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존적 아이들
노승수 목사
1. 의미
서울 근교 모 지역 기관에서 중고등학생 부모 집단 상담을 의뢰해서 6주간의 집단 상담을 진행하는 중인데 그 중 몇몇 어머니들은 이렇게 하소연 합니다. “하나에서 열가지 내가 해주지 않으면 그대로여서 아프지도 못한다. 교통사고 나서 병원에 입원을 했었는데, 집이 걱정되서 1주 만에 퇴원했다. 그런데 이렇게 아무 손놀림도 하지 않는 아이들 때문에 너무 속상하다.” 이런 호소를 하며 답답해하고 괴로워하신다. 그러나 이 의존성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엄마와의 관계에서 학습된 것이란 사실을 잘 모릅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숟가락질을 하려고 할 때, 하게 해주십시오. 물론 하게 해주면 식탁은 금세 엉망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이것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니며 일정시간의 시행착오를 거치고 나면 스스로 하게 됩니다. 스스로 걷으려 하면 걷게 해주십시오. 넘어지는 것도 연습되어야 합니다. 스스로 열쇠 구멍에 열쇠를 넣고 싶어 한다면 손으로 잡아주기 보다 스스로 하도록 내버려 두고 지켜보십시오. 옷 입는 것을 스스로 하길 원하면 스스로 하도록 지켜봐주십시오. 물론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을 계속 해서 지켜보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하려는 의지를 꺾어서는 안 됩니다.
2. 원인
아이가 생후 2년 정도를 지나면서 애착이 안정되면 대상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아주 미약하지만 초기의 자아가 이 시기에 형성이 됩니다. 자아는 타인과 자신을 구분하는 일종의 경계로서 이 자아의 형성 곧 유아의 심리적 탄생으로부터 자율성이 시작됩니다. 숟가락질도 잘 못하면서 숟가락질을 굳이 자신이 하겠다고 우깁니다. 또한 잘 걷지도 못해서 뒤뚱거리며 자꾸 넘어지면서도 혼자 가려고 합니다. 이런 모든 행동들은 자아와 그 경계의 형성, 타인과 세계에 대한 인식의 증가와 그에 따른 자율성이 자라는 여러 징후들입니다.
그러나 이시기의 엄마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그것을 지켜보지 않고 모든 것을 해주는 게 보통입니다. 그러니 아이는 실수할 기회를 갖지 못합니다. 실수를 해야 그에 따른 경험이 쌓이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자율성이 형성됩니다. 아동의 세계에 대한 경험은 그 인생의 위대한 자산입니다. 그런데 엄마들이 이것을 박탈하면서 나중엔 아이들이 의존적이라고 투덜거리며 걱정하게 됩니다. 문제는 너무 많은 보호를 한다는 것이겠죠.
엄마의 과잉보호가 나쁘다는 것은 알지만 엄마의 이러한 태도 자체가 아이의 자율성을 죽이는 것이라는 걸 잘 인식하지 못하고 계십니다. 아이가 이 세상을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주도적이며 환경이란 자극에 대해 능동적으로 반응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자아가 가지는 유연성이며 사회성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건강한 아이는 독립적으로 자라게 됩니다. 아이의 성장이란 의존의 감소와 독립의 증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런 양육이 건강한 양육입니다. 그러나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자율성이 자연스러운 것이고 의존이 학습된 것이라면 바른 양육 태도에 의해서 고쳐 질 수 있습니다.
3. 부모의 반응 및 치료
그럼 어떻게 아이들의 의존을 줄이고 점차적으로 독립적으로 행동하도록 격려하고 의존적 성격을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을까요? 몇 가지를 같이 생각해봅시다. 우선, 아이가 그날 해야 될 일과를 같이 정해봅니다. 이 때 같이하면서 스스로 할 일을 선택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너무 많은 일과보다는 간단한 몇 가지 일들을 정해봅니다. 이렇게 할 일을 정하고 나서 주의해야 할 점은 잔소리는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밤에 잠들기 전에 일과를 아이와 함께 살펴보고 잘 지켜졌으면 기쁨을 충분히 표현하시고 칭찬과 포옹을 해줍니다. 이 때 아이가 갖고 싶어 하는 것을 역시 엄마와 함께 의논하고 적정한 가격의 것을 정해서 7일이나 보름 정도 잘 지켜지면 그 선물을 보상해 주면 더 많은 자율성이 발생합니다. 이 때 너무 엄격한 기준을 가지기보다 서로 의논 했던 것만큼 못했더라도 아이의 입장에서 적절히 칭찬해주시고 보상을 해주시는 것이 좋습니다. 보상은 성취감을 가져다 주고 스스로 하고 싶어 하는 성취동기가 생기게 합니다.
