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7년 이탈리아 북부의 도시 국가 제노바의 위성도시 카파가 크림반도에 있었다. 당시 몽고제국은 4한국으로 나뉘어 있었고 크림반도 위쪽에서 크림반도를 압박하던 킵차크 한국은 한 명의 기독교인 살인자가 카파로 피신하게 되자 살인자를 내 놓으라고 요구하게 된다. 이 일이 도화선이 되어 카파와 킵차크 간에 전쟁이 벌어지는데 공성전을 통해서 페스트 보균자의 시체를 던져 넣었다. 이렇게 크림반도의 카파는 페스트에 감염되었다.
카파에서 출발했던 메시나의 12척의 상선이 이탈리아 시칠리아에 도착했고 도착했을 때 선원들의 대부분이 페스트로 사망한 상태였다. 이 때로부터 3년, 곧 1350년까지 유럽 전역으로 페스트가 퍼져나갔다. 유럽 인구의 1/3일 사망했다. 질병을 막으려고 노력했던 성직자들이 가장 많이 죽어나갔고 성직자의 부족은 자격 없는 성직자들을 양산하게 되어 이 일은 유럽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된다.
농노들이 귀해져서 농노들의 임금이 올랐고 중세적인 신분 질서와 교회의 권위가 크게 추락하는 계기가 되었다. 노동력이 부족하게 되자 노동력을 대신할 기계 기술이 발달하게 된다. 인쇄술의 발달도 이런 맥락 속에 놓여 있다. 농노들의 입금이 오르긴 했지만 농노들에겐 선택지가 많아졌다. 도시의 상공인들과 그들이 운영하는 길드는 신분 상승과 부의 축적하는 새로운 길이 되었고 농노들이 대거 이탈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렇게 이탈한 농노들은 도시로 진출해 상공업이 발달하기도 했다. 부유해진 농노들과 갑작스럽게 유산을 물려받은 귀족들은 여러 급작스런 죽음 앞에서 자신의 삶을 위로하기 위해서 예술이 발달하게 된다.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미술의 발달은 이 점이 주효한 이유이기도 했다.
전염병은 유럽의 정치 질서, 경제 질서, 종교 질서를 변화시켰다. 종교개혁 당시 종교개혁의 지지자들을 프랑스에서는 위그노라 불렀는데 이들은 대부분 그들의 조상이 농노였고 도시로 진출해 상공인이 된 사람들이었다. 당시 프랑스는 유럽에서 가장 앞선 기술 선진국이었으나 후에 국왕이 위그노를 핍박하자 프랑스로부터 위그노들의 출애굽이 일어났다. 이들은 독일로 네덜란드로 이주하게 된다. 이로 인해 프랑스의 국력은 쇠퇴하게 되고 네덜란드는 해상 강국이 된다. 당시 유럽에서 가장 뒤쳐져 있던 독일은 위그노가 이주하는 것을 강력지 지지하는 법들을 만들었고 지금도 베를린에는 위그노의 집성촌이 존재한다.
뿐만 아니라 네덜란드의 오렌지공은 나중에 영국의 왕위 계승자가 되어서 영국으로 갈 때 함께 이주하게 된 위그노 출신의 네덜란드의 기술자들로 인해서 영국이 산업혁명이 일어나는 도화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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