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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수의 강해설교/시편강해

주여 구원하소서(시 86:1-7)

주여 구원하소서(시 86:1-7) 


노승수 목사


[1] [다윗의 기도] 여호와여 나는 곤고하고 궁핍하오니 귀를 기울여 내게 응답하소서 [2] 나는 경건하오니 내 영혼을 보존하소서 내 주 하나님이여 주를 의지하는 종을 구원하소서 [3] 주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가 종일 주께 부르짖나이다 [4] 주여 내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오니 주여 내 영혼을 기쁘게 하소서 
[5] 주는 선하사 사유하기를 즐기시며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함이 후하심이니이다 [6] 여호와여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7]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께 부르짖으리니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이다


1. 다윗의 곤고함(1-4)


85편이 공동체가 드리는 탄원시라면 86편은 다윗이 개인적으로 드리는 탄원시입니다. 표제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다윗이 기도시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곤고하고 궁핍하다고 말합니다. 아마도 그는 실제로 가난과 궁핍에 씨달렸던 것 같습니다. 사무엘서에 나타난 그의 생애를 통해 유추해보건대, 아마도 사울에게 쫓기던 시절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볼 뿐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다윗이 어떤 구체적인 상황인지는 알 수 없으나 실제적이며 육체적 궁핍 가운데 주께 간구하는 기도라는 것입니다. 2절에 경건한 자는 믿음의 성도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주를 신실히 신뢰하는 자신의 신앙 인격에 대해서 주께 고백합니다. 자신의 영혼을 보존하시고 구원하여 달라고 탄원하고 있습니다. 3절에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는 '은혜를 베푸소서' 정도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다윗은 주님께 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4절의 '주를 우러러 본다'는 표현은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않는다'(시 24:4)와 '마음과 뜻을 다해 주님을 바라본다'(시 25:1)는 뜻과 같은 맥락을 가집니다. 다른 것을 보지 않고 주님만 바라고 본다는 뜻을 담습니다. 우리가 이 악한 세대로부터 구원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참으로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어떻게 우리가 이 세대를 본받지 않을 수 있습니까? 우리가 강위에서 배를 타고 있으면 우리가 노를 젓지 않는 한 배는 하류로 흘러 내려 갑니다. 이런 것을 '시류'라고 합니다. 우리가 말씀의 강에서 노를 젓지 않는 한 우리는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이 세상을 본받는 자가 됩니다. 오늘 본문의 다윗처럼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않고 주님만 바라보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 만이 우리가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길입니다. 나는 참으로 하나님 말씀에 있어서 이런 신실함이 있습니까? 


2. 죄를 사하시는 주님(5-7)


이 부분은 다윗의 신앙고백과 같습니다. 그가 만났던 하나님에 대해 신실하게 고백합니다. 신앙이란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사귀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무엇으로 사귑니까? 그의 말씀을 통해서 사귀는 것입니다. 내 얘기만 일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무엇을 싫어하시는지를 주님께 잠잠히 듣는 것입니다. 무엇을 통해서요?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곤고함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깊은 신뢰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합니까? 그것은 다윗의 경험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삶 가운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날마다 받은 것이지요. 그리고 늘 사함을 경험했던 것입니다. 그 경험이 많은 것이지요. 그러니 주님에 대해서 사유하시기를 즐기신다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인자가 후하십니다. 그런 주님께 기도합니다. 나의 간구를 들으소서 환난의 때에 부르짖으면 주께서 응답하신다고 고백하며 선언합니다. 교회 인테리어가 다 마무리 되어 갑니다. 이제 목놓아 부르짖는 일만 남은 것 같습니다. 주님이 응답하실 것입니다. 신실하게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며 우리를 건져내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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