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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칼럼

충성에 관한 서구의 관점

충성(loyalty)은 한국에서는 주로 부하가 보스에게 보이는 태도를 의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 충성은 서구권에서는 상호적인 것이다.
선택은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감수, 댓가를 의미하지만 한국인들을 이것을 대체로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짬짜면 같이 짜장, 짬뽕을 정하는 데서도 어려움을 겪는다. 이런 "결정 장애"를 대부분이 겪는다.
그리고 이런 특징은 "갑질"로 이어진다. 충성이 상호적이라고 느끼지 않고 윗사람으로 마땅히 보여야 할 아랫사람에 대한 충성의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갑질"이라는 것이 발생한다.
한국인들은 한국 문화의 장점으로 팁이 없는 것을 들지만, 팁은 바로 이런 상호적 신뢰 관계를 보여주는 대표적 문화다. 한국인 대부분은 그렇지 않지만 매장과 업장에서 보이는 한국인들의 갑질에는 이런 문화가 자리하고 있다.
한국은 대표적 "저 신뢰 사회"에 속한다. 서구인들은 정직이 모든 관계에 기초며 법률 다툼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는 이것이 모두 지배 계층에 집중되어 있다. 학교, 직장, 군대, 심지어 교회에 이르기까지 어느 조직도 직장 내에서 발생하는 폭력과 부조리에 대해서 그것을 인정하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은 우리 조직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이기 때문에 대부분 덮히고 만다. 그리고 이 부분에 있어서 아랫사람은 충성을 요구 받지만 윗사람은 어떤 책무에서도 대게 자유롭다.
이것이 "정직"을 기초로 서로 "주고 받는" 관계로서 충성을 사회적 관계의 기초로 놓고 있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 각종 국제 지표에서 항상 "부패"에서 상위권을 차지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서구인들은 "개인주의"를 앞세우지만 이 로열티를 매우 분명히 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지배 계층이라도 이 신뢰를 무너뜨릴 때, 댓가를 치르게 된다.
그리스도인은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엡 4:25)는 명령을 받았다. 그리고 이 신뢰 관계는 믿음의 실천적 삶의 지평이라 할 수 있다.
공동체적 가치가 높은 우리 사회는 좀더 자기 확신이 더 자랄 필요가 있다. 남의 눈을 더 신경 쓰다 보니 결정적 장면에 거짓과 외식으로 자기 삶을 유리시키게 된다. 우리는 보여지는 것을 행복을 얻지 못한다. 행복은 내가 경험하는 삶이다. 더 나답게 행동하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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