의 상담운동

              

   우리 나라의 경우 상담은 세속 문화권 내에서보다 오히려 교회 안에서 더 큰 흐름을 만들어 내고 있다.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대부분의 신학교들이 상담과정을 우후죽순처럼 개설하여 학생들을 모으고 있는 것만 보아도 실감할 수 있는 바이다. 심지어 신학적으로 상담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는 학교에서조차 재정적인 이유로도 상담은 외면할 수 없는 조류로 다가오고 있다. 그만큼 교회 내에 관심과 수요가 크다는 증거다. 평신도들 사이에서 상담을 환호하는 정도에 비교하면 목회자들, 특히 보수개혁교단 내의 목회자들이 간혹 상담을 바라보는 눈은 그렇게 곱지만은 않다. 이들은 상담을 설교나 목회 사역에 경쟁하는 사역으로 바라보거나 교회 내에 오히려 구설수를 만들어 내는 온상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한국 교회 내에서 상담에 대한 다양한 찬반과 호오의 반응들을 바라볼 때, 과연 한국교회는 상담이라는 이름 아래 무엇을 생각하고 있고 무엇을 기대하고 바라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또한 교회의 어떤 내면적 영적 요구들이 상담을 운동처럼 번지게 하고 있는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이러한 영적 요구에 대한 진단을 통하여 교회 지도자들은 상담운동의 흐름을 인도해 나갈 방향을 모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상담운동의 영적 동기: 왜 교회는 상담을 요구하는가?


  교회가 상담을 요구하게 된 가장 직접적인 내적, 영적 원인을 든다면 무엇보다 말씀을 개인적으로 적용하는 가운데 생기는 어려움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설교만으로 채워지기 힘든, 말씀의 개인적 적용에 대한 요구가 각종 상담훈련 프로그램(자아정체, 자기주장, 자녀양육, 성격 검사, 집단상담, 상담자 훈련)을 부흥케 한 원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QT를 통하여 말씀을 적용하고자 애쓸 때 늘 부딪히는 고질적인 장애, 곧 자기 성격의 문제들, 그로 인한 대인관계의 문제, 살아온 인생의 상처들에 대한 맺힌 원한 등을 해결하고자 하는 안타까움이 교회 내에 상담의 필요성을 일깨워주게 된 주된 동기라고 생각된다.

  하나님에 대한 거역과 불순종 그리고 인간성의 부패로 인한 죄성이 현재 나의 문제의 원인이라는 기본 명제에는 동의하겠는데, 그것이 지금 나의 성격장애나 정서장애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잡아내기 힘들 때, 상담에 대한 요구는 더욱 각별해 진다. 여기서 그 연관성을 해석해주는 상담이론을 접할 때, 그리고 그것이 지금 내 속에 어떤 모양으로 일어나고 있는지 관찰할 수 있게 해주는 상담기법들을 접할 때, 교회는 비록 그것이 세상의 인본주의적 가치관에 뿌리를 둔 것이라 할지라도 거부할 수 없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적극적으로 찾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일반 심리상담이 전제하고 있는 세계관이나 인생관에 대하여 기독교적으로 검토해 볼 여유도 없이, 단지 그 실제적인 유용성 때문에 교회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이처럼 급증하는 상담에 대한 요구 앞에서 목회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이 시점에서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표방하는 아담스의 권면상담의 역사적 위치와 가치를 재조명해 봄으로써 간접적으로나마 한국교회 내 상담에 대한 요구를 어떤 방향으로 인도해야 할지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상담이 기독교적인가?

