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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신학/신앙고백서

직분과 자질

직분과 자질 
천사를 바르게 알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두신 곳에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들을 천사처첨 즐거이 그리고 충성스럽게 하려는 열망을 갖게 됩니다. 이러한 것은 직분과 자질이라는 주제에 대해서도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이 있습니다.
천사의 봉사를 보면 그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는 일에도 천사 둘이면 충분했습니다. 훗날 사마리아 성을 둘러싼 아람 군대를 물리치는 일도 하룻밤 사이에 금방 이뤄졌습니다. 천사가 하나님의 뜻을 사도 요한에게 가르쳐 주니까 요한이 그 앞에 엎드려서 절하려 했습니다. 천사는 절하지 말라고 하면서 “나도 너와 함께 하나님의 종이다.” 하면서 말렸습니다.(계 19:10)
그렇게 능력과 지혜가 있는 천사를 하나님께서는 우리처럼 지혜도 없고 거룩하지도 않으며 하나님의 뜻에 무지한 자들에게 보내셔서 우리를 섬기도록 하셨습니다. 그럴 때에도 천사는 “왜 능력도 없고 지식도 없고 하나님을 배반하기를 잘하는 저 사람들을 우리가 섬겨야 합니까?” 하면서 반론을 제기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 심히 완고하고 무지한 사람을 섬기는 일을 하라고 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 사람이 그러한 일을 즐겁고 충성스럽게 하겠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천사보다는 못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은 그렇게 섬기는 일을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성실하게 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의 천사들은 하나님께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돌보고 섬기는 일을 맡기셨을 때에 불만을 갖거나 주저하는 것이 없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다 행해 나갑니다. 즐겁고 충성스럽게 그 일을 감당합니다. 하나님께서 두신 자리에서 그 직분과 소명을 천사들은 다 이루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도 여기에서 배워야 합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두신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하늘의 천사들처럼 즐거이 그리고 충성스럽게 다 하고 나아야 합니다. 때로는 나보다 능력이 적은 사람을 섬겨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때에도 즐겁고 충성스럽게 해야 마땅합니다. 
직분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람은 위에 있는 사람이 능력이 부족할 때에 치고 올라가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직분 때문에 그 일을 하는 것이지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나보다 능력이 부족한 윗사람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나를 그 사람 밑에 두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천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도 지혜와 능력이 매우 부족한 우리를 섬기지만 사실은 그 일을 맡기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중요하게 고려할 것은 능력의 관점이 아니라 직분의 관점입니다. 천사들이 그 직분에서 하나님께서 충성을 다한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께서 두신 자리에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를 섬기고 서로의 직분을 존중하고 나아가야 하는 것을 여기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기의 직분에 충실할 때에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처럼 땅에서도 이뤄지는 것입니다. 거기에서는 사람 개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나타납니다.
*김헌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강해 제4권] (서울: 성약출판사, 2010년) 
187쪽~189쪽. 
교훈의 풍조와 유행으로 사람들의 생각을 사로잡음
사탄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로서 세상 사람들을 이렇게 휩싸서 이끌고 갑니다. 하나님 나라와 대비되는 세상은 시대를 따라서 유행이 있고 나름대로의 문제점도 있고 스스로 해결하는 방식도 있습니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 그 원인과 해결책들은 나름대로 제시하고, 그것만 해결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말하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죄와 구원에 대한 진리를 어떤 문제에 적용해서 설명하는 셈입니다. 죄와 구원의 길에 대해 나름대로 제시한다는 면에서, 사탄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흉내 내는 일이 많습니다.
그런데 사탄이 이야기하는 문제점을 잘 들여보면, 그는 성경이 말하는 우리의 본질적인 죄를 지적하는 법이 없습니다. 문제는 그것 외에 다른 데에 있다고 합니다. “누구만 없으면 되니까, 그 사람을 잘라 내자.”고 하거나, “이것은 제도적인 문제니까, 그 제도만 어떤 방식으로 고치면 된다.‘고 합니다. 물론 어떤 문제에 대해서는 제도적인 측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있는 사람의 죄에 대해서는 전혀 이야기하지 않고 제도만 고치면 된다는 것도 사탄의 속임수입니다. 
어떤 이론이 유행하면 그 이론으로 사회를 다 바꿔야 될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10 년이나 20 년이 지나면 더 이상 그 이론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게 요란을 떨지 않아도 되는 문제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떤 유행 안에 있으면 안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 길을 가기 때문일 것입니다. 문제는 그러한 유행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사탄이 행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백성이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서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가도록 힘씁니다.(엡 4:14)
사탄이 사람을 꾈 때에 사람들이 따르는 유행과 교훈의 풍조를 이용한다고 했는데, 그러한 유행은 작은 데에서도 나타납니다. 사람들은 속에 진리가 없고 확신이 없기 때문에 생활에서도 유행을 따라갑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유행하는 어떤 옷을 입으니까 자기도 그러한 옷을 입으려고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그 축에 끼지 못할 것 같으니까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신발도 어떤 종류의 것으로 신지 않으면 구세대 사람이 돼서 밀리는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거기에 따라갑니다.
“온 세상이 그 악한 자 안에 처했다.”(요일 5:19)고 했는데, 이것은 ‘사탄이 자기 품에 뉘고서 끌고 간다.’는 뜻입니다. 마치 어머니가 아이를 품에 뉘고서 자장자장 하면서 달래고 재우듯이, 사탄은 사람들에게 그릇된 정신을 줘서 그쪽으로 끌고 갑니다. 분위기가 그렇기 때문에 상당히 배웠다는 사람도 그 유행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큰일에서나 작은 일에서 세상의 풍조에 휩쓸리는데, 그러한 풍조를 배후에서 일으키고 조종하는 자가 바로 사탄입니다. 사탄은 세상을 자기 품에 뉘고서 끌고 가는 세상의 임금입니다.
* 김헌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강해 제4권](서울: 성약출판사, 2010) 
275쪽~27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