둘째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선택을 아이 스스로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아이와의 대화 방법의 수정이 필요합니다. “해라.” “안 돼!”같은 명령형의 말보다는 두 가지 대안을 주고 아이가 선택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저같은 경우는 아이들이랑 장을 보러 마트에 가면 꼭 장난감 코너에 가서 뭔가를 사달라고 조릅니다. 이 때 무조건 안돼라고 말하기보다 다른 대안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이건 너무 비싼데, 지난 번 장난감 산지도 얼마 안 되었고 놀이코너에 가서 노는 건 어떠니?” 이렇게 제안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결정권과 함께 욕구에 대한 만족을 어떤 방식으로든 주게 되면 아이는 스스로 선택하게 되고 그리고 자기가 결정한 것이기 때문에 만족감을 경험하게 됩니다. 옷 같은 것을 살 때도 엄마가 일방적으로 정해 주지 마시고 두서너 개를 골라 주고 아이가 스스로 선택하게 합니다. 매사를 이렇게 선택하게하면 처음에는 미숙한 선택을 하다가도 점차로 바람직한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성취감과 성취에 따른 자존감, 독립심이 함께 덤으로 생기게 됩니다. 이때 중요한 점은 아이의 미숙한 결정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고 몇 번의 시행착오 후에 믿음직스런 결정을 하게 될 것이란 확신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세 번째는 잔소리를 줄여야 합니다. 잔소리는 아이의 의욕을 꺾습니다. 어른들도 그렇지 않습니다. 막하려는데 누가 시키면 어떻습니까? 그걸 하더라도 기분이 몹시 상하거나 그래서 안하게 됩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능동성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데서 생기는 것입니다. 서두에서 말한 것처럼 숟가락질 서툰 것이 평생가지는 않습니다. 시행착오는 능동성의 원천입니다. 간섭은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관심은 갖되 간섭은 삼가십시오. 어느 선교사가 필리핀 원주민에게 감자 농사법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근데 이 원주민들은 끝내 그걸 배우지 못했는데, 왜나하면 감자가 난다고 하니 오며가며 파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파보면 식물이 자랄 수 없습니다. 자라는 것은 스스로 하는 것이지요. 농부는 그걸 단지 돌볼 뿐입니다. 간섭은 돌봄과는 거리가 먼 행동입니다. 자람은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 해야 하는 것이기에, 아이의 자람은 키에만 있지 않고 내면세계와 영혼에 더욱더 필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서울 근교 모 지역 기관에서 중고등학생 부모 집단 상담을 의뢰해서 6주간의 집단 상담을 진행하는 중인데 그 중 몇몇 어머니들은 이렇게 하소연 합니다. “하나에서 열가지 내가 해주지 않으면 그대로여서 아프지도 못한다. 교통사고 나서 병원에 입원을 했었는데, 집이 걱정되서 1주 만에 퇴원했다. 그런데 이렇게 아무 손놀림도 하지 않는 아이들 때문에 너무 속상하다.” 이런 호소를 하며 답답해하고 괴로워하신다. 그러나 이 의존성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엄마와의 관계에서 학습된 것이란 사실을 잘 모릅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숟가락질을 하려고 할 때, 하게 해주십시오. 물론 하게 해주면 식탁은 금세 엉망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이것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니며 일정시간의 시행착오를 거치고 나면 스스로 하게 됩니다. 스스로 걷으려 하면 걷게 해주십시오. 넘어지는 것도 연습되어야 합니다. 스스로 열쇠 구멍에 열쇠를 넣고 싶어 한다면 손으로 잡아주기 보다 스스로 하도록 내버려 두고 지켜보십시오. 옷 입는 것을 스스로 하길 원하면 스스로 하도록 지켜봐주십시오. 물론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을 계속 해서 지켜보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하려는 의지를 꺾어서는 안 됩니다.
2. 원인
아이가 생후 2년 정도를 지나면서 애착이 안정되면 대상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아주 미약하지만 초기의 자아가 이 시기에 형성이 됩니다. 자아는 타인과 자신을 구분하는 일종의 경계로서 이 자아의 형성 곧 유아의 심리적 탄생으로부터 자율성이 시작됩니다. 숟가락질도 잘 못하면서 숟가락질을 굳이 자신이 하겠다고 우깁니다. 또한 잘 걷지도 못해서 뒤뚱거리며 자꾸 넘어지면서도 혼자 가려고 합니다. 이런 모든 행동들은 자아와 그 경계의 형성, 타인과 세계에 대한 인식의 증가와 그에 따른 자율성이 자라는 여러 징후들입니다.