           

  기독교 상담은 기독교인에 의하여 기독교인을 위하여 이루어지는, 그 목표나 전제에 있어서 기독교적 진리에 기초한 상담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다. 기독교인에 의하여 기독교인을 위한 상담이라는 점에서 교회 내에서 이루어지는 상담은 모두 기독교 상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상담의 목표나 전제가 얼마나 기독교 진리에 기초하고 있는가 점검할 때, 교회 내에 들어와 가르쳐지고 행해지고 있는 상담을 모두 기독교적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문제는, 무엇이 기독교 진리인가 따져 물을 때 신학적인 입장에 따라서 성경해석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교회 내에 들어와 있는 각종 상담접근법들이 얼마나 기독교적인가를 판단한다는 것은 신학적 입장이 지니는 당파적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다면 여기서 ‘기독교 상담’이라 이름하는 큰 보자기 속에 들어 있는 각종 상담접근법들을 ‘말씀’과 ‘적용’을 양극으로 하는 스펙트럼 속에서 분류해 보는 것도 일종의 대안이 될 것이다. 말씀과 적용을 양극으로 하는 연속선상에서 말씀의 극에 서있는 상담접근법들(보수 개혁주의 진영의 아담스의 권면상담이나 성경적 상담)은 주로 상담원리의 신학적 진리성을 강조한다. 반면, 적용의 극에 가까이 서 있는 상담접근법들 (자유주의 신학에 동조하는 통합주의적 접근법이나 복음주의 진영의 심리치료적 접근법)은 상담의 경험적이고 방법론적 측면에 초점을 두고 심리상담이론이나 정신분석이론들을 적극 수용한다. 기독교 상담이라 불리는 다양한 상담접근법들을 분류하는 기준이 시사하는 바, 신학과 심리학 사이의 관계를 정립하는 문제는 기독교 상담에 있어서 그 방향과 내용을 결정짓는 중요한 시금석이 되어 오고 있다. 여기서 아담스의 권면상담이 취하는 입장은 기독교 상담, 특히 목회사역의 맥락 내에서 교회 공동체를 위하여 행해질 상담의 정체와 특성을 파악하는데 작은 등불이 되겠기에, 아담스의 후학들이 평가하는 바, 그 역사적 위치와 의의를 간략히 소개해보고자 한다.


                  아담스의 권면상담의 역사적 의의


   제이 아담스가 70년대 미국 개신교 보수정통주의 교단에 권면상담을 제안했던 그 시대의 배경은, 지금 한국교회가 그의 권면상담을 받아들이는 배경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1970년 장로교 목사인 제이 아담스가 미국 보수 개혁교단 내에 반(反)정신의학의 일환으로 일으킨 상담운동은 (1) 현대 심리학이론 및 정신의학이론은 인생의 역기능적인 문제들을 잘못 해석하고 있다는 것, (2) 전문직으로서의 심리치료 및 상담은 목회자에게 속한 고유영역을 침해하고 있다는 것, (3) 개혁주의 신학에 의해 해석된 바, 성경은 목회자들이 상담하는데 필요충분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는 3가지 기치를 내걸고 시작되었다(Adams, 1970). 아담스의 권면상담은, 상담이 정신의학이나 심리학의 전문 영역이라는 인식이 교회 내에서마져도 고정화되어 목회자들이 교인의 삶의 실천적 문제를 보살핌에 있어서 정신의학이나 심리치료에 주도권을 빼앗기고 있는 현실을 깨기 위하여 던져진, 그 당시로서는 일종의 폭탄선언이었다. 아담스가 심리상담이론(정신분석이론이나 행동주의 및 로져스의 내담자중심의 상담이론)에 대하여 가한 무차별적 공격은 한편으로는 목회자가 상담자로서 자신의 사역을 스스로 내려놓지 않도록 의식을 재무장하였다는 점에서, 또한 심리학에 영향받지 않고 기독교 상담의 독자적 영역을 개발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문화적 소명을 심었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의를 인정할 만하다(Powlison, 1996).


