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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칼럼

남명의 경과 칼뱅의 경건

남명 조식은 경(敬)을 자기 내면을 향한 전투로 묘사했는데 이를 시살(廝殺), 즉 그 뜻은 싸움터에서 사력을 다해 적을 치는 행위, 또는 그 세력을 갈라쳐 약하게 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그는 이렇게 표현했다.
"밥해 먹던 솥도 깨부수고 주둔하던 막사와 타고 왔던 배도 불 지른 다음, 사흘 먹을 식량만 가지고 사졸들에게 죽지 않고는 돌아가지 않는다는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이와 같이 하여야 반드시 삿된 욕심의 싹을 하나하나 섬멸할 수 있다."
남명의 표현을 보면, 전자인 듯 하지만 후자도 충분히 가능하다. 사력을 다해야 하는 순간이 있는가 하면 그것의 힘을 약화시켜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때에 맞는 전략과 작전이 필요하다.
유학에서 경은 "공경"의 의미보다 "깨어 있음"에 가깝다. 마음에서 미미하게 발현하는 인의예지의 발현을 알아차리고 이것이 삿된 마음으로 기울어지지 않도록 그 마음을 밝히는 것을 의미한다.
칼뱅은 경건을 "하나님 거역하는 것을 죽음보다 더 무서워하는 신실한 감정"이라고 묘사했다.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 우리 마음에 조명하신 것을 끝까지 지키려는 신실한 마음이 "경건"이다.
물론, 성경의 경건은 은혜의 힘이 부어지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조명이 없는 밤, 목장의 소들은 검은 소인지, 누런 소인지, 어룩 소인지 구분할 수 없듯이, 성령이 우리 마음을 조명하지 않고는 죄된 마음의 발호를 깨달을 수 없다.
화재에서 "초기진화"가 중요하듯이, 죄된 마음이 타오르고 나면 그 욕망을 채워지기 전까지 멈추지 않는다. 저절로 가라앉는 법이 없다. 소돔을 돌아봐 소금 기둥이 된 롯의 아내처럼 욕망은 멸망의 순간에도 미련을 잊지 못하는 법이다. 욕심이 잉태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해 사망에 이르는 법이다.
그러므로 그 마음에 일어나는 죄의 불씨가 화염이 되기 전에 섬멸하는 것, 그것이 바로 경이며 경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