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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자료실/신앙자료

영혼의 어둔밤(The Dark Night of the Soul)

영혼의 어둔밤(The Dark Night of the Soul)은 하나님께서 기쁨과 빛을 통해서가 아니라 슬픔과 어둠을 통해서 영혼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대한 고백입니다. 때때로 영적인 순례의 길을 하면서 마음에 의심과 답답함이 일어나 속기 쉬운 부분에 대해 잘 일러주고 있어 좋은 안내가 되어주네요.
 
1. 영혼의 정화 :


영적인 순례의 길에 어느 순간 하나님께서 사람을 초복적인 단계에서 한차원 높여 성숙한 단계로 이끄시는데 '영혼의 어둔밤'을 경험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는 초보적인 영적 생활에서 누리던 기쁨을 다 잃어버리는 경험을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방법대로 이끄는 영혼의 정화입니다.
처음 하나님을 만나면 그 영혼은 성령에 의해 보살핌을 받고 위로를 얻으며 기쁨 안을 맛보며 살게 됩니다. 그래서 신앙에 몰두하게 되는데 신앙 안에서 누려지는 기쁨이 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한 때가 되면 하나님은 주셨던 위로와 선물을 다 앗아가시는데, 이는 그런 평안과 기쁨 안에서 자라는 악을 막으시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2. 은밀한 교만 :


그 악의 첫째가 교만입니다.
영적 생활의 초보자들은 활동에 지나친 열심을 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의 위험성은 신앙적 활동에 만족하거나 열심히 활동하는 자신에 도취되기 쉽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것들만 말하기 좋아하면서 자신의 성장에 만족합니다. 가르침을 받기보다 가르치기 좋아하고, 자기들만큼 영적인지 못한 이들을 정죄하게 되지요. 마귀는 그들의 열정에 더 불을 붙여서 교만이 더 커지도록 부추깁니다. 그래서 결국 그들의 모든 행위와 선행이 무가치하게 되고 오히려 악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존중받는 자신을 즐기고, 더이상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기를 꺼립니다. 죄를 고백할 때도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내적인 평안과 죄책감의 감소를 위해 하는 통과의례가 되게 되지요. 영혼의 어둔밤은 자신과 자신의 신앙적 활동이 하잘것 없는 것임을 생각하게 하고 오히려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지를 생각하는 법을 배우게 하는 것입니다. 
 
3. 감정에 집착함 :

신앙의 초보자들이 빠지기 쉬운 또하나의 악은 탐욕입니다
. 그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마땅히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위로를 경험하지 못하기에 더 많은 영적 위로를 얻기 위해 더 많은 글을 읽고 경건한 일들을 수행합니다. 그들의 마음은 경건 생활에서 얻은 감정에 집착합니다. 경건의 내용이 아니라 감정에 초점을 맞추게 되는 거지요. 그러나 바른 길을 가는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을 바라보지 외적인 것들이나 내적인  경험을 중시하지 않습니다. 영혼의 어둔밤에 들어가 보면 이 모든 것이 없어졌음을, 사라지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신앙의 경험, 감정조차도 우리가 집착할 것이 못되는 것입니다. 선물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아야할 것입니다. 
 
4. 세가지 원인 :

세번째 중대한 죄는 영적인 사치입니다
. 영적 생활 가운데 마음 속 깊이 자리잡은 유혹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성찬 중에 일어나기도 하고 죄를 고백할 때 일어나기도 합니다. 첫째는 육체의 쾌락이고, 둘째는 마귀이고, 세째는 과도한 두려움이 영적인 사치를 자극하게 됩니다. 그러나 영혼의 어둔밤에 들어가면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와 육체가 침묵을 지키고, 마귀가 잠잠해지고, 두려움이 가라앉게 됩니다. 
 
5. 하루만에 성인이 되려함 :

영혼이 영적 생활을 누리기 시작하는데, 갑자기 그것을 빼앗기고 나면 그 영혼은 화가 나가 격분하게 됩니다. 기쁨이 사라지면 매우 염려하고 좌절합니다. 젖먹이가 어머니의 젖가슴에서 떨어질 때 싫어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기쁨의 상실이 자신이 저질럿던 일이나 소홀히했던 일들 때문이라 생각해서 분노하게 됩니다. 이 기쁨을 되찾기 위해 야단법석, 애간장을 태우며 가능한 모든 일을 하려고 애를 씁니다. 하루만에 성인이 되려하지요. 그러나 결심이 클수록 실망도 크게 마련입니다. 무엇이든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과 주실 때를 기다리는 인내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영혼의 어둔밤에 이러한 영적인 온유함을 얻게 됩니다.
 
6. 절제의 한계를 넘어섬 :

다섯번째 죄는 영적인 과식입니다.
많은 이들이 경건생활이 주는 영적인 달콤함에 탐닉한 나머지 계속해서 그것을 더 많이 얻으려고 애를 씁니다. 복종과 금식과 고행으로 육신적인 것을 이기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일방적인 행위입니다. 하나님께로서 비롯된 열심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에 따라 일어나는 일이기에 선보다 악이 되기 쉬운 것입니다. 참된 순종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것을 자기가 선택한 시간에 자기의 방법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런 일들을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합니다. 따라서 싫증을 내고 지치게 되지요. 헌신의 댓가로 기쁨이 없으면 성취한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속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잘못 판단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경건생활에서 받은 감정은 경건 생활의 유익 가운데서 지극히 작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고 느낄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는 훨씬 더 큽니다. 그것은 우리의 이해를 초월하지요. 노력을 통해 위로를 얻으려는 것은 실제로 영성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참된 영성은 이내와 오래참음과 겸손에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과식의 죄는 더 많은 책을 읽게 하고 더 많은 기도를 하게 하지만,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혜는 그들에게 아무런 위로를 더이상 주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영혼들을 어둔밤의 무미건조함을 통해서 치료하십니다. 
 
7. 영적인 활동으로 곤고함 :


나머지 두가지의 죄는 시기심과 영적인 나태함입니다
. 자신이 영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종종 다른 사람의 영적인 성장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주된 관심은 오로지 칭찬을 받는 것입니다. 선한 일에 기뻐하지 않게 되지요. 또한 영적인 나태함은 영적인 생활에서 기쁨이 사라질 때 옵니다. 그러한 영혼들은 영적인 활동에 아무런 위로를 얻지 못하면 곤고함에 빠지고 영적인 활동을 포기해 버립니다. 그리고 그들의 필요를 채우지 못하는 일을 하게 된데 화를 냅니다. 자신을 하나님의 척도로 판단하지 않고 하나님을 자신의 척도로 판단하고 있는 거지요. 그렇게 하나님에 대한 관심을 잃기 시작한 영혼은 우리의 성장을 위해 준비된 십자가, 영혼의 어두운 밤을 맞이할 수가 없습니다. 
 
8. 소극적으로 일하시는 하나님 :

그러므로 이렇게 말하면 충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있는 불완전함을 다 아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자라도록 권고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어둔밤으로 인도하셔서 메마른 시기와 영적인 어둠의 시기를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죄악들을 없애주실 수 있고, 또 선을 창조하실 수 있습니다.
어둔밤을 통해 교만이 겸손이 되고, 탐욕이 소박함이 되며, 분노가 만족이 되고, 사치가 평안이 되며, 탐식이 절제가 되고, 시기가 기쁨이 되며, 나태함이 강건함이 되는 것입니다
성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