                 아담스의 권면적 상담 그 이후


    아담스의 분리주의적이며 이분법적인 단순확고한 사고에 기초를 둔 강력한 주장은 70년대 미국 보수주의 교회 내의 평신도를 중심으로 넓은 지지층을 확보할 수 있었다. 반면, 학자간 유대 및 의사교류의 빈곤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동의와 지지를 얻어내는 데는 불리하게 작용하였다. 이것은 80년대 권면상담이 문화 속에서 주도권을 잃고 위축케 된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Pawlison, 1996). ‘성경적’이라는 이름 하에 혹 지닐 수 있는 배타적 우월성으로 인하여 아담스의 권면상담이론은 지식층에게서 설득력을 잃고 고립되어 갔으며, 급기야는 80년대 심리학이론과 기독교 신앙의 통합노선을 추구하는 복음주의 심리치료자들의 입장에 비하여 문화적으로 열세에 몰리는 형편이 되었다. 이제 권면상담은 세속 상담이론이 아닌, 기독교 상담 자체 내의 통합노선을 취하고 있는 복음주의 정신치료자들과 맞서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담스의 상담체계에 대하여 분명히 해야 할 점은, 아담스가 자신의 상담이론을 내놓을 때, 상담이라는 전문직종 내에서 하나의 상담이론으로서 자리를 잡기 위해 제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기존의 일반상담체제 내에서 목회상담의 위치를 확보하는 것은 아담스의 주요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 전문상담자들을 설득하는 데는 세심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아담스가 원하는 것은 상담을 통하여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아담스의 상담체계는 상담을 보는 틀 내지는 패러다임으로서, 20세기 화란 보수 개혁주의의 신학적 입장이 취하는 세계관을 통하여 상담에 대한 전반적인 입장을 표명한 것이었다. 아담스의 상담이론이 현대 심리학이론에 대하여 무차별 폭격을 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하나의 세계관이 지니는 전체주의적 포괄성에서 말미암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Powlison, 1996). 이런 연유로 아담스의 상담체계는 상담이기에는 너무도 신학적이며, 신학이기에는 너무도 상담적이다.

   아담스의 권면상담은 90년대로 접어들면서, 로져스의 비지시적 상담이나 정신분석적 치료가 지니는 상대주의적 세계관의 한계가 드러남에 따라, 다시금 그 신선함이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로져스의 내담자 중심의 상담이나 정신분석적 치료에서 상담자나 치료자는 가치중립의 태도를 취한다. 가치결정은 인간의 내재적 성장동기에 의해 스스로 선한 것을 찾아갈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피상담자 자신이 한다. 이러한 근거에서 공감적 경청으로 일관하는 로져스식 상담에서 상담자는 피상담자가 보고 느끼고 판단하는 것에 대하여 비평가적으로 무조건적으로 수용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아담스는 상담자가 평가적으로 반응하며 적극 개입하며 충고하고 직면시키고 지도하는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아담스의 개인적 성향으로 볼 때에도 그의 ‘호방한’ 성격대로 상담자가 자신의 입장을 모호하게 한 채, 내담자 앞에 안개 같은 존재로 남아있는 역할에 만족할 수 없었을 것(Powlison, 1996)이라 한다. 그는 오히려 성경말씀에 기초한 진리의 절대성에 확신을 두고 내담자와의 투명한 관계(“lovingly frank" and “irenically direct") 속에서 기독교 세계관을 심어 주는 자로 남기를 선호하였다고 한다. 특히 권면상담이 심리장애에 대하여 인간의 죄와 도덕적 책임을 물을 때, 포스트모더니즘의 다원적 세계관 속에서 결국 자기중심의 늪에 빠져 질식하고 있는 현대인에게 선선한 생명의 기운을 호흡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해 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때를 맞추어 일반 상담이론 내에서도 지시적 상담접근법들, 예컨데, Rational- Emotive Therapy(Albert Ellis), Transsactional Analysis(Eric Burne), Reality Therapy(William Glasser), Integrity Therapy(O. Hobart Mowrer) 등이 인간의 내적 장애를 의학적으로 개념화하는 것에 반대하며 개인의 인격적이며 대인관계 문제로 재정의할 것을 촉구하며 부상하였다. 이러한 접근법들은 로져스식 비지시적 상담자와는 달리 상담자의 적극적 개입, 곧 상담의 문제해결적이며 교육적이고 권면적인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아울러 개입의 필수요소로 (1)도덕화, 곧 도덕적 책임을 묻고 도덕적 기준을 변화의 축으로 삼아 결단으로까지 요구하는 것, 그리고 (2)과거보다는 현재에, (3)감정보다는 사고에 초점을 맞추는 것 등을 고려하고 있다. 이처럼 일반 심리상담이론의 자체 내 개발과 함께 아담스가 무차별 공격하던 적들 또한 이미 사라진 셈이다. 이 시점에서 아담스의 권면상담을 잇는 후학들은 신학과 심리학과의 관계를 정립하는 과제에 있어서도 아담스와는 좀 다른 위치에 서게 된다.  

