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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신학/비교종교학

유교는 성선설인가 성악설인가

공맹의 사상을 흔히 "성선설"이라고 하지만 사실, 이것은 반만 맞는 답이다. 경은 공경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아래 풀어둔 유정유일은 그 마음으로 정순하고 오롯하게 하는 것을 뜻하는 말로 오히려 "깨어있는 마음"에 더 가깝다. 그래서 콜럼비아대 마이클 칼튼은 이것을 mindfulness라고 번역했다. 칼튼의 번역문은 아래와 같다.

The term kyŏng, which we have been translating as “mindfulness,” more traditionally meant rather “reverence”(Kalton, 1988: 187)

도심과 인심 사이, 곧 성과 정 사이, 미약한 도심에서 인심이 일어나는 지점을 붙드는 것을 "중"이라고 한다. 이것이 유정유일의 의미다. 인심은 달리 말하면, 정, 곧 희노애락의 마음이며 중이란 이런 발현 이전의 마음을 뜻한다. 그래서 중용에서는 중의 의미를 희노애락이 아직 발현하지 않은 상태를 중이라 한다(喜怒哀樂之未發而 謂之中)고 했다. 그리고 그것이 발현된 후에는 상황에 절도 있게 들어맞는 것을 화라 했다(發而皆中節 謂之和).

이 설명에 따르면 사실 성리학은 성선설을 말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기독교가 성악설을 말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사람을 악하게 창조했다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같은 방식으로 그런 설명은 너무 단순화한 것이다. 물론, 마음을 밝혀 하늘의 본의를 따라 살 수 있다고 생각한 데는 일종의 알미니안 신학이 내재해 있기는 하다.

북인의 좌장이었던 남명이 자신의 단검인 경의검에 새긴 검명, 곧 내명자경 외단자의(內明者敬 外斷者義)는 우리 마음을 밝히는 것은 경이요, 실천을 판단하는 것은 의라고 한 설명도 여기서 기인한다.

그러나 알미니안적은 요소를 빼고 본다면 성화의 교리에서 소생(vivification)과 죄죽임(mortification)에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재해석 할 여지가 많다.

아래는 퇴계의 성학십도 중 제8도인 심학도다. 이런 방법론으로 재해석의 여지를 두고 유심히 한 번 살펴보길 바란다.

1. 위편의 심을 중심으로 한 도를 상도라 하고 아래의 경을 중심으로 한 도를 하도라 한다.
2. 중용 1장에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 수
도지위교(修道之謂敎)라는 귀절에 따르면 하늘이 명한 것을 성이라 하고 그 성을 따르는 것을 도라 하고 도를 닦는 것을 교라 한다.
3. 서경에 이런 구절이 있다. ‘인심유위(人心惟危) 도심유미(道心惟微) 유정유일(惟精惟一) 윤집궐중(允執厥中)’
4. 상도와 하도 사이에 인심과 도심 유정유일을 도해해둔 게 보인다.
5. 중용 장구서에도 같은 표현이 나온다.
6. 도심이란 하늘이 명한 것을 따르는 마음이다. 그러나 이것은 미약하다.
7. 그러나 인심은 중용과 상서가 밝히듯이 위태롭다.
8. 그래서 오로지 정진하고(유정) 오로지 하나로 모아(유일)
9. 그 가운데를 붙잡는 것이 중용이다.

10. 유정유일의 좌편은 존천리, 즉, 미약한 도심을 기르는 방향을 일러주는 공부이고
11. 유정유일의 우편은 알인욕, 즉, 위태로운 인욕을 막는 방향을 일러주는 공부다.

12. 존천리는 아래와 같다.
1) 계구(戒懼): 두려워함
2) 조존(操存): 보존하려고 함
3) 심사(心思): 마음속에서 본성을 생각함
4) 양심(養心): 본성을 기름
5) 진심(盡心): 본성을 다함

13. 알인욕은 아래와 같다.
①신독(愼獨): 홀로 있을 때 삼가야 함
②극복(克復): 사적 인욕을 이기고 본성을 회복함
③심재(心在): 마음이 본성에 있도록 함
④구방심(求放心): 방일한 마음을 다잡음
⑤정심(正心): 마음을 바르게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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