그러나 이시기의 엄마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그것을 지켜보지 않고 모든 것을 해주는 게 보통입니다. 그러니 아이는 실수할 기회를 갖지 못합니다. 실수를 해야 그에 따른 경험이 쌓이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자율성이 형성됩니다. 아동의 세계에 대한 경험은 그 인생의 위대한 자산입니다. 그런데 엄마들이 이것을 박탈하면서 나중엔 아이들이 의존적이라고 투덜거리며 걱정하게 됩니다. 문제는 너무 많은 보호를 한다는 것이겠죠.
엄마의 과잉보호가 나쁘다는 것은 알지만 엄마의 이러한 태도 자체가 아이의 자율성을 죽이는 것이라는 걸 잘 인식하지 못하고 계십니다. 아이가 이 세상을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주도적이며 환경이란 자극에 대해 능동적으로 반응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자아가 가지는 유연성이며 사회성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건강한 아이는 독립적으로 자라게 됩니다. 아이의 성장이란 의존의 감소와 독립의 증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런 양육이 건강한 양육입니다. 그러나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자율성이 자연스러운 것이고 의존이 학습된 것이라면 바른 양육 태도에 의해서 고쳐 질 수 있습니다.
3. 부모의 반응 및 치료
그럼 어떻게 아이들의 의존을 줄이고 점차적으로 독립적으로 행동하도록 격려하고 의존적 성격을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을까요? 몇 가지를 같이 생각해봅시다. 우선, 아이가 그날 해야 될 일과를 같이 정해봅니다. 이 때 같이하면서 스스로 할 일을 선택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너무 많은 일과보다는 간단한 몇 가지 일들을 정해봅니다. 이렇게 할 일을 정하고 나서 주의해야 할 점은 잔소리는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밤에 잠들기 전에 일과를 아이와 함께 살펴보고 잘 지켜졌으면 기쁨을 충분히 표현하시고 칭찬과 포옹을 해줍니다. 이 때 아이가 갖고 싶어 하는 것을 역시 엄마와 함께 의논하고 적정한 가격의 것을 정해서 7일이나 보름 정도 잘 지켜지면 그 선물을 보상해 주면 더 많은 자율성이 발생합니다. 이 때 너무 엄격한 기준을 가지기보다 서로 의논 했던 것만큼 못했더라도 아이의 입장에서 적절히 칭찬해주시고 보상을 해주시는 것이 좋습니다. 보상은 성취감을 가져다 주고 스스로 하고 싶어 하는 성취동기가 생기게 합니다.
둘째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선택을 아이 스스로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아이와의 대화 방법의 수정이 필요합니다. “해라.” “안 돼!”같은 명령형의 말보다는 두 가지 대안을 주고 아이가 선택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저같은 경우는 아이들이랑 장을 보러 마트에 가면 꼭 장난감 코너에 가서 뭔가를 사달라고 조릅니다. 이 때 무조건 안돼라고 말하기보다 다른 대안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이건 너무 비싼데, 지난 번 장난감 산지도 얼마 안 되었고 놀이코너에 가서 노는 건 어떠니?” 이렇게 제안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결정권과 함께 욕구에 대한 만족을 어떤 방식으로든 주게 되면 아이는 스스로 선택하게 되고 그리고 자기가 결정한 것이기 때문에 만족감을 경험하게 됩니다. 옷 같은 것을 살 때도 엄마가 일방적으로 정해 주지 마시고 두서너 개를 골라 주고 아이가 스스로 선택하게 합니다. 매사를 이렇게 선택하게하면 처음에는 미숙한 선택을 하다가도 점차로 바람직한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성취감과 성취에 따른 자존감, 독립심이 함께 덤으로 생기게 됩니다. 이때 중요한 점은 아이의 미숙한 결정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고 몇 번의 시행착오 후에 믿음직스런 결정을 하게 될 것이란 확신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세 번째는 잔소리를 줄여야 합니다. 잔소리는 아이의 의욕을 꺾습니다. 어른들도 그렇지 않습니다. 막하려는데 누가 시키면 어떻습니까? 그걸 하더라도 기분이 몹시 상하거나 그래서 안하게 됩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능동성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데서 생기는 것입니다. 서두에서 말한 것처럼 숟가락질 서툰 것이 평생가지는 않습니다. 시행착오는 능동성의 원천입니다. 간섭은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관심은 갖되 간섭은 삼가십시오. 어느 선교사가 필리핀 원주민에게 감자 농사법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근데 이 원주민들은 끝내 그걸 배우지 못했는데, 왜나하면 감자가 난다고 하니 오며가며 파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파보면 식물이 자랄 수 없습니다. 자라는 것은 스스로 하는 것이지요. 농부는 그걸 단지 돌볼 뿐입니다. 간섭은 돌봄과는 거리가 먼 행동입니다. 자람은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 해야 하는 것이기에, 아이의 자람은 키에만 있지 않고 내면세계와 영혼에 더욱더 필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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