    신학과 심리학과의 관계정립에 있어서 아담스 계열의 소위 ‘성경적 상담’을 표방하는 자들 내에서도 심리학에 대하여 취하는 배타성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 극단적 입장(MacArthur, 1994; Bookman, 1994)은 ‘오로지 성경만으로’ - 성경의 충족성을 강조하면서 심리학이 과학으로서 연구대상에 대하여 밝혀줄 수 있는 인식론적 가치마져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한편, 이보다는 다소 온건하나 결코 통합이라는 단어만은 금기로 여기는 입장(Welch & Powlison, 1997)은 일반 심리학이나 상담학의 이론을 전면 부정하기보다 ‘활용’을 권장한다. 다만 이를 성경의 진리와 동일한 수준에서, 곧 세계관의 수준에서 결합하는 것은 거부한다. 이는 상담의 원리를 세우는데 있어서 심리학적 개념의 인도를 받기 보다 성경의 진리가 주도권을 갖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즉, 이론적 체계화 과정에 있어서 성경에 개념적 상위권 곧 구성적(constitutive) 역할을 부여하고자 하는 것이다. 나아가 일반심리학이론들의 타당성을 재조명하는 빛으로서, 동시에 일반심리학의 인간 중심적인 왜곡된 사고를 바로잡아주는 ‘교정렌즈’로서의 기능을 성경에서 발견코자 한다. 이러한 논리의 귀결로, 성경적 상담(Biblical  Counseling)을 하나의 상담체계로 세우고자 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동기구조 및 내적 변화과정에 대하여 성경적 개념에 의해 주도된 모델을 세우는 것을 그들의 당면과제로 받아들이고 있다(Powlison, 1994). 결국  ‘성경적 상담’의 활로는 성경신학의 기초 위에 얼마나 풍성하고 통찰력 있는 인성이론과 상담모델(원리, 목표, 전략, 기법들) 및 사례별 지혜(case wisdom)를 개발해내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기준에서 -심리학 내지는 상담학이라는 전문영역의식(professionalism)을 배제한 채 - 생각해 볼 때, 상담은 그 준비작업에 있어서 설교와 결코 다른 일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더욱이 말씀에 기초하여 영혼을 개별적으로 돌보는 상담이 목회사역과 경쟁관계에 있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신학이기에는 너무도 상담적이며, 상담이기에는 너무도 신학적인 ‘성경적 상담’ 역시 하나의 체계적인 상담학으로서 자라나가기에는 아직까지 “biblical" 이라는 구호만으로는 심지어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도 설득력이 약하다는 평이 지배적이다(Powlison, 1994; 1996). ‘성경적’이라는 기치가 “biblicist"라는 비난을 무효화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강력한 상담도구로 구체화되는 일이 필요하다. ‘성경적 상담’이 신학적 체계나 기술적 체계를 갖춘 이론으로 정립되기까지에는 더 많은 연구와 실습을 요한다. 이를 위해서는 특히 아담스가 그토록 힐난하던 심리학의 이론과 기술들이 과연 기독교 상담이론과 적대관계 속에 있는지는 선동의 차원을 넘어 학문적으로 그 가정들을 하나씩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나아가 심리학 이론들의 ‘부분적이며 제한적인’ 유용성을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 것인지 탐색해 보는 것도 의미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그 한 예로, 피상담자의 핵심믿음을 분석하고 수정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인지치료(Beck, 1999)는 각 개인의 삶에서 실제로 작용하는 신학 (‘confessional theology’와 대조되는 ‘functional theology’로서, Tripp, 2001)을 교정하는 것을 내적 변화의 근간으로 삼는 ‘성경적 상담’ 접근법과 상담 전략적으로는 일맥상통한다. 따라서 어떤 한 피상담자의 삶에 작용하는 신학, 곧 핵심믿음의 체계를 밝혀 내어 수정함으로써 마음의 문제를 치료하고자하는 성경적 상담의 노력들을 인지치료적 기법 및 연구결과들과 접목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인지치료적 사례들에 기초한 풍성한 연구결과들 가운데, 특히 인격장애의 유형에 따라 삶의 양식 및 대인관계의 특징을 기술하고 그 기저에 깔린 핵심믿음의 내용을 분류해 놓은 연구결과들(Beck& Freeman, 1990)은 기독교인의 신앙인격을 진단하고 그 성장저해 요인을 분석하고 수정하는데 중요한 참고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성경적 상담’ 접근법이 하나의 학문적 상담체계로서 정립된다는 것은, 개인의 마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일을 넘어서서 상담사례를 분석하고 지도하는 도구로서, 또한 목회자를 상담자로 훈련하는 도구로서, 나아가 목회상담을 경험적으로 연구하는 프로그램으로서 구체화되며 풍성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아담스 상담 그 이후의 성경적 상담의 활로에 관심을 갖는 것은 이것이 다른 그 어떤 상담접근법보다 목회자의 사역에 내용적으로 직결되며 따라서 교회의 유익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Adams, J. E.(1970), Competent to Counsel. Grand Rapids, MI: Baker Book House.


Beck, A. T. & Freeman, A.(1990), Cognitive Therapy of Personality Disorders,

    The Guilford Press: New York.


Beck, J. S. (1999), 인지치료의 이론과 실제 (최영희, 이정흠 공역), 하나의학사


Bookman, D. (1994) The Scripture and Biblical Counseling. in J. F. MacArthur, Jr &

    W.A. Mack (eds), Introduction to Biblical Counseling. Word Publishing: Dallas.



MacArthur, J. Jr. (1994) Rediscovering Biblical Counseling. In in J. F. MacArthur, Jr &

    W.A. Mack (eds), Introduction to Biblical Counseling. Word Publishing: Dallas.


Powlison, D. A.(1994), Biblical Counseling in the Twentieth Century, in J. F.

     MacArthur, Jr & W.A. Mack (eds), Introduction to Biblical Counseling.

     Word Publishing: Dallas.


Powlison, D. A. (1996), Competent To Counsel? A Conservative Protestant

     Anti-Psychiatry Movement: Dissertation, University of Pennsylvania.


Tripp, P. D. (2001), Wisdom in Counseling, Journal of Biblical Counseling,

      Vol. 19, No.2, 4-13.


Welch, E. & Powlison, D. A.(1997), "Every Common Bush Afire With God":

     The Scripture's Constitutive Role for Counseling, Journal of Psychology

     and Christianity, Vol. 16, N0.4, 303-322.

'실천신학 > 상담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경적 관점으로 본 상담과 사람  (0) 2018.07.10
코후트와 삼위일체론  (0) 2018.02.22
잃어버린 기술_용서  (0) 2018.02.22
자존감에 대한 성경적인 시각  (0) 2018.02.10
상담자의 자질  (0) 